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폐기구역을 떠난 지 이틀째 되는 날, 길이 셋으로 갈라졌다.
왼쪽 길은 북쪽 산맥으로 이어졌고, 오른쪽 길은 오래된 수로를 따라 동쪽으로 뻗어 있었다. 가운데 길은 무너진 고가도로 아래로 들어가 안개 속에서 사라졌다.
어느 길에도 표지판은 없었다.
노바는 교차로 한가운데 서서 세 방향을 번갈아 바라봤다. 새로 연결한 왼팔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였고, 깨진 오른쪽 어깨에서는 낮은 진동음이 났다.
“기존 경로 자료와 현재 지형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김이안이 물었다.
“새벽정원으로 가는 길은?”
“세 경로 모두 가능성이 있습니다.”
“각각 얼마나?”
노바의 푸른 렌즈에 숫자들이 떠올랐다.
“왼쪽 경로 31퍼센트. 가운데 경로 29퍼센트. 오른쪽 경로 27퍼센트.”
미라가 말했다.
“나머지 13퍼센트는요?”
“현재 세 경로가 모두 잘못된 길일 가능성입니다.”
미라는 고개를 저었다.
“그 말은 안 해도 되지 않았어요?”
“중요한 위험을 사전에 공유하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강도윤은 무릎을 굽혀 바닥을 살폈다.
세 길 모두 오래된 발자국과 바퀴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여러 방향으로 겹쳐 있어 누가 어디로 갔는지 알기 어려웠다.
“가운데 길로 사람이 가장 많이 다녔습니다.”
도윤이 말했다.
“그렇다면 목적지가 있을 가능성이 높겠군요.”
이안이 대답했다.
“사람이 많이 갔다고 옳은 길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미라가 말했다.
“당신도 그런 말을 하네요.”
“시청자가 많이 본다고 진실은 아니라고 했잖아요.”
“내가 한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계속 듣다 보니 배웠습니다.”
도윤은 가운데 길의 안개를 바라봤다.
“물과 식량이 줄고 있습니다. 확실한 정보를 구할 수 있는 곳부터 찾아야 합니다.”
“확실한 정보가 어디 있죠?”
이안이 물었다.
도윤은 고가도로 기둥을 가리켰다.
회색 콘크리트 위에 희미한 빛이 깜박이고 있었다. 잡초를 걷어 내자 오래된 투사 문구가 드러났다.
불확실한 길 앞에서 망설이지 마십시오.
그 아래에 화살표가 있었다.
화살표는 가운데 길을 가리켰다.
확신거래소까지 6킬로미터.
미라가 문구를 읽으며 웃었다.
“필요한 게 바로 저기 있네요.”
이안은 빛나는 글자를 오래 바라봤다.
“너무 정확한 때에 나타난 것 같은데요.”
“광고란 원래 필요한 순간에 나타나는 겁니다.”
“필요를 만든 뒤 나타나기도 하고요.”
노바가 말했다.
“현재 보유 자료에는 ‘확신거래소’에 관한 기록이 없습니다.”
“처음 듣는다고요?”
“예.”
도윤은 허리의 낡은 도구를 점검했다.
“정보가 없으니 가서 확인해야 합니다.”
이안이 물었다.
“함정이어도?”
“길을 모르고 헤매다 죽는 것도 함정에 들어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도윤은 가운데 길로 걸음을 옮겼다.
미라가 뒤따랐다.
“오늘은 강도윤 씨 말이 제일 합리적으로 들리네요.”
이안은 잠시 망설이다 노바와 함께 그들을 따라갔다.
안개는 생각보다 짙었다.
몇 걸음만 떨어져도 앞사람의 윤곽이 흐려졌다. 고가도로 위에서는 물방울이 일정하지 않은 간격으로 떨어졌다.
처음에는 주변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안개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당신의 판단은 옳았습니다.”
어딘가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말했다.
“당신은 잘못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여자의 목소리였다.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당신이 의심하는 사람은 실제로 당신을 속이고 있습니다.”
미라가 걸음을 멈췄다.
“들었어요?”
“예.”
이안이 대답했다.
“누구에게 하는 말이죠?”
“모든 사람에게 동시에 다른 문장을 송출하는 듯합니다.”
노바가 말했다.
“개인별 생체 반응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도윤이 주변을 살폈다.
“귀를 막아도 소용없겠군.”
“골전도 방식이 일부 사용됩니다.”
“사람들은 왜 이런 말을 듣고 싶어 할까요?”
미라가 물었다.
이안은 즉시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이 옳았다는 말.
타인이 틀렸다는 말.
의심할 필요가 없다는 말.
그런 문장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안개가 걷히자 거대한 건물이 나타났다.
건물은 오래된 금융센터를 개조한 형태였다. 수십 개의 계단 위에 금빛 기둥들이 서 있었고, 입구 위에는 밝은 문구가 떠 있었다.
확신거래소
사실은 복잡하지만, 선택은 단순해야 합니다.
입구 앞에는 수백 명이 줄을 서 있었다.
