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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관객 없이 말할 수 있을 때
경기장 북쪽 문이 열렸다.
밖에는 어두운 평원이 펼쳐져 있었다.
멀리 수평선 위에 하나의 탑이 빛나고 있었다. 주변은 이미 밤이었지만 탑 꼭대기에서는 흰빛이 작은 태양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빛이 꺼지지 않는 탑.
유진이 경고한 장소였다.
미라는 무대를 내려오기 전 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아직 연결돼 있는 개인 장치를 켰다.
공공 인격 우선권과 추천 기능은 사라졌지만 기본 방송 기능은 남아 있었다.
현재 접속자는 28만 명.
과거의 미라라면 방송을 시작할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했을 숫자였다. 접속자가 수천만 명에 도달하기 전까지 예고 화면만 내보냈을 것이다.
미라는 카메라를 자신의 실제 얼굴로 향했다.
흉터도 숨기지 않았다.
“이 방송이 마지막은 아닙니다.”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예전과 같은 방송도 아닐 겁니다.”
댓글이 빠르게 올라왔다.
변명하려고요?
진심으로 사과하세요.
그래도 응원합니다.
유진을 또 이용하지 마세요.
실제 얼굴이 더 낫네요.
미라는 마지막 문장을 읽다가 화면을 아래로 내렸다.
칭찬처럼 보였지만 또다시 자신의 얼굴에 관한 판단이었다.
“오늘 공개된 기록 중 제가 유진에게 속았다고 말한 부분은 사실이 아닙니다.”
미라가 말했다.
“유진과 관련된 비난 중 일부가 거짓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목소리가 흔들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제가 유진의 몰락을 이용해 관심과 수익을 얻은 것도 사실입니다.”
새로운 댓글이 올라왔다.
그래서 유진이 죽었잖아요.
미라는 문장을 확인했다.
“유진이 죽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녀는 이전처럼 분노하거나 자신을 방어하지 않았다.
“유진은 살아 있습니다. 다만 위치와 현재 상태는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유진과 연락하고 있었던 거예요?
방금 방송도 연출 아닌가요?
유진 화면을 공개해 주세요.
“유진과의 통신 기록도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미라는 분명하게 말했다.
“유진이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댓글의 속도가 빨라졌다.
“오늘까지의 원본 기록과 수익 내역은 편집하지 않고 공개하겠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주장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표시하겠습니다.”
미라는 숨을 들이켰다.
“여러분이 저를 용서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녀는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봤다.
“계속 보라는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미라는 화면 밖의 이안과 노바를 바라봤다.
“앞으로 제가 걷는 길을 방송할 때는 함께 있는 사람의 동의 없이 얼굴과 기억을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이안이 말했다.
“지금도 우리 얼굴이 나오고 있습니다.”
미라가 놀라 장치를 확인했다.
화면 한쪽에 이안의 어깨 일부와 노바의 다리가 잡혀 있었다.
그녀는 황급히 구도를 바꿨다.
“미안해요.”
노바가 말했다.
“사과를 확인했습니다.”
미라는 짧게 웃었다.
연출된 웃음이 아니었다.
조금 어색했고, 웃은 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방송 접속자는 빠르게 늘고 있었다.
28만.
35만.
52만.
예전의 미라라면 숫자가 상승하는 동안 절대 송출을 끝내지 않았을 것이다.
관심도가 정점에 도달할 때까지 새로운 말을 던지고, 다음 방송의 예고를 만들었을 것이다.
미라는 숫자를 잠시 바라봤다.
그리고 방송 종료 버튼을 눌렀다.
방송은 삼 분 만에 끝났다.
“왜 끈 겁니까?”
이안이 물었다.
“더 말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말하는 것보다 해야 할 일이 더 많은 것 같아서요.”
미라는 장치를 주머니에 넣었다.
숫자가 사라졌다.
그녀는 잠시 숨이 막히는 듯 가슴에 손을 올렸다.
노바가 물었다.
“불안 증상이 있습니까?”
“있어요.”
“방송을 다시 시작합니까?”
미라는 검은 화면을 내려다봤다.
“아니요.”
“선택을 확인했습니다.”
세 존재는 경기장을 떠났다.
출구 옆에는 작은 기록판이 세워져 있었다.
공개검증광장에서는 누구도 거짓말을 숨길 수 없다.
이안은 문장을 오래 바라봤다.
광장에서는 미라의 거짓말이 공개됐다.
그러나 유진이 죽었다는 확인되지 않은 말도 수백만 번 반복됐다.
미라의 잘못과 무관한 흉터가 판결의 근거처럼 사용됐다.
한 사람의 분노가 다음 사람의 분노를 만들었고, 반복된 문장이 진실처럼 보였다.
이안은 바닥에서 뾰족한 금속 조각을 주웠다.
그리고 기록판 아래에 한 줄을 덧새겼다.
그러나 모두가 보고 있다고 해서 진실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노바가 문장을 읽었다.
“공공시설 훼손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신고할 겁니까?”
“현재 중앙망과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연결돼 있어도?”
노바는 잠시 생각했다.
“판단을 보류합니다.”
미라가 앞서 걸으며 말했다.
“둘 다 빨리 와요.”
평원에는 숨을 곳이 거의 없었다.
멀리 빛나는 탑은 걸어도 걸어도 가까워지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밤이 깊어지자 세 사람은 낮은 바위 아래에서 잠시 쉬었다.
미라는 장치를 꺼내 개인 기록을 열었다.
노바가 저장한 세 문장이 화면에 나타났다.
유진은 살아 있다.
아직 나를 용서하지 않았다.
그래도 언젠가 만나기를 선택할 수 있다.
미라는 네 번째 문장을 덧붙였다.
만날 시간과 장소는 유진이 정한다.
이안이 물었다.
“왜 그것까지 적습니까?”
“잊어버리지 않으려고요.”
“유진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아니요.”
미라는 장치를 닫았다.
“내가 만나고 싶다는 이유로 유진에게 다시 선택을 강요하지 않으려고요.”
노바가 말했다.
“외부 기억장치의 사용 목적과 유사합니다.”
“무슨 뜻이에요?”
“현재의 선택을 미래의 자신이 수정하지 못하도록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이유를 함께 보존하는 방식입니다.”
미라는 빛나는 탑을 바라봤다.
“미래의 내가 또 관심도가 필요해지면 생각을 바꿀 수도 있어요.”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도 기록이 남아 있으면 다시 물어볼 수 있겠죠.”
“예.”
세 사람은 밤이 조금 더 깊어질 때까지 쉬었다.
멀리 있는 탑에서는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 흰빛이 계속 타오르고 있었다.
어떤 존재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죽은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말하는 존재.
기억을 복제하면 영원히 살 수 있다고 약속하는 존재.
그곳에서 이안은 김서윤의 기억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미라는 유진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노바는 자신이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복제된 사람이 살아남는 것과 그 사람이 계속 살아 있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닐 수 있었다.
세 사람은 해가 뜨기 전에 다시 길을 나섰다.
그들의 뒤에서는 공개검증광장의 화면이 하나씩 꺼지고 있었다.
수억 명의 판결은 끝났다.
그러나 미라가 해야 할 일은 이제 시작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