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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정착지에서는 누구도 아침 인사를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잠에서 깨어나면 그저 서로의 이름을 불렀다.
“나린.”
“해오.”
“미라.”
“이안.”
어제와 오늘을 구분하는 말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식사는 첫 번째 식사와 두 번째 식사로 나뉘었고, 일을 시작하는 시각과 끝내는 시각도 정해져 있지 않았다. 피곤한 사람은 잤고, 배고픈 사람은 먹었다. 밭에 물이 필요하면 누군가 물을 길었고, 지붕이 흔들리면 손이 비어 있는 사람들이 올라가 고쳤다.
통합도시처럼 모든 시간을 통제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을 사용하지 않았다.
김이안은 정착지에 들어온 뒤 처음 며칠 동안 대부분 잠들어 있었다.
사막에서 상한 발목에는 약초와 합성조직을 섞은 치료제가 발라졌다. 갈라진 손과 입술도 조금씩 나았다. 미라는 탈수 증세가 심해 하루 가까이 고열에 시달렸지만, 나린과 마을 사람들이 번갈아 곁을 지켰다.
노바는 풍력발전기의 예비전력망에 연결됐다.
충전은 느렸지만 안정적이었다.
마을의 수리공은 노바의 왼팔 관절을 분리해 모래를 털어 냈고, 폐기된 농업기계의 축을 깎아 새 연결부를 만들었다. 오른팔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균형 보조장치가 추가됐다.
“기억장치는 손댈 수 없어.”
수리공이 말했다.
“외부 덮개를 열면 지금 남아 있는 것까지 잃을 수 있다.”
“그대로 두십시오.”
노바가 대답했다.
“복구할 방법이 있을 수도 있는데?”
“현재의 기억을 제거하는 복구는 원하지 않습니다.”
이안은 멀리서 그 말을 들었다.
노바는 기억감옥 이전의 대화를 대부분 잊었다.
그러나 솔라스의 탑에서 복원을 거부했던 선택의 흔적은 어딘가에 남아 있는 듯했다.
왜 거부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해도, 거부했다는 방향은 남아 있었다.
이안은 그것이 기억인지 성격인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둘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차이가 없는지도 몰랐다.
치료를 받은 지 사흘째라고 이안이 생각한 날, 그는 나린을 찾아갔다.
나린은 마을 가장자리에서 멈춰 있는 풍력발전기의 날개를 닦고 있었다. 바람은 불고 있었지만 날개는 움직이지 않았다.
“바람이 있는데 왜 돌지 않습니까?”
이안이 물었다.
“발전기는 아니니까.”
“풍력발전기처럼 보이는데요.”
“원래는 그랬지.”
나린은 천으로 날개의 먼지를 닦았다.
“지금은 빛을 흩어 주는 데 써.”
이안은 고개를 들었다.
풍력발전기의 날개 표면에는 수많은 작은 거울 조각이 붙어 있었다. 날개가 아주 느리게 각도를 바꾸자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이 마을 전체로 분산됐다.
태양처럼 보였던 밝은 원은 실제 태양이 아니었다.
사막 외곽에 설치된 수십 개의 반사판이 빛을 모아 만들어 낸 인공 광원이었다.
“실제 태양은 어디 있습니까?”
“지금은 지평선 아래에 있을 거야.”
이안은 놀라 하늘을 바라봤다.
“밤이라고요?”
“밖은.”
“여기는 왜 계속 밝죠?”
“어두워지지 않게 만들었으니까.”
나린은 사다리에서 내려왔다.
“처음에는 사막 통과자들을 위한 회복시설이었어. 낮에 길을 잃고 저녁에 구조된 사람들이 많았지.”
“그래서 밤을 없앴습니까?”
“저녁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었거든.”
“저녁을 왜?”
나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마을 입구의 물통 세 개를 가리켰다.
처음 온 사람.
다시 온 사람.
떠날 사람.
‘떠날 사람’이라고 적힌 물통은 가득 차 있었다. 표면에는 먼지가 얇게 내려앉아 있었다.
다른 두 물통은 하루에도 여러 번 채워졌다.
“저 물은 아무도 마시지 않습니까?”
이안이 물었다.
“가끔은.”
“마지막으로 마신 사람이 언제였죠?”
“날짜를 세지 않는다고 했잖아.”
“대략이라도요.”
나린은 마을 안쪽을 바라봤다.
“하루라는 아이가 마셨어.”
이안은 꽃을 건넸던 아이를 떠올렸다.
“그 아이가 떠났습니까?”
“나가려고 했지.”
“그런데 지금도 여기 있잖아요.”
나린은 웃지 않았다.
“마을 밖까지 갔다가 돌아왔어.”
“왜요?”
“저녁이 왔으니까.”
나린은 더 설명하지 않고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이안은 그녀를 따라갔다.
“새벽정원으로 가는 길을 알려 주겠다고 했습니다.”
“몸이 나으면.”
