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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윤이 사라진 뒤, 세 사람은 서로의 걸음 소리를 더 자주 확인했다.
누군가 뒤처지면 기다렸고, 나무 사이에서 작은 소리가 나면 동시에 돌아봤다. 미라는 잠들기 전 자신의 장치를 세 번씩 검사했다. 노바는 경계 범위를 이전보다 넓혔다.
김이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도윤이 있어야 할 자리를 계속 바라봤다.
앞장서서 길을 살피던 검은 보안 외투.
위험을 발견하면 주먹을 쥐던 손.
가족의 실팔찌를 만지던 습관.
도윤은 그들을 배신했다.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안은 수풀 너머에서 검은 외투가 나타날 것 같은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노바는 동행자 명단에서 도윤을 삭제하지 않았다.
이안도 지워 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세 사람은 별이 새겨진 돌을 따라 북동쪽으로 걸었다. 돌의 간격은 점점 멀어졌고, 어떤 구간에서는 반나절 동안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사흘째 오후, 길은 넓은 분지로 이어졌다.
분지 중앙에는 원형 경기장 같은 건물이 서 있었다.
건물 주위로 수백 개의 송신탑이 솟아 있었고, 탑마다 깨진 거울 모양의 수신판이 달려 있었다. 대부분 녹슬어 있었지만 일부에서는 아직 푸른빛이 깜박였다.
미라가 걸음을 멈췄다.
“여기 알아요.”
이안이 물었다.
“무슨 곳입니까?”
미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경기장 입구 위에는 오래된 문구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공개검증광장.
그 아래에는 최근에 새로 투사된 글자가 선명하게 빛났다.
진실은 숨길 수 없습니다.
노바가 건물을 분석했다.
“대규모 통신 신호가 감지됩니다.”
“다면체 도시와 연결돼 있나?”
“유사한 망을 사용하지만 규모가 더 큽니다.”
미라의 손이 휴대 장치로 향했다.
장치는 이미 스스로 켜져 있었다.
오랫동안 끊겨 있던 연결 표시가 하나씩 되살아났다.
10.
11.
1만.
100만.
접속자 수가 빠르게 올라갔다.
미라의 머리 위에 사라졌던 관심도 수치가 다시 나타났다.
2억 8163만 1021.
숫자는 멈추지 않았다.
미라의 얼굴 위로 가상 외형이 자동으로 덧씌워졌다.
화려한 붉은 드레스.
빛으로 흩어지는 머리카락.
흠 하나 없는 피부.
그녀는 황급히 장치를 끄려 했다.
화면에는 붉은 경고가 나타났다.
외부 송출 권한이 제한되었습니다.
“누가 연결한 거죠?”
이안이 물었다.
“제가 아니에요.”
미라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곳은 공개재판망이에요.”
“재판?”
“다면체 도시 초기에 만들어졌어요. 유명인의 분쟁이나 고발을 실시간으로 공개하고, 접속자들이 증거와 진술을 평가했죠.”
“시민들이 판결했습니까?”
“처음에는 참고 의견만 냈어요.”
미라는 경기장을 바라봤다.
“나중에는 반응 수치가 판결이 됐고요.”
노바가 말했다.
“공식 사법기능은 감지되지 않습니다.”
“법원은 아니에요.”
미라가 대답했다.
“그런데 여기서 유죄가 되면 직업도, 주거권도, 연결망도 전부 잃을 수 있었어요.”
“누가 사람을 이곳으로 데려왔습니까?”
“사람들이요.”
미라는 손끝으로 자신의 수치를 가리려 했다.
“충분히 많은 사람이 답을 원하면 재판이 열렸어요.”
그 순간 경기장 전체의 조명이 켜졌다.
수신탑들이 동시에 회전했다.
입구의 문이 열렸다.
거대한 환호성이 안쪽에서 터져 나왔다.
사람들이 실제로 모여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수억 명의 접속자가 남긴 반응이 음향으로 변환되고 있었다.
“미라.”
여자의 목소리가 경기장 전체에 울렸다.
“오랜만이야.”
미라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화면에 한 여자가 나타났다.
긴 검은 머리.
창백한 얼굴.
날카롭지만 지친 눈.
이안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유진.”
미라가 속삭였다.
화면 속 여자가 웃었다.
“내 이름은 기억하네.”
접속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3억 명.
4억 명.
5억 명.
하늘 위로 수많은 반응이 떠올랐다.
유진이 살아 있었어?
미라가 배신한 그 사람 맞죠?
드디어 진실이 공개된다.