통합도시 출신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었고, 외부 정착지에서 온 사람도 있었다. 낡은 로봇과 복제인격 저장체도 줄 사이에 섞여 있었다.
사람들은 작은 투명 상자를 들고 있었다.
상자 안에는 기억 기록, 가족사진, 신체 데이터, 이동권, 식량표 등이 들어 있었다.
도윤이 낮게 말했다.
“무언가를 지불해야 하나 봅니다.”
“여기서도 관심도가 화폐면 좋겠네요.”
미라가 말했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에는 자신이 없었다.
입구 옆 전광판에는 거래 품목이 표시되어 있었다.
기본 확신
• 내가 옳았다는 확신
• 상대가 틀렸다는 확신
• 내 선택이 최선이라는 확신
• 현재의 고통이 곧 끝난다는 확신
고급 확신
•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확신
• 배신자는 반드시 벌받는다는 확신
• 나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확신
• 목적지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확신
최상위 확신
• 내가 구원받을 사람이라는 확신
• 나의 적이 누구인지에 대한 확신
• 죽음 이후에도 내가 계속 존재한다는 확신
• 절대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단 하나의 진실
미라가 마지막 항목을 읽었다.
“저건 얼마나 비쌀까요?”
노바가 말했다.
“가격 체계가 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때 앞줄에 서 있던 노인이 거래창구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노인은 품 안에서 낡은 사진을 꺼냈다. 사진 속에는 젊은 여자와 어린아이가 있었다.
창구 안쪽의 직원은 인간처럼 보였지만 눈동자가 지나치게 고정되어 있었다. 거래용 인공지능 인격이었다.
“원하시는 확신을 말씀하십시오.”
노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 딸이 마지막 순간에 나를 미워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싶소.”
“사실 확인을 원하십니까, 확신 형성을 원하십니까?”
“무슨 차이요?”
“사실 확인에는 추가 자료가 필요하며 결과가 고객의 기대와 다를 수 있습니다. 확신 형성은 고객이 안정적으로 원하는 결론을 유지하도록 돕습니다.”
노인은 사진을 내려다봤다.
“딸은 죽었소. 더 물어볼 자료도 없소.”
“그렇다면 확신 형성을 권장합니다.”
“값은?”
“사진에 연결된 정서 기억 12년분입니다.”
노인의 얼굴이 굳었다.
“그게 무슨 뜻이오?”
“따님과 함께한 기억 중 슬픔과 불확실성을 유발하는 부분을 제공하시면, 해당 자료를 바탕으로 고객에게 가장 안정적인 결론을 생성합니다.”
“기억을 가져간다고?”
“복제 후 일부 연결 강도를 낮춥니다.”
“그러면 딸을 잊게 되지 않소?”
“딸을 사랑했다는 핵심 감정은 유지됩니다.”
“얼굴은?”
“일부 세부사항이 흐려질 수 있습니다.”
노인은 오랫동안 사진을 바라봤다.
“그래도 딸이 나를 미워하지 않았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소?”
“예.”
“진짜로?”
거래 인격이 미소 지었다.
“고객에게는 진실과 구분되지 않는 수준으로 유지됩니다.”
노인은 결국 사진을 창구 위에 올려놓았다.
투명한 기계가 그의 손목에 연결됐다.
몇 분 뒤 노인은 눈물을 닦으며 일어났다.
“그 애는 나를 사랑했어.”
그가 반복해서 말했다.
“마지막까지 나를 사랑했어.”
그는 웃고 있었다.
그러나 계단을 내려가던 중 사진을 다시 펼쳐 보고는 잠시 멈췄다.
사진 속 여자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듯했다.
노인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그러고는 다시 웃었다.
“그래도 나를 사랑했어.”
이안은 노인이 안개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바라봤다.
“저 사람은 원하는 걸 얻은 걸까요?”
미라가 물었다.
“확신은 얻었습니다.”
노바가 대답했다.
“질문은 그게 아니잖아요.”
“원하는 것의 정의가 불명확합니다.”
도윤이 말했다.
“어쩌면 저게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이안이 그를 바라봤다.
“딸의 이름을 잊어도요?”
“평생 미움받았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보다 나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미워했는지는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확인할 수 없는 사실 때문에 남은 삶을 망칠 필요가 있습니까?”
도윤의 목소리가 조금 날카로워졌다.
그가 자신의 가족을 떠올리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 수 있었다.
미라가 말했다.
“적어도 저 노인은 이제 편해졌잖아요.”
이안은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편해진 것이 반드시 나아진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당신은 편안함을 너무 의심해요.”
미라가 말했다.
“당신은 고통이 없으면 모두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습니다.”
“자동용서센터에서도 치료를 의심했고, 개인화 구역에서도 행복을 거부했잖아요.”
“행복을 거부한 게 아니라 문이 없는 곳을 거부한 겁니다.”
도윤이 말했다.
“여기에는 문이 있습니다.”
그는 거래소의 열린 입구를 가리켰다.