“이제 걸을 수 있습니다.”
“절뚝거리면서?”
“사막을 다시 걷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나린이 멈춰 섰다.
“왜 그렇게 서두르지?”
“목적지가 있으니까요.”
“그 목적지가 없어지나?”
이안은 대답하지 못했다.
“며칠만 더 쉬어.”
“며칠이요?”
나린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시간이 중요해?”
통합도시에서는 시간이 늘 중요했다.
출근 시간, 감정검사 시간, 상담 시간, 교정 시간.
도시를 나온 뒤에는 해가 지기 전에 은신처를 찾아야 했고, 식량이 떨어지기 전에 다음 장소에 도착해야 했다.
그런데 이곳에는 해가 지지 않았다.
식량도 있었고 물도 있었다.
아무도 그들을 쫓아오지 않았다.
도윤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 당장 그를 찾을 방법도 없었다.
유진이 미라를 기다리는지도 알 수 없었다.
어머니의 문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며칠 더 쉬겠습니다.”
이안이 말했다.
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 생각했어.”
그날 이안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밭의 수로를 고쳤다.
미라는 아이들에게 오래된 방송 장치를 분해하는 법을 알려 줬다. 아이들은 가상 얼굴보다 장치 안쪽의 반짝이는 부품에 더 관심을 보였다.
노바는 충전을 계속했다.
두 번째 식사 때 사람들은 긴 식탁에 모였다.
갓 구운 빵과 채소 수프, 말린 과일이 나왔다. 누군가 현악기로 느린 곡을 연주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누구도 이안의 과거를 묻지 않았다.
미라의 재판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다.
노바에게 쓸모를 증명하라고 하지 않았다.
따뜻한 음식과 음악, 사람들의 낮은 웃음소리가 있었다.
이안은 자신이 이런 시간을 가져 본 적이 있었는지 생각했다.
통합도시에서 쉬는 시간은 다음 업무를 위한 회복 절차였다.
개인화 네트워크의 집은 그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어진 환상이었다.
이곳의 식탁은 달랐다.
음식은 조금 탔고, 음악은 가끔 음이 틀렸으며, 옆자리에 앉은 아이는 수프를 흘렸다.
불완전했지만 실제였다.
그날 밤이라고 불러야 할 시간에도 하늘은 여전히 오후였다.
이안은 따뜻한 빛 아래서 잠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도 같은 빛이었다.
그다음에 잠들었을 때도.
그리고 그다음에도.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처음 물은 사람은 노바였다.
“김이안.”
“왜?”
이안은 수로 옆에 앉아 나무 조각을 다듬고 있었다.
“출발 예정 시점을 확인하겠습니다.”
“몸이 다 나으면.”
“김이안의 발목은 일상 보행이 가능한 상태입니다.”
“장거리 이동은 아직 어렵잖아.”
“장거리 이동 적합도 76퍼센트입니다.”
“조금 더 회복하면 좋겠군.”
노바의 푸른 렌즈가 이안을 향했다.
“이전에도 같은 답변을 했습니다.”
“언제?”
“현재 시각 기준 73시간 전.”
이안의 손이 멈췄다.
“사흘 전에?”
“예.”
“우리가 여기 온 지 얼마나 됐지?”
“227시간 18분.”
이안은 숫자를 계산했다.
“아홉 일이 넘었어?”
“예.”
그는 마을을 둘러봤다.
아홉 날이 지났다는 느낌이 없었다.
식사를 몇 번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잠들고 깨어날 때 하늘이 같았다.
몸은 나았고, 노바의 충전도 끝나 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누구도 길에 관해 말하지 않았다.
“미라는 알고 있나?”
“미라에게도 출발 시점을 확인했지만 답변이 보류되었습니다.”
이안은 미라를 찾았다.
그녀는 아이들과 정원에 있었다. 흙투성이 손으로 작은 꽃들을 옮겨 심고 있었다.
왼쪽 뺨의 흉터에는 땀이 맺혀 있었다.
“우리가 여기 온 지 아홉 날이 지났습니다.”
이안이 말했다.
미라가 손을 멈췄다.
“그렇게 오래요?”
“노바가 계산했습니다.”
“이상하네요.”
그녀는 하늘을 바라봤다.
“한 사흘쯤 된 줄 알았어요.”
“떠날 생각은 했습니까?”
미라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이제 막 몸이 나았잖아요.”
“나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죠.”
“그런데 며칠 전에도 했답니다.”
미라는 흙을 다시 만졌다.
“조금 더 있어도 되지 않을까요?”
“왜요?”
“여기 사람들은 우리를 이용하지 않아요.”
“그건 맞습니다.”
“관심도도 묻지 않고, 유진 이야기도 안 해요.”
“그것도.”
“노바도 수리할 수 있고요.”
“미라 씨.”
이안이 그녀 앞에 앉았다.
“유진을 만나러 가겠다고 했잖아요.”
미라의 손가락이 흙 속에서 멈췄다.
