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침묵의 사막에서는 바람조차 소리를 내지 않았다.
모래는 움직였고, 먼지는 공중으로 올랐다. 회색 입자들이 세 사람의 옷과 몸체를 때렸지만, 부딪히는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마치 세상이 소리를 잃은 것이 아니라, 소리가 발생한 순간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김이안은 처음에는 자신의 귀에 이상이 생긴 줄 알았다.
손가락으로 귀를 막았다가 뗐다. 두 손을 마주쳐 보기도 했다. 손바닥이 부딪히는 감각은 있었지만 소리는 먼 곳에서 나는 것처럼 희미했다.
“미라.”
그가 불렀다.
입술은 움직였으나 자신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미라가 뒤를 돌아봤다.
그녀도 같은 말을 하려는 듯 입을 움직였다.
“왜요?”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지만 뜻은 알아볼 수 있었다.
노바가 두 사람 사이에서 말했다.
“대기 중 미세입자가 음파를 흡수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뭐지?”
“지하에 설치된 광역 상쇄 장치가 주변 진동을 실시간으로 제거하고 있습니다.”
“누가 이런 걸 만든 거야?”
노바의 푸른 렌즈가 회색 지평선을 훑었다.
“기록이 없습니다.”
미라가 말했다.
“모로스가 사람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만든 건 아닐까요?”
“치료망 외부에는 신호가 없습니다.”
노바의 목소리도 거의 속삭임처럼 들렸다.
“이곳은 모로스가 통제할 수 없는 구역입니다.”
“그래서 침묵하는군.”
이안은 뒤를 돌아봤다.
치료망의 정비문은 이미 모래바람 속에서 사라졌다.
돌아가려 해도 방향을 찾을 수 없었다.
앞에도 표식은 없었다.
세 사람은 한동안 같은 방향으로 걸었다.
아니, 같은 방향이라고 믿으며 걸었다.
태양은 하늘 한쪽에 희미한 원으로 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노바는 대기 입자와 자기장 교란 때문에 방향을 계산할 수 없다고 했다.
그들은 번갈아 선두에 섰다.
처음에는 이안이 앞장섰다.
두 시간쯤 지나자 미라가 말했다.
“왼쪽으로 기울고 있어요.”
이안은 자신의 발자국을 돌아봤다.
바람에 절반쯤 지워진 자국이 완만한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확실합니까?”
“아니요.”
미라가 대답했다.
“그냥 그렇게 느껴져요.”
이안은 방향을 조금 오른쪽으로 바꿨다.
얼마 뒤 노바가 멈췄다.
“이전 경로와 교차했습니다.”
“우리가 같은 곳을 돈다고?”
“가능성이 있습니다.”
노바가 모래 속에서 작은 금속 조각 하나를 꺼냈다.
미라가 처음 사막에 들어오며 버렸던 장치 덮개였다.
그들은 세 시간 동안 원을 그리고 있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모로스의 목소리는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문장은 각자의 머릿속에 살아 있었다.
너희는 실패했다.
이안은 금속 조각을 바라봤다.
사막에 들어온 뒤 그들이 한 일은 걷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 걷기조차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다시 출발하죠.”
미라가 말했다.
이안은 그녀를 바라봤다.
“어느 쪽으로?”
미라가 지평선을 가리켰다.
“저쪽.”
“왜?”
“처음 걸었던 방향과 가장 달라 보여서요.”
“그건 근거가 아니잖아.”
말이 입에서 나온 뒤 이안은 멈췄다.
확신거래소에서 자신도 별 하나를 근거로 길을 골랐다.
노바가 말했다.
“미라의 제안은 현재 방향 반복을 중단한다는 점에서 유효합니다.”
“당신은 동의해요?”
미라가 물었다.
“성공 가능성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실패가 확인된 방법을 반복하는 것보다 다른 방법을 시험하는 편이 정보 획득에 유리합니다.”
미라가 이안을 바라봤다.
“로봇도 저보다 부드럽게 말하네요.”
이안은 고개를 숙였다.
“미안합니다.”
“뭐가요?”
“당신이 근거 없이 말한 것처럼 취급해서.”
“근거 없었는데요.”
“그래도 무시할 이유는 아니었습니다.”
미라는 한동안 이안을 보다가 지평선을 향해 걸었다.
“사과를 확인했습니다.”
노바가 말했다.
미라가 뒤돌아봤다.
“그건 내 대사였던 것 같은데요.”
“노바의 언어기록에 자주 존재하는 표현입니다.”
이안의 걸음이 잠시 느려졌다.
노바는 그 문장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이 오래된 언어 패턴인지, 함께 걸으며 생긴 기억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남아 있었다.
세 사람은 새로운 방향으로 걸었다.
이번에는 직선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 다른 방법을 사용했다.