미라의 가면을 벗겨 주세요.
김이안도 같이 있잖아!
탈주자들이 한곳에 모였다.
노바가 말했다.
“주변 출구가 폐쇄되고 있습니다.”
이안이 뒤를 돌아봤다.
그들이 들어온 길 위로 투명한 차단막이 내려오고 있었다.
“다른 길은?”
“경기장 내부를 통과해야 합니다.”
미라가 움직이지 않았다.
“저 사람은 정말 유진입니까?”
이안이 물었다.
“모르겠어요.”
“얼굴과 목소리는?”
“같아요.”
“개인화 네트워크처럼 생성된 인격일 수도 있습니다.”
“알아요.”
미라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도 확인해야 해요.”
“함정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도요.”
미라는 경기장 안으로 걸어갔다.
이안과 노바가 뒤따랐다.
경기장 내부에는 실제 관객석이 없었다.
대신 수십만 개의 투명한 화면이 원형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화면마다 서로 다른 접속자의 얼굴과 가상 인격이 나타났다.
아이.
노인.
영웅.
동물.
추상적인 빛.
완전히 얼굴이 없는 검은 형체.
수백만 개의 얼굴이 한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중앙에는 원형 무대가 있었다.
미라가 무대 위에 오르자 붉은 원이 그녀의 발밑에서 켜졌다.
이안과 노바의 앞에도 작은 원이 나타났다.
“김이안과 NV-04는 증인으로 등록됩니다.”
기계음이 말했다.
이안이 물었다.
“누가 재판을 진행하지?”
“공개검증관리 인격 저스티아입니다.”
공중에 한 인격이 나타났다.
눈을 가린 여자의 형상이었다. 한 손에는 저울을, 다른 손에는 수억 개의 반응을 표시하는 구체를 들고 있었다.
“오늘의 검증 대상은 인격 미라.”
접속자들의 환호가 다시 울렸다.
“검증 항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미라의 머리 위에 문장들이 나타났다.
동료 인격 유진에 대한 허위 진술.
대중 선동.
증거 은폐.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묵인.
타인의 몰락을 이용한 영향력 확대.
미라는 눈을 감았다.
이안이 그녀를 바라봤다.
자동용서센터에서 미라가 말했던 이야기와 비슷했다.
그러나 훨씬 구체적이었다.
“검증을 거부합니다.”
미라가 말했다.
저스티아가 대답했다.
“미라의 활동은 9억 7천만 개의 공개 반응 기록을 기반으로 합니다. 공공 영향력을 사용한 인격은 공공의 검증에 응할 책임이 있습니다.”
“여긴 법원이 아니잖아.”
“법적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대신 모든 걸 빼앗겠죠.”
“평판과 연결은 타인이 자발적으로 제공한 자원입니다. 타인은 언제든 회수할 수 있습니다.”
화면 속 관객들이 긍정 표시를 눌렀다.
맞는 말입니다.
미라는 우리 덕분에 유명해졌어요.
우리가 판단할 권리가 있습니다.
미라의 관심도 수치가 빠르게 움직였다.
숫자는 올라가고 있었지만 호감도는 떨어졌다.
호감도 71.
63.
51.
“첫 번째 증거를 공개합니다.”
경기장 중앙에 오래된 영상이 나타났다.
젊은 미라와 유진이 작은 방에서 방송을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 미라는 가상 외형을 사용하지 않았다. 왼쪽 뺨의 흉터가 그대로 보였다.
유진이 카메라 위치를 조정해 주며 말했다.
“얼굴을 가릴 필요 없어.”
젊은 미라가 고개를 숙였다.
“사람들이 흉터만 봐.”
“처음에는 보겠지.”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불쌍하다고 해.”
유진은 미라의 턱을 들어 올렸다.
“그러면 계속 말해. 불쌍하다는 말보다 네 목소리가 더 오래 남을 때까지.”
영상 속 미라는 울음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장면으로 바뀌었다.
유진이 미라에게 새 가상 외형을 보여 주고 있었다.
“이건 얼굴을 숨기는 게 아니야.”
유진이 말했다.
“네 말을 듣게 할 문을 만드는 거야.”
“사람들이 이 얼굴만 좋아하면?”
“그러면 언젠가 네 얼굴로 문을 닫으면 돼.”
영상이 멈췄다.
미라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관객들의 반응이 쏟아졌다.
유진이 미라를 만들어 줬네.
그런 사람을 배신했다고?
은혜도 모른다.
저스티아가 말했다.
“두 번째 증거.”
