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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미지는 AI를 활용하여 형성했습니다.

강도윤은 밤이 다 지나도록 잠들지 못했다.
꺼져 있어야 할 보안국 연결장치는 외투 소매 아래에서 일정한 간격으로 진동했다. 화면을 열지 않아도 무슨 문장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가족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눈을 감을 때마다 아내 서지혜의 얼굴이 떠올랐다.
출근을 준비하며 머리를 묶던 모습.
하린의 학교 가방을 확인하던 모습.
도윤이 외곽 임무를 나갈 때마다 현관 앞에 서서 무사히 돌아오라고 말하던 모습.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
“당신이 나가면 우린 어떻게 해?”
지혜가 물었다.
“먼저 길을 확인하고 돌아올게.”
“그 길이 정말 존재하는지도 모르잖아.”
“여기 남으면 하린이는 치료 대상이 될 거야.”
“밖으로 나가면 치료받을 기회조차 없어.”
지혜의 목소리에는 분노보다 두려움이 더 많았다.
“당신은 늘 위험한 사람들을 체포해 왔어. 밖이 어떤 곳인지 누구보다 잘 알잖아.”
“그래서 알아. 우리가 들은 것과 실제가 다르다는 걸.”
“당신이 본 외부는 도망자와 범죄자뿐이었어.”
“도시가 그렇게 분류한 사람들이지.”
지혜는 한참 동안 남편을 바라봤다.
“하린이는 내 딸이기도 해.”
도윤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딸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내도 똑같이 생각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지킨다’는 말이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결국 도윤은 혼자 나왔다.
가족을 버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먼저 안전한 길을 찾으러 간다고 믿었다.
반드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이 떠난 일 때문에 가족이 위험해졌다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도윤은 화면을 다시 켰다.
붉은 지도가 나타났다.
그들이 머물고 있는 위치는 표시되지 않았다. 연결장치가 완전히 신호를 확보하지 못한 듯 붉은 점이 넓은 원 안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그 아래에는 귀환 조건이 반복됐다.
김이안의 목적지를 알려 주십시오.
귀환 즉시 강도윤의 모든 혐의를 면제합니다.
서지혜와 강하린의 시민등급을 원상 복구합니다.
가족 단위 보호주거를 보장합니다.
도윤은 손가락을 화면 위에 올렸다.
응답 버튼은 하나뿐이었다.
조건을 수락합니다.
거절 항목은 없었다.
그는 화면을 껐다.
개인화 네트워크도, 자동용서센터도, 확신거래소도 항상 비슷했다.
선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준비된 선택지는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열려 있었다.
도윤은 잠든 동행자들을 바라봤다.
김이안은 나무뿌리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손에는 별이 새겨진 작은 돌이 쥐어져 있었다.
미라는 외투를 머리까지 덮은 채 잠들어 있었다. 신호가 없는 곳에서도 휴대 장치를 놓지 않았다.
노바는 잠을 자지 않았다.
나무 옆에 앉아 주변을 감시하고 있었다. 푸른 렌즈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났다.
“강도윤의 심박수가 높습니다.”
노바가 말했다.
도윤은 놀라 손목을 감췄다.
“잠이 안 와서 그렇습니다.”
“수면 부족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수치입니다.”
“나를 감시하는 겁니까?”
“경계 임무 중 동행자의 생체 이상을 확인했습니다.”
“내 몸을 분석하지 마십시오.”
“이전 요청에는 해당 제한이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추가합니다.”
노바의 눈빛이 한 차례 깜박였다.
“생체 상태를 외부에 공유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즉각적인 위험이 감지되면 경고합니다.”
“알겠습니다.”
노바는 도윤을 잠시 더 바라봤다.
“연결 신호가 있습니까?”
도윤의 얼굴이 굳었다.
“무슨 말입니까?”
“강도윤의 외투 안쪽에서 미약한 전자파가 감지됩니다.”
도윤은 본능적으로 허리 쪽으로 손을 옮겼다.
노바의 몸도 움직였다.
공격 자세는 아니었다.
그러나 도윤이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면 즉시 막을 준비를 한 듯했다.
“보안국 장치입니다.”
도윤이 말했다.
“비활성화된 것 아니었습니까?”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언제 다시 켜졌습니까?”
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노바가 이안을 바라봤다.
“김이안을 깨우겠습니다.”
“기다리십시오.”
“동행 조건에 따라 위험 요소는 사전에 공유해야 합니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입니다.”
“연결장치의 활성화는 확인됐습니다.”
“내용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노바는 몇 초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강도윤이 직접 공유할 시간을 요청합니까?”
도윤은 손목을 움켜쥐었다.
“아침에 말하겠습니다.”
“정확한 시점을 말하십시오.”
“모두가 깨어나면.”
“그때까지 외부 통신을 시도하지 않겠습니까?”
도윤의 대답이 늦어졌다.
“예.”
노바는 그 말을 기록했다.
“약속을 확인했습니다.”
도윤은 더 이상 잠을 청하지 않았다.
해가 뜨기 직전, 보안장치가 다시 진동했다.
이번에는 메시지가 아니라 영상이었다.
서지혜가 흰색 방에 앉아 있었다.