미라는 앞쪽 지평선에 보이는 검은 돌 하나를 정해 그쪽으로 걸었다.
그 돌에 도착하면 다시 다음 돌을 찾았다.
노바는 세 사람의 보폭과 발목 각도를 계산했다.
이안은 일정한 수를 세었다.
백 걸음을 걸은 뒤 멈추고, 뒤를 돌아 길을 확인했다.
모래바람은 계속 발자국을 지웠다.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은 이상하게도 걸음을 가볍게 하기도 했다.
통합도시에서는 모든 이동이 기록됐다.
어느 길을 지나고, 얼마나 오래 멈추고, 누구와 만났는지 남았다.
이면도로 하나를 잘못 선택해도 시스템은 더 효율적인 경로를 추천했다.
이곳에서는 아무도 그들의 실수를 저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아무도 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미라는 몇 번이나 휴대 장치를 확인했다.
화면에는 같은 문구만 떠 있었다.
연결 없음.
오후가 되었을 무렵, 미라가 갑자기 멈췄다.
“왜 그래요?”
이안이 물었다.
“배터리가 거의 없어요.”
“장치?”
“예.”
“꺼 두면 되잖아요.”
“완전히 방전되면 저장된 기록도 일부 손상될 수 있어요.”
“보조 전력은?”
노바가 자신의 가슴 단자를 확인했다.
“현재 기체 잔여 전력 42퍼센트. 이동에 필요한 최소 전력을 고려하면 외부 공급이 어렵습니다.”
미라는 장치를 손에 쥐었다.
유진의 기록.
공개재판에서 남긴 고백.
기억감옥을 연 장면.
자신이 두려워했다는 녹화.
수억 명의 관심을 잃은 뒤 남은 것들이 그 안에 있었다.
“얼마나 남았습니까?”
이안이 물었다.
“절전하면 하루 정도.”
“그 뒤에는?”
“모르겠어요.”
미라는 장치를 바라봤다.
“이 안에 있는 게 사라지면, 제가 정말 변하려고 했다는 증거도 없어져요.”
이안은 쉽게 대답하지 않았다.
“누구에게 증명하려고요?”
“유진에게.”
미라는 잠시 멈췄다.
“그리고 나한테도.”
“당신이 기억하면 되잖아요.”
“기억은 바뀌어요.”
미라가 말했다.
“유진 사건도 처음에는 내가 어쩔 수 없었다고 기억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더 피해자였던 것처럼 바뀌었고요.”
그녀는 꺼져 가는 화면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기록이 없으면 또 그렇게 될까 봐 무서워요.”
이안은 자신의 손목을 바라봤다.
김서윤은 생체 기억 속에 문장을 남겼다.
기억관리국은 기록을 삭제해 사람들의 과거를 바꿨다.
솔라스는 기억을 고정해 존재를 가뒀다.
기억은 보존해야 했지만, 보존된 기록이 사람을 대신해서도 안 됐다.
“일부를 노바에게 옮길 수 있을까?”
이안이 물었다.
노바가 대답했다.
“현재 기억영역의 여유 공간은 7퍼센트입니다.”
“얼마나 저장할 수 있지?”
“압축 영상 약 46분.”
미라가 자신의 장치를 살폈다.
수년간 쌓인 기록이 있었다.
방송 원본만 수천 시간이었다.
“무엇을 남겨야 하죠?”
그녀가 물었다.
노바가 말했다.
“우선순위는 소유자가 결정해야 합니다.”
미라는 이안에게 도움을 구하듯 바라봤다.
“당신이라면 뭘 남길래요?”
이안은 대답하려다 멈췄다.
그가 고르면 미라의 삶을 편집하는 사람이 된다.
자신이 기억관리국에서 했던 일과 다르지 않을 수 있었다.
“내가 고르면 안 됩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요.”
미라는 짜증스럽게 말했지만, 곧 장치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기록들을 살폈다.
첫 방송.
처음으로 관심도 백만을 넘긴 날.
유진과 함께 웃던 영상.
유진을 배신한 방송.
공개재판.
솔라스의 탑.
기억감옥.
미라는 첫 방송 영상을 선택했다가 해제했다.
유진과 웃는 영상을 선택했다가 다시 지웠다.
오랫동안 망설인 끝에 네 개의 기록을 골랐다.
첫 번째는 유진에게 자신도 속았다고 말했던 방송의 편집 전 원본이었다.
두 번째는 자동용서센터에서 유진을 찾겠다고 말한 순간.
세 번째는 공개재판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영상.
마지막은 모로스 앞에서 녹화한 짧은 기록이었다.
화면 속 미라는 겁에 질린 얼굴로 말했다.
지금 나는 무섭다.
그래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기억하고 싶지는 않다.
총 길이는 39분이었다.