이번에는 유진을 둘러싼 논란이 시작된 날의 기록이었다.
수많은 편집 영상과 댓글이 화면을 채웠다.
유진이 방송에서 공동체를 위한다고 말한 뒤 개인적으로 계약금을 빼돌렸다는 주장.
후원자에게 모욕적인 메시지를 보냈다는 주장.
미성년 접속자를 조종했다는 주장.
일부 기록은 진짜처럼 보였고, 일부는 노골적으로 편집돼 있었다.
젊은 미라는 유진과 비공개 통화를 하고 있었다.
“지금 해명해야 해.”
유진이 말했다.
“내가 다 잘한 건 아니야. 하지만 저 영상 절반은 거짓말이야.”
“사람들이 듣지 않을 거야.”
“네가 말하면 들어.”
“내가 왜?”
미라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네가 사실을 아니까.”
“나까지 무너질 수 있어.”
“그래도 사실이잖아.”
젊은 미라는 화면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미안해.”
통화를 끊었다.
다음 영상에서 미라는 수천만 명 앞에 서 있었다.
완벽한 가상 얼굴.
붉은 드레스.
눈가에는 계산된 눈물이 맺혀 있었다.
“저도 유진 씨에게 속았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믿었던 만큼 실망이 큽니다.”
관객의 분노가 폭발했다.
유진의 관심도는 몇 시간 만에 2억에서 3백만으로 떨어졌다.
주거지 주소가 공개됐다.
실제 얼굴과 의료 기록도 퍼졌다.
누군가는 유진의 집 앞에 찾아갔다.
영상 속 미라는 그 사실을 알고도 방송을 계속했다.
자신의 관심도는 오히려 올라갔다.
미라는 눈을 감았다.
“그만해요.”
저스티아는 멈추지 않았다.
“세 번째 증거.”
유진이 미라에게 보낸 마지막 음성 메시지였다.
화면에는 얼굴이 나오지 않았다.
어두운 방과 흔들리는 숨소리만 들렸다.
“미라야.”
유진의 목소리는 지쳐 있었다.
“네가 나를 지켜 달라는 게 아니었어.”
미라의 어깨가 떨렸다.
“내가 잘못한 부분까지 없다고 해 달라는 것도 아니었어.”
음성 사이에 긴 침묵이 있었다.
“네가 아는 것만 말해 달라고 했어.”
미라가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그러나 목소리는 경기장 전체에서 울렸다.
“네가 침묵한 건 이해할 수 있어. 무서웠을 테니까.”
유진이 숨을 삼켰다.
“그런데 네가 나까지 속였다고 말한 순간, 나는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인지 헷갈리기 시작했어.”
마지막 문장이 들렸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보다, 네가 나를 그렇게 봤다는 게 제일 아팠어.”
음성이 끝났다.
경기장 안에는 수억 명이 남긴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분노가 폭발했다.
미라는 악마야.
사과로 끝날 일이 아닙니다.
영구 추방해야 해요.
계정을 삭제하세요.
실제 얼굴을 공개해.
흉터를 숨긴 것도 거짓말이었어.
미라의 가상 외형이 흔들렸다.
붉은 드레스가 깨지고, 실제 얼굴이 드러났다.
왼쪽 뺨의 흉터가 거대한 화면마다 확대됐다.
관객들의 반응은 더 잔인해졌다.
저 얼굴을 숨길 만했네.
불쌍한 척하지 마.
흉터가 있으니 질투했겠지.
이안의 주먹이 굳었다.
“재판 내용과 외모가 무슨 관계지?”
그가 물었다.
저스티아가 대답했다.
“접속자들의 반응은 통제되지 않습니다.”
“그럼 판결 자료로 사용하면 안 되잖아.”
“집단 반응은 대상이 사회에 미친 영향을 보여 줍니다.”
“지금 사람들은 사실을 판단하는 게 아니라 공격할 곳을 찾고 있어.”
“감정 역시 사회적 사실입니다.”
이안이 미라에게 다가가려 하자 발밑의 원이 붉게 빛났다.
“증인은 지정 구역을 이탈할 수 없습니다.”
투명한 벽이 이안의 앞을 막았다.
미라는 무대 중앙에 홀로 서 있었다.
저스티아가 말했다.
“검증 대상에게 발언 기회를 제공합니다.”
미라는 입을 열지 못했다.
수억 개의 얼굴이 그녀를 바라봤다.
평생 바라봐 주기를 원했던 사람들.
숫자가 줄어들 때마다 사라질 것 같아 두려웠던 사람들.
