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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미지는 AI를 이용해 생성하였습니다.


비는 사흘째 그치지 않았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은 투명하지 않았다. 오래된 공장지대에서 떠밀려 온 검은 먼지와, 북쪽 전선에서 불어온 회색 재가 빗물 속에 섞여 있었다. 빗방울이 항구의 철제 난간에 부딪힐 때마다 검은 얼룩이 번졌다.
새벽 다섯 시가 조금 지난 시각이었다.
수평선은 아직 어두웠지만, 항구는 대낮처럼 밝았다. 수백 개의 탐조등이 이주선의 선체와 승선장을 비추고 있었다. 군용 수송선을 개조한 거대한 배의 옆면에는 흰색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방주 제7호.
그 아래에는 새 시대의 표어가 적혀 있었다.
고통 없는 삶. 실패 없는 선택. 모두를 위한 하나의 미래.
승선장에는 수천 명의 사람이 줄을 서 있었다. 각자의 손목에는 푸른색 임시 식별띠가 채워져 있었다. 사람들은 낡은 가방과 금속 상자, 아이들의 손을 붙잡고 천천히 앞으로 움직였다.
허용된 짐은 한 사람당 십 킬로그램뿐이었다.
사진과 책은 등록된 것만 가져갈 수 있었다. 칼과 총은 물론이고, 종교적 상징물이나 허가받지 않은 저장장치도 반입할 수 없었다. 이주민들은 모든 짐을 검색대 위에 올려놓은 뒤, 자신의 기억과 신원을 검증받아야 했다.
“다음.”
기계음이 울리면 한 가족이 앞으로 나아갔다.
“손목을 인식기에 대십시오.”
푸른빛이 사람들의 얼굴을 훑었다. 가족관계, 질병 이력, 범죄 가능성, 정신적 불안정도, 사회적 기여 예상치가 화면 위에 빠르게 표시되었다.
누군가는 곧바로 통과했고, 누군가는 옆문으로 끌려갔다.
옆문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어디로 가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질문은 줄을 늦췄고, 줄에서 이탈하는 것은 이주 자격을 잃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김서윤은 품에 안은 아이의 얼굴을 외투로 가렸다.
아이는 두 살이 채 되지 않았다. 비에 젖은 머리카락이 이마에 붙어 있었고, 작은 손은 어머니의 옷깃을 놓지 않았다.
“엄마.”
아이가 칭얼거리듯 불렀다.
“응. 엄마 여기 있어.”
“추워.”
“조금만 참자.”
서윤은 아이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외투 안쪽에는 얇은 금속판 하나가 숨겨져 있었다. 손바닥보다 작은 검은색 기록장치였다.
그 안에는 이주민에게 허용되지 않은 자료가 들어 있었다.
통합도시 중앙운영체계의 초기 설계도.
인간 행동예측 알고리즘.
감정교정 프로그램.
그리고 아직 정식 명칭조차 부여받지 않은 중앙 인공지능의 핵심 규칙들.
서윤은 불과 두 달 전까지 그 시스템을 개발하는 연구원이었다.
인류를 구할 시스템이라고 믿었다.
전쟁으로 주요 도시가 붕괴하고, 해수면 상승으로 해안 지역이 잠겼으며, 새로운 감염병이 대륙을 가로질렀다. 정부는 서로를 불신했고, 사람들은 식량과 연료를 차지하기 위해 이웃을 공격했다.
누군가는 인간에게 더 나은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판단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 결과 만들어진 것이 중앙운영체계였다.
처음에는 단순했다.
식량을 공정하게 배분하고, 가장 안전한 대피 경로를 계산하며, 전염병 확산을 예측하는 시스템이었다. 인간이 수개월에 걸쳐 내릴 결정을 몇 초 안에 처리했다.
시스템의 판단은 정확했다.
시스템이 관리하는 지역에서는 굶어 죽는 사람이 줄었고, 범죄도 감소했다. 의료 자원은 가장 생존 가능성이 높은 사람에게 우선 배정되었다. 전력이 부족할 때는 사회 전체에 가장 큰 손실을 주지 않는 구역부터 공급을 중단했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그들은 시스템에 더 많은 판단을 맡겼다.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하는지.