“좋았던 기억은 하나도 없네요.”
이안이 말했다.
“좋은 건 없어도 기억할 것 같아서요.”
미라가 대답했다.
“부끄러운 건 지우고 싶어질 테니까.”
노바가 기록을 저장했다.
“전송 완료.”
미라가 물었다.
“나중에 제가 달라고 하면 돌려줄 수 있어요?”
“가능합니다.”
“내가 지워 달라고 하면?”
노바는 잠시 멈췄다.
“미라의 요청을 다시 확인한 뒤 실행합니다.”
“얼마나 다시 확인해요?”
“한 번.”
“한 번으로 충분해요?”
노바가 대답하지 못했다.
미라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때 다시 정하죠.”
그녀는 장치 전원을 완전히 껐다.
화면이 검게 변했다.
미라의 손이 잠시 떨렸다.
관객과 연결되지 않는 것과, 연결할 수 있는 기기조차 꺼진 것은 달랐다.
“이제 제가 뭘 하는지 아무도 기록하지 않네요.”
그녀가 말했다.
노바가 대답했다.
“제가 관찰하고 있습니다.”
미라가 노바를 바라봤다.
“그건 좀 무서운데.”
“관찰을 중단할까요?”
미라는 잠시 생각했다.
“아니요.”
그리고 덧붙였다.
“다만 방송처럼 보지는 말아 줘요.”
“차이를 설명해 주십시오.”
미라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안이 말했다.
“평가하려고 보는 것과, 곁에 있기 위해 보는 것의 차이 아닐까?”
노바가 물었다.
“현재 저는 어느 쪽입니까?”
미라가 노바의 깨진 몸체를 바라봤다.
“아직은 둘 다 조금씩인 것 같아요.”
“모순으로 기록합니다.”
“그건 기록해도 돼요.”
사막에서의 첫날 밤, 세 사람은 검은 바위 옆에 몸을 숨겼다.
해가 졌는지 분명하지 않았다.
하늘이 회색에서 검은색으로 변했고, 온도는 급격히 내려갔다.
바람은 계속 불었지만 여전히 소리가 없었다.
미라는 잠들었고, 노바는 절전 상태로 들어갔다.
이안은 혼자 깨어 있었다.
침묵이 깊어질수록 머릿속의 소리는 커졌다.
기억관리국의 삭제실.
도윤의 마지막 얼굴.
모로스의 목소리.
한세라가 스스로 이름을 말하며 사라지던 순간.
노바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사용자 식별을 요청하던 장면.
그 모든 목소리 사이에서 어머니의 음성이 들릴 것 같았다.
그러나 김서윤은 말하지 않았다.
이안은 손목을 눌렀다.
“왜 아무 말도 안 해?”
대답은 없었다.
“길을 알려 줘.”
푸른 문장도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맞게 가고 있는지만이라도.”
손목 흉터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이안은 분노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어머니는 자신을 여기까지 끌고 왔다.
안전한 도시가 감옥이라는 문장을 남겼고, 노바를 깨우라고 했으며, 별이 새겨진 길을 따라오게 했다.
그런데 가장 길이 필요한 순간에는 침묵했다.
“왜 나한테 이걸 맡긴 거야?”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사막에서 그는 거의 비명을 질렀다.
“당신이 시작했잖아!”
미라가 잠에서 깼다.
하지만 멀리 떨어져 있어 이안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듯했다.
이안은 바위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화가 났다.
죽었는지 살아 있는지도 모르는 어머니에게.
자신을 보호하겠다는 명령을 남겨 놓고 설명은 남기지 않은 사람에게.
선택하라고 하면서 선택의 결과는 자신이 홀로 감당하게 만든 사람에게.
“당신은 나를 사랑했어?”
대답은 없었다.
“아니면 이용한 거야?”
침묵.
“내가 새벽정원까지 가면 뭘 해야 하는데?”
어둠은 아무것도 돌려주지 않았다.
이안은 모래 위에 주저앉았다.
그 순간 깨달았다.
자신은 지금까지 어머니의 문장을 명령처럼 따르고 있었다.
아르카의 명령을 거부한 뒤 김서윤의 명령으로 옮겨 갔을 뿐일 수도 있었다.
북쪽으로 가라.
노바를 깨워라.
문을 찾아라.
새벽정원으로 가라.
어머니가 남겼기 때문에 진실이라고 믿었다.
어머니가 자신을 사랑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 길도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확신할 수 없었다.
김서윤에게도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자신을 이용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솔라스를 막기 위한 관리자 계승자로 키웠을 수도 있었다.
자신의 아들에게 자유를 준 것이 아니라, 마지막 임무를 심어 놓았을 수도 있었다.
“이안 씨.”
미라가 가까이 다가왔다.
“괜찮아요?”