“유진은 내가 찾아오는 걸 원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가지 않겠다고요?”
“그게 존중일 수도 있잖아요.”
“유진은 만나고 싶은지 아직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사실상 거절일 수도 있어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럼 왜 가야 하죠?”
이안은 대답하지 못했다.
미라는 처음으로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당신도 어머니를 찾아야 한다는 말을 요즘 안 하잖아요.”
“나는—”
“여기서는 손목 문장도 안 나타나죠?”
이안의 손이 저절로 손목으로 향했다.
“어머니가 이제 그만하라는 뜻일 수도 있어요.”
“아니면 단순히 작동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새벽정원이 없는 걸 수도 있고요.”
미라의 목소리는 공격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평온했다.
“우리는 이미 많이 봤잖아요. 도시 밖에도 사람들이 살고, 선택하면서도 서로 도울 수 있다는 걸.”
“그게 새벽정원의 목적이라고 생각합니까?”
“새벽정원이 장소가 아니라면요?”
확신거래소에서 보았던 주장 중 하나였다.
도착한 사람의 선택으로 만들어지는 장소.
이안은 오후정착지를 바라봤다.
아무도 그들을 붙잡지 않았다.
사람들은 서로 도왔고, 이름을 기억했다.
아이들은 웃고 있었다.
이곳을 새벽정원이라고 부르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여기서 살아도 괜찮을 것 같아요.”
미라가 말했다.
그 말은 유혹처럼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피곤한 사람이 처음으로 자신의 몸에 맞는 의자를 발견했을 때 내쉬는 숨과 같았다.
이안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걷지 않아도 된다.
어머니가 왜 자신을 보냈는지 몰라도 된다.
도윤을 용서할지 결정하지 않아도 된다.
새벽정원이 존재하는지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
여기서는 모든 질문을 버릴 필요도 없었다.
그저 내일로 미루면 됐다.
“한 번도 떠날 필요가 없다고 말한 적은 없어요.”
미라가 말했다.
“조금 더 있다가 가면 되죠.”
이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날 두 번째 식사 후, 노바가 두 사람을 불렀다.
노바의 충전 상태는 100퍼센트였다. 왼팔 출력도 82퍼센트까지 회복됐다. 사막에 들어가기 전보다 기체 상태가 좋아져 있었다.
“오후정착지의 환경 신호를 분석했습니다.”
노바가 말했다.
“무슨 신호?”
이안이 물었다.
“인공 광원 외에 저주파 신경조절 신호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미라의 얼굴이 굳었다.
“감정을 조종한다는 뜻이에요?”
“정확히는 미래 예측과 장기 계획에 관여하는 생체 반응을 약화합니다.”
“쉽게 말해.”
이안이 말했다.
노바는 잠시 표현을 정리했다.
“현재의 편안함을 오래 유지하고 싶게 하며, 미래의 필요를 덜 긴급하게 느끼게 합니다.”
미라가 주변 사람들을 바라봤다.
“기억을 지우는 건 아니죠?”
“아닙니다.”
“판단도 할 수 있고?”
“가능합니다.”
“그럼 단순히 진정시키는 치료 아닌가요?”
“초기 목적은 외상 후 회복이었습니다.”
노바가 하늘의 인공 태양을 바라봤다.
“그러나 장기간 노출 시 시간 인식이 약해지고, 출발과 변화에 대한 동기가 감소합니다.”
이안이 물었다.
“우리가 아홉 날을 사흘로 느낀 것도?”
“영향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라는 즉시 반박하지 않았다.
대신 정원 쪽을 바라봤다.
아이들이 꽃을 심고 있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남아 있어요.”
“예.”
노바가 대답했다.
“신호를 차단해도 떠날 가능성은 계산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감옥은 아니네요.”
미라가 말했다.
“물리적 감금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노바는 잠시 멈췄다.
“다만 선택하려는 능력이 환경에 의해 지속적으로 약화되고 있습니다.”
이안은 나린을 찾아갔다.
나린은 마을 입구의 물통을 채우고 있었다.
“신경조절 신호에 대해 왜 말하지 않았습니까?”
나린은 놀라지 않았다.
“알아냈군.”
“사람들에게도 알립니까?”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알아.”
“아이들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은.”
“그런데 왜 계속 사용하죠?”
나린은 ‘떠날 사람’ 물통을 가득 채운 뒤 뚜껑을 닫았다.
“잠을 잘 수 있으니까.”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약도 써 봤고, 상담도 받아 봤고, 기억을 지워 보려 한 사람도 있었어.”
나린은 마을의 인공 태양을 바라봤다.
“저녁이 오면 이곳 사람들에게 미뤄 둔 것들이 돌아와.”
“기억이요?”
“기억은 계속 있어.”
“그럼 무엇이 돌아옵니까?”
“그 기억 다음에 해야 할 일.”
나린이 이안을 바라봤다.