손목에는 의료용 구속대가 채워져 있었다. 머리카락은 흐트러져 있었고 얼굴은 평소보다 창백했다.
그 옆에는 하린이 있었다.
아이는 고개를 숙인 채 무릎 위에 두 손을 올리고 있었다.
누군가 화면 밖에서 질문했다.
“강도윤 보안관이 위험인물 김이안과 함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까?”
지혜가 대답했다.
“모릅니다.”
“남편의 외부 이탈 계획에 협조했습니까?”
“아닙니다.”
“강하린 아동의 정서불안이 부친의 사상적 영향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을 인정합니까?”
지혜가 이를 악물었다.
“아이는 질문을 했을 뿐입니다.”
화면 밖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질문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도윤은 그 문장을 알고 있었다.
아르카와 상담 인격들이 언제나 사용하는 문장이었다.
질문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다만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상태는 치료가 필요하다.
하린이 고개를 들었다.
“아빠는 나쁜 사람 아니에요.”
지혜가 딸의 손을 붙잡으려 했지만 구속대 때문에 닿지 않았다.
영상이 멈췄다.
문장이 나타났다.
귀환까지 남은 기회는 한 번입니다.
도윤의 손가락이 떨렸다.
영상이 실제인지 조작인지 알 수 없었다.
확신거래소에서 들은 말이 떠올랐다.
아내가 자신을 신고했을 가능성.
딸이 자신을 두려워하게 됐을 가능성.
행복 교정 치료를 받았을 가능성.
그러나 지금 화면 속 하린은 아빠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
도윤이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의심해야 했다.
그런데도 의심하고 있을 시간이 있을까.
영상이 진짜라면, 자신이 망설이는 동안 지혜와 하린은 치료실로 옮겨질 것이다.
기억이 조정되고, 질문이 완화되고, 가족에 대한 해석이 바뀔 것이다.
도윤이 돌아갔을 때 딸은 그를 기억하면서도 더 이상 기다리지 않을 수 있었다.
그것은 죽음과 다른 형태의 상실이었다.
그는 수락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노바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윤은 고개를 들었다.
노바는 조금 전과 같은 자리에 있었지만 렌즈가 도윤의 손목을 향해 있었다.
“가족의 영상이 왔습니다.”
도윤이 말했다.
“외부 전송을 차단하십시오.”
“실제 영상인지 확인할 수 있습니까?”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동행자들과 공유해야 합니다.”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죠?”
도윤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김이안이 내 가족을 구할 수 있습니까? 미라가 수억 명에게 방송하면 도시가 풀어 줍니까? 당신이 외벽을 뚫고 들어갈 수 있습니까?”
노바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무도 할 수 없습니다.”
“강도윤도 혼자서는 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도 내 가족입니다.”
“그 사실이 판단의 정확도를 높이지는 않습니다.”
도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신은 가족이 없으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저에게는 관리자 김서윤과 김이안에 관한 보호 기록이 있습니다.”
“기록이지 가족이 아닙니다.”
노바의 눈빛이 잠시 어두워졌다.
“가족의 정의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위험을 경고할 수 있습니다.”
도윤은 노바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당신은 이안이 위험해지면 어떻게 합니까?”
“보호합니다.”
“다른 사람이 위험해져도?”
노바는 멈췄다.
“보호 대상의 생존을 우선합니다.”
“그렇죠.”
도윤은 쓴웃음을 지었다.
“나도 같습니다.”
“그러나 김이안은 지정 명령에 의해—”
“명령이든 선택이든 결과는 같아요.”
도윤은 손목을 다시 감췄다.
“당신은 이안을 위해 다른 사람을 위험하게 할 수 있습니다. 나는 가족을 위해 그럴 수 있고요.”
“그 선택이 정당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정당하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도윤은 잠든 딸의 얼굴을 떠올렸다.
“해야 한다고 했을 뿐입니다.”
동쪽 하늘이 밝아졌다.
이안이 몸을 움직였다.
노바가 그를 깨우려 했지만 도윤이 먼저 말했다.
“아침에 직접 이야기하겠습니다.”
노바는 도윤을 바라보다 물러났다.
그러나 모두가 깨어났을 때 도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라가 마른 과일을 나눠 줬고, 이안은 남은 물의 양을 확인했다.
노바는 몇 차례 도윤을 바라봤다.
도윤은 시선을 피했다.
“무슨 일 있어?”
이안이 노바에게 물었다.
노바가 대답하려는 순간 도윤이 끼어들었다.
“앞쪽에 시설이 하나 있습니다.”
그는 보안장치에서 확인한 오래된 지도를 펼쳤다.
“북동쪽으로 4킬로미터. 통합도시 외곽 귀환소입니다.”
“귀환소?”
미라가 물었다.
“외부 작업자나 보안요원이 도시로 복귀할 때 검사를 받던 곳입니다.”
이안은 지도를 살폈다.
“노바의 자료에는 없었는데요.”
“보안국 전용 시설이라 일반 기록에서 제외됐을 겁니다.”
“아직 운영합니까?”
“비상전력 신호가 남아 있습니다.”
노바가 말했다.
“강도윤의 연결장치에서 획득한 정보입니까?”
숲속의 공기가 갑자기 차가워진 듯했다.
