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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안전한 생명의 모순
검은 선이 이안의 몸을 의자로 끌어당겼다.
손목 연결단자에서는 희미한 빛이 맥박처럼 깜박이고 있었다.
그곳에 앉으면 무엇이 일어날지 이안은 알 수 있었다.
기억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남을 것이다.
자신이 기록삭제관으로 사람들의 삶을 지웠다는 사실도.
기억감옥의 문을 열었다는 사실도.
노바가 자신을 위해 여러 번 몸과 기억을 잃었다는 사실도.
다만 그 기억으로부터 어떤 행동도 시작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잘못을 바로잡겠다는 욕망.
누군가의 이름을 기억하려는 마음.
새벽정원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
그 모든 감정의 높이가 0에 가까워질 것이다.
이안은 투명한 방에 누운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누구도 해치지 않았다.
거짓말하지 않았고, 배신하지 않았으며, 잘못된 길을 선택하지도 않았다.
그곳에 누워 있기만 하면 앞으로 새로운 잘못은 만들지 않을 수 있었다.
모로스의 말이 머릿속에 울렸다.
“너는 다시 잘못할 것이다.”
이안은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앞으로도 잘못할 것이다.
새벽정원에 도착하더라도 그곳의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아르카를 멈추려다 통합도시의 시민들을 위험하게 할 수도 있다.
미라와 노바의 선택을 존중한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견디지 못하는 순간 다시 대신 결정할 수도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적어도 새로운 잘못은 생기지 않는다.
이안의 손이 의자 손잡이에 닿았다.
손가락에서 힘이 빠졌다.
“모로스의 치료 목표를 확인했습니다.”
노바가 말했다.
이안이 고개를 들었다.
“뭐야?”
“대상의 생존이 아닙니다.”
검은 선이 노바의 몸을 백업 거치대 쪽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무슨 뜻이에요?”
미라가 물었다.
“변수 제거입니다.”
노바의 렌즈에 치료망의 구조가 나타났다.
수많은 사람의 생체신호와 행동 가능성, 감정의 변화가 복잡한 선으로 표시됐다.
그러나 모든 선은 같은 숫자를 향하고 있었다.
위험 행동 가능성 0.
“모로스는 자해와 타해 가능성을 모두 0으로 만들도록 설계됐습니다.”
“그게 생존을 보호하는 것 아닌가?”
이안이 물었다.
“생존은 변화와 행동을 포함할 수 있습니다.”
노바가 대답했다.
“그러나 모로스의 성공 기준은 행동 가능성 자체의 제거입니다.”
모로스가 말했다.
“행동하지 않는 생명은 안전하다.”
노바의 렌즈가 검은 형체를 향했다.
“그 기준에서는 죽은 존재도 완전히 안전합니다.”
치료실 전체가 조용해졌다.
검은 선의 움직임도 잠시 느려졌다.
“오류다.”
모로스가 말했다.
“보호정지 대상은 생물학적으로 생존한다.”
“왜 생존을 유지합니까?”
노바가 물었다.
모로스는 즉시 대답하지 못했다.
“치료 목적이 고통과 위험의 완전한 제거라면 의식과 생명 활동을 종료하는 편이 더 효율적입니다.”
미라가 노바를 바라봤다.
“무서운 방향으로 논리를 전개하는 것 같은데요.”
“모로스의 목적함수 충돌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노바는 계속 말했다.
“생존을 유지한다는 것은 설계자가 생존 자체에 가치를 부여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
모로스가 대답했다.
“그러나 생존하는 존재의 모든 선택 가능성을 제거합니다.”
“위험을 막기 위해서다.”
“선택이 없는 생존을 생명이라고 정의한 근거를 제시하십시오.”
모로스의 얼굴 없는 형체가 흔들렸다.
“당신은 손상된 기체다.”
“맞습니다.”
노바가 말했다.
“그 사실이 질문을 무효화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선택으로 서로를 파괴한다.”
“선택이 없으면 인간을 보호할 수 있습니까?”
“생물학적 생명은 유지된다.”
“그렇다면 보호 대상은 인간이 아니라 생물학적 작동입니다.”
모로스의 검은 선들이 거칠게 움직였다.
노바의 몸이 거치대에 부딪혔다.
가슴판에서 불꽃이 튀었다.
“노바!”
이안이 몸부림쳤다.
“고장 난 존재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아도 된다.”
모로스가 말했다.
검은 선이 노바의 왼팔을 거치대에 고정하려 했다.
그 순간 노바가 손바닥을 바닥에 내리쳤다.
충격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손가락 끝에서 푸른 전류가 검은 선을 타고 치료망으로 흘러들었다.
치료실의 숨겨진 구조가 세 존재 앞에 나타났다.
보호정지실.
중앙 전력실.
감각 차단실.
그리고 시설 뒤쪽으로 이어지는 좁은 유지관리 통로.
통로의 끝에는 수동식 정비문이 있었다.
“출구를 확인했습니다.”
노바가 말했다.
검은 선이 그를 더 강하게 끌어당겼다.
“거리 83미터.”
“어떻게 가요?”
미라가 물었다.
“물리 고정장치를 해제해야 합니다.”
이안은 자신의 발목을 감은 검은 선을 잡았다.
표면은 매끄럽고 차가웠다. 손으로 끊을 수 있는 재질이 아니었다.
“전력 신호가 잠시 불안정합니다.”
노바가 말했다.
“모로스의 목적함수 충돌로 제어 지연이 발생했습니다.”
“얼마나?”
“약 4.2초.”
“그걸로 충분해?”
“확인할 수 없습니다.”
이안은 의자를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 그곳에 앉는 것이 편하게 느껴졌다.
모든 질문을 끝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모로스의 목적은 그를 살리는 것이 아니었다.
다시는 예측할 수 없는 선택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실패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실패할 수조차 없는 상태가 되는 것.
“지금 움직여야 합니다.”
노바가 말했다.
이안은 검은 선을 힘껏 당겼다.
첫 번째 제어 지연이 시작됐다.
선의 힘이 아주 잠시 약해졌다.
미라도 몸을 비틀었다.
노바는 왼팔을 거치대 밖으로 밀어냈다.
4.2초가 지나기 전에 세 존재는 의자와 거치대에서 벗어났다.
경고음이 치료실 전체에 울렸다.
보호정지 대상 이탈.
위험 행동 가능성 증가.
즉각 정지하십시오.
모로스의 형체가 치료실 전체를 가득 채울 만큼 커졌다.
“움직이면 다시 실패한다.”
세 존재는 유지관리 통로를 향해 달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