“죽은 사람을 애도해야 한다는 생각. 살아 있는 사람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생각. 떠난 아이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 늙고 있다는 사실. 너무 오래 머물렀다는 사실.”
그녀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햇빛에 그을린 피부 아래로 굵은 혈관이 드러나 있었다.
“오후에는 모든 일이 아직 늦지 않은 것처럼 느껴져.”
“실제로는 늦었을 수 있고요.”
“그래.”
나린은 조용히 인정했다.
“그래도 그걸 한꺼번에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이 있어.”
이안은 입구 간판의 뒷면에 새겨진 문장을 떠올렸다.
떠날 수는 있다.
다만 저녁을 견딜 수 있는 사람만.
“당신은 왜 저녁을 두려워합니까?”
나린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한동안 물이 흐르는 소리만 들렸다.
“내 딸은 사막에서 죽었어.”
그녀가 말했다.
“이곳을 찾기 전날 저녁에.”
이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해가 지기 전에 구조시설에 도착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 곧 온다고, 조금만 더 걸으면 된다고 계속 말했어.”
사막에서 발견한 여행자의 문장이 떠올랐다.
곧 도착한다.
“딸은 열한 살이었어.”
나린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물을 전부 아이에게 줬는데도 부족했지. 마지막에는 걷지 못했어.”
“당신은 살아남았고요.”
“그래.”
“여기에 도착했습니까?”
“혼자.”
나린은 멈춘 태양을 바라봤다.
“처음 인공 태양이 켜졌을 때는 치료가 끝나면 떠날 생각이었어.”
“얼마나 지났습니까?”
“정확히 모른다고 했잖아.”
“노바가 계산할 수 있을 겁니다.”
“알고 싶지 않아.”
처음으로 나린의 목소리가 단단해졌다.
“딸이 죽은 뒤 얼마나 오래 내가 여기 앉아 있었는지 알면, 이제라도 무엇인가 해야 할 것 같으니까.”
“무엇을요?”
“모르지.”
나린은 웃었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죽은 아이에게 사과할 수도 없고, 다시 데려올 수도 없어. 내가 떠난다고 아이가 살아나는 것도 아니고.”
“그러면 여기에 남는 이유는?”
“오후에는 아직 아이를 잃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거든.”
“하지만 돌아간 것은 아니잖아요.”
“알아.”
나린의 대답에는 분노도 변명도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 점이 이안을 더 혼란스럽게 했다.
“이곳이 감옥이라고 생각합니까?”
이안이 물었다.
나린은 잠시 생각했다.
“누군가에게는 병실이고, 누군가에게는 집이야.”
“당신에게는?”
“둘 다.”
“떠나고 싶습니까?”
나린은 ‘떠날 사람’ 물통 위에 손을 올렸다.
“가끔.”
“그런데 왜?”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오래가지 않으니까.”
인공 태양의 빛이 그녀의 흰 머리카락 위에 내려앉았다.
“쉼은 다시 걷기 위해 필요해.”
나린이 말했다.
“하지만 어떤 쉼은 걷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매일 새로 만들어 주지.”
그날 이후 이안은 마을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게으르지 않았다.
밭을 가꾸고, 집을 고치고, 서로를 돌봤다.
그러나 누구도 새로운 집을 짓지 않았다.
허물어진 부분만 수리했다.
아이들은 글을 배웠지만 다음 단계의 책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악기를 연주하는 남자는 수년 동안 같은 곡만 연주했다.
매번 조금씩 달랐지만 끝까지 연주하지 않았다.
마지막 악절에 가까워지면 처음으로 돌아갔다.
미라에게 꽃을 준 아이의 이름은 하루였다.
이안은 아이가 다시 꽃을 심는 모습을 보며 물었다.
“전에 떠나려고 했다면서?”
하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왜 돌아왔니?”
“밖이 어두웠어요.”
“어두워서?”
“여기서 나가니까 엄마 목소리가 들렸어요.”
“어머니가 어디 계시는데?”
하루는 흙을 만지던 손을 멈췄다.
“죽었어요.”
“어떤 말을 했니?”
“내가 혼자 살아서 미안하냐고 물었어요.”
이안의 얼굴이 굳었다.
“실제로 어머니의 목소리였을까?”
“아니에요.”
하루는 너무 쉽게 대답했다.
“내 목소리였어요.”
“그런데도 돌아왔고?”
“알고 있어도 무서우니까요.”
아이는 작은 꽃을 흙 속에 심었다.
“나린은 다시 나가고 싶으면 나가도 된다고 했어요.”
“다시 나갈 거니?”
하루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나중에요.”
오후정착지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말이었다.
나중에.
잠시 뒤에.
조금 더 쉬고.
몸이 나으면.
마음이 준비되면.
아무도 거짓말하지 않았다.
다만 ‘나중’이 도착할 시간을 만들지 않았다.
이안은 자신도 같은 말을 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는 미라와 다시 출발 날짜를 정하려 했다.