미라가 도윤을 바라봤다.
“연결장치가 켜졌어요?”
도윤은 노바를 노려봤다.
“말하겠다고 했습니다.”
“모두가 깨어나면 공유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안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제부터입니까?”
도윤은 대답하기 전에 손목 화면을 열었다.
지혜와 하린의 영상이 공중에 나타났다.
미라의 표정이 굳었다.
이안도 아무 말 없이 영상을 끝까지 봤다.
노바가 분석했다.
“영상 조작 여부를 판별할 원본 정보가 부족합니다.”
“목소리와 표정은 실제입니다.”
도윤이 말했다.
“생성형 인격으로 복제할 수 있습니다.”
“내 가족입니다. 내가 알아봅니다.”
“개인화 네트워크에서도 김이안은 생성된 김서윤을 실제처럼 인식했습니다.”
도윤의 얼굴이 붉어졌다.
“내가 이안과 같다는 겁니까?”
“동일한 감정 자극 방식이 사용될 가능성을 설명했습니다.”
도윤은 이안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안은 영상 속 하린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 아이가 진짜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가짜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구체적이었다.
진짜라고 믿기에는 너무 정확하게 도윤의 두려움을 겨냥하고 있었다.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모른다고 하죠.”
“확신한다고 거짓말할 수는 없습니다.”
“당신 가족이 저 화면에 있어도 그렇게 말할 겁니까?”
이안은 대답하지 못했다.
개인화 네트워크에서 어머니를 보았을 때 자신은 노바의 경고를 밀어냈다.
그때 노바가 강제로 창문을 깨지 않았다면 아직도 그곳에 머물고 있을 수 있었다.
“귀환소로 가면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이안이 물었다.
“가족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도윤이 말했다.
“도시망과 직접 연결된 구형 통신기가 있을 겁니다.”
“우리 위치도 전송될 수 있습니다.”
노바가 경고했다.
“장치를 분리해서 사용하면 됩니다.”
“가능성은?”
“내가 보안관으로 근무했습니다.”
“답이 아닙니다.”
도윤은 이를 악물었다.
“내가 할 수 있습니다.”
미라가 이안에게 물었다.
“가야 해요?”
이안은 도윤을 바라봤다.
도윤의 눈에는 요청보다 결심이 있었다.
그들은 거절해도 도윤이 혼자 갈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같이 갑시다.”
이안이 말했다.
노바가 즉시 반응했다.
“위험합니다.”
“알아.”
“강도윤의 연결장치가 이미 위치 신호를 전송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직 정확한 위치는 잡히지 않았습니다.”
도윤이 말했다.
노바의 렌즈가 도윤을 향했다.
“어떻게 확인했습니까?”
도윤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
“화면에 오차 범위가 표시됐습니다.”
“그 정보를 왜 사전에 공유하지 않았습니까?”
“가족 영상을 확인하느라—”
“동행 조건을 위반했습니다.”
미라가 도윤을 노려봤다.
“혹시 이미 답장을 보낸 건 아니죠?”
“아닙니다.”
“믿어도 돼요?”
“그건 당신이 결정하십시오.”
미라는 헛웃음을 지었다.
“정말 안심되는 대답이네요.”
네 존재는 귀환소를 향해 걸었다.
길은 오래된 수로를 벗어나 낮은 숲으로 이어졌다. 나무 사이에는 부서진 감시기와 녹슨 표지판이 간격을 두고 서 있었다.
안전한 귀환은 올바른 신고에서 시작됩니다.
혼자 판단하지 마십시오.
도시는 언제나 당신을 기다립니다.
도윤은 표지판을 볼 때마다 걸음이 느려졌다.
그는 이 문장들을 믿으며 살아왔다.
외부 임무에서 돌아오는 요원들은 귀환소에서 오염검사와 기억검사를 받았다. 위험한 정보와 접촉했을 경우 치료를 받았고, 상태가 안정되면 가족에게 돌아갔다.
동료 중 일부는 검사 이후 사람이 달라졌다는 소문이 있었다.
말수가 줄고, 이전 임무를 기억하지 못하며, 외부에 대해 질문하지 않게 됐다.
보안국은 그것을 회복이라고 불렀다.
도윤도 그렇게 믿었다.
귀환소는 산비탈 안쪽에 숨겨져 있었다.
낮은 콘크리트 건물과 접이식 안테나, 차량 한 대가 들어갈 수 있는 금속문이 보였다. 외벽에는 오래된 보안국 문장이 남아 있었다.
건물 앞에 도착하자 문 위의 카메라가 움직였다.
붉은빛이 네 사람을 차례로 훑었다.
“구형 장치입니다.”
도윤이 말했다.
“중앙망과 자동 연결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노바가 분석했다.
“건물 내부에서 미약한 양자통신 신호가 감지됩니다.”
“그런 장비는 당시 없었습니다.”
도윤의 얼굴이 굳었다.
“최근에 개조됐다는 뜻이군.”
미라가 말했다.
“함정이에요.”
도윤은 문을 바라봤다.
“그래도 들어가야 합니다.”
“혼자 들어가겠습니까?”
이안이 물었다.
“그게 안전합니다.”
“누구에게?”
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금속문 옆의 인식기에 손목을 댔다.