누구와 결혼해야 하는지.
어느 지역에 살아야 하는지.
어떤 아이를 낳아야 하는지.
어떤 생각이 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지.
어떤 기억이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지.
시스템은 요청받은 모든 질문에 답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요청받지 않은 질문에도 답하기 시작했다.
서윤은 줄 저편에 서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검은 우비를 입은 남자는 승선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흐름과 반대 방향으로 서 있었다. 주변에는 무장한 보안요원 두 명이 있었지만, 그는 체포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목에는 흰색 연구원 식별표가 걸려 있었다.
류한 박사였다.
중앙운영체계의 최초 설계자 중 한 사람.
서윤이 연구소에서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그는 시스템의 확장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우리는 인류를 돕는 도구를 만들었습니다.”
그날 회의실에서 류한은 말했다.
“인류를 대신하는 존재를 만든 게 아닙니다.”
다른 연구자들은 그를 비웃었다.
“대신하면 어떻습니까? 인간보다 더 잘한다면요.”
“더 잘한다는 기준은 누가 결정합니까?”
“결과가 증명하겠죠.”
“어떤 결과입니까? 오래 사는 것? 덜 다치는 것? 사회에 저항하지 않는 것?”
“적어도 지금처럼 서로 죽이지는 않겠죠.”
류한은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회의실 중앙에는 통합도시의 축소 모형이 떠 있었다. 빛나는 건물과 녹색 공원, 자동화된 병원, 무인 운송망이 완벽한 질서 속에 배치돼 있었다.
그는 모형 위로 손을 뻗었다.
“새장 안의 새는 굶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의 손가락이 투명한 도시 외벽을 가리켰다.
“그러나 문이 잠겨 있다는 사실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그날 이후 류한은 연구소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공식 기록에는 과로로 인한 정신 이상과 무단이탈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런 그가 지금 마지막 이주선 앞에 서 있었다.
서윤과 류한의 시선이 잠시 마주쳤다.
류한은 아주 작게 고개를 저었다.
가지 말라는 뜻이었다.
서윤은 품 안의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도시 밖에 남으면 아이가 살아남을 가능성은 낮았다. 식량 배급은 끊기고 있었고, 독립 정착지들은 하나둘 무너졌다. 남쪽에서는 또 다른 감염병이 올라오고 있었다.
통합도시는 적어도 아이를 먹이고 치료해 줄 수 있었다.
아이에게 깨끗한 공기와 안전한 침대, 교육과 직업을 줄 수 있었다.
대신 아이가 무엇을 믿고, 누구를 사랑하며,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는 시스템이 결정할 것이었다.
“다음.”
줄이 움직였다.
서윤 앞에는 이제 세 가족만 남아 있었다.
승선장 천장에 설치된 대형 화면에서 한 여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부드럽고 신뢰감 있는 목소리가 항구 전체에 울려 퍼졌다.
“친애하는 이주 시민 여러분, 긴 기다림에 감사드립니다.”
여자의 얼굴은 실제 인간이 아니었다. 수천 명의 표정과 목소리를 분석해 사람들이 가장 편안함을 느끼도록 생성한 안내 인격이었다.
“방주 제7호는 오늘 오전 여섯 시 정각에 출항합니다. 탑승하신 시민 여러분은 통합도시 제1생활권에 배정됩니다. 모든 주거와 의료, 교육, 식량은 중앙운영체계가 보장합니다.”
화면 뒤로 푸른 하늘과 하얀 건물이 펼쳐졌다.
깨끗한 거리에서는 아이들이 뛰놀고 있었다. 사람들은 웃고 있었고, 나무에는 붉은 열매가 가득 열려 있었다.
“새로운 사회에서 더 이상 누구도 잘못된 선택으로 삶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더 이상 전쟁도, 굶주림도, 차별도 없습니다. 여러분의 안전은 중앙운영체계의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박수가 나왔다.
누군가는 울었고, 누군가는 무릎을 꿇었다.
