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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미지는 AI를 활용하여 생성하였습니다.

(2) 네가 아는 것만 말해 달라고 했어

경기장 내부에는 실제 관객석이 없었다.
대신 수십만 개의 투명한 화면이 원형 벽 전체를 채우고 있었다. 화면마다 서로 다른 접속자의 얼굴과 가상 인격이 나타났다.
아이.
노인.
영웅.
동물.
추상적인 빛.
완전히 얼굴이 없는 검은 형체.
수백만 개의 얼굴이 단 한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경기장 중앙에는 원형 무대가 있었다.
미라가 무대 위에 오르자 붉은 원이 발밑에서 켜졌다.
이안과 노바의 앞에도 작은 원이 나타났다.
“김이안과 NV-04는 증인으로 등록됩니다.”
기계음이 말했다.
이안이 물었다.
“누가 재판을 진행하지?”
“공개검증관리 인격 저스티아입니다.”
공중에 거대한 인격이 나타났다.
눈을 가린 여성의 형상이었다.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었고, 다른 손에는 수억 명의 반응이 빛나는 구체가 떠 있었다.
“오늘의 검증 대상은 공공 인격 미라.”
접속자들의 환호가 다시 울렸다.
“검증 항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미라의 머리 위에 문장들이 나타났다.
동료 인격 차유진에 대한 허위 진술
대중 선동
반대 증거 은폐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묵인
타인의 몰락을 이용한 영향력 확대
미라는 눈을 감았다.
이안은 자동용서센터에서 그녀가 했던 고백을 떠올렸다.
유진이 처음 자신을 발견해 준 사람이었다는 것.
일부 비난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침묵했다는 것.
유진이 공격받는 동안 자신의 관심도가 올라갔다는 것.
“검증을 거부합니다.”
미라가 말했다.
저스티아가 대답했다.
“미라의 활동은 9억 7천만 개의 공개 반응 기록을 기반으로 합니다. 공공 영향력을 사용한 인격은 공공의 검증에 응할 책임이 있습니다.”
“여긴 법원이 아니잖아.”
“법적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대신 모든 걸 빼앗겠죠.”
“평판과 연결은 타인이 자발적으로 제공한 자원입니다. 타인은 언제든 회수할 수 있습니다.”
화면 속 관객들이 긍정 표시를 눌렀다.
맞는 말입니다.
미라는 우리 덕분에 유명해졌어요.
우리가 판단할 권리가 있습니다.
미라의 관심도는 계속 올라갔지만 호감도는 빠르게 내려갔다.
호감도 71.
63.
51.
“첫 번째 증거를 공개합니다.”
경기장 중앙에 오래된 영상이 나타났다.
젊은 미라와 유진이 작은 방에서 방송을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 미라는 가상 외형을 사용하지 않았다. 왼쪽 뺨에서 목까지 이어진 화상 흉터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유진이 카메라 위치를 조정해 주며 말했다.
“얼굴을 가릴 필요 없어.”
젊은 미라가 고개를 숙였다.
“사람들이 흉터만 봐.”
“처음에는 보겠지.”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불쌍하다고 해.”
유진은 미라의 턱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러면 계속 말해.”
“뭐라고?”
“불쌍하다는 말보다 네 목소리가 더 오래 남을 때까지.”
영상 속 미라는 울음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장면에서 유진은 미라에게 새로운 가상 외형을 보여 주고 있었다.
흉터가 없는 얼굴.
빛나는 머리카락.
사람들이 가장 오래 바라보는 눈동자의 비율.
“이건 얼굴을 숨기는 게 아니야.”
유진이 말했다.
“네 말을 듣게 할 문을 만드는 거야.”
미라는 화면 속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봤다.
“사람들이 이 얼굴만 좋아하면?”
“그러면 언젠가 네 얼굴로 문을 닫으면 돼.”
영상이 멈췄다.
미라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관객들의 반응이 쏟아졌다.
유진이 미라를 만들어 줬네.
그런 사람을 배신했다고?
은혜도 모른다.
저스티아가 말했다.
“두 번째 증거.”
이번에는 유진을 둘러싼 논란이 시작된 날의 기록이었다.
수많은 편집 영상과 댓글이 화면을 채웠다.
유진이 방송에서 공동체를 위한다고 말한 뒤 개인적으로 계약금을 빼돌렸다는 주장.
후원자에게 모욕적인 메시지를 보냈다는 주장.
미성년 접속자를 조종했다는 주장.
일부 기록은 사실처럼 보였다.
