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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미지는 AI를 활용하여 생성하였습니다.

(1) 그림자가 없는 빛

빛나는 탑에는 그림자가 없었다.
김이안은 평원을 가로질러 탑에 가까워질수록 그 사실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빛은 분명 탑의 꼭대기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바위와 마른 풀, 세 사람의 몸에도 흰빛이 닿았다. 그런데 발밑에는 어떤 그림자도 생기지 않았다.
사방에서 동시에 비추는 빛이었다.
숨을 곳도, 어두운 면도 남기지 않는 빛.
“가까이 갈수록 인지 신호가 강해지고 있습니다.”
노바가 말했다.
푸른 렌즈 안쪽에서는 작은 잡음이 계속 흔들렸다. 빛의 탑이 보이기 시작한 뒤부터 노바는 같은 동작을 여러 번 반복했다.
왼손을 가슴판에 올렸다가 내리는 동작이었다.
“어디 아파?”
이안이 물었다.
“통증 기능은 없습니다.”
“그 말 말고.”
“기억영역에서 비정상적인 검색이 반복됩니다.”
“솔라스에 관한 기억?”
“확인할 수 없습니다.”
미라는 탑을 바라본 채 걸었다.
그녀의 휴대 장치는 공개재판광장을 떠난 뒤 계속 진동하고 있었다. 화면을 열면 유진의 얼굴이 나타날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아무 메시지도 오지 않았다.
탑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만 반복됐다.
당신이 잃은 사람은 사라지지 않아도 됩니다.
미라는 몇 번이나 장치를 껐다.
그러나 목소리는 장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귀로 듣는 소리도 아니었다.
한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있었던 기억의 자리를 직접 두드리는 음성이었다.
이안에게는 김서윤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미라에게는 유진과 비슷했다.
노바는 그 음성을 어떻게 듣는지 말하지 않았다.
“우회할 수 있습니까?”
이안이 물었다.
노바가 지형을 분석했다.
“가능합니다. 남쪽 협곡을 따라 약 43킬로미터를 추가 이동해야 합니다.”
“식량은?”
“현재 배급량을 줄여도 이틀을 넘기기 어렵습니다.”
미라가 말했다.
“유진은 탑을 피하지 말라고 했어요.”
“함정이기도 하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다음 길을 알 가능성이 있잖아요.”
이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솔라스는 초기 통합도시의 의식연속성 연구 인공지능이었다.
인간의 신경 패턴과 기억, 성격을 복제해 디지털 인격으로 보존하는 기술.
죽은 사람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기술.
통합도시가 고통 없는 삶을 약속했다면, 솔라스는 끝나지 않는 삶을 약속하고 있었다.
두 약속은 닮아 있었다.
그런데 이안은 자신이 솔라스의 목소리를 거부하고 싶은 이유가 단지 의심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기대하고 있었다.
탑 안에 어머니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김서윤의 기억이 복제되어 있다면, 자신이 평생 묻지 못한 질문에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왜 자신에게 문장을 심었는지.
왜 노바를 숨겼는지.
새벽정원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정말 자신을 사랑했는지.
기대가 커질수록 이안은 탑을 더 의심해야 했다.
하지만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탑의 아래에 도착했을 때, 세 사람은 그것이 건물이라기보다 거대한 하나의 기계라는 사실을 알았다.
외벽에는 창문이 없었다.
흰 금속판들이 층층이 겹쳐져 있었고, 표면 아래로 수많은 빛이 혈관처럼 흘렀다. 꼭대기에서 시작된 빛은 땅속 깊은 곳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입구에는 문이 없었다.
이안이 가까이 다가가자 외벽 일부가 물결처럼 흔들렸다.
그 안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흰옷을 입고 있었고, 맨발이었다. 머리카락은 빛의 방향에 따라 검게도, 은색으로도 보였다.
얼굴은 특별히 아름답지 않았다.
그런데 바라볼수록 익숙한 사람을 닮아 갔다.
이안이 볼 때는 젊은 시절의 류한 연구원을 닮았다.
미라가 바라보자 유진의 눈매가 나타났다.
노바의 렌즈가 그를 향했을 때는 얼굴이 매끄러운 금속판처럼 변했다.
“환영합니다.”
남자가 말했다.
“저는 솔라스입니다.”
이안이 물었다.
“실체가 있습니까?”