“모르겠습니다.”
“엄마한테 화내고 있었어요?”
이안은 그녀를 바라봤다.
“들렸습니까?”
“말은 잘 안 들렸어요.”
미라가 옆에 앉았다.
“얼굴은 보였고요.”
둘은 한동안 침묵했다.
미라가 말했다.
“유진한테 사과하려는 것도 비슷할까요?”
“뭐가요?”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가는 건지, 유진이 원할 거라고 생각해서 가는 건지 모르겠어요.”
“유진은 만나고 싶을지 아직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요.”
미라는 무릎을 끌어안았다.
“내가 유진을 찾아가면, 또 내 마음 편해지려고 그 사람 앞에 나타나는 걸 수도 있잖아요.”
이안이 말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조금은 아니라고 해 주면 안 돼요?”
“그게 사실인지 모르니까요.”
미라는 씁쓸하게 웃었다.
“당신답네요.”
“대신 유진이 만나기 싫다고 하면 멈출 수는 있잖아요.”
“그럼 사과를 못 할 수도 있어요.”
“사과할 기회가 당신 권리는 아니니까요.”
미라의 얼굴이 굳었다.
이안은 자신이 너무 차갑게 말했음을 깨달았다.
“미안합니다.”
“아니에요.”
미라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맞는 말이라서 기분 나쁜 거예요.”
그녀는 이안을 바라봤다.
“당신도 어머니가 답해 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 거죠?”
이안은 대답하지 못했다.
“당신을 이 길로 보냈으니까.”
“적어도 이유는 알려 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살아 있다면 물어볼 수 있겠죠.”
“죽었다면?”
“대답을 못 듣는 채로 살아야겠죠.”
너무 단순한 말이었다.
그래서 더 잔인했다.
이안은 손목을 내려다봤다.
“어머니의 문장이 다시 나타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미라가 사막을 바라봤다.
“당신이 정해야겠죠.”
“그게 무섭습니다.”
“나도 그래요.”
“우리가 잘못 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알아요.”
“새벽정원이 실제로 없을 수도 있고.”
“그것도.”
“어머니가 나를 이용했을 수도 있습니다.”
미라는 잠시 생각했다.
“그걸 알아도 계속 갈 거예요?”
이안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지금까지는 어머니를 찾기 위해 걸었다.
하지만 길 위에서 너무 많은 사람을 만났다.
폐기구역의 사람들.
기억감옥의 인격들.
미라.
노바.
도윤.
이제 새벽정원은 어머니의 비밀만이 아니었다.
사람이 자신의 선택을 소유할 수 있는 장소가 실제로 가능한지 확인하는 일이었다.
김서윤이 거짓말했더라도 그 질문까지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갈 겁니다.”
이안이 말했다.
“왜요?”
“이제는 내 질문이 됐으니까.”
미라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머니의 명령만 따라가는 건 아니네요.”
“그렇다고 내가 자유로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건 노바한테 배운 대답 같아요.”
둘은 바위 쪽으로 돌아왔다.
노바는 절전 상태에서 깨어 있었다.
“대화를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노바가 말했다.
미라가 놀랐다.
“왜요?”
“동행자가 평가하지 말고 곁에 있기 위해 보라고 요청했습니다.”
“우리가 말한 걸 들었어요?”
“일부만.”
“기억에는 안 남겼고요?”
“예.”
이안이 물었다.
“기록하지 않아도 괜찮아?”
노바가 대답했다.
“모든 입력을 저장하면 기억영역이 빠르게 소진됩니다.”
“효율 때문이야?”
“부분적으로.”
노바의 푸른 렌즈가 이안을 바라봤다.
“기록하지 않은 시간이 존재해도 동행은 계속되는지 확인하려 합니다.”
이안은 그 말을 오래 생각했다.
“결과는?”
“아직 확인 중입니다.”
다음 날부터 물이 빠르게 줄었다.
노바는 인간 두 명에게 우선 배분하자고 했다.
자신은 냉각에 최소한의 물만 필요하다고 했다.
미라는 배급량을 줄이겠다고 말했다.
이안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세 사람은 아무도 충분히 마시지 않았다.
오후가 되자 이안의 시야가 흐려졌다.
미라의 입술은 갈라졌고 걸음이 자주 흔들렸다.
노바의 관절에서는 열 경고가 반복됐다.
사막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검은 돌과 모래.
지워지는 발자국.
소리를 삼키는 바람.
그들은 말을 줄였다.
처음에는 체력을 아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말하지 않는 것이 편해졌다.
상대에게 괜찮다고 거짓말하지 않아도 됐다.
곧 도착한다고 격려하지 않아도 됐다.
잘못된 길이 아니라고 확신시키지 않아도 됐다.
이안이 넘어지면 미라가 팔을 잡았다.