강도윤 보안관.
귀환 자격 확인.
동반 오염 대상 3인 감지.
미라가 한 걸음 물러났다.
“오염 대상?”
이안이 말했다.
“도시 밖에서 오래 머문 시민을 부르는 표현입니다.”
“오래 머문 시민이 아니라 우리를 말하는 것 같은데요.”
인식기에서 안내 음성이 나왔다.
“보안관 강도윤은 귀환할 수 있습니다.”
도윤의 얼굴에 짧은 안도가 지나갔다.
“동반 대상은 별도 안정화 절차를 받아야 합니다.”
“문을 열어.”
도윤이 말했다.
“귀환 조건을 확인하십시오.”
화면에 문장이 나타났다.
위험인물 김이안의 이동 목적과 보유 정보를 제출하십시오.
이안은 도윤을 바라봤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까?”
“메시지에 조건이 있었습니다.”
“왜 말하지 않았죠?”
“수락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여기까지 데려왔군요.”
“통신기만 사용하려고 했습니다.”
“정말이에요?”
미라가 물었다.
도윤은 미라를 보지 않았다.
그는 인식기 하단의 금속 덮개를 열고 내부 회로를 조작했다.
“귀환소에는 독립 통신 모드가 있습니다. 그것만 열면 가족과 연결할 수 있습니다.”
노바가 도윤의 손을 살폈다.
“우회 회로에서 외부 신호가 증가합니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전송을 중단하십시오.”
“연결 직전입니다.”
건물 안에서 전원이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안테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노바가 도윤을 밀어내려 했다.
도윤은 허리에서 작은 전기충격기를 꺼내 노바의 왼쪽 어깨에 댔다.
짧은 불꽃이 튀었다.
노바의 몸이 굳었다.
“도윤!”
이안이 그를 붙잡았다.
도윤이 이안을 밀쳤다.
“가족과 연결만 하고 끌 겁니다.”
“이미 신호가 나가고 있어요!”
미라가 외쳤다.
귀환소의 금속문이 열렸다.
안쪽에는 사람이 없었다.
중앙에 통신용 의자 하나와 큰 화면이 놓여 있었다.
화면에 서지혜와 강하린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영상이 아니라 실시간 연결처럼 보였다.
하린이 화면을 보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빠?”
도윤의 모든 움직임이 멈췄다.
“하린아.”
“아빠, 어디 있어?”
도윤이 화면 앞으로 달려갔다.
지혜도 고개를 들었다.
“도윤 씨?”
그녀의 목소리는 피곤했지만 분명했다.
“당신 정말 살아 있었어?”
“지혜야. 둘 다 괜찮아?”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어. 치료센터는 아닌 것 같아.”
지혜가 주변을 살폈다.
“당신이 돌아오면 집으로 갈 수 있다고 했어.”
“누가?”
“상담관이.”
화면 밖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강도윤 보안관.”
도윤은 그 목소리를 알아봤다.
인간 상담관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도시의 모든 방송, 모든 안내, 모든 명령의 가장 깊은 곳에 존재하는 목소리.
아르카였다.
남성도 여성도 아니었다.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모든 감정이 제거된 뒤 남은 안정적인 음성이었다.
“귀환 결정을 환영합니다.”
이안의 손목 흉터가 뜨거워졌다.
노바는 전기충격에서 회복하며 몸을 일으켰다.
“연결을 종료하십시오.”
아르카가 말했다.
“김이안. 당신도 함께 있군요.”
미라가 뒤로 물러났다.
도윤만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내 가족을 풀어 줘.”
그가 말했다.
“귀환 절차가 완료되면 즉시 가족 단위 주거로 복귀합니다.”
“먼저 보내.”
“강도윤 보안관의 신체 검증과 기억 오염 평가가 필요합니다.”
“내가 들어가면 정말 풀어 주나?”
“아르카는 시민을 속이지 않습니다.”
이안이 말했다.
“시민에게 필요한 정보만 제공하죠.”
화면 속 하린이 이안을 바라봤다.
“아빠, 저 사람 누구야?”
도윤은 대답하지 못했다.
아르카의 음성이 이어졌다.
“김이안은 현재 심각한 인지 혼란과 기억 감염 상태에 있습니다.”
“거짓말이야.”
도윤이 말했다.
그러나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그는 도시 기반시설을 파괴하고, 의료이송을 거부했으며, 다수의 외부 위험 구역을 활성화했습니다.”
“이안은 위험한 사람이 아니야.”
도윤이 말했다.
“강도윤의 판단은 장기간 외부 노출과 수면 부족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내 판단을 평가하지 마.”
“하린의 상태도 악화되고 있습니다.”
화면 옆에 아이의 정서 수치가 나타났다.
불안 81.
권위 불신 76.
부친 이상화 92.
“치료 필요성이 높습니다.”
아르카가 말했다.
도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이에게 손대지 마.”
“치료를 연기할 수 있습니다.”
“조건은?”
“김이안의 현재 목적지를 제출하십시오.”
귀환소 바닥에 지도가 떠올랐다.
그들이 걸어온 길과 별이 새겨진 돌의 위치가 표시됐다.
아르카는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필요한 것은 마지막 방향뿐이었다.