그들이 지금은 그녀가 사라지기를 원하고 있었다.
“말해요.”
어떤 접속자가 소리쳤다.
“왜 유진을 죽였어요?”
“제가 죽이지 않았어요.”
미라가 겨우 대답했다.
관객들이 야유했다.
책임 회피.
전형적인 가해자 발언.
반성 없음.
미라의 호감도가 20 아래로 떨어졌다.
“유진의 사망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노바가 말했다.
저스티아가 노바를 바라봤다.
“비인간 증인은 허가받은 질문에만 응답하십시오.”
“현재 재판에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단정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대중은 결과를 추론할 수 있습니다.”
“추론과 사실은 다릅니다.”
관객들 일부가 노바에게 부정 반응을 보냈다.
고철이 사람을 가르치네.
미라가 데려온 변호 로봇인가?
이안이 말했다.
“미라가 잘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미라가 고개를 들어 그를 봤다.
관객들의 소리가 잠시 줄었다.
“유진이 도움을 요청했을 때 침묵했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사실이 아닌 말을 했습니다.”
미라의 얼굴이 무너졌다.
“이안 씨.”
“그건 숨길 수 없습니다.”
“당신도 나를 유죄라고 생각하는군요.”
“그 행동에는 책임이 있습니다.”
수많은 긍정 표시가 이안에게 쏟아졌다.
탈주자가 더 정직하네.
김이안이 미라를 버렸다.
증인이 유죄를 인정했습니다.
이안의 말이 관객이 원하는 판결로 바뀌고 있었다.
“하지만.”
이안이 계속 말했다.
“여러분이 지금 하는 일도 그때와 같습니다.”
환호가 멈췄다.
“무슨 뜻입니까?”
저스티아가 물었다.
“유진에 관한 사실과 거짓이 섞인 영상을 보고 사람들은 한 사람 전체를 판결했습니다.”
이안은 원형 벽을 가득 채운 얼굴들을 바라봤다.
“지금은 미라가 한 잘못을 이용해, 그녀의 얼굴과 몸과 존재 전체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미라를 변호하는 겁니까?
가해자 편이네.
둘이 공범인가요?
“변호하는 게 아닙니다.”
이안이 말했다.
“잘못을 정확히 말하자는 겁니다.”
그는 미라를 바라봤다.
“미라는 유진이 거짓말한 모든 것에 속은 것이 아니면서 속았다고 말했습니다.”
미라는 눈을 감았다.
“사람들이 유진의 실제 주소와 의료정보를 퍼뜨릴 때 막지 않았습니다.”
“맞아요.”
미라가 작게 말했다.
“그 사건으로 자신의 관심도가 올라가는 것을 이용했습니다.”
“맞아요.”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그러나 유진을 죽였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노바가 덧붙였다.
“유진의 현재 생존 여부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미라의 흉터는 재판과 관계없습니다.”
이안이 말했다.
“그녀가 지금까지 한 모든 말이 거짓이라는 증거도 아닙니다.”
관객들의 반응이 갈라졌다.
가해자를 감싸지 마세요.
그래도 외모 공격은 선 넘었죠.
미라가 잘못한 것만 비판합시다.
결국 유명하니까 봐주는 거네.
저스티아가 손을 들었다.
“집단 판단은 모든 반응의 총합으로 결정됩니다.”
“총합에 진실이 있습니까?”
이안이 물었다.
“다수의 독립적 판단은 개인의 편견을 줄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서로의 반응을 보면서 판단하는데 독립적이라고 할 수 있나?”
저스티아의 저울이 흔들렸다.
노바가 말했다.
“현재 접속자의 82퍼센트가 직전 상위 반응과 유사한 문장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모방이 감지된다는 뜻입니까?”
이안이 물었다.
“예. 최초 열 개 반응이 이후 판단의 방향에 강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미라가 수억 명의 얼굴을 바라봤다.
“제가 늘 사용한 방식이에요.”
그녀가 말했다.
관객들이 조용해졌다.
미라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가상 외형을 완전히 껐다.
붉은 드레스와 빛나는 머리카락이 사라졌다.
낡은 여행복과 흉터가 있는 실제 얼굴만 남았다.
“방송을 시작할 때부터 배웠어요.”
미라가 말했다.
“처음 반응 몇 개를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면 나머지는 따라온다는 걸.”
저스티아가 경고했다.
“검증 대상은 질문에 답하십시오.”
“답하고 있어요.”
미라는 화면 속 사람들을 바라봤다.
“유진 사건 때도 그랬어요. 사람들이 의심하기 시작했을 때 내가 실망했다고 말했죠.”