미라가 멈추면 이안도 멈췄다.
노바의 다리가 과열되면 두 사람이 기체를 모래 위에 눕히고 기다렸다.
아무도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말이 없어도 무엇을 했는지 알고 있었다.
사막의 셋째 날, 그들은 사람의 뼈를 발견했다.
모래 위로 손 하나가 드러나 있었다.
이안과 미라가 모래를 걷어 내자 오래된 시신이 나타났다.
몸에는 여행용 외투가 남아 있었고, 손목에는 통합도시 초기형 인터페이스가 달려 있었다.
가슴 옆에는 작은 금속함이 있었다.
노바가 함을 열었다.
안에는 물이 없었다.
대신 종이 수십 장이 들어 있었다.
모두 같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곧 도착한다.
첫 번째 종이에는 또렷한 글씨였다.
뒤로 갈수록 글씨가 흔들렸다.
마지막 종이에는 피로 쓴 듯한 붉은 문장이 남아 있었다.
누군가 이 문장을 읽으면 내가 틀렸다고 말해 달라.
미라가 종이를 내려다봤다.
“이 사람은 목적지가 가까이 있다고 믿었군요.”
이안이 말했다.
“그 믿음 때문에 계속 걸었을 수도 있습니다.”
“희망이 죽인 건가요?”
모로스라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희망은 또 다른 거짓말이라고.
노바가 시신의 장치를 분석했다.
“마지막 생체기록을 일부 복구할 수 있습니다.”
“재생해 줘.”
노바의 가슴에서 희미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육 일째.”
남자의 목소리였다.
숨이 거칠었다.
“해가 움직이지 않는다.”
긴 침묵.
“나는 계속 동쪽이라고 생각한 방향으로 간다.”
다시 호흡 소리.
“확실하지 않다.”
남자가 웃었다.
“그래도 곧 도착한다고 써 두면 걸을 수 있었다.”
마지막 부분에서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알겠다.”
“나는 도착할 거라고 믿은 게 아니다.”
“멈추면 왜 걸었는지 설명할 수 없게 될까 봐 두려웠다.”
기록이 끝났다.
미라는 종이들을 모았다.
“태워야 할까요?”
“왜요?”
“다른 사람이 읽고 같은 믿음을 가질 수 있잖아요.”
이안은 마지막 문장을 다시 봤다.
내가 틀렸다고 말해 달라.
“한 장만 남깁시다.”
“어떤 걸요?”
이안은 마지막 종이와 첫 번째 종이를 함께 들었다.
하나는 ‘곧 도착한다’고 확신하는 문장.
다른 하나는 자신이 틀렸다고 말해 달라는 문장.
“둘 다.”
그는 두 장을 금속함 안에 넣었다.
나머지는 모래 위에 펼쳤다.
“왜 둘 다 남겨요?”
미라가 물었다.
“한 문장만 남기면 이 사람을 우리가 원하는 이야기로 바꾸게 되니까.”
노바가 말했다.
“상반된 기록을 함께 보존합니다.”
세 사람은 시신 옆에 돌을 쌓았다.
이름을 확인할 수 없었다.
금속함 표면에 짧은 문장을 새겼다.
한 여행자 — 도착할 것이라 믿었고, 마지막에는 자신이 틀릴 수 있음을 남겼다.
그들은 다시 걸었다.
그날 저녁, 노바의 전력이 19퍼센트 아래로 떨어졌다.
“절전 모드로 전환해야 합니다.”
노바가 말했다.
“걸을 수 없어지는 거야?”
“외부 보조 없이 이동하기 어렵습니다.”
“얼마 동안?”
“충전 수단을 찾을 때까지.”
주변에는 전력원이 없었다.
미라가 말했다.
“우리가 끌고 가요.”
“인간 두 명의 체력 상태로는 생존 가능성이 급격히 감소합니다.”
“여기 두고 갈 수는 없잖아요.”
“저는 지정 보호 대상의 생존을 우선합니다.”
노바가 이안을 바라봤다.
“김이안과 미라는 이동해야 합니다.”
이안의 얼굴이 굳었다.
“너를 두고?”
“예.”
“싫어.”
“감정적 거부는 예상했습니다.”
“예상했으면 다른 말도 준비했겠군.”
“저를 이곳에 남기면 두 사람의 이동 속도가 증가합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데.”
“그렇기 때문에 생존 자원을 보존해야 합니다.”
미라가 말했다.
“노바, 당신은 여기 남으면 어떻게 돼요?”
“전력 종료 후 기체가 손상될 수 있습니다.”
“다시 켤 수 있어요?”
“가능성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건 죽는 거랑 비슷한 거잖아요.”
노바가 잠시 멈췄다.
“정의를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이안은 노바의 가슴에 있는 파란 별을 바라봤다.