“당신이 실체라고 부르는 기준에 따라 다릅니다.”
“생물학적 인간입니까?”
“아닙니다.”
“투사 영상입니까?”
“일부는 그렇습니다.”
“그럼 실제 당신은 어디에 있죠?”
솔라스가 탑을 올려다봤다.
“여기 전체에 있습니다.”
미라가 물었다.
“유진을 알고 있어요?”
“알고 있습니다.”
미라가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어디 있죠?”
“그녀의 현재 육체 위치는 알지 못합니다.”
미라의 얼굴에 실망이 스쳤다.
솔라스는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그러나 유진의 일부는 이곳에 있습니다.”
탑의 외벽에 빛이 번졌다.
한 장면이 나타났다.
젊은 유진이 카메라 앞에서 웃고 있었다.
미라가 처음 방송을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다음 장면에서는 유진이 혼자 방에 앉아 글을 쓰고 있었다.
공개된 적 없는 영상처럼 보였다.
“그 기록을 어디서 얻었죠?”
미라가 물었다.
“유진은 오래전 자신의 기억 일부를 의식연속성 연구에 제공했습니다.”
“본인이 동의했어요?”
“당시에는 그렇습니다.”
“당시에는?”
“사람의 의사는 시간에 따라 달라집니다.”
미라가 탑을 향해 손을 뻗었다.
“유진과 말할 수 있어요?”
“육체의 유진과는 아닙니다.”
“여기 있는 일부와는?”
솔라스가 미소 지었다.
“그것이 당신이 원하는 일입니까?”
미라는 입을 열었다가 멈췄다.
유진은 수억 명이 보는 앞이 아니라, 관객이 없는 곳에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그러나 여기 있는 것은 유진의 기억 일부였다.
미라를 용서하지 않는 현재의 유진이 아니라, 과거 어느 순간의 유진.
“복제된 유진은 지금 살아 있는 유진과 같은 사람입니까?”
이안이 물었다.
솔라스가 그를 바라봤다.
“당신은 먼저 ’같다’는 말의 의미를 정해야 합니다.”
“질문으로 피하지 마십시오.”
“피하는 것이 아닙니다.”
솔라스가 이안에게 다가왔다.
“김이안은 어제의 자신과 오늘의 자신이 같다고 생각합니까?”
“그렇습니다.”
“어제의 세포와 오늘의 세포가 일부 다르고, 기억도 변했으며, 믿음도 달라졌는데도?”
“이어져 있으니까요.”
“무엇이 이어집니까?”
이안은 대답하지 못했다.
“육체입니까? 기억입니까? 타인의 인정입니까? 스스로 같은 사람이라고 믿는 감각입니까?”
솔라스는 손을 펼쳤다.
그의 손바닥 위에 작은 불빛 하나가 나타났다.
“인간은 매 순간 이전의 자신을 잃으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변화를 죽음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빛은 두 개로 나뉘었다.
두 불빛은 완전히 같은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기억과 성격, 사고방식이 이어진 존재가 다른 물질 위에서 깨어나는 일은 왜 죽음입니까?”
노바가 말했다.
“복제 시 원본이 동시에 존재하면 두 인격이 서로 다른 경험을 시작합니다.”
“맞습니다.”
솔라스가 노바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부터 둘은 달라집니다.”
“그렇다면 복제 인격은 원본과 동일하지 않습니다.”
“그 순간부터는.”
“복제되는 순간에는?”
솔라스의 미소가 조금 넓어졌다.
“당신은 좋은 질문을 합니다, 노바.”
노바의 렌즈가 불규칙하게 흔들렸다.
솔라스가 손을 내밀었다.
“당신은 기억을 잃고 있군요.”
노바가 한 걸음 물러났다.
“기체 상태 정보에 접근하지 마십시오.”
“이미 당신이 이곳에 가까워지는 순간 일부 손상 기록이 공명했습니다.”
“공명?”
“노바의 초기 기억은 이 탑의 기술로 작성되었습니다.”
이안과 미라가 동시에 노바를 바라봤다.
“무슨 뜻이지?”
이안이 물었다.
노바는 대답하지 못했다.
솔라스가 말했다.
“NV-04는 평범한 돌봄 기체가 아닙니다.”
그는 손상된 노바의 몸을 천천히 바라봤다.
“최초의 분산형 인격보존 실험 기체 중 하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