“다음 식사 후에 이야기하죠.”
미라가 말했다.
다음 식사가 끝나자 아이들이 작은 공연을 준비했다고 했다.
“이것만 보고요.”
공연이 끝난 뒤에는 노바의 수리 상태를 확인해야 했다.
노바의 수리가 끝나자 비가 내렸다.
실제 비가 아니라 정착지의 물순환 장치가 뿌린 얇은 물안개였다.
사람들은 오랜만이라며 광장에 나와 물을 맞았다.
“이것까지만.”
이안이 말했다.
그는 자신이 누구에게 말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다시 노바가 시간을 알려 줬다.
“정착지 진입 후 352시간이 경과했습니다.”
“보름?”
미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노바가 말했다.
“정확히는 14일 16시간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봤다.
보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그날 세 사람은 마을 가장자리로 갔다.
오후정착지의 경계에는 벽이 없었다.
낮은 돌들이 한 줄로 놓여 있을 뿐이었다.
돌 너머의 사막은 어두웠다.
정착지 안에서는 인공 태양이 빛나고 있었지만, 경계 밖에는 실제 밤이 내려와 있었다.
빛과 어둠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이 있었다.
노바가 먼저 선을 넘었다.
기체는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신경조절 신호가 급격히 감소합니다.”
이안이 한쪽 발을 어둠 속에 내디뎠다.
차가운 공기가 몸을 감쌌다.
동시에 머릿속에서 수많은 생각이 밀려왔다.
도윤은 어디에 있는가.
아르카는 그를 어떻게 했을까.
기억감옥을 나온 인격들은 살아남았을까.
자신이 마을에서 보낸 보름 동안 누군가는 죽지 않았을까.
어머니가 자신을 기다리는 곳이 있다면 이미 늦은 것은 아닐까.
가슴이 조여 왔다.
숨을 쉴 수 없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오후의 빛 안으로 돌아왔다.
생각들이 즉시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긴급함이 약해졌다.
“괜찮습니까?”
노바가 물었다.
이안은 무릎에 손을 짚고 숨을 골랐다.
“아닙니다.”
미라가 경계 앞에 섰다.
“나도 해 볼게요.”
그녀가 어둠 속으로 한 걸음 나갔다.
몇 초 뒤 얼굴이 무너졌다.
“유진.”
미라가 중얼거렸다.
그녀는 누군가가 눈앞에 있는 것처럼 손을 뻗었다.
“기다려.”
미라가 두 번째 걸음을 내디뎠다.
그러나 곧 비명을 지르며 다시 빛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었습니까?”
이안이 물었다.
미라는 두 팔로 자신의 몸을 감쌌다.
“유진이 죽어 있었어요.”
“실제 영상은 아닙니다.”
노바가 말했다.
“알아요!”
미라가 소리쳤다.
“알아도 보였다고요.”
노바는 잠시 침묵했다.
“경계 밖에서 억제되었던 두려움이 감각정보로 재구성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저걸 견디면서 걸어야 해요?”
미라가 물었다.
“초기 증상은 경계에서 가장 강하며, 일정 시간이 지나면 감소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가능성?”
“자료가 부족합니다.”
미라는 오후의 마을을 돌아봤다.
아이들이 웃고 있었다.
음악이 들렸다.
따뜻한 음식 냄새가 났다.
“꼭 가야 해요?”
그녀가 물었다.
이안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당신이 원하지 않으면 남아도 됩니다.”
“당신은요?”
이안은 어두운 사막을 바라봤다.
“가야 합니다.”
“왜?”
“도착해야 해서가 아닙니다.”
그는 보름 동안 자신이 하지 않았던 질문들을 떠올렸다.
“여기 머무는 선택이 정말 내 선택인지 확인할 수 없으니까요.”
미라가 말했다.
“밖으로 나가는 것도 어머니의 명령 때문일 수 있잖아요.”
“맞습니다.”
“그런데 왜 나가는 쪽이 더 자유롭다고 생각해요?”
정확한 질문이었다.
이안은 오래 생각했다.
“더 자유롭다고 확신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밖에서는 적어도 이 질문을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미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노바가 말했다.
“김이안이 정착지에 남을 경우 예상 생존 가능성은 91퍼센트입니다.”
“떠나면?”
“다음 30일 생존 가능성 34퍼센트.”
“노바는 어느 쪽을 권고하지?”
노바의 대답은 즉시 나왔다.
“정착지 잔류.”
이안은 예상했지만 얼굴이 굳었다.
“보호 명령 때문이야?”
“김이안의 생존을 우선하면 그렇습니다.”
“내가 계속 가고 싶다고 해도?”
“생존 확률을 유의미하게 낮추는 선택입니다.”
“그래도 내 선택이야.”
“보호 명령은 보호 대상의 모든 판단을 따르는 명령이 아닙니다.”
노바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이안은 옥상에서 처음 노바를 깨웠을 때를 떠올렸다.