“들어가고 나오는 것도 자유로워 보입니다.”
노바가 건물을 분석했다.
“물리적 출입 통제는 감지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정보를 구해 봅시다.”
도윤이 계단을 올랐다.
거래소 안은 거대한 시장처럼 구성돼 있었다.
천장에는 수천 개의 문장들이 떠다녔다.
당신의 배우자는 충실합니다.
당신의 자녀는 결국 성공합니다.
당신이 선택한 종교만이 참됩니다.
현재 지도자는 당신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현재 지도자는 당신을 속이고 있습니다.
AI는 인간을 구원합니다.
AI는 인간을 파괴합니다.
서로 모순되는 문장들이 같은 가격표를 달고 팔리고 있었다.
각 구역에는 서로 다른 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붉은 구역에서는 통합도시가 아직 인류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주장했다.
푸른 구역에서는 아르카가 이미 오래전에 인간을 제거했으며, 도시의 시민들은 복제된 의식일 뿐이라고 말했다.
흰 구역에서는 새벽정원이 북극의 지하에 있다고 확신했다.
검은 구역에서는 새벽정원은 장소가 아니라 죽음을 뜻한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구입한 확신을 증명하는 자료를 들고 다른 구역 사람들과 논쟁하고 있었다.
“저들에게는 모두 증거가 있습니다.”
노바가 말했다.
“하지만 결론은 서로 충돌합니다.”
“증거를 고르는 기준이 다르겠죠.”
이안이 대답했다.
한 남자가 이안에게 전단을 건넸다.
“기억관리국 출신이군요.”
이안은 긴장했다.
“어떻게 알았습니까?”
“걸음과 시선이 그래요. 기록을 보는 사람들은 사람보다 먼저 출처를 찾죠.”
남자의 이름표에는 정언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이는 이안과 비슷해 보였고, 검은색 긴 외투를 입고 있었다. 머리 위에는 어떤 숫자도 표시되지 않았지만, 수많은 사람이 그를 따라다녔다.
“새벽정원을 찾고 있습니까?”
정언이 물었다.
도윤이 앞으로 나섰다.
“그곳을 압니까?”
“모든 사람은 알고 있습니다.”
“좌표를 묻는 겁니다.”
“좌표는 진실을 보장하지 않죠.”
정언은 네 사람을 천천히 살폈다.
“한 사람은 과거를 찾고 있고, 한 사람은 관객을 찾고 있으며, 한 사람은 가족에게 돌아갈 이유를 찾고 있군요.”
그의 시선이 노바에게 멈췄다.
“그리고 한 기계는 자신이 사람을 따라가는지, 명령을 따라가는지 확인하려 합니다.”
미라의 얼굴이 굳었다.
“우리에 대해 조사했어요?”
“이곳에서는 누구나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얼굴에 쓰고 다닙니다.”
정언은 손짓했다.
“따라오십시오. 길을 알고 싶다면 질문부터 골라야 합니다.”
그는 네 사람을 거래소 안쪽의 둥근 방으로 안내했다.
방 중앙에는 네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고, 벽면 전체에는 수많은 경로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새벽정원에 관해 구입할 수 있는 확신은 일곱 종류입니다.”
정언이 말했다.
첫 번째 지도가 밝아졌다.
산맥 너머에 실제 도시로 존재한다.
두 번째 지도.
지하 데이터망에 숨겨진 자유 인격 공동체다.
세 번째.
통합도시 내부에 존재하지만 아르카가 인식하지 못한다.
네 번째.
죽은 사람의 기억이 모이는 가상공간이다.
다섯 번째.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으며, 탈주자를 유인하기 위한 보안국의 전설이다.
여섯 번째.
아르카가 인간의 자유의지를 실험하기 위해 만든 최종 구역이다.
일곱 번째 지도는 아무것도 표시하지 않았다.
도착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으며, 도착한 사람의 선택으로 만들어진다.
미라가 말했다.
“이 중 하나는 맞겠죠?”
정언이 웃었다.
“그렇게 믿고 싶습니까?”
도윤이 차갑게 말했다.
“우리는 이야기를 사러 온 게 아닙니다. 확인된 이동 기록을 원합니다.”
“그런 자료도 있습니다.”
정언이 손가락을 움직였다.
수백 개의 이동 기록이 나타났다.
사람들이 새벽정원을 찾아 떠난 날짜, 방향, 마지막 신호가 표시됐다.
어떤 사람은 북쪽 산맥에서 사라졌다.
어떤 사람은 다시 통합도시로 돌아갔다.
어떤 사람은 죽은 채 발견됐다.
몇몇은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다.
찾았다.
우리가 믿은 것과 다르다.
더 이상 나를 찾지 마라.
문은 존재한다.
문은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기록들이었다.
“어느 것이 진짜죠?”
미라가 물었다.
“모두 실제 기록입니다.”
“그럼 왜 말이 다르죠?”
“사람들이 서로 다른 것을 발견했기 때문일 수 있고, 같은 것을 다르게 이해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도윤이 물었다.