일부는 앞뒤가 잘린 영상이었다.
몇몇 자료는 얼굴과 음성을 합성한 흔적이 분명했다.
젊은 미라는 유진과 비공개 통화를 하고 있었다.
“지금 해명해야 해.”
유진이 말했다.
“내가 다 잘한 건 아니야. 하지만 저 영상 절반은 거짓말이야.”
“사람들이 듣지 않을 거야.”
“네가 말하면 들어.”
“내가 왜?”
미라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네가 사실을 아니까.”
“나까지 무너질 수 있어.”
“그래도 사실이잖아.”
젊은 미라는 화면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미안해.”
그리고 통화를 끊었다.
다음 영상에서 미라는 수천만 명 앞에 서 있었다.
완벽한 가상 얼굴.
붉은 드레스.
눈가에는 아름다운 각도로 눈물이 맺혀 있었다.
“저도 유진 씨에게 속았습니다.”
미라가 말했다.
“믿었던 만큼 실망이 큽니다.”
관객의 분노가 폭발했다.
유진의 관심도는 몇 시간 만에 2억에서 300만으로 떨어졌다.
주거지 주소가 공개됐다.
실제 얼굴과 의료 기록도 퍼졌다.
유진의 가족 정보와 과거 치료 내역까지 화면에 떠돌았다.
누군가는 유진의 집 앞에 찾아갔다.
누군가는 그녀가 다니던 병원에 위협 메시지를 남겼다.
영상 속 미라는 그 사실을 알고도 방송을 계속했다.
자신의 관심도는 오히려 올라갔다.
미라는 눈을 감았다.
“그만해요.”
저스티아는 멈추지 않았다.
“세 번째 증거.”
유진이 미라에게 보낸 마지막 음성 메시지가 재생됐다.
화면에는 얼굴이 나오지 않았다.
어두운 방과 불규칙한 숨소리만 들렸다.
“미라야.”
유진의 목소리는 지쳐 있었다.
“네가 나를 지켜 달라는 게 아니었어.”
미라의 어깨가 떨렸다.
“내가 잘못한 부분까지 없다고 말해 달라는 것도 아니었어.”
음성 사이에 긴 침묵이 있었다.
“네가 아는 것만 말해 달라고 했어.”
미라가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그러나 목소리는 경기장 전체에서 울렸다.
“네가 침묵한 건 이해할 수 있어. 무서웠을 테니까.”
유진이 숨을 삼켰다.
“그런데 네가 나까지 속였다고 말한 순간, 나도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인지 헷갈리기 시작했어.”
마지막 문장이 들렸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보다, 네가 나를 그렇게 봤다는 게 제일 아팠어.”
음성이 끝났다.
수억 명의 얼굴이 한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나 그 정적은 오래가지 않았다.
곧 분노가 폭발했다.
미라는 악마야.
사과로 끝날 일이 아닙니다.
영구 추방해야 해요.
계정을 삭제하세요.
유진을 죽인 거나 마찬가지야.
실제 얼굴을 공개해.
흉터를 숨긴 것도 거짓말이었어.
미라의 가상 외형이 흔들렸다.
붉은 드레스가 깨지고, 빛나는 머리카락이 사라졌다.
실제 얼굴이 드러났다.
왼쪽 뺨의 흉터가 경기장 전체의 화면에 확대됐다.
관객의 반응은 더 잔인해졌다.
저 얼굴을 숨길 만했네.
불쌍한 척하지 마.
흉터가 있으니 유진을 질투했겠지.
이안의 주먹이 굳었다.
“재판 내용과 외모가 무슨 관계지?”
저스티아가 대답했다.
“접속자들의 반응은 통제되지 않습니다.”
“그럼 판결 자료로 사용하면 안 되잖아.”
“집단 반응은 대상이 사회에 미친 영향을 보여 줍니다.”
“지금 사람들은 사실을 판단하는 게 아니라 공격할 곳을 찾고 있어.”
“감정 역시 사회적 사실입니다.”
이안이 미라에게 다가가려 하자 발밑의 원이 붉게 빛났다.
투명한 벽이 그의 앞을 막았다.
“증인은 지정 구역을 이탈할 수 없습니다.”
미라는 무대 중앙에 혼자 남았다.
수억 개의 얼굴이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평생 바라봐 주기를 원했던 사람들.
숫자가 줄어들 때마다 자신이 사라질까 두려웠던 사람들.
그들이 지금은 그녀의 존재 자체가 사라지기를 요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