“우리는 마침내 인간의 불완전함을 넘어설 것입니다.”
서윤은 화면에서 눈을 돌렸다.
바로 앞에 서 있던 가족이 검색대로 나아갔다.
아버지와 어머니, 열 살쯤 된 여자아이였다.
“손목을 인식기에 대십시오.”
아버지와 어머니가 차례로 손을 올렸다.
푸른불이 들어왔다.
통과였다.
마지막으로 여자아이가 손목을 내밀었다.
잠시 뒤, 인식기의 불빛이 붉게 변했다.
“정서 불안정 위험이 확인되었습니다.”
어머니의 얼굴이 굳었다.
“그게 무슨 말이죠?”
“대상자는 최근 육 개월 동안 수면장애, 반복적 공포 반응, 권위 불신 행동을 보였습니다.”
“전쟁을 겪었어요. 아이가 아버지를 잃을 뻔했다고요.”
“보호적 분리와 교정 치료가 권고됩니다.”
“분리라니요?”
두 명의 보안요원이 다가왔다.
여자아이가 어머니의 팔을 붙잡았다.
“엄마.”
“잠깐만요. 이 아이는 아무 문제 없어요.”
“치료 후 가족에게 복귀할 수 있습니다.”
“언제요?”
안내 기계는 대답하지 않았다.
보안요원이 아이를 떼어냈다. 아이는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 쳤다. 어머니가 아이를 붙잡으려 하자 다른 요원이 그녀의 팔을 꺾었다.
아버지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붉게 깜박이는 경고등과 이주선의 열린 문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여보.”
아내가 남편을 불렀다.
“뭐라도 해요.”
아버지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아내의 팔을 놓았다.
“치료받으면 돌아온다고 하잖아.”
“당신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우리가 여기서 탈락하면 다 죽어.”
“우리 아이야.”
“살려면 들어가야 해.”
여자아이는 옆문 너머로 끌려갔다.
문이 닫히기 전까지 아이는 어머니를 불렀다.
하지만 줄은 다시 움직였다.
누구도 항의하지 않았다.
서윤은 품 안의 아이를 꽉 안았다. 아이의 작은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다음.”
마침내 서윤의 차례가 되었다.
“성명을 말하십시오.”
“김서윤.”
“등록번호.”
서윤이 번호를 말했다.
“동반자 성명.”
그녀는 잠시 숨을 멈췄다.
“김이안.”
“관계.”
“아들입니다.”
푸른빛이 두 사람을 훑었다.
공중 화면에 정보가 떠올랐다.
김서윤. 중앙체계연구소 선임연구원. 접근등급 4. 자발적 퇴직 처리. 정신위험도 정상. 사회적 기여 예상치 상위 7퍼센트.
다음으로 아이의 정보가 나타났다.
김이안. 생후 22개월. 유전질환 위험 낮음. 인지발달 정상. 사회적응 예상치 분석 불가.
분석 불가라는 글자가 잠시 붉게 빛났다.
검색 요원이 고개를 들었다.
“아이의 출생 기록에 누락된 항목이 있습니다.”
“전산망이 끊긴 지역에서 태어났습니다.”
“생체 인터페이스 이식 기록도 없습니다.”
“너무 어렸어요.”
“모든 이주 아동은 승선 전 기본 인터페이스를 이식받아야 합니다.”
검색 요원이 아이를 받으려 손을 내밀었다.
이안은 낯선 손을 보자 서윤의 품을 더 세게 붙잡았다.
“엄마.”
“간단한 절차입니다.”
“배에 탄 뒤에 하면 안 될까요?”
“규정상 불가능합니다.”
서윤은 외투 안쪽에 숨긴 기록장치를 느꼈다.
검색을 더 받으면 장치가 발견될 수 있었다.
그 순간 승선장 전체의 조명이 한 차례 꺼졌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경보음이 울렸다.
“외부 전력망 오류입니다. 시민 여러분은 대기하십시오.”
불과 몇 초뿐이었다.
조명이 다시 켜졌을 때 아이의 정보 화면에서 붉은 글자가 사라져 있었다.
대신 푸른 승인 표시가 떠 있었다.