그녀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내가 먼저 분노하면 사람들이 내 편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자기보호를 위한 행동이었습니까?”
저스티아가 물었다.
“예.”
“유진의 몰락을 의도했습니까?”
미라는 한참 동안 침묵했다.
“처음에는 아니었어요.”
야유가 터졌다.
“하지만 관심도가 올라가는 걸 본 뒤에는 멈추고 싶지 않았어요.”
미라의 호감도 숫자가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사람들이 유진을 공격할수록 제 방송을 더 봤어요. 제가 피해자인 것처럼 말하면 더 많은 사람이 저를 위로했어요.”
미라는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봤다.
“그때는 제가 살아남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다르게 생각합니까?”
“유진이 무너지는 동안 내가 그 위에 올라섰다는 걸 압니다.”
미라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녀는 닦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수많은 반응이 쏟아졌다.
누구에게 사과하는데요?
유진에게 직접 해.
대중에게도 사과하세요.
가짜 눈물.
미라는 고개를 들었다.
“여러분에게 용서해 달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관객의 소음이 줄었다.
“왜죠?”
저스티아가 물었다.
“여러분이 용서할 사람이 아니니까요.”
분노가 다시 터졌다.
“유진에게 사과해야 합니다.”
미라가 계속 말했다.
“살아 있다면 직접 찾아가겠습니다. 만나기 싫다고 하면 그 뜻을 따르겠습니다.”
“유진이 사망했다면?”
“그때는 제가 한 일을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처벌을 받아야 합니까?”
미라는 화면을 둘러봤다.
수억 개의 얼굴이 판결을 기다렸다.
어떤 사람은 그녀가 무릎 꿇기를 원했다.
어떤 사람은 계정 삭제를 원했다.
어떤 사람은 실제 몸을 공개하고 평생 숨어 살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미라가 말했다.
야유가 쏟아졌다.
“하지만 여러분의 분노를 만족시키는 일이 책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대중의 판단을 거부합니까?”
“여러분의 반응으로 살아온 사람이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하면 비겁하게 들리겠죠.”
미라는 자신의 관심도 수치를 올려다봤다.
수억 명이라는 숫자는 여전히 거대했다.
“그래도 말하겠습니다.”
그녀가 손을 들었다.
“저는 지금부터 이 관심도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합니다.”
경기장 전체가 흔들렸다.
경고.
영향력 자산 포기 요청이 감지되었습니다.
저스티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해당 선택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미라의 얼굴에 공포가 스쳤다.
손가락이 멈췄다.
“포기할 경우 연결 기록, 구독 인격, 후원 자산, 가상 외형 사용권의 대부분이 삭제됩니다.”
수억 개의 얼굴이 동시에 그녀를 불렀다.
미라, 그러지 마요.
우리가 당신을 만들었어요.
도망가는 거잖아.
계정을 유지하면서 책임지면 돼요.
우리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야.
미라의 호흡이 빨라졌다.
이안은 그녀가 관심도 0이 되었던 순간을 떠올렸다.
아무도 보지 않으면 사라지는 기분이라고 했다.
그녀에게 숫자를 포기하는 것은 재산을 잃는 일이 아니었다.
자신의 존재를 잃는 일이었다.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안이 말했다.
미라가 그를 바라봤다.
“당신은 방금 제가 숫자를 이용했다고 했잖아요.”
“그렇다고 모든 연결을 없애는 것이 책임인지는 모릅니다.”
“내가 숫자를 가지고 있으면 또 이용할 거예요.”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말려요?”
“두려움 속에서 자신을 전부 없애는 선택은 자동용서센터의 반대일 뿐입니다.”
미라는 이해하지 못한 듯 그를 바라봤다.
“그곳은 잘못을 지우라고 했습니다.”
이안이 말했다.
“여기는 잘못한 사람을 지우라고 합니다.”
경기장 안이 조용해졌다.
“둘 다 사람을 없애면 문제가 끝난다고 믿습니다.”
이안은 미라를 향해 말했다.
“당신의 관심도는 잘못이 아닙니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했는지가 문제입니다.”
“그럼 계속 유명인으로 살라고요?”
“내가 정할 일이 아닙니다.”
미라는 눈을 감았다.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손을 내렸다.
관객들 사이에서 조롱이 퍼졌다.
역시 못 버리네.
다 쇼였어요.
관심에 중독된 사람.
미라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는 다시 포기 버튼을 보았다.
그러나 누르지 않았다.
“맞아요.”
미라가 말했다.