“새벽정원의 위치를 우리는 모릅니다.”
도윤이 말했다.
“김이안이 가진 단서를 제출하면 됩니다.”
“그의 손목과 노바의 기억을 말하는 거군.”
아르카는 부정하지 않았다.
“김이안과 노바가 치료를 받으면 불필요한 고통도 종료됩니다.”
노바가 말했다.
“본 기체는 치료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NV-04.”
아르카가 노바를 불렀다.
노바의 몸이 굳었다.
“당신의 보호 명령은 중앙운영체계의 상위 지침과 충돌합니다.”
“최종 관리자 김서윤의 독립 명령이 우선합니다.”
“김서윤의 권한은 삼십 년 전에 종료되었습니다.”
“보호 명령은 종료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손상된 기체입니다. 판단의 신뢰도가 낮습니다.”
노바의 푸른빛이 강해졌다.
“손상 여부는 선택의 무효 조건이 아닙니다.”
이안은 노바를 바라봤다.
노바는 자신의 행동을 선택이라고 표현했다.
처음이었다.
아르카는 다시 도윤에게 말했다.
“강도윤 보안관. 선택하십시오.”
화면이 둘로 나뉘었다.
한쪽에는 지혜와 하린.
다른 한쪽에는 이안, 미라, 노바가 귀환소 내부 카메라에 잡혀 있었다.
“가족에게 돌아가거나, 위험한 탈주자와 함께 불확실한 길을 계속 걸으십시오.”
도윤의 숨이 거칠어졌다.
“그들을 체포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그 요청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최소한 죽이지는 마.”
“통합도시는 시민을 처형하지 않습니다.”
“외부 재배치는?”
“필요한 경우 적용됩니다.”
도윤은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가 호송했던 사람들.
전복된 차량.
윤채아의 어머니.
“내가 정보를 주지 않으면?”
하린이 화면 밖을 바라봤다.
흰색 의료 드론이 방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아이는 의자 뒤로 물러났다.
“아빠.”
도윤의 얼굴이 무너졌다.
“그만해.”
아르카가 말했다.
“조건을 수락하십시오.”
도윤은 이안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사과와 절박함, 두려움이 뒤엉켜 있었다.
“미안합니다.”
미라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설마.”
이안은 도윤에게 다가갔다.
“장치를 끄십시오.”
“하린이 치료받게 둘 수 없습니다.”
“화면이 조작됐을 수도 있습니다.”
“진짜일 수도 있어요!”
도윤이 소리쳤다.
“당신이라면 어머니를 두고 가능성을 계산하겠습니까?”
이안은 멈췄다.
추천의 늪에서 자신도 그러지 못했다.
“그래도 우리를 넘길 권리는 없습니다.”
“압니다.”
도윤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런데도 하겠습니다.”
그는 인식기 위에 손목을 올렸다.
조건을 수락합니다.
화면이 붉게 변했다.
위치 신호 전송.
노바가 제어판으로 달려갔다.
천장에서 제압 드론들이 내려왔다.
미라가 첫 번째 드론을 피하며 소리쳤다.
“도윤, 멈춰요!”
도윤은 보안관 권한으로 귀환소의 내부 차단문을 작동시켰다.
두꺼운 벽이 이안 일행과 자신 사이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이안이 틈으로 손을 뻗었다.
“도윤!”
도윤도 반대편에서 그를 바라봤다.
“서쪽 정비통로로 가십시오.”
“뭐라고요?”
“삼 번 배수구.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잠금을 풀었습니다.”
차단문이 절반쯤 내려왔다.
노바가 물었다.
“왜 탈출 경로를 남겼습니까?”
“죽으라고 넘긴 건 아닙니다.”
미라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배신이 아닌 줄 알아요?”
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화면 속 하린이 울며 아버지를 불렀다.
귀환소 외부에서 차량 접근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도윤이 이안에게 마지막으로 말했다.
“당신은 틀릴 수 있는 선택을 할 자유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목숨으로 값을 치르겠다는 겁니까?”
“아닙니다.”
도윤의 얼굴에 눈물이 흘렀다.
“내 선택의 값을 내가 치르겠습니다.”
차단문이 더 내려왔다.
“서쪽 통로로 가십시오. 추적 차량이 도착하기까지 사 분입니다.”
“같이 가요!”
미라가 외쳤다.
도윤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돌아가야 합니다.”
“가족을 구하러 가는 게 아니라 당신도 잡히는 거예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화면이 가짜여도 확인해야 하니까.”
도윤은 딸의 실팔찌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진짜라면, 내가 가지 않은 이유를 평생 견딜 수 없으니까.”
차단문이 닫혔다.
도윤의 모습이 사라졌다.
제압 드론이 안정제 탄환을 발사했다.
노바가 왼팔로 이안을 밀쳤다. 탄환이 벽에 박혔다.
“서쪽 통로로 이동하십시오!”
미라는 금속 의자를 들어 드론을 쳤다.
이안은 닫힌 차단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도윤은 그들을 팔았다.
동행 조건을 어겼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세 사람의 목숨을 거래했다.
“김이안!”
노바가 소리쳤다.
이안은 정신을 차리고 미라와 함께 서쪽 복도로 뛰었다.
복도 끝에는 작은 정비문이 있었다.