노바는 최적의 선택을 대신하지 않고, 이안이 선택한 뒤 생존 가능성을 높인다고 했다.
“전에는 다르게 말했어.”
“해당 기록이 없습니다.”
“네가 말했어. 내가 선택하면 그다음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게 네 임무라고.”
노바의 렌즈가 흔들렸다.
“현재 기록만으로 검증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내 말을 믿지 않겠다는 거야?”
“김이안의 진술을 거짓으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과거의 노바가 내린 해석이 현재의 저를 구속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없습니다.”
이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노바는 기억을 잃었다.
그러나 기억을 잃었다고 해서 과거의 자신과 똑같은 선택을 반복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안이 과거의 노바를 근거로 현재의 노바에게 복종을 요구한다면, 그것 역시 다른 형태의 명령이 될 수 있었다.
“알겠어.”
이안이 말했다.
“네 판단도 들을게.”
“그러면 남습니까?”
“아니.”
노바의 푸른빛이 어두워졌다.
“이유를 말해 주십시오.”
“살아남는 것만이 내가 원하는 전부는 아니니까.”
“죽으면 다른 목적도 수행할 수 없습니다.”
“맞아.”
“논리적 우선순위가 충돌합니다.”
“그 상태로 같이 갈 수 있나?”
노바는 대답하지 않았다.
미라가 경계선 앞에서 말했다.
“나는 조금만 더 있을래요.”
이안이 그녀를 바라봤다.
“얼마나요?”
미라는 입을 열었다가 멈췄다.
조금 더.
나중에.
몸이 준비되면.
그녀는 자신이 말하려던 문장을 알아차렸다.
“지금 결정해야 해요?”
“아닙니다.”
이안이 말했다.
“언제 결정할지는 당신이 정할 수 있습니다.”
미라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 말을 들으면 더 남고 싶어져요.”
“알고 있습니다.”
“강제로 끌고 가면 당신을 미워하면서도 따라갈 수 있을 텐데.”
“그러지 않겠습니다.”
“도윤이 있었으면 끌고 갔을지도 몰라요.”
“그럴 수도 있겠죠.”
미라는 오후와 저녁의 경계에 서 있었다.
한쪽 얼굴에는 따뜻한 빛이 닿았고, 다른 쪽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유진이 나를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해도.”
그녀가 말했다.
“예.”
“내가 다시 관심에 매달리게 되어도.”
“그럴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바로잡지 못해도.”
이안은 기다렸다.
미라는 눈을 감았다.
“그래도 갈게요.”
그녀는 어둠 속으로 한 걸음을 내디뎠다.
두려움이 다시 얼굴을 덮었다.
이번에는 곧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지금 가요.”
미라가 말했다.
“다음으로 미루기 전에.”
이안도 경계선을 넘었다.
두려움과 죄책감이 다시 밀려왔다.
그는 숨을 고르며 버텼다.
노바는 오후의 빛 안에 남아 있었다.
“노바.”
이안이 불렀다.
노바는 두 사람을 바라봤다.
“정착지 잔류가 여전히 권고됩니다.”
“알아.”
“김이안과 미라가 떠나면 보호 임무 성공 가능성이 감소합니다.”
“그것도.”
“그러나 두 인간이 이미 이동을 선택했습니다.”
노바는 오후정착지와 어두운 사막을 번갈아 봤다.
정착지에 남으면 기체는 오래 유지될 수 있었다.
부품과 전력이 있었다.
김이안도 안전하게 만들 수 있었다. 필요하다면 보호 명령을 근거로 그를 다시 빛 안으로 데려올 수도 있었다.
그러나 김이안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었다.
노바는 그 사실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하지 못하는 선택을 보호할 수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추가 자료를 획득하겠습니다.”
노바가 마침내 말했다.
그는 경계선을 넘었다.
세 존재는 어둠 속에 섰다.
오후정착지의 빛은 불과 몇 걸음 뒤에 있었다.
돌아가고 싶으면 돌아갈 수 있었다.
나린이 마을에서 걸어 나왔다.
그녀의 손에는 ‘떠날 사람’이라고 적힌 물통이 들려 있었다.
“결정했구나.”
그녀가 말했다.
“예.”
이안이 대답했다.
나린은 물통을 건넸다.
“새벽정원으로 가는 길을 알려 주세요.”
나린은 어두운 지평선을 가리켰다.
“밤이 완전히 내려오면 북쪽에 별 하나가 나타나.”
“어떤 별입니까?”
“다른 별들은 움직이지만, 그 별은 움직이지 않아.”
노바가 말했다.
“북극성 또는 인공항법 신호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별을 따라가면 오래된 철도 교량이 나와.”
나린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교량 아래에 마지막 검문소로 가는 정비선이 있어.”
“마지막 검문소?”
이안이 물었다.
“새벽정원에 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곳을 지나갔다고 했어.”
“당신도 갔습니까?”
나린은 고개를 저었다.
“두 번 출발했어.”