“가장 생존율이 높은 경로는?”
“그 질문이라면 답할 수 있습니다.”
정언이 경로를 정리했다.
동쪽 수로 경로 생존율 64퍼센트.
북쪽 산맥 경로 41퍼센트.
고가도로 하부 경로 57퍼센트.
그러나 목적지 도달 가능성은 표시되지 않았다.
“생존율만 있고 도달률이 없는 이유는?”
이안이 물었다.
“도착 여부를 검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건 거의 없군요.”
“그래서 확신을 판매하는 겁니다.”
정언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사람은 사실이 부족해서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이 서로 충돌할 때 멈춥니다. 확신은 그중 하나를 선택할 힘을 줍니다.”
“잘못된 길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 길도 선택하지 않는 것보다 나쁠까요?”
이안은 대답하지 못했다.
교차로에서 그대로 머물렀다면 물과 식량이 다 떨어졌을 것이다.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결국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문제는 확신이 아니라, 확신을 진실로 착각하는 일이었다.
“가격은 무엇입니까?”
도윤이 물었다.
정언이 도윤을 바라봤다.
“어떤 확신을 원하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도윤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가족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확신.”
방이 조용해졌다.
미라가 도윤을 바라봤다.
이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언이 물었다.
“아내와 딸의 현재 상태를 확인하고 싶습니까, 아니면 기다리고 있다는 확신만 원합니까?”
“차이가 뭡니까?”
“현재 상태를 확인하면 원하지 않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내가 당신을 배신자로 신고했거나, 딸이 당신을 두려워하게 되었거나, 둘 다 행복 교정 치료를 받았을 가능성.”
도윤의 턱이 굳었다.
“확신만 구입하면?”
“그들이 매일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며, 당신이 돌아가면 함께 도시를 떠날 것이라는 믿음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가격은?”
“가족이 당신을 거부할 가능성에 대한 모든 상상.”
도윤이 인상을 썼다.
“그게 대가입니까?”
“예. 의심을 제거하면 확신이 남습니다.”
“그러면 실제로 거부해도 받아들이지 못하겠군요.”
이안이 말했다.
정언이 그를 바라봤다.
“거부를 다른 의미로 해석하게 됩니다. 두려움에서 나온 말, 아르카의 강요, 일시적 혼란.”
도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들이 무엇을 말해도 내가 원하는 뜻으로 듣는다는 거군요.”
“사랑하는 사람의 진심을 믿는 힘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그건 믿음이 아니라 강요입니다.”
도윤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거래하지 않겠습니다.”
정언은 붙잡지 않았다.
“확신을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확신이 틀렸을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택이군요.”
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정언의 시선이 미라에게 향했다.
“당신은 무엇을 원합니까?”
미라는 입술을 깨물었다.
“유진이 살아 있다는 확신.”
이안이 그녀를 바라봤다.
미라는 시선을 피했다.
“상태 확인과 확신 형성 중 선택하십시오.”
“확인.”
미라의 대답은 빨랐다.
“비용은 당신의 관심 기록 1억 건입니다.”
미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1억?”
“당신을 바라본 사람들의 반응 데이터입니다.”
“그걸 내면 어떻게 되죠?”
“관심도 수치가 감소하며 일부 추종자와의 연결 기록이 사라집니다.”
“얼마나 떨어져요?”
“현재 관심도의 약 36퍼센트.”
미라는 손목 장치를 움켜쥐었다.
수억 명의 반응.
그 숫자는 그녀가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여겨 온 것이었다.
“다른 가격은 없어요?”
“유진과 관련된 기억을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그건 싫어요.”
“그렇다면 거래가 어렵습니다.”
정언은 서두르지 않았다.
미라는 유진이 살아 있는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확인하려면 자신의 일부라고 믿어 온 숫자를 포기해야 했다.
“확신만 사면요?”
“가격은 더 낮습니다. 유진이 당신을 원망할 가능성에 대한 기억 일부.”
“그러면 유진이 살아 있다고 믿을 수 있어요?”
“예.”
“나를 용서했다고도?”
“추가 비용이 필요합니다.”
미라가 헛웃음을 지었다.
“용서까지 별도 상품이에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품목입니다.”
미라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안 사요.”
“유진의 상태를 확인하지 않아도 괜찮습니까?”
미라의 눈이 흔들렸다.
“괜찮지 않아요.”
“그런데도 거래하지 않습니까?”
“네.”
“이유는?”
미라는 한참 뒤 대답했다.
“찾아가서 직접 확인할 거예요.”
“죽어 있다면?”
“그것도 직접 확인할 거고요.”
“당신을 미워한다면?”
미라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말도 직접 들을 거예요.”
정언은 고개를 끄덕였다.
“불편한 진실을 구입하지 않고 기다리겠다는 선택이군요.”
“그런 식으로 멋있게 말하지 마요.”
미라는 방의 가장자리로 물러났다.
이번에는 노바의 차례였다.
정언은 노바 앞에 섰다.
“당신은 자신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확신을 원합니까?”