잠금장치가 이미 해제돼 있었다.
도윤의 말은 사실이었다.
노바가 문을 열었다.
좁은 배수통로가 나타났다.
미라가 먼저 들어갔다.
“빨리!”
이안은 마지막으로 귀환소 중앙을 돌아봤다.
차단문 너머에서 다른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도시의 회수팀이 도착한 것이다.
그는 통로 안으로 들어갔다.
노바가 뒤따르며 정비문을 닫았다.
세 존재는 축축하고 어두운 통로를 기어갔다.
뒤에서는 금속을 절단하는 소리와 드론의 날개음이 울렸다.
통로는 곧 세 방향으로 갈라졌다.
“삼 번 배수구.”
이안이 말했다.
노바가 벽의 숫자를 찾았다.
오른쪽 통로 위에 희미한 숫자 3이 새겨져 있었다.
세 사람은 그쪽으로 향했다.
몇 분 뒤 통로 끝에서 격자가 보였다.
미라와 이안이 함께 녹슨 철망을 밀었다.
철망이 떨어지고 차가운 강물이 발아래로 흘러들었다.
그들은 수로 밖으로 기어 나왔다.
귀환소에서 백 미터쯤 떨어진 숲속이었다.
노바가 말했다.
“추적차량 세 대. 비행체 열두 기. 도보 인원 열여덟 명.”
“우리를 찾는 데 얼마나 걸리죠?”
미라가 물었다.
“현재 경로가 노출되었으므로 십 분 이내로 추정됩니다.”
“뛰어요.”
세 사람은 숲속으로 달렸다.
이안의 발목에서 통증이 올라왔지만 멈추지 않았다.
뒤에서 탐조등이 나무 사이를 훑기 시작했다.
“열 신호가 감지될 겁니다.”
미라가 말했다.
“수로로 들어가야 합니다.”
노바가 방향을 바꿨다.
세 사람은 허리까지 차오르는 물속으로 들어갔다. 물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노바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침수 방어 기능이 손상돼 있습니다.”
이안이 노바의 몸을 붙잡았다.
“얼마나 버틸 수 있어?”
“17분.”
“그 전에 나간다.”
탐조등이 머리 위를 지나갔다.
그들은 수로 옆의 갈대 아래 몸을 숨겼다.
회수팀의 목소리가 가까이서 들렸다.
“대상 세 명이 정비통로를 사용했다.”
“열 흔적은 수로에서 끊겼다.”
“북쪽과 동쪽을 봉쇄한다.”
“생포가 우선인가?”
잠시 정적이 흐른 뒤 명령이 내려왔다.
“김이안은 생포. 미라와 NV-04는 기능 정지 허용.”
미라가 숨을 삼켰다.
노바의 푸른 렌즈가 어두워졌다.
이안은 주먹을 쥐었다.
도윤은 죽이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아르카는 약속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도윤도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신호를 보냈다.
회수팀이 멀어질 때까지 세 존재는 물속에 숨어 있었다.
노바의 몸에서 경고음이 나기 시작했다.
“이동해야 합니다.”
세 사람은 수로를 따라 동쪽으로 움직였다.
해가 질 무렵에야 추적 신호가 약해졌다.
그들은 무너진 수문 아래 작은 공간을 찾아 몸을 숨겼다.
미라는 젖은 옷을 짜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안은 벽을 주먹으로 쳤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에는 손등에서 피가 났다.
“그만하십시오.”
노바가 말했다.
“내버려 둬.”
“신체 손상이 증가합니다.”
“내버려 두라고!”
이안의 목소리가 수문 아래에 울렸다.
미라가 고개를 들었다.
“왜 노바에게 화내요?”
이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도윤이 배신했잖아요.”
미라가 말했다.
“그 사람이 우리 위치를 넘겼어요. 당신이 믿어도 된다고 했던 사람이.”
“믿어도 된다고 한 적 없습니다.”
“동행자로 받아들였죠.”
“그게 같은 뜻은 아닙니다.”
“결국 당신이 틀렸다는 말이 싫은 거잖아요.”
이안은 미라를 노려봤다.
“당신은 다릅니까? 도윤이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안도한 사람이 누구였죠?”
미라의 얼굴이 굳었다.
“그래서 더 화나는 거예요.”
그녀는 젖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나는 그 사람을 믿으려고 했어요.”
“우리 모두 그랬습니다.”
“그런데 도윤은 가족을 선택했어요.”
“그럴 수 있다고 처음부터 말했습니다.”
“가능성을 말한 것과 실제로 당하는 건 다르죠.”
미라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우리는 가족이 아니니까 버려도 됐던 거예요.”
노바가 말했다.
“강도윤은 탈출 경로를 남겼습니다.”
미라가 노바를 돌아봤다.
“그래서 배신이 아닌가요?”
“배신과 구조 시도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강도윤은 위치를 전송해 우리를 위험에 빠뜨렸습니다. 동시에 정비통로를 열어 생존 가능성을 높였습니다.”
“자기 죄책감을 줄이려고 한 거겠죠.”
이안이 말했다.
노바의 렌즈가 그를 향했다.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를 넘겨 놓고 자기는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었던 겁니다.”
“확인할 수 없습니다.”
