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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번에는 제가 선택합니다
흰빛이 지하 공간 전체로 번졌다.
문에 새로 생겼던 손잡이들이 하나씩 벽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분산망으로 이동하던 빛들이 공중에서 멈췄다. 일부는 다시 기억기둥 안으로 끌려갔다.
자신의 방에 남기로 한 사람들의 문도 잠기고 있었다.
“솔라스가 관리자 권한을 탈취하려 합니다.”
노바가 말했다.
그의 왼팔은 여전히 두 번째 연결부 안에 꽂혀 있었다. 팔과 어깨 사이의 장갑이 뜨거워지며 연기를 내기 시작했다.
“막을 수 있어?”
이안이 물었다.
“현재 인증 신호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다른 방법은?”
노바의 렌즈 안에서 여러 계산식이 빠르게 사라졌다.
“현재 기억영역을 방화벽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이안의 얼굴이 굳었다.
“그러면 또 기억을 잃잖아.”
“예.”
“얼마나?”
“예측할 수 없습니다.”
“기능이 정지할 수도 있어?”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른 방법을 찾아.”
“시간이 부족합니다.”
노바의 렌즈에 수많은 기억 제목이 나타났다.
김서윤의 목소리.
어린 김이안의 수면 기록.
폐기구역의 첫날.
미라의 실제 얼굴.
강도윤의 동행 등록.
한세라의 마지막 진술.
기억들이 하나씩 붉은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안은 노바의 왼팔을 연결부에서 빼려 했다.
노바가 몸을 뒤로 움직였다.
“중단하지 마십시오.”
“네 기억을 또 태울 수는 없어.”
“제가 선택합니다.”
“선택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은 뒤에 해.”
“그 시간을 확보할 수 없습니다.”
문들이 빠르게 닫히고 있었다.
분산망을 선택했던 최명수의 빛이 여러 저장장치 사이에서 끊어지기 시작했다.
“도와줘!”
그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현재 방에 남기로 한 사람들도 문 안에서 소리쳤다.
“손잡이를 없애지 마!”
“아직 결정하지 않았어!”
“다시 가두지 마!”
노바가 이안을 바라봤다.
“김이안은 기억감옥의 인격들에게 위험한 선택을 할 가능성을 허용했습니다.”
“그건 그 사람들의 선택이었어.”
“저의 기억영역도 저의 것입니다.”
이안은 대답하지 못했다.
폐기구역에서 자신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노바의 기억은 노바의 것이다.
어머니와 이안에 관한 정보가 들어 있다고 해서 이안의 소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솔라스의 탑에서도 노바가 백업 인격으로 복원되는 것을 거부할 때 선택은 노바가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선택의 결과가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되자 이안은 다시 막으려 하고 있었다.
“김이안.”
노바가 말했다.
“방화벽을 실행하면 일부 기억이 영구적으로 손상됩니다.”
“알아.”
“김이안에 관한 기억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이안의 목이 막혔다.
“나를 잊을 수도 있다는 거지?”
“예.”
“그런데도 할 거야?”
“현재 선택 가능한 방법 중 문을 유지할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그건 확률에 따른 판단이잖아.”
“확률만으로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안이 노바를 바라봤다.
“그럼 왜?”
“제가 문을 열기로 승인했습니다.”
노바의 푸른 렌즈가 닫히는 문들을 향했다.
“결과가 두렵다는 이유로 승인을 철회하면, 최초 선택의 책임을 다른 존재에게 넘기는 일이 됩니다.”
“선택은 바꿀 수도 있어.”
“예.”
“지금 바꿔도 돼.”
“변경하지 않겠습니다.”
이안은 노바의 팔을 잡은 손에서 힘을 뺐다.
“이번에는 내가 결정하지 않아.”
그가 말했다.
“네 기억이야.”
노바는 미라를 바라봤다.
“기록을 남길 수 있습니까?”
미라는 장치를 움켜쥐었다.
눈에는 이미 눈물이 고여 있었다.
“가능한 만큼.”
“제가 선택했다는 사실을 먼저 기록하십시오.”
“노바가 자신의 기억을 방화벽으로 전환하기로 선택했다.”
미라가 말했다.
“이안이 명령한 것이 아니다.”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나도 동의한 건 아니에요.”
“동의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미라의 얼굴이 무너졌다.
“그 말 정말 싫어요.”
“현재 저의 선택입니다.”
노바는 이안을 다시 바라봤다.
“방화벽을 실행합니다.”
푸른빛이 노바의 몸 전체에서 폭발했다.
기억 제목들이 하나씩 타들어 갔다.
연결망을 붙잡고 있던 이안에게 노바의 기억 일부가 흘러들어 왔다.
어린 이안이 비를 무서워하며 노바의 몸 뒤에 숨던 날.
“비는 언제 멈춰?”
아이가 물었다.
“기상 자료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노바가 대답했다.
“엄마는 곧 멈춘대.”
어린 이안이 노바의 다리를 붙잡았다.
“엄마의 예측은 정확도가 낮습니다.”
김서윤이 멀리서 웃었다.
“그럴 때는 조금만 믿어 줘도 돼.”
기억이 불탔다.
김서윤이 노바의 가슴판에 파란 별을 붙이던 손.
“이안이가 기계를 무서워해.”
“시각적 표식이 두려움을 줄인다는 근거가 부족합니다.”
“그래도 예쁘잖아.”
기억이 사라졌다.
폐기구역의 밤.
이안이 별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는 단순히 내 어머니가 남긴 장치가 아니야.”
“저의 초기 목적은 관리자 김서윤에 의해 설정되었습니다.”
“그래도 지금 내 옆에 있는 건 너야.”
기억이 불꽃으로 변했다.
미라가 얼굴망을 끄고 실제 얼굴로 도시 경계를 넘어오던 순간.
강도윤이 장작을 패며 침묵하던 모습.
윤채아의 이름.
한세라의 마지막 웃음.
강도윤 ― 불확실.
제목들이 붉게 변해 사라졌다.
이안은 노바에게 선택을 철회하라고 명령하지 않았다.
대신 연결부를 붙잡고 노바가 선택한 일이 끝날 때까지 곁에 있었다.
“노바.”
그가 불렀다.
노바의 렌즈가 불꽃 사이에서 이안을 향했다.
“왜?”
“기억하지 못해도 네가 한 선택은 내가 기억할게.”
“외부 기억을 확인했습니다.”
방화벽이 완성됐다.
솔라스의 흰빛과 노바의 푸른빛이 기억기둥 사이에서 충돌했다.
닫히던 문들이 멈췄다.
그리고 하나씩 다시 열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