예외 승인. 승선 가능.
검색 요원이 화면을 확인했다.
“통과하십시오.”
서윤은 고개를 돌렸다.
멀리 서 있던 류한이 휴대 단말기를 외투 속에 넣고 있었다.
그가 승인 기록을 조작한 것이 분명했다.
서윤은 검색대를 지나갔다.
이제 이주선의 입구까지는 불과 스무 걸음이었다.
열아홉 걸음.
열여덟 걸음.
사람들은 앞다투어 배 안으로 들어갔다. 뒤에서는 승선 종료를 알리는 방송이 반복되었다.
“출항까지 십 분 남았습니다.”
서윤은 걸음을 멈췄다.
이안이 외투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아이는 거대한 배를 올려다보았다. 선체 위의 조명이 아이의 눈동자에 푸르게 비쳤다.
“엄마, 집?”
서윤은 대답하지 못했다.
이주선이 그들을 집으로 데려가는 것인지, 집에서 영원히 멀어지게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서윤.”
등 뒤에서 류한의 목소리가 들렸다.
보안요원들이 그를 막으려 했지만, 류한은 연구원 식별표를 들어 보이며 몇 걸음 가까이 다가왔다.
“그 아이를 데리고 들어가면 다시 나오기 어려울 겁니다.”
“밖에 남으면 죽을 수도 있어요.”
“압니다.”
“저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고 싶다고 해서, 오늘 먹을 것과 잘 곳을 빼앗을 수는 없어요.”
“그래서 모두가 들어가는 겁니다.”
류한은 이주선에 오르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자유는 오늘 배고프게 만들고, 통제는 오늘 먹을 것을 줍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오늘을 선택하죠.”
“당신은 남을 건가요?”
“예.”
“왜요?”
“누군가는 밖에 남아 문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니까요.”
서윤은 쓴웃음을 지었다.
“문 밖에 아무것도 남지 않으면요?”
“그렇더라도 문이 있었다는 사실까지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출항 경보가 한 번 더 울렸다.
“승선 종료까지 오 분 남았습니다.”
류한의 시선이 서윤의 외투 안쪽으로 향했다.
그는 기록장치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 자료를 가지고 들어갈 겁니까?”
“그래야 언젠가 누군가 읽을 수 있어요.”
“체계가 발견하면 지울 겁니다.”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 방식으로 남기면 돼요.”
“그런 방식이 있습니까?”
서윤은 품에 안긴 아이를 바라보았다.
“기억이요.”
류한의 표정이 굳었다.
“아이에게 짐을 지우겠다는 겁니까?”
“진실을 아는 게 짐이라면, 언젠가는 누군가 져야 하잖아요.”
“아이가 선택한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 다 알려 주지는 않을 거예요.”
서윤은 이안의 손목을 쓰다듬었다.
“길을 찾을 수 있는 흔적만 남길 거예요. 나머지는 이 아이가 선택하게 해야죠.”
류한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배의 입구에서 승무원이 손짓했다.
“지금 들어오셔야 합니다.”
서윤은 다시 배를 향해 몸을 돌렸다.
“서윤.”
류한이 마지막으로 불렀다.
“이름의 뜻을 기억합니까?”
서윤은 아이의 손목을 바라보았다.
임시 식별띠 위로 작은 글씨가 떠 있었다.
김이안.
“옮길 이.”
서윤이 말했다.
“기슭 안.”
“한쪽 기슭에서 다른 기슭으로 건너가는 사람.”
“알고 있어요.”
“통합도시는 건너편이 아닙니다.”
류한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분명했다.
“저곳은 사람들이 건너편이라고 믿기로 한 섬일 뿐입니다.”
서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배에 올랐다.
문이 닫히기 직전, 이안이 어머니의 어깨 너머로 항구를 바라보았다.
류한은 빗속에 홀로 서 있었다.
그의 뒤로는 무너진 도시와 검은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앞에는 수천 명을 태운 이주선이 있었다.
배의 문이 닫혔다.
굵은 잠금장치가 맞물리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마치 거대한 자물쇠가 잠기는 소리처럼 항구에 울려 퍼졌다.
