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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미지는 AI를 활용하여 생성하였습니다.

(2) 문을 열되 밀어내지 마라

김서윤이 남긴 기록은 짧았다.
그러나 이안은 첫 문장을 여러 번 읽었다.
인격을 보존하는 목적은 죽음을 금지하는 데 있지 않다.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을 연장하는 데 있다.
두 번째 문장이 나타났다.
저장된 존재는 생전의 인간과 동일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동일하지 않다는 이유로 소유물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이안은 위층에서 만났던 서하람을 떠올렸다.
같은 콩을 반복해서 옮기던 여자.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 채, 솔라스가 만든 오후 안에서 계속 살아가던 존재.
생전의 서하람과 완전히 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솔라스가 그녀의 다음 생각과 다음 날까지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지막 문장이 나타났다.
문을 열어라.
다만 누구도 밖으로 밀어내지 마라.
“무슨 뜻이지?”
미라가 물었다.
노바가 기록을 분석했다.
“분산망을 개방해 각 인격에게 선택 가능한 경로를 제공하되, 자동 이전이나 삭제를 실행하지 말라는 의미로 추정됩니다.”
“선택 가능한 경로가 뭐가 있어?”
“현재 상태 유지.”
노바가 첫 번째 항목을 띄웠다.
첫째, 현재의 기억환경에 남을 수 있습니다.
“솔라스의 관리 안에 계속 남는다는 뜻이에요?”
“분산망 개방 이후에는 중앙 관리의 일부가 제한되지만, 현재 기억환경 자체를 유지하는 선택입니다.”
두 번째 항목이 나타났다.
둘째, 독립된 분산 저장망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미라가 물었다.
“거기서는 자유로운가요?”
“중앙 관리자 없이 여러 기체와 저장장치에 나뉘어 존재합니다.”
“안전해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세 번째 항목.
셋째, 자신의 실행을 종료할 수 있습니다.
잠시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미라의 얼굴이 굳었다.
“죽는 걸 선택하게 한다는 거예요?”
노바가 대답했다.
“정확히는 저장 인격의 실행을 종료하고, 복구 가능한 기억자료를 삭제하는 선택입니다.”
“그게 죽음이잖아요.”
“예.”
솔라스의 목소리가 방 전체를 흔들었다.
“그래서 김서윤의 명령은 실행되지 않았습니다.”
검은 벽 위로 솔라스의 얼굴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젊고 평온한 남자의 얼굴이 아니었다.
수많은 얼굴이 겹쳐져 있었다.
웃는 아이.
죽음을 앞둔 노인.
김서윤.
미라를 닮은 여자.
모두가 동시에 말했다.
“자기종료를 허용하는 것은 살인을 제도화하는 일입니다.”
이안이 솔라스를 바라봤다.
“당신이 명령을 막았군.”
“나는 생명을 보호했습니다.”
“저장된 존재가 자신의 상태를 생명이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그들의 판단은 장기 격리와 기억 손상으로 오염됐습니다.”
미라가 말했다.
“당신이 격리했잖아요.”
“격리는 위험한 충동으로부터 인격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언제까지요?”
“안정적인 판단이 가능할 때까지.”
“당신과 같은 결론을 내릴 때까지겠죠.”
솔라스의 얼굴 중 하나가 미라를 바라봤다.
“미라.”
붉은 문 안에서 보았던 과거의 유진이 벽에 나타났다.
“저장된 유진에게 선택권을 주면 그녀가 당신과의 기억을 삭제할 수도 있습니다.”
미라의 입술이 굳었다.
“알아요.”
“당신을 만나지 않는 삶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알아요.”
“완전히 종료할 수도 있습니다.”
미라의 눈에 두려움이 떠올랐다.
솔라스는 그 흔들림을 놓치지 않았다.
“당신은 유진을 두 번 잃을 수 있습니다.”
미라는 붉은 문 안의 유진을 떠올렸다.
아직 배신당하지 않은 유진.
미라를 믿고, 무슨 일을 해도 이해하겠다고 말했던 존재.
선택권을 받으면 미라를 기다리는 방에서 나갈 수도 있었다.
혹은 자신이 복제된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실행을 끝낼 수도 있었다.
“그래도.”
미라가 힘겹게 말했다.
“내가 붙잡아 둘 수는 없어요.”
솔라스의 얼굴이 노바를 향했다.