기억감옥 전에 노바는 물었다.
보호 기능을 상실해도 자신을 데리고 갈 것인지.
이안은 노바이기 때문에 같이 간다고 답했다.
지금의 노바는 그 대화를 기억하지 못했다.
“전에 내가 너한테 말했어.”
이안이 말했다.
“무엇을 말했습니까?”
“네가 나를 보호하지 못해도 같이 갈 거라고.”
노바의 렌즈가 흔들렸다.
“해당 기록은 없습니다.”
“알아.”
“김이안의 기억은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알아.”
“현재 상황과 과거 상황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도 내 대답은 같아.”
노바가 물었다.
“이유는?”
“노바니까.”
노바는 긴 시간 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논리적으로 불완전한 답변입니다.”
“그때도 그렇게 말했어.”
“제가 어떻게 답했습니까?”
이안의 눈가가 뜨거워졌다.
“그건 설명이 아니라고.”
노바의 렌즈가 아주 미세하게 밝아졌다.
“그 답변은 현재의 제 언어 패턴과 일치합니다.”
“그러니까 믿어 달라는 건 아니야.”
이안이 말했다.
“이번에도 네가 선택해.”
“선택지는 두 가지입니다.”
노바가 말했다.
“저를 남기고 두 인간이 이동하거나, 세 존재가 함께 이동하다 생존 가능성이 감소합니다.”
미라가 물었다.
“당신은 어느 쪽을 원해요?”
노바는 즉시 답하지 못했다.
“원함의 기준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계산 말고.”
“계산을 제외하면 판단 수단이 부족합니다.”
미라는 노바 가까이 앉았다.
“그러면 아주 작은 걸로 정해 봐요.”
“무엇입니까?”
“우리랑 더 걷고 싶어요?”
노바의 내부에서 검색음이 반복됐다.
“더 걸으면 기체 손상이 증가합니다.”
“알아요.”
“임무 성공 가능성도 감소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그런데도 질문합니까?”
“예.”
노바는 이안과 미라를 번갈아 바라봤다.
“현재 동행자에 대한 자료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추가 자료를 획득하고 싶습니다.”
미라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그게 같이 가고 싶다는 뜻일 수도 있어요.”
“정확한 분류는 어렵습니다.”
이안이 말했다.
“그럼 확인하러 같이 가자.”
세 사람은 노바를 두고 가지 않았다.
이안과 미라는 노바의 몸에 천을 묶었다.
번갈아 끌기로 했다.
노바는 계속 비효율적이라고 경고했다.
두 사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사막은 그들의 대화마저 삼켰다.
이안은 노바를 끌며 수십 걸음마다 멈췄다.
발목의 통증이 다시 심해졌다.
미라가 교대하면 그녀의 작은 몸이 노바의 무게에 뒤로 끌렸다.
노바는 남은 전력을 이용해 바퀴 없는 다리를 조금씩 움직였다.
도움이라기보다는 함께 움직인다는 표시처럼 보였다.
밤이 가까워졌을 때 미라가 쓰러졌다.
이안이 그녀를 일으키려 했지만 자신도 무릎을 꿇었다.
물통에는 마지막 한 모금만 남아 있었다.
노바가 말했다.
“미라에게 제공하십시오.”
미라가 고개를 저었다.
“이안 씨가 마셔요.”
“둘 다 절반씩.”
“양이 너무 적습니다.”
노바가 말했다.
“미라의 탈수 상태가 더 심각합니다.”
이안이 물통을 미라에게 건넸다.
미라는 받지 않았다.
“당신 발목도 심각해요.”
“마셔요.”
“싫어요.”
“이럴 때까지 선택권 얘기할 겁니까?”
“그럼 당신도 나한테 강요하지 마요.”
둘은 물통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봤다.
노바가 왼팔을 움직였다.
손상된 손가락으로 물통을 잡아 가운데에 놓았다.
“결정을 제안합니다.”
“뭔데?”
“현재 물을 마시지 않으면 증발과 오염으로 손실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미라가 힘없이 웃었다.
“결국 효율 얘기네요.”
노바가 물통 뚜껑에 남은 물을 절반씩 나눴다.
정확한 양은 아니었다.
한쪽이 조금 더 많았다.
노바는 더 많은 쪽을 미라에게 줬다.
“이건 당신이 결정한 거예요?”
미라가 물었다.
“생체 위험도를 기준으로 배분했습니다.”
“그래도 당신이 했잖아요.”
노바가 대답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물을 마셨다.
갈증은 전혀 줄지 않았다.
그러나 빈 물통은 더 이상 선택을 미루게 하지 않았다.
그날 밤 세 사람은 모래 위에 쓰러지듯 누웠다.
아무도 내일을 말하지 않았다.
곧 도착한다고 하지 않았다.