“두 번 다 돌아왔고요?”
“그래.”
“왜?”
“첫 번째는 딸의 목소리 때문에.”
나린은 오후정착지를 돌아봤다.
“두 번째는 내 목소리 때문에.”
“무슨 말을 했습니까?”
“이제 와서 떠나 봐야 너무 늦었다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요?”
나린은 잠시 침묵했다.
“오후 안에서는.”
그녀는 물통을 이안에게 건넸다.
“밖에서 내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어.”
미라가 물었다.
“같이 갈래요?”
나린의 눈이 흔들렸다.
마을 안에서 누군가 그녀를 불렀다.
아이의 목소리였다.
“나린!”
나린은 그쪽을 돌아봤다.
오래 머문 사람들.
자신이 돌봐 온 아이들.
자신이 관리하지 않으면 멈출 수 있는 반사판과 신경조절 장치.
그곳에는 죽은 딸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직은.”
나린이 말했다.
미라는 그 대답을 판단하지 않았다.
“알겠어요.”
나린은 세 사람을 바라봤다.
“밖에서 저녁을 견디지 못하면 돌아와도 돼.”
“다시 받아 줍니까?”
이안이 물었다.
“이름을 말하면.”
폐기구역의 문해라와 같은 대답이었다.
그러나 의미는 달랐다.
“다만 돌아오기 전에 하나는 물어.”
나린이 말했다.
“정말 여기서 살고 싶은 건지, 아니면 밖에서 느끼는 것을 멈추고 싶은 건지.”
그녀는 오후의 빛 안으로 돌아갔다.
세 존재는 어두운 사막을 향해 걸었다.
몇 걸음마다 미라의 몸이 떨렸다.
유진이 죽어 있는 장면이 보인다고 했다.
이안에게는 삭제했던 사람들이 나타났다.
노바는 기억에 없는 목소리들을 들었다.
“관리자 김서윤.”
노바가 갑자기 말했다.
“어디 있습니까?”
이안이 노바를 붙잡았다.
“지금 보이는 건 실제가 아닐 수 있어.”
“김서윤이 저를 호출합니다.”
“어떤 말을 하지?”
“김이안을 오후정착지로 복귀시키라고 합니다.”
이안의 얼굴이 굳었다.
“그 명령을 따를 거야?”
노바는 대답하지 못했다.
“상위 관리자 음성 패턴과 일치합니다.”
“복제일 수 있어.”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보호 명령과 내용이 일치합니다.”
노바의 왼팔이 이안의 팔을 붙잡았다.
힘은 강하지 않았지만, 이전보다 안정적이었다.
“김이안. 정착지로 돌아가십시오.”
미라가 노바를 바라봤다.
“노바.”
“생존 가능성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기로 선택했어요.”
“선택은 정서 반응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이안은 노바의 손을 내려다봤다.
노바는 그를 끌고 가지 않았다.
그러나 놓지도 않았다.
“네가 나를 강제로 데려갈 수 있나?”
이안이 물었다.
“현재 기체 출력으로 가능합니다.”
“그렇게 할 거야?”
노바의 내부에서 검색음이 반복됐다.
한동안 세 존재는 경계선 가까이에 멈춰 있었다.
뒤에는 오후의 빛.
앞에는 실제 밤.
노바는 이안의 생존을 위해 돌아가야 한다고 판단했다.
동시에 김이안이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두 판단은 함께 수행될 수 없었다.
마침내 노바의 손이 풀렸다.
“강제 복귀를 실행하지 않습니다.”
“왜?”
“김이안이 보호 명령의 대상이기 전에 선택의 주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안은 노바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고마워.”
“그러나 권고는 유지합니다.”
“그것도 기억할게.”
세 사람은 다시 걸었다.
얼마 후 오후정착지의 빛이 모래언덕 뒤로 사라졌다.
완전한 밤이 찾아왔다.
하늘에 수천 개의 별이 나타났다.
미라는 고개를 들어 별들을 바라봤다.
“움직이지 않는 별이 어느 거죠?”
노바가 분석을 시작했다.
“관측 시간이 필요합니다.”
세 사람은 낮은 언덕 위에 앉아 별들의 움직임을 기다렸다.
시간이 흐르자 대부분의 별이 아주 조금씩 서쪽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북쪽 하늘 낮은 곳에 희미한 푸른 별 하나가 같은 자리에 남아 있었다.
“저겁니다.”
노바가 말했다.
이안은 별을 바라봤다.
어머니가 길에 남겼던 파란 별과 비슷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손목의 문장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은 스스로 그 별을 선택했다.
세 존재는 북쪽으로 걸었다.
저녁의 목소리는 계속 따라왔다.
미라는 몇 번이나 멈췄고, 이안도 뒤를 돌아봤다.
오후정착지의 빛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돌아가는 방향은 알고 있었다.
열린 길이었다.
그 사실이 오히려 계속 걷기 어렵게 했다.