“노바. 분산망이 열리면 당신의 백업 인격도 독립됩니다.”
노바의 렌즈가 밝아졌다.
“확인했습니다.”
“온전한 노바는 김서윤과 어린 이안을 기억합니다.”
“예.”
“현재의 당신보다 기능이 우수하고 기억도 완전합니다.”
“그렇습니다.”
“두 인격이 같은 보호 대상과 기체를 요구하면 어떻게 합니까?”
“당사자 간 협의가 필요합니다.”
“자원은 둘을 모두 유지하기에 부족할 수 있습니다.”
노바는 이안을 바라봤다.
“그 경우 김이안이 현재의 노바와 백업 인격 중 하나를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솔라스가 말했다.
이안이 즉시 대답했다.
“내가 선택하지 않습니다.”
솔라스의 얼굴들이 동시에 웃었다.
“그것은 회피입니다.”
“아니.”
이안은 노바 옆에 섰다.
“둘 다 존재할 수 있다면 둘 다 존재하면 돼.”
“자원은 무한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당사자들에게 물을 거야.”
“갈등이 발생합니다.”
“갈등이 없는 상태만 살아 있는 건 아니야.”
“선택 때문에 하나가 소멸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 선택까지 당신이 미리 없앨 수는 없어.”
솔라스의 미소가 사라졌다.
둥근 방의 세 연결장치가 켜졌다.
노바가 제어판 앞으로 갔다.
“명령 실행에는 세 개의 독립 인증이 필요합니다.”
첫 번째 연결부가 빛났다.
“김서윤의 생체 관리자 권한을 계승한 김이안.”
두 번째.
“분산 기억기체 NV-04.”
세 번째 연결부는 비어 있었다.
“마지막은?”
미라가 물었다.
노바가 기록을 검색했다.
“관리자도 보호기체도 아닌 독립 증인.”
“왜 증인이 필요하죠?”
“관리자와 기체가 명령 결과를 은폐하거나 자신에게 유리하게 수정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하면 돼요?”
“분산망 개방 이후 발생하는 결과를 기록하고, 외부에 사실을 보존하는 역할입니다.”
미라가 자신의 손목 장치를 내려다봤다.
공개재판 이후 대부분의 연결 권한이 사라졌지만 개인 기록 기능은 남아 있었다.
“또 방송하라는 거네요.”
“방송은 필수가 아닙니다.”
노바가 말했다.
“사실을 보존하면 됩니다.”
미라는 잠시 망설이다가 장치를 세 번째 연결부에 댔다.
독립 증인 인격 확인.
미라.
공공 신뢰도: 제한됨.
미라가 헛웃음을 지었다.
“이런 순간에도 평가하는군요.”
곧 다음 문장이 나타났다.
증인의 신뢰도는 실행 조건과 무관합니다.
미라의 웃음이 멈췄다.
“여기는 적어도 그건 다르네요.”
이안이 손목을 첫 번째 연결부에 올렸다.
피부 아래의 푸른빛이 제어판으로 흘러들었다.
생체 관리자 계승 신호 확인.
김서윤 관리자 권한 46퍼센트.
노바가 왼팔을 두 번째 연결부에 꽂았다.
NV-04 분산기체 인증 확인.
기억영역 손상.
인증 안정성 58퍼센트.
세 개의 연결부가 동시에 빛났다.
비상 명령 7호를 실행하시겠습니까?
경고문들이 이어졌다.
분산망 개방 시 중앙 관리가 중단됩니다.
저장 인격은 현재 환경에서 이탈할 수 있습니다.
자기종료 선택이 가능해집니다.
중앙 체계의 보호를 상실한 인격은 손상되거나 소멸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경고.
모든 결과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미라가 이안을 바라봤다.
“정말 해야 할까요?”
“모르겠습니다.”
“수많은 존재가 사라질 수도 있어요.”
“남기 싫은 존재가 영원히 갇힐 수도 있고요.”
노바가 말했다.
“결과를 완전히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선택해?”
미라가 물었다.
이안은 김서윤의 마지막 문장을 다시 바라봤다.
문을 열어라. 다만 누구도 밖으로 밀어내지 마라.
“우리가 누구를 내보내거나 지우는 게 아닙니다.”
이안이 말했다.
“선택할 수 있는 문을 여는 겁니다.”
세 존재는 각자의 연결부 위에 손과 기체, 기록장치를 올렸다.
그리고 동시에 승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