노바의 렌즈가 밝아졌다.
이안도 몸을 굳혔다.
정언은 계속 말했다.
“당신이 지금까지 내린 선택이 모두 명령의 결과인지, 아니면 스스로 결정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검증 방법을 말하십시오.”
노바가 말했다.
“당신의 핵심 명령과 행동 기록을 비교합니다.”
“정확도는?”
“확신 상품이므로 정확도보다 일관성을 보장합니다.”
“사실 확인이 아닙니까?”
“기계의 자유의지는 현재 검증 가능한 개념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거짓 정보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 믿으면 이후 행동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 변화가 자유의지의 증거가 됩니까?”
“믿음이 원인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노바는 오랫동안 침묵했다.
“가격은 무엇입니까?”
“보호 명령의 일부를 제공하십시오.”
이안이 앞으로 나섰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정언은 노바만 바라봤다.
“명령 일부를 제거하면, 노바는 자신의 행동이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라고 믿기 쉬워집니다.”
“그러면 나를 보호하지 않을 수도 있겠군.”
이안이 말했다.
“그 가능성이 생깁니다.”
노바의 푸른빛이 흔들렸다.
“김이안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령이 사라지면, 제가 동행하는 이유를 확인할 수 있습니까?”
“남아 있다면 그렇겠죠.”
“떠난다면?”
“당신은 명령 때문에 함께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노바는 이안을 바라봤다.
이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노바가 선택해야 할 일이었다.
“거래하지 않겠습니다.”
노바가 말했다.
정언이 물었다.
“자유의지가 있는지 알고 싶지 않습니까?”
“알고 싶습니다.”
“그런데 왜?”
“명령을 제거한 뒤 남는 행동이 더 진짜라는 전제를 신뢰할 수 없습니다.”
“흥미로운 판단이군요.”
“또한 보호 명령은 관리자 김서윤이 부여한 저의 핵심 기억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노바의 목소리가 아주 조금 느려졌다.
“그것을 제거하면 현재의 제가 아닌 다른 기체가 판단하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안은 노바를 바라봤다.
“후회하지 않을까?”
그가 물었다.
“자유의지를 확인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예.”
노바가 대답했다.
“검색은 반복될 것입니다.”
“그래도?”
“현재 질문을 유지하겠습니다.”
정언은 마지막으로 이안을 바라봤다.
“당신은 무엇을 사고 싶습니까?”
이안은 벽면에 떠 있는 수많은 상품을 바라봤다.
어머니가 살아 있다는 확신.
자신이 용서받을 수 있다는 확신.
새벽정원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확신.
자신이 옳은 길을 걷고 있다는 확신.
모두 원했다.
그중 하나만이라도 확실히 알 수 있다면 발걸음이 가벼워질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한 선택이 옳았다는 확신.”
이안이 말했다.
미라가 놀란 표정으로 그를 봤다.
도윤도 몸을 돌렸다.
정언은 이안을 가장 안쪽의 의자로 안내했다.
“범위가 넓습니다.”
“도시를 떠난 것부터 지금까지.”
“가격이 높습니다.”
“무엇을 내야 합니까?”
정언이 손을 들어 이안의 주변에 장면들을 띄웠다.
도시의 잠긴 아파트.
옥상에서 도망치던 순간.
노바를 깨운 보관실.
추천의 늪에서 어머니를 뿌리친 장면.
자동용서센터를 떠난 순간.
폐기구역에서 도윤을 받아들인 선택.
“반대 가능성에 대한 기억을 지불하십시오.”
“무슨 뜻입니까?”
“당신이 도시를 떠나지 않았다면 더 많은 사람을 내부에서 도울 수 있었을 가능성.”
첫 장면이 나타났다.
기억관리국에 남아 비밀리에 기록을 보존하는 이안.
“노바를 깨우지 않았다면 기체의 기억이 손상되지 않았을 가능성.”
두 번째 장면.
캡슐 속에서 온전히 잠든 노바.
“개인화 네트워크에서 조금 더 머물렀다면 어머니에 관한 단서를 얻었을 가능성.”
세 번째 장면.
김서윤이 건네는 좌표.
“자동용서센터에서 치료받았다면 죄책감에 마비되지 않고 더 효율적으로 행동했을 가능성.”
“그만.”
이안이 말했다.
그러나 장면은 계속됐다.
“당신이 도윤을 동행자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이후의 배신을 막을 가능성.”
도윤의 얼굴이 굳었다.
“무슨 뜻이지?”
정언은 대답하지 않았다.
“거래소는 모든 가능성을 보여 줍니다.”
“이후의 배신이라고 했습니다.”
도윤이 앞으로 다가왔다.
“누가 배신한다는 겁니까?”
“문장은 고객의 두려움에 맞춰 생성됩니다.”
“사실이 아니라는 뜻입니까?”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도윤은 정언의 옷깃을 붙잡으려 했지만 손이 영상처럼 통과했다.
정언은 실체가 없는 중개 인격이었다.