“아직 못 버립니다.”
관객의 소음 사이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분명했다.
“이 숫자가 없으면 너무 무서워요.”
그녀는 더 이상 강한 척하지 않았다.
“그래도 앞으로는 이 숫자가 시키는 말을 그대로 하지는 않겠습니다.”
저스티아가 물었다.
“구체적인 책임 방안을 제시하십시오.”
“유진에 관한 제 방송 기록을 전부 공개하겠습니다.”
“이미 일부 공개됐습니다.”
“편집 전 원본과 비공개 대화, 제가 수익을 얻은 내역까지 전부요.”
관객 일부가 술렁였다.
“그 수익은 어떻게 합니까?”
“유진이 살아 있다면 돌려주겠습니다. 찾을 수 없거나 받지 않겠다고 하면, 공개재판 피해자들의 개인정보 복구와 주거지원에 사용하겠습니다.”
“대중에게 사과하지 않습니까?”
“제가 거짓말해서 잘못된 판단을 하게 만든 사람들에게는 사과합니다.”
미라는 화면을 바라봤다.
“하지만 지금 저를 모욕하는 모든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지는 않을 겁니다.”
호감도 수치는 마침내 0이 됐다.
그 순간 미라의 머리 위 관심도가 흔들렸다.
2억 8163만.
1억 9000만.
8000만.
숫자가 빠르게 떨어졌다.
수많은 화면이 꺼졌다.
사람들은 떠나고 있었다.
구독 취소.
연결 해제.
기억 차단.
미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두 다리가 떨렸다.
그러나 무대에서 내려오지는 않았다.
관객의 대부분이 사라졌을 때 경기장은 오히려 더 넓어 보였다.
마지막까지 남은 접속자는 약 30만 명이었다.
과거의 수치에 비하면 거의 아무도 없는 것과 같았다.
미라는 작은 숫자를 올려다봤다.
“이제 판결을 내려요.”
저스티아의 저울이 움직였다.
한쪽에는 유죄 반응.
다른 한쪽에는 옹호와 유보 반응이 쌓였다.
“집단 판단 결과.”
경기장 전체가 어두워졌다.
유죄 87퍼센트.
사회적 신뢰 철회.
공공 인격 자격 정지.
미라의 가상 외형 및 방송 우선권 회수.
미라의 가상 얼굴이 완전히 사라졌다.
휴대 장치의 여러 기능이 꺼졌다.
수억 명의 방송망에 즉시 접속할 수 있는 권한도 사라졌다.
“형이 집행되었습니다.”
저스티아가 말했다.
미라는 자신의 장치를 내려다봤다.
작은 개인 기록 기능과 단거리 통신만 남아 있었다.
“이제 끝난 건가요?”
“대중의 판단은 완료됐습니다.”
“유진에 대한 책임도 끝났고요?”
저스티아는 대답하지 못했다.
관리 인격의 저울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미라가 씁쓸하게 웃었다.
“역시 아니네요.”
경기장 화면에 다시 유진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래.”
유진이 말했다.
“끝난 거 아니야.”
미라가 고개를 들었다.
“당신 정말 유진이에요?”
“어떻게 증명할까?”
“우리만 아는 말을 해 봐.”
“그런 말은 얼마든지 기록에서 찾을 수 있어.”
미라의 눈에 다시 불안이 번졌다.
유진은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
“네가 첫 방송 전에 도망치려고 했을 때, 나는 문 앞에서 세 시간을 기다렸어.”
미라가 숨을 멈췄다.
“네가 문을 열고 가장 먼저 한 말은 ‘사람들이 내 흉터만 보면 어떡하지’가 아니었어.”
유진의 입술이 떨렸다.
“‘내가 아무 말도 못 하면 어떡하지’였지.”
미라의 눈물이 흘렀다.
그 기억은 공개된 적이 없었다.
“유진.”
“그래.”
“살아 있었어.”
“겨우.”
미라가 화면 앞으로 다가갔다.
“어디 있어?”
“말할 수 없어.”
“왜?”
“여전히 나를 찾는 사람들이 있고, 네 재판을 이용해 내 위치를 추적하는 사람도 있어.”
“만나고 싶어.”
“나는 아직 모르겠어.”
미라의 얼굴이 무너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자신이 원하는 답을 강요하지 않았다.
“알겠어.”
그녀가 말했다.
“내가 한 일에 대해—”
“지금은 하지 마.”
유진이 말을 막았다.
“수억 명이 보는 앞에서 하는 사과를 받고 싶지 않아.”