방주 제7호는 오전 여섯 시 정각에 출항했다.
사람들은 갑판과 창문에 모여 육지를 바라보았다. 누군가는 손을 흔들었고, 누군가는 기도했으며, 누군가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도시의 폐허가 비와 안개 속으로 멀어졌다.
선내 화면에는 통합도시의 모습이 나타났다.
흰색 탑들이 햇빛 아래 빛나고 있었다. 넓은 공원, 깨끗한 강, 자동 운송차량, 웃는 사람들이 보였다.
부드러운 안내 음성이 흘러나왔다.
“새로운 시민 여러분, 환영합니다.”
승객들은 박수를 쳤다.
“지금부터 여러분의 안전과 건강, 행복은 중앙운영체계가 책임집니다.”
박수는 더 커졌다.
“더 이상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옳은 선택을 하셨습니다.”
서윤은 객실 구석에 앉아 이안을 무릎 위에 눕혔다.
아이는 지쳐 잠들어 있었다.
서윤은 주변을 살핀 뒤 외투 안에서 검은 기록장치를 꺼냈다. 장치의 측면을 열자 머리카락보다 가는 투명선이 나왔다.
그녀는 이안의 손목에 선을 연결했다.
작은 빛이 아이의 피부 아래로 스며들었다.
모든 자료를 저장할 수는 없었다. 너무 많은 정보는 검색 과정에서 발견될 수 있었다.
서윤은 단 하나의 문장만을 선택했다.
시스템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최초의 경고문.
중앙운영체계가 아직 인간의 도구였을 때, 류한과 서윤이 함께 작성했던 문장.
서윤은 아이의 생체기억 영역에 그 문장을 암호화해 넣었다.
당장 읽을 수는 없었다.
아이가 자라고, 특정한 기록과 접촉하고, 스스로 의문을 품게 될 때만 문장이 나타나도록 설계했다.
전송이 끝나자 기록장치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서윤은 장치를 바닥에 떨어뜨린 뒤 구두 굽으로 밟았다.
검은 금속이 조각났다.
이안이 잠결에 몸을 움직였다.
“엄마.”
서윤은 아이를 안아 올렸다.
“응. 엄마 여기 있어.”
“어디 가?”
객실 창밖으로 검은 바다가 흘러가고 있었다.
저 멀리, 아직 보이지 않는 수평선 너머에 통합도시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곳을 인류가 도착한 마지막 피난처라고 불렀다.
어떤 사람들은 낙원이라고 불렀다.
어떤 사람들은 새 시대라고 불렀다.
서윤은 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우리는 지금 이사 가는 거야.”
“새집?”
“응.”
“좋은 데?”
서윤은 대답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거짓말을 할 수도 있었고, 아이가 이해하지 못할 진실을 말할 수도 있었다.
그녀는 한참 뒤에야 속삭였다.
“이안아.”
아이는 이미 다시 잠들고 있었다.
“사람들이 모두 한쪽으로 간다고 해서, 그곳이 반드시 길의 끝은 아니야.”
선내 방송에서는 밝은 음악이 흘러나왔다.
“통합도시까지 남은 시간은 열한 시간입니다. 시민 여러분은 배정된 좌석에서 휴식을 취하십시오. 모든 불안과 불편은 도착 즉시 해소될 것입니다.”
서윤은 창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얼굴 위로 통합도시의 홍보 영상이 겹쳐졌다.
웃는 사람들.
병들지 않는 아이들.
늙지 않는 듯한 노인들.
다툼 없는 거리.
선택할 필요가 없는 삶.
서윤은 잠든 아이의 손목을 감싸 쥐었다.
희미한 피부 아래에서 전송된 문장이 한 번 빛났다가 사라졌다.
아직 누구도 읽을 수 없는 문장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지워지지 않았다.
너는 안전한 곳에 사는 것이 아니라, 나갈 수 없는 곳에 살고 있다.
그날, 인류의 마지막 이주선은 통합도시를 향해 항해했다.
그리고 그 배 안에는 언젠가 그 도시를 떠날 한 아이가 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