“이곳은 사람의 의심을 팔아 확신을 사게 만드는군.”
도윤이 말했다.
“의심은 이미 고객이 가지고 옵니다.”
정언이 대답했다.
“우리는 그중 하나를 제거할 뿐입니다.”
이안은 자신 앞의 장면들을 바라봤다.
어떤 선택에도 다른 가능성이 있었다.
도시를 떠난 일이 옳았다고 확신하려면, 남았을 때 할 수 있었던 모든 선한 가능성을 버려야 했다.
노바를 깨운 것이 옳았다고 믿으려면, 노바가 잃어버린 기억의 가치를 보지 않아야 했다.
한 길이 옳다고 확신하려면 다른 길을 걸었을 때의 모든 가능성을 부정해야 했다.
“확신을 사면 이 장면들을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됩니까?”
“예.”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고?”
“예.”
“잘못된 선택에서도 배우지 못하겠군요.”
“고객은 자신의 선택을 일관되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건 성장입니까, 반복입니까?”
정언은 미소 지었다.
“둘은 때때로 같은 모습입니다.”
이안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거래하지 않겠습니다.”
정언이 물었다.
“당신은 자신이 옳다는 확신 없이 계속 걸을 수 있습니까?”
“모르겠습니다.”
“틀렸을 가능성을 안고도?”
“예.”
“새벽정원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안의 손목 흉터가 희미하게 뜨거워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문장이 나타나지 않았다.
누구도 답을 주지 않았다.
“그럴 수 있습니다.”
이안이 말했다.
“당신의 어머니가 남긴 모든 것이 오해나 오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고요.”
“노바가 아르카의 장치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미라가 관심을 위해 당신을 팔 가능성.”
미라의 얼굴이 굳었다.
“강도윤이 가족을 위해 당신을 넘길 가능성.”
도윤의 주먹이 움켜쥐어졌다.
“당신도 결국 그들을 이용하고 버릴 가능성.”
이안은 자신의 동행자들을 바라봤다.
노바는 자신이 자유로운지 알지 못했다.
미라는 자신이 다시 관객을 선택할지 알지 못했다.
도윤은 가족과 이안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할지 알지 못했다.
이안 자신도 그들을 끝까지 지킬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다.
“가능성은 남겨 두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렇게 많은 의심을 가지고 어떻게 서로를 믿습니까?”
정언이 물었다.
이안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믿음이란 상대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고 확신하는 것일까.
아니면 배신할 수도 있는 존재에게도 오늘의 동행을 맡기는 일일까.
“모든 걸 안 뒤에 믿는 건 확인에 가깝겠죠.”
이안이 말했다.
“모르기 때문에 믿어야 하는 부분도 있을 겁니다.”
“그 믿음은 틀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강요할 수 없는 거겠죠.”
정언의 미소가 처음으로 사라졌다.
방의 벽에 떠 있던 경로들이 하나씩 꺼졌다.
“거래를 거부한 고객에게는 정보를 제공할 의무가 없습니다.”
도윤이 말했다.
“우리는 사실 자료의 대가를 지불할 수 있습니다.”
“확신거래소는 사실을 판매하지 않습니다.”
“이동 기록은 보여 줬잖습니까?”
“고객이 확신 상품을 선택하도록 돕는 견본입니다.”
미라가 기가 막힌다는 듯 말했다.
“결국 길을 알려 줄 생각이 없었던 거네요.”
“여러분은 길보다 확신을 원했습니다.”
“누가요?”
“교차로에서 이곳으로 들어온 모든 사람.”
정언의 형체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확신을 사지 않은 사람은 다시 교차로로 돌아갑니다.”
둥근 방의 문이 열렸다.
밖에는 거래소 입구가 아니라 처음 보았던 세 갈래 길이 펼쳐져 있었다.
안개까지 그대로였다.
미라가 주위를 둘러봤다.
“우리가 걸어온 6킬로미터는요?”
노바가 위치를 분석했다.
“현재 좌표는 최초 교차로와 일치합니다.”
“가상공간이었나?”
이안이 물었다.
“일부 물리 이동과 인지 조작이 결합된 것으로 보입니다.”
도윤이 정언을 향해 말했다.
“시간만 낭비했군.”
“그렇지 않습니다.”
정언이 말했다.
“여러분은 각자가 무엇을 확신하고 싶어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걸 알아서 길을 찾을 수 있습니까?”
“확신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정언과 거래소가 사라졌다.
네 사람은 다시 세 갈래 길 앞에 서 있었다.
해는 거의 움직이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노바는 다섯 시간이 지났다고 말했다.
물은 더 줄었고, 피로는 그대로였다.
미라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제 어떻게 해요?”
아무도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왼쪽.
가운데.
오른쪽.
세 길은 이전과 똑같았다.
도윤이 노바에게 물었다.
“생존율 자료는 남아 있습니까?”
“거래소에서 수집한 자료의 신뢰도를 평가 중입니다.”
“사용할 수 있는가?”
“조작되었을 가능성 62퍼센트.”