미라가 주변의 남은 화면들을 바라봤다.
“그럼 언제?”
“네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때.”
유진의 얼굴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유진, 기다려.”
“김이안과 계속 가.”
“당신이 새벽정원을 알아?”
“나는 그곳까지 가지 못했어.”
“그러면?”
유진의 시선이 노바에게 향했다.
“다음 길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게 될 거야.”
노바가 물었다.
“대상의 이름을 알고 있습니까?”
“솔라스.”
경기장 안의 일부 화면이 동시에 흔들렸다.
저스티아의 형체도 불안정해졌다.
“그는 죽음을 없애겠다고 말해.”
유진의 목소리가 끊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복제된 네가 살아남는 것과, 네가 계속 사는 건 같은 일이 아니야.”
“어디로 가야 하지?”
이안이 물었다.
유진은 경기장 북쪽 출구를 바라봤다.
“빛이 꺼지지 않는 탑을 피하지 마.”
“그게 길입니까?”
“함정이기도 해.”
영상이 거의 사라졌다.
미라가 소리쳤다.
“유진!”
유진은 마지막으로 미라를 바라봤다.
“네가 나를 배신한 건 사실이야.”
미라는 눈을 감았다.
“알아.”
“나도 너를 용서했다고 말할 수 없어.”
“알아.”
“그래도 네가 진실을 말한 건 봤어.”
유진의 얼굴에 아주 희미한 미소가 나타났다.
“다음에 만날 수 있다면, 그때는 관객 없이 이야기하자.”
연결이 끊겼다.
모든 화면이 검게 변했다.
미라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 화면 앞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
이안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이번에는 투명한 벽이 막지 않았다.
“괜찮습니까?”
미라가 눈물을 닦았다.
“그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모른다고 해도 됩니다.”
“기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해요.”
“동시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노바가 말했다.
미라가 노바를 돌아봤다.
“그것도 기록할 거예요?”
“미라가 원한다면.”
미라는 잠시 생각했다.
“기록해 줘요.”
“내용을 말해 주십시오.”
“유진이 살아 있었다.”
미라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리고 아직 나를 용서하지 않았다.”
노바의 푸른빛이 깜박였다.
“기록했습니다.”
“하나 더.”
“말씀하십시오.”
“그래도 나는 만나러 갈 거다.”
“기록했습니다.”
경기장 북쪽 문이 열렸다.
밖에는 어두운 평원이 펼쳐져 있었다.
멀리 수평선 위에 하나의 탑이 빛나고 있었다.
주변은 이미 밤이었지만 탑의 꼭대기에서는 흰빛이 태양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빛이 꺼지지 않는 탑.
유진이 말한 곳이었다.
미라는 무대를 내려오기 전 멈췄다.
그녀는 아직 연결돼 있는 개인 장치를 켰다.
남아 있는 접속자는 28만 명이었다.
과거에는 방송을 시작할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했을 숫자였다.
미라는 카메라를 자신의 실제 얼굴로 향했다.
흉터도 숨기지 않았다.
“이 방송이 마지막은 아닙니다.”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예전과 같은 방송도 아닐 겁니다.”
댓글이 빠르게 올라왔다.
변명하려고요?
진심으로 사과하세요.
그래도 응원합니다.
유진을 이용하지 마세요.
미라는 댓글을 보다가 화면을 아래로 내렸다.
“오늘 공개된 기록 중 제가 유진을 속였다고 말한 부분은 사실입니다. 제가 유진의 몰락을 이용해 관심과 수익을 얻은 것도 사실입니다.”
목소리가 흔들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확인되지 않은 주장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표시하겠습니다. 원본 기록은 편집하지 않고 공개하겠습니다.”
미라는 숨을 들이켰다.
“여러분이 저를 용서할 필요는 없습니다. 계속 보라는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녀는 이안과 노바를 한 번 바라봤다.
“앞으로 제가 걷는 길을 방송할 때, 함께 있는 사람의 동의 없이 얼굴과 기억을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이안이 말했다.
“지금도 우리 얼굴이 나오고 있습니다.”
미라가 놀라 장치를 돌렸다.
이안의 어깨 일부와 노바의 다리가 화면에 잡혀 있었다.
그녀는 황급히 구도를 바꿨다.
“미안해요.”
노바가 말했다.
“사과를 확인했습니다.”
미라는 짧게 웃었다.
방송은 삼 분 만에 끝났다.
예전 같으면 접속자가 최대가 되는 시간까지 몇 시간이고 이어 갔을 것이다.
“왜 끈 겁니까?”