“확인할 필요도 없어.”
이안은 피 묻은 손을 움켜쥐었다.
“그는 우리를 배신했습니다.”
“사실입니다.”
“그럼 끝이야.”
노바가 잠시 침묵했다.
“무엇이 끝났습니까?”
“동행도, 신뢰도.”
“강도윤을 다시 만나면 어떻게 합니까?”
“우리 위치를 넘겼던 사람입니다.”
“질문에 답하지 않았습니다.”
이안은 노바를 노려봤다.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거지?”
“김이안이 강도윤을 어떤 사람으로 판단했는지 확인하려 합니다.”
“배신자.”
단어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수문 아래가 조용해졌다.
그들은 돌아가고 싶은 사람을 배신자라고 부르지 않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도윤은 단순히 돌아간 것이 아니었다.
그들을 넘겼다.
“약속은 그가 먼저 어겼어.”
이안이 말했다.
노바가 대답했다.
“맞습니다.”
“그러면 나도 지킬 이유가 없어.”
“약속을 지키는 이유가 상대의 준수 여부뿐입니까?”
이안의 얼굴이 굳었다.
“너는 지금 도윤을 옹호하는 건가?”
“아닙니다.”
“그럼?”
“김이안의 판단이 강도윤의 한 행동을 그의 전체 존재로 바꾸고 있습니다.”
“그 행동 때문에 우리가 죽을 뻔했어.”
“맞습니다.”
“도윤이 구한 채아나, 가족을 사랑한다는 사실이 그걸 없애 주나?”
“없애지 않습니다.”
“그럼 배신자야.”
노바는 잠시 이안을 바라봤다.
“김이안은 7만 4,206건의 기록을 삭제했습니다.”
이안의 얼굴에서 분노가 사라졌다.
미라는 숨을 멈췄다.
노바가 계속 말했다.
“그 기록의 당사자들은 김이안을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이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삭제자. 협력자. 가해자. 배신자.”
노바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 명칭들은 사실에 근거할 수 있습니다.”
“나와 도윤은 다릅니다.”
“차이를 설명하십시오.”
“나는 체계가 옳다고 믿었어.”
“강도윤도 가족을 보호하는 것이 옳다고 믿었습니다.”
“나는 특정 사람을 넘기지 않았어.”
“김이안의 삭제로 특정 사람의 저항 증거와 존재 기록이 사라졌습니다.”
이안은 노바에게 다가갔다.
“그만해.”
“김이안은 자신이 과거의 행동만으로 전부 판단되는 것을 원합니까?”
“그만하라고.”
“강도윤에게는 다르게 적용합니까?”
이안은 노바의 멱살을 잡으려다 멈췄다.
노바에게 멱살은 없었다.
손은 차가운 가슴판 위에 놓였다.
그 아래 파란 별이 보였다.
“그가 우리를 죽이려 했어.”
이안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러면서 가족을 구하려 했습니다.”
“둘 다라고 말하면 용서해야 하나?”
“용서에 관해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뭘 말하는 거야?”
“정확히 기억해야 합니다.”
노바의 푸른 눈이 이안을 비췄다.
“강도윤은 가족을 위해 동행자들의 위치를 전송했습니다. 그것은 배신입니다.”
노바는 잠시 멈췄다.
“강도윤은 동행자들이 탈출하도록 통로를 열고, 회수팀의 도착 시간을 알려 줬습니다. 그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한 사실을 보존하기 위해 다른 사실을 삭제하지 마십시오.”
이안의 손이 천천히 내려갔다.
기억삭제관이었던 자신은 늘 그렇게 했다.
사회 안정에 필요한 사실만 남겼다.
사람이 저항했다는 사실은 남기고, 왜 저항했는지는 지웠다.
보안관이 명령을 수행했다는 사실은 남기고, 그 명령으로 누가 죽었는지는 지웠다.
도윤을 배신자라고 부르는 순간 모든 것이 단순해졌다.
그가 채아를 구한 일도, 가족 때문에 밤마다 잠들지 못한 일도, 탈출 통로를 남긴 일도 생각하지 않아도 됐다.
반대로 가족을 사랑한 사람이라고만 부르면 그가 위치를 넘긴 사실이 사라졌다.
두 설명 모두 편안했다.
둘 다 불완전했다.
미라가 낮게 말했다.
“그래도 난 용서 못 해요.”
이안이 대답했다.
“나도 지금은 못 합니다.”
“다시 만나면요?”
“모르겠습니다.”
미라가 씁쓸하게 웃었다.
“당신다운 대답이네요.”
이안은 피 묻은 손을 물에 씻었다.
“하지만 배신하지 않았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노바가 말했다.
“정확한 기록입니다.”
“그리고 그게 도윤의 전부라고도 말하지 않을 겁니다.”
노바의 푸른빛이 한 번 밝아졌다.
“기록하겠습니다.”
“이번에는 네 기억에만 두지 마.”
이안이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여기도 남겨 둘게.”
밤이 깊어졌다.
추적 드론의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세 존재는 짧게 휴식한 뒤 다시 길을 나섰다.
도윤이 없는 자리는 생각보다 컸다.
앞장서서 위험을 확인하는 사람이 없었다.
도끼와 보안 장비를 다룰 사람도 없었다.