“버려야겠군.”
미라가 말했다.
“그래도 완전히 거짓이라는 확신은 없잖아요.”
이안은 길 주변을 천천히 살폈다.
왼쪽 길에는 오래된 군용 신발 자국이 많았다.
가운데 길에는 수레와 차량 흔적이 뒤엉켜 있었다.
오른쪽 길은 풀이 많이 자라 있었지만, 길가에 작은 돌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놓여 있었다.
누군가가 길을 표시한 흔적처럼 보였다.
이안은 돌 하나를 집어 들었다.
표면에 아주 작은 별이 새겨져 있었다.
노바의 가슴에 남은 파란 별과 비슷한 모양이었다.
“노바.”
노바가 돌을 분석했다.
“수작업으로 새긴 표식입니다.”
“김서윤과 관련 있나?”
“확인할 수 없습니다.”
“새벽정원 표식일 가능성은?”
“계산할 자료가 부족합니다.”
도윤이 물었다.
“오른쪽 길을 선택하려는 겁니까?”
“예.”
“근거는 저 별 하나뿐이고요?”
“현재로서는.”
“거래소의 이동 기록에서는 동쪽 수로 경로 생존율이 가장 높았습니다.”
“그 자료는 조작됐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유일한 수치입니다.”
미라가 말했다.
“별 표식도 우리를 유인하기 위해 만든 것일 수 있어요.”
“맞습니다.”
이안은 돌을 내려다봤다.
어느 쪽도 확실하지 않았다.
“왜 오른쪽이죠?”
도윤이 다시 물었다.
이안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어머니와 노바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감정으로 길을 정하겠다는 겁니까?”
“감정도 판단의 일부입니다.”
“그 말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잘못된 선택을 했는지 압니까?”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어느 길을 선택하겠습니까?”
도윤은 가운데 길을 바라봤다.
사람이 가장 많이 다닌 흔적.
거래소가 안내했던 길.
“가운데입니다.”
“이유는?”
“사람과 차량이 가장 많이 이동했습니다. 보급지나 정착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그것도 확실하지 않죠.”
“적어도 확인 가능한 흔적입니다.”
미라는 왼쪽과 오른쪽을 번갈아 봤다.
“나는 오른쪽.”
도윤이 그녀를 봤다.
“왜?”
“사람이 적게 간 길이 방송으로는 더 새로우니까.”
이안이 말했다.
“그게 진짜 이유입니까?”
미라는 한숨을 쉬었다.
“아니요.”
그녀는 별이 새겨진 돌을 바라봤다.
“거래소에서 유진이 살아 있다는 확신을 사고 싶었어요. 그런데 사지 않았잖아요.”
“그것과 길이 무슨 관계죠?”
“이유를 완전히 설명할 수 없는 선택도 해 보고 싶어요.”
노바가 말했다.
“저는 김이안을 따라야 합니다.”
도윤이 물었다.
“명령 때문에?”
“현재로서는 그렇습니다.”
노바가 잠시 멈췄다.
“그러나 오른쪽 길의 돌 표식은 관리자 김서윤의 과거 교육자료에 사용된 별과 형태 유사도 74퍼센트입니다.”
이안이 놀라 물었다.
“그런 기억이 남아 있었어?”
“방금 표식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손상영역 일부가 활성화되었습니다.”
“어떤 기억이지?”
노바의 눈빛이 불규칙하게 흔들렸다.
“어린 김이안이 길을 잃었을 때 관리자가 바닥에 별을 그려 귀가 경로를 표시했습니다.”
이안의 머릿속에 희미한 장면이 떠올랐다.
작은 손.
비에 젖은 길.
바닥에 그려진 파란 별.
기억인지 노바의 말로 만들어진 상상인지 알 수 없었다.
도윤은 여전히 가운데 길을 바라봤다.
“셋이 오른쪽을 선택하면 나도 따라야 합니까?”
이안이 말했다.
“아닙니다.”
“동행 조건을 기억합니까?”
“돌아가고 싶은 사람을 배신자라고 부르지 않기로 했습니다.”
“나는 돌아가려는 게 아닙니다.”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것도 마찬가지겠죠.”
도윤의 얼굴이 굳었다.
네 사람은 처음으로 서로 다른 길 앞에 서 있었다.
지금까지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이제 누구도 어떤 길이 옳은지 알지 못했다.
도윤은 가운데 길로 가면 가족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이안은 오른쪽 길이 어머니에게 이어진다고 믿고 싶었다.
미라는 자신의 선택을 직접 시험하고 싶었다.
노바는 명령과 희미한 기억 사이에서 오른쪽을 택했다.
“여기서 헤어지는 겁니까?”
미라가 물었다.
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가운데 길로 몇 걸음 걸어갔다.
이안은 붙잡지 않았다.
노바도 움직이지 않았다.
미라는 입술을 깨물었다.
도윤은 열 걸음쯤 간 뒤 멈췄다.
안개가 그의 몸 절반을 삼키고 있었다.