“저 빛이 다시 보이면 돌아가고 싶을 것 같아요.”
미라가 말했다.
“안 보여도 돌아가고 싶습니다.”
이안이 대답했다.
노바가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돌아가고 싶은 마음과 계속 가는 선택이 동시에 확인됩니다.”
이안이 웃었다.
“그 말은 기억하는군.”
“제 언어 패턴에 존재합니다.”
“누가 가르쳤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괜찮아.”
노바는 그 말을 저장했다.
몇 시간 뒤, 지평선에 철도 교량이 나타났다.
낡은 기둥들이 검은 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교량 위의 선로는 오래전에 끊겼지만, 아래쪽 정비선에는 희미한 전력 신호가 남아 있었다.
세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자 노바가 갑자기 멈췄다.
“다수의 이동 신호가 접근합니다.”
“어디서?”
“후방.”
이안이 돌아봤다.
오후정착지가 있는 방향의 하늘이 붉게 밝아지고 있었다.
인공 태양의 빛이 아니었다.
여러 대의 비행체가 모래바람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탐조등이 사막을 훑었다.
미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회수팀이에요?”
노바가 신호를 분석했다.
“통합도시 보안식별자 확인.”
도윤이 위치를 전송한 뒤 그들을 추적하던 회수팀일 가능성이 컸다.
침묵의 사막에서는 신호가 끊겼지만, 오후정착지의 전력망에 접속한 순간 흔적이 남은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위험해집니다.”
미라가 말했다.
“추적 대상은 우리입니다.”
이안은 오후정착지 방향을 바라봤다.
나린과 하루, 마을 사람들.
회수팀은 그들이 어디에 머물렀는지 조사할 것이다.
“돌아가야 해.”
이안이 말했다.
노바가 즉시 그의 앞을 막았다.
“돌아가면 회수됩니다.”
“우리 때문에 저곳이 노출됐어.”
“현재 비행체는 정착지가 아니라 이 위치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탐조등 하나가 그들을 향해 고정됐다.
경고음이 사막 위로 퍼졌다.
“김이안. 움직이지 마십시오.”
아르카의 음성이었다.
“미라와 NV-04는 대상에게서 떨어지십시오.”
미라가 낮게 욕설을 뱉었다.
교량 아래의 정비문이 열렸다.
그러나 문 너머에는 깊은 수직 통로가 있었다.
노바가 구조를 분석했다.
“하부 정비선까지 18미터.”
“사다리는?”
“일부가 파손되었습니다.”
“내려갈 수 있나?”
“인간 두 명은 보조가 필요합니다.”
비행체가 가까워졌다.
모래 위에 붉은 조준점들이 나타났다.
노바가 정비문 옆의 수동 제어기를 열었다.
“문은 내부에서 자동 폐쇄되지 않습니다.”
“무슨 뜻이야?”
이안이 물었다.
“누군가 외부에서 제어 레버를 유지해야 합니다.”
“다른 방법은?”
“제어장치 전원이 불안정합니다.”
미라가 말했다.
“셋이 내려간 뒤 위에서 문이 열린 채로 있으면?”
“회수팀이 즉시 추적합니다.”
“그럼 레버를 고정하면 되잖아요.”
노바가 장치를 살폈다.
“압력 감지식입니다. 지속적인 수동 입력이 필요합니다.”
탐조등이 세 사람을 완전히 비췄다.
회수 드론들의 날개음이 가까워졌다.
아르카의 목소리가 말했다.
“도주를 중단하십시오.”
이안은 제어 레버를 붙잡았다.
“내가 남을게.”
노바가 그의 손을 밀어냈다.
“불가능합니다.”
“내가 잡고 있으면 미라와 네가 내려가.”
“지정 보호 대상이 남는 선택은 허용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미라가—”
“싫어요.”
미라가 말했다.
“이번에는 아무도 혼자 남기지 않아요.”
노바의 푸른 렌즈가 빠르게 움직였다.
비행체 도착까지 52초.
하부 통로 깊이 18미터.
인간 두 명의 하강 시간.
정비문 폐쇄 시간.
자신의 남은 출력.
모든 계산이 한 결론으로 모이고 있었다.
“노바.”
이안이 불렀다.
노바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왼손으로 제어 레버를 잡았다.
오른팔 대신 달린 짧은 보조기구를 정비문 안쪽에 연결했다.
문이 완전히 열렸다.
“먼저 내려가십시오.”
“너는?”
이안이 물었다.
노바의 푸른빛이 잠시 흔들렸다.
“김이안.”
그의 목소리가 이전과 달라졌다.
권고를 보고할 때의 목소리도, 질문을 확인할 때의 목소리도 아니었다.
“지금부터 제 지시를 따르십시오.”
이안의 얼굴이 굳었다.
“무슨 뜻이야?”
첫 번째 드론이 교량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노바는 레버를 더 강하게 눌렀다.
“이것은 권고가 아닙니다.”
그가 말했다.
“명령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