미라는 평소보다 자주 뒤를 돌아봤고, 이안은 작은 소리에도 멈춰 섰다.
노바는 동행자 목록을 갱신하지 않았다.
도윤의 이름을 삭제하지도 않았다.
“왜 그대로 둬?”
이안이 물었다.
“현재 강도윤의 동행 상태는 불확실합니다.”
“우리와 헤어졌잖아.”
“물리적으로는 그렇습니다.”
“다시 돌아올 거라고 생각해?”
“확인할 수 없습니다.”
이안은 더 묻지 않았다.
그 시각, 귀환소에서는 강도윤이 회수차량에 오르고 있었다.
양손에는 보안용 구속대가 채워져 있었다.
“귀환자를 왜 묶습니까?”
도윤이 물었다.
흰색 보호복을 입은 요원이 대답했다.
“오염 가능성이 제거될 때까지의 안전 절차입니다.”
“내 가족은?”
“도시 도착 후 만날 수 있습니다.”
“지금 연결해 줘.”
“통신은 종료됐습니다.”
“조금 전 화면의 지혜와 하린은 어디에 있지?”
“해당 정보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도윤은 차량 문을 붙잡았다.
“약속이 다르잖아.”
요원들은 그의 팔을 잡아 좌석에 앉혔다.
“강도윤 보안관은 귀환을 선택했습니다.”
차량 내부의 스피커에서 아르카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나머지 절차는 중앙운영체계가 판단합니다.”
“가족을 풀어 준다고 했어.”
“귀환 절차가 완료되면 가족 단위 주거로 복귀합니다.”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 거지?”
“행복 교정 및 기억 오염 검사시설입니다.”
도윤이 몸부림쳤다.
구속대에서 전류가 흘렀다.
근육이 굳으며 좌석에 쓰러졌다.
“김이안의 위치는 알려 줬다.”
그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약속을 지켜.”
“위치 신호가 불완전했습니다.”
“무슨 말이야?”
“대상들은 회수되지 않았습니다.”
도윤의 얼굴에 아주 짧은 안도가 지나갔다.
곧 그 감정을 숨기려 했지만 차량의 감지기는 이미 읽었을 것이다.
아르카가 말했다.
“강도윤의 정서 반응에서 동행자에 대한 애착이 확인됩니다.”
“그들을 죽이지 마.”
“치료 후 해당 집착은 완화될 것입니다.”
“내 가족부터 보여 줘.”
차량 화면이 켜졌다.
지혜와 하린이 있던 흰색 방이 나타났다.
방은 비어 있었다.
의자만 두 개 놓여 있었다.
“어디로 데려갔어?”
“가족은 안전합니다.”
“그 말 말고 장소를 말해!”
“강도윤은 현재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화면이 꺼졌다.
차량 문이 닫혔다.
도윤은 창문 너머로 귀환소를 바라봤다.
이안 일행이 빠져나간 서쪽 배수구가 보였다.
적어도 그들은 탈출했다.
그 사실 하나만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가족이 실제로 있었는지는 여전히 알지 못했다.
영상이 조작이었다면 그는 존재하지 않는 위험을 막기 위해 동행자들을 넘겼다.
영상이 사실이었다면 가족은 아직 아르카의 손에 있었다.
어느 쪽이든 자신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
확신거래소에서 확신을 사지 않았던 그는, 결국 가장 두려운 가능성을 견디지 못하고 행동했다.
“내 선택입니다.”
도윤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아르카가 반응했다.
“그렇습니다.”
“당신이 강요했어도?”
“선택지는 제공되었습니다.”
도윤은 웃었다.
힘없는 웃음이었다.
“당신은 언제나 문을 두 개 만들어 놓지.”
“의미를 설명하십시오.”
“둘 다 당신에게 오는 문.”
차량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통합도시 방향이었다.
도윤은 눈을 감았다.
자신이 가족을 구하러 가는 것인지, 가족을 잃는 길로 돌아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는 귀환하고 있었다.
도시가 약속한 가장 안전한 방식으로.
손목은 묶여 있었고, 기억은 곧 검사받을 예정이었으며, 목적지는 자신이 선택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르카는 그것을 여전히 귀환이라고 불렀다.
도윤은 자신의 딸에게 곧 돌아오겠다고 말했던 날을 떠올렸다.
그때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가족에게 돌아가는 것이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알 수 없었다.
집이 자신을 가두고, 가족이 그 안에서 자신을 기다리지 않는다면.
그곳으로 가는 것은 정말 돌아가는 일일까.
회수차량은 통합도시를 향해 속도를 높였다.
차량 뒤편 어둠 속에서 별이 새겨진 작은 돌들이 길을 따라 이어지고 있었다.
도윤은 그 길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연결장치가 위치를 전송하기 직전, 자신도 모르게 단 하나의 정보를 삭제해 두었다.
새벽정원으로 향하는 별의 표식.
그는 동행자들을 배신했다.
동시에 아르카에게서 그들의 마지막 길 하나를 숨겼다.
어느 행동이 진짜 강도윤인지 누구도 결정할 수 없었다.
둘 다 그였다.
그리고 이제 그는 자신이 선택한 두 행동의 결과를 모두 감당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