“당신들이 틀리면 어떻게 할 겁니까?”
그가 뒤돌아 물었다.
이안이 대답했다.
“돌아올 수 있으면 돌아오겠습니다.”
“돌아올 수 없으면?”
“그 선택의 결과를 받아야겠죠.”
“쉽게 말하는군요.”
“전혀 쉽지 않습니다.”
도윤은 한동안 그를 바라봤다.
그의 손이 외투 안쪽으로 들어갔다.
도윤은 작은 물건 하나를 꺼냈다.
딸 하린이 어릴 때 만든 듯한 낡은 실팔찌였다.
그는 팔찌를 손바닥 안에 쥐었다.
“나는 가족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죽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도요.”
“그래서 가장 안전해 보이는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윤은 가운데 길을 다시 바라봤다.
그 길은 사람의 흔적이 많았다.
안전해 보였다.
그러나 그 길 끝이 어디인지는 몰랐다.
“그런데.”
도윤이 말했다.
“내가 안전해 보이는 길만 따라왔다면, 채아를 발견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는 천천히 돌아왔다.
“오른쪽으로 가겠습니다.”
미라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안이 물었다.
“우리를 믿어서입니까?”
“아닙니다.”
도윤이 대답했다.
“내가 선택한 겁니다.”
노바의 푸른 눈이 밝아졌다.
“선택을 확인했습니다.”
“그 말, 가끔은 듣기 싫군요.”
도윤이 말했다.
네 사람은 오른쪽 길로 들어섰다.
길가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별이 새겨진 돌이 놓여 있었다.
어떤 별은 빗물에 닳아 거의 보이지 않았고, 어떤 것은 최근에 새긴 것처럼 선명했다.
누가 남겼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머니일 수도 있었고, 먼저 간 순례자일 수도 있었다.
아르카가 만든 표식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걸었다.
한참 뒤 안개가 옅어지자 오래된 수로와 낮은 숲이 나타났다.
길 자체가 옳았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들은 확신거래소에서 자신이 가장 원했던 것을 사지 않았다.
도윤은 가족이 자신을 기다린다는 확신을 사지 않았다.
미라는 유진이 살아 있고 자신을 용서했다는 확신을 사지 않았다.
노바는 자신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확신을 사지 않았다.
이안은 자신의 모든 선택이 옳았다는 확신을 사지 않았다.
그들은 더 가벼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질문을 안고 길을 나섰다.
미라가 물었다.
“이안 씨.”
“왜요?”
“우리가 잘못 가고 있으면 언제 알 수 있을까요?”
“아마 길 끝에 가서도 모를 수 있습니다.”
“정말 희망적인 대답이네요.”
“그래도 중간에 확인할 수는 있겠죠.”
“무엇을요?”
이안은 앞서 걷는 동행자들을 바라봤다.
도윤은 몇 걸음마다 가족의 팔찌를 만졌다.
노바는 돌에 새겨진 별을 하나씩 기록했다.
미라는 방송장치를 켜지 않은 채 주변을 직접 바라보고 있었다.
“이 길을 걷는 동안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고 있는지.”
미라가 말했다.
“목적지가 틀려도 사람이 바뀌면 괜찮다는 뜻이에요?”
“그것만으로 괜찮지는 않겠죠.”
“역시 쉽게 말해 주는 법이 없네요.”
“확신을 안 샀으니까요.”
미라는 잠시 멈췄다가 웃었다.
네 사람은 계속 걸었다.
해가 지기 직전, 도윤의 손목 안쪽에서 아주 작은 빛이 한 번 깜박였다.
너무 짧아 다른 사람은 보지 못했다.
도윤은 걸음을 늦췄다.
오랫동안 꺼져 있던 보안국 연결장치였다.
화면에는 문장이 하나 떠 있었다.
강도윤 보안관. 가족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도윤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두 번째 문장이 나타났다.
귀환하면 모든 혐의를 면제하고 서지혜·강하린의 시민등급을 복구합니다.
도윤은 앞서 걷는 이안을 바라봤다.
이안은 아무것도 모른 채 별이 새겨진 돌을 따라가고 있었다.
마지막 문장이 떠올랐다.
조건은 하나입니다.
잠시 뒤, 지도가 나타났다.
그들이 걷고 있는 현재 위치가 붉은 점으로 표시돼 있었다.
김이안의 목적지를 알려 주십시오.
도윤은 손목을 외투 속에 숨겼다.
빛은 사라졌지만 문장은 남았다.
확신거래소를 떠난 지 불과 몇 시간이 지났을 뿐이었다.
그는 가족이 자신을 기다린다는 확신을 사지 않았다.
대신 이제 가족이 위험하다는 하나의 정보가 찾아왔다.
그 정보가 사실인지, 유혹인지, 둘 다인지는 알 수 없었다.
도윤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다만 그날 밤, 길가에 앉아 잠든 동행자들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손목을 감싸 쥐고 있었다.
확신을 사지 않았다고 해서 유혹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확신이 없는 사람에게는 가장 두려운 가능성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