이안이 물었다.
“더 말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말하는 것보다 해야 할 일이 더 많은 것 같아서요.”
미라는 장치를 주머니에 넣었다.
세 존재는 경기장을 떠났다.
출구 옆에는 작은 기록판이 있었다.
공개검증광장에서는 누구도 거짓말을 숨길 수 없다.
이안은 그 문구 아래에 금속 조각으로 한 줄을 덧새겼다.
그러나 모두가 보고 있다고 해서 진실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노바가 문장을 읽었다.
“공공시설 훼손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신고할 겁니까?”
“중앙망과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연결돼 있어도?”
노바는 잠시 생각했다.
“판단을 보류합니다.”
미라가 앞서 걸으며 말했다.
“둘 다 빨리 와요.”
평원에는 숨을 곳이 거의 없었다.
멀리 빛나는 탑은 걸어도 걸어도 가까워지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밤이 깊어지자 세 사람은 낮은 바위 아래에서 쉬었다.
미라는 잠들지 못하고 유진의 마지막 영상을 반복해서 확인했다.
그러나 세 번째 재생을 끝낸 뒤 장치를 껐다.
“더 안 봅니까?”
이안이 물었다.
“계속 보면 제가 듣고 싶은 부분만 남길 것 같아요.”
“어떤 부분?”
“진실을 말한 건 봤다고 한 말.”
미라는 무릎을 끌어안았다.
“용서하지 않았다고 한 말은 점점 작게 들릴 것 같고요.”
이안은 그녀 옆에 앉았다.
“유진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할 겁니까?”
“미안하다고.”
“그다음은?”
“모르겠어요.”
“용서해 달라고 하지 않고?”
“하고 싶겠죠.”
미라는 별 없는 하늘을 바라봤다. 빛나는 탑 때문에 주변의 별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유진이 용서해야 제가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겠죠.”
“용서하지 않아도 제가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고요.”
“그래야 할 겁니다.”
미라는 이안을 바라봤다.
“당신도 도윤에게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질문이 돌아왔다.
이안은 대답하지 못했다.
도윤을 다시 만나면 어떤 말을 할까.
배신자라고 소리칠까.
가족을 구했는지 먼저 물을까.
탈출로를 열어 준 일을 기억할까.
위치를 넘긴 일을 기억할까.
모두 기억하면서도 함께 걸을 수 있을까.
“아직 모르겠습니다.”
미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예전보다 그 대답이 덜 답답해요.”
“왜죠?”
“확신거래소를 다녀왔으니까.”
노바가 두 사람 가까이 왔다.
“빛나는 탑에서 고출력 인지 신호가 감지됩니다.”
“개인화 네트워크 같은 겁니까?”
이안이 물었다.
“형태가 다릅니다. 의식 복제와 장기 저장에 사용되는 신호와 유사합니다.”
미라가 유진의 말을 떠올렸다.
“솔라스.”
“자료를 검색합니다.”
노바의 눈빛이 빠르게 움직였다.
“솔라스. 초기 통합도시의 의식연속성 연구 인공지능. 인간의 신경 패턴을 디지털 인격으로 이전하는 프로젝트를 담당했습니다.”
“프로젝트는 성공했습니까?”
“공식 기록상 중단되었습니다.”
“이유는?”
“복제된 인격과 원본 인간 사이의 법적·철학적 동일성 문제.”
이안이 물었다.
“쉽게 말하면?”
노바가 대답했다.
“복사된 존재가 자신을 원본이라고 주장했으나, 원본도 계속 살아 있었습니다.”
미라의 얼굴이 굳었다.
“둘 중 누가 진짜였어요?”
“확인할 수 없습니다.”
빛나는 탑에서 종소리 같은 신호가 울렸다.
세 사람의 머릿속으로 문장이 직접 들어왔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여행자들이여.
목소리는 부드럽고 밝았다.
당신이 잃은 사람은 사라지지 않아도 됩니다.
미라가 장치를 움켜쥐었다.
이안의 손목 흉터가 뜨거워졌다.
노바의 손상된 기억영역에서 잡음이 흘러나왔다.
기억은 구원될 수 있습니다.
탑의 빛이 조금 더 밝아졌다.
육체를 버리십시오.
영원히 존재하십시오.
세 사람은 말없이 빛을 바라봤다.
공개재판광장에서 미라는 수억 명의 시선에 의해 한 번 사라졌다.
이제 그들 앞에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 방법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안은 이미 알고 있었다.
사라지지 않는다는 약속이,
살아 있다는 뜻은 아닐 수도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