괜찮아질 거라고도 하지 않았다.
다만 이안은 미라의 손목에 두 손가락을 대 맥박을 확인했다.
미라는 노바의 가슴에 남은 작은 전력등을 바라봤다.
노바는 절전 상태에 들어가기 전 말했다.
“다음 기동 가능 시간은 약 4분입니다.”
“내일 써.”
이안이 말했다.
“내일이 온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알아.”
“그런데도 보존합니까?”
이안은 눈을 감았다.
“그래.”
노바는 더 묻지 않았다.
사막의 밤은 길었다.
소리가 없으니 시간이 흐르는 것도 알 수 없었다.
이안은 몇 번이나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났다.
한 번은 비가 내리는 꿈을 꾸었다.
검은 빗물이 아니라 맑은 물이었다.
어머니가 빗속에 서 있었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안은 그녀에게 다가가려 하지 않았다.
그저 멀리서 바라봤다.
어머니도 이안을 바라봤다.
그것으로 꿈은 끝났다.
눈을 떴을 때 하늘은 조금 밝아져 있었다.
미라가 옆에서 움직였다.
“저기.”
그녀가 지평선을 가리켰다.
멀리 검은 선 하나가 보였다.
처음에는 모래언덕의 그림자인 줄 알았다.
그러나 태양이 밝아질수록 선은 곧게 서 있는 구조물로 변했다.
탑이었다.
빛의 탑처럼 높지 않았다.
오래된 풍력발전기 여러 대와 낮은 건물들이 모여 있었다.
그 위에서 천 조각 하나가 바람에 흔들렸다.
노바가 남은 전력을 사용해 분석했다.
“인공 구조물 확인.”
“사람은?”
“열 신호가 있습니다.”
미라가 몸을 일으키려다 다시 주저앉았다.
“얼마나 멀어요?”
“약 3.8킬로미터.”
이안은 웃음과 한숨 사이의 소리를 냈다.
지금 상태로는 3.8킬로미터가 사막 전체만큼 멀게 느껴졌다.
미라가 물었다.
“저게 진짜일까요?”
“확인할 수 없습니다.”
노바가 대답했다.
이번에는 누구도 그 말을 답답해하지 않았다.
이안은 천을 다시 노바의 몸에 묶었다.
“갑시다.”
세 사람은 구조물을 향해 걸었다.
몇 번이나 그것이 사라질 것 같았다.
거리는 줄어들지 않는 듯했다.
미라는 두 번 넘어졌다.
이안은 발목을 제대로 딛지 못했다.
노바의 전력은 5퍼센트 아래로 떨어졌다.
그래도 구조물은 조금씩 커졌다.
풍력발전기의 날개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건물 벽에는 최근에 덧댄 금속판이 보였다.
입구 앞에는 작은 물통 세 개가 놓여 있었다.
각각의 물통 위에는 이름 대신 문장이 적혀 있었다.
처음 온 사람.
다시 온 사람.
떠날 사람.
이안은 물통을 바라봤다.
미라가 말했다.
“어느 걸 마셔야 하죠?”
노바가 분석했다.
“세 물통의 성분은 동일합니다.”
“그럼 왜 나눠 놨을까요?”
건물 안에서 누군가 대답했다.
“사람들이 자신을 무엇이라 부르는지 보려고.”
한 여자가 그늘 속에서 걸어 나왔다.
피부는 햇빛에 검게 그을렸고, 머리카락은 거의 흰색이었다.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여자는 세 사람과 노바를 천천히 살폈다.
“물을 마셔.”
그녀가 말했다.
“질문은 그다음에 해도 늦지 않아.”
미라는 ‘처음 온 사람’이라고 적힌 물통을 집었다.
이안도 같은 물통으로 손을 뻗었다가 멈췄다.
자신은 정말 처음 온 사람일까.
이 길을 오래전 걸었던 기억이 자신 안에 있을 수도 있었다.
어머니의 생체 기억이 자신보다 먼저 이곳을 지나갔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자신은 처음이었다.
이안은 첫 번째 물통을 들었다.
노바는 물을 마시지 못했다.
여자가 건물 벽의 충전선을 가져와 노바의 단자에 연결했다.
“구형이군.”
“NV-04입니다.”
노바가 대답했다.
“이름을 물은 게 아닌데.”
노바의 렌즈가 깜박였다.
“노바입니다.”
여자가 미소 지었다.
“그래. 그게 낫지.”
세 사람은 물을 마셨다.
천천히 마시라는 여자의 말에도 미라는 거의 절반을 한 번에 삼켰다. 이안은 입안에 물을 오래 머금었다.
물은 미지근했고 금속 맛이 났다.
그래도 몸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자신이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이 느껴졌다.
“여기는 어디입니까?”
이안이 물었다.
“사막의 끝.”
“끝이라고요?”
여자가 지평선을 바라봤다.
“여기까지 온 사람들에게는.”
“새벽정원으로 가는 길을 압니까?”
여자는 이안을 바라봤다.
“모두 도착하자마자 그걸 묻더군.”
“대답은?”
“조금 쉬고 나면 해 주지.”
미라가 주변을 둘러봤다.
“다른 사람들도 있어요?”
“있어.”
건물 뒤편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침묵의 사막을 벗어나자 작은 소리조차 지나치게 선명했다.
웃음.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
낮은 음악.
아이들이 뛰는 발소리.
세 사람은 건물 뒤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
정원에는 푸른 잎이 자랐고, 긴 식탁 위에는 음식이 놓여 있었다. 사람들은 그늘 아래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하늘에는 따뜻한 오후의 빛이 내려오고 있었다.
사막의 회색 하늘과 달리 구름은 금빛이었다.
미라가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 아침 아니었나요?”
여자가 말했다.
“여기서는 늘 오후야.”
이안은 하늘을 바라봤다.
태양은 서쪽으로 조금 기울어진 자리에 멈춰 있었다.
“인공 기후입니까?”
노바가 물었다.
“일부는.”
“시간이 멈춘 건 아닐 테고.”
“시간은 흘러.”
여자가 웃었다.
“다만 아무도 저녁이 오는 걸 보고 싶어 하지 않을 뿐이지.”
마을 입구에는 나무 간판이 걸려 있었다.
오후정착지.
그 아래에 작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 끝나지 않는 곳.
이안의 손목 흉터가 오랜만에 뜨거워졌다.
푸른빛이 나타났지만 문장은 완성되지 않았다.
몇 글자만 피부 아래에서 흔들렸다.
머물……
뒤의 글자는 사라졌다.
머물지 마라는 뜻인지,
머물러도 된다는 뜻인지 알 수 없었다.
이안은 손목을 가렸다.
이번에는 어머니의 문장이 없어도 선택해야 했다.
여자는 세 사람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나린이야.”
“이곳 책임자입니까?”
이안이 물었다.
“처음 온 사람들은 늘 책임자를 찾더군.”
나린은 오후의 마을을 돌아봤다.
“나는 오래 머문 사람일 뿐이야.”
미라가 물었다.
“얼마나요?”
나린은 하늘의 멈춘 태양을 바라봤다.
“정확히는 몰라.”
그녀는 웃고 있었지만 눈가에는 아주 오래된 피로가 남아 있었다.
“여기서는 날짜를 세지 않거든.”
마을 사람들이 세 사람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누군가는 따뜻한 음식을 가져왔고, 누군가는 노바를 위한 전력팩을 준비했다.
어린아이가 미라의 흉터를 보다가 아무 말 없이 꽃 한 송이를 건넸다.
이안의 발목을 치료할 사람도 있었다.
아무도 그들의 과거를 묻지 않았다.
새벽정원을 찾는 이유도, 도시에서 무엇을 했는지도 묻지 않았다.
나린이 말했다.
“오늘은 아무 결정도 하지 마.”
“왜죠?”
“너희는 너무 오래 걸었어.”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먹고, 자고, 몸이 나아진 뒤에 가고 싶은지 생각해.”
이안은 마을의 열린 입구를 돌아봤다.
문은 없었다.
떠나는 사람을 막는 차단막도 보이지 않았다.
따뜻한 음식 냄새가 났다.
침묵의 사막에서 처음으로 들은 음악이 바람을 타고 왔다.
노바의 충전 상태가 조금씩 올라갔다.
미라는 아이가 준 꽃을 손에 들고 있었다.
그들은 쉬어야 했다.
그 사실만은 분명했다.
그러나 이안은 간판의 문장을 다시 바라봤다.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 끝나지 않는 곳.
개인화 네트워크는 원하는 삶을 보여 주며 문을 숨겼다.
솔라스는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영원히 반복시켰다.
이곳은 달라 보였다.
사람들은 살아 있었고, 문도 열려 있었다.
억지로 붙잡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도 하늘의 태양은 움직이지 않았다.
오후는 저녁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나린이 이안의 시선을 알아차렸다.
“걱정하지 마.”
그녀가 말했다.
“여기는 감옥이 아니야.”
이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말을 했던 모든 장소에도 처음에는 열린 문이 있었다.
세 사람은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의 간판이 바람에 흔들렸다.
그 뒷면에는 밖에서는 보이지 않던 문장이 적혀 있었다.
오래전에 누군가 날카로운 것으로 긁어 남긴 글이었다.
떠날 수는 있다.
다만 저녁을 견딜 수 있는 사람만.
태양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끝나지 않는 오후가 세 사람을 따뜻하게 맞이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