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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입니다.”
노바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김이안은 그 말을 잘못 들었을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았다.
통합도시에서 명령은 늘 부드러운 목소리로 전달됐다. 시민의 안전을 위해, 사회의 안정을 위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따르라고 말했다.
노바는 한 번도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
위험을 계산했고, 권고했으며, 이안이 선택한 뒤에는 그 선택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찾았다.
그런 노바가 지금 처음으로 명령하고 있었다.
교량 위로 나타난 회수 드론의 탐조등이 세 존재를 비췄다.
모래 위에 붉은 조준점들이 늘어났다.
“김이안과 미라는 즉시 하부 정비선으로 내려가십시오.”
노바가 말했다.
“너는?”
“제어 레버를 유지합니다.”
“그러면 내려오지 못하잖아.”
“현재 구조에서는 그렇습니다.”
미라가 정비문 아래를 내려다봤다.
18미터 아래에 희미한 조명과 오래된 선로가 보였다. 벽면에는 사다리 일부만 남아 있었다. 중간 구간은 완전히 끊어져 있었다.
“다른 방법을 찾아요.”
미라가 말했다.
“시간이 부족합니다.”
노바의 렌즈에 숫자가 나타났다.
회수 드론 도착까지 31초.
“그건 권고가 아니라고 했지?”
이안이 물었다.
“예.”
“그럼 따르지 않겠습니다.”
노바의 푸른빛이 잠시 흔들렸다.
“명령을 거부할 이유를 말하십시오.”
“너를 두고 갈 수 없어.”
“감정적 이유입니다.”
“그래.”
“제 생존 가능성보다 김이안과 미라의 생존 가능성이 우선합니다.”
“그건 네 명령 때문이잖아.”
“부분적으로.”
“그러면 그 명령을 거부해.”
“지금은 제가 내린 명령입니다.”
회수 드론이 첫 번째 경고탄을 발사했다.
푸른 광선이 이안의 발앞 모래를 태웠다.
노바는 왼팔로 이안을 정비문 쪽으로 밀었다.
“내려가십시오.”
이안이 노바의 팔을 붙잡았다.
“너는 내 선택을 보호한다고 했어.”
“예.”
“내 선택은 같이 가는 거야.”
“현재 김이안은 제 선택을 무효화하고 있습니다.”
이안의 손이 멈췄다.
노바가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김이안은 제가 명령 이상인 존재일 가능성을 인정했습니다.”
“인정했어.”
“기능을 상실해도 노바라고 말했습니다.”
“그래.”
“그러면 지금 제가 선택하는 존재일 가능성도 인정하십시오.”
드론들의 날개음이 교량 위를 뒤덮었다.
노바는 제어 레버를 누른 채 말했다.
“김이안은 저를 구한다는 이유로 제 선택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 말은 이안이 다른 사람들에게 해 왔던 말이었다.
아이의 선택을 대신하려는 도윤에게.
미라를 원하는 모습으로 용서하게 만들려던 솔라스에게.
기억감옥의 문을 잠그고 있던 구원자에게.
그러나 자신의 차례가 되자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네 선택이 죽는 거라면?”
이안이 물었다.
“죽음을 목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과가 같을 수 있잖아.”
“김이안의 모든 선택도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것과는 달라.”
“차이를 설명하십시오.”
이안은 대답하지 못했다.
노바가 말했다.
“보호 대상이 위험한 선택을 할 자유가 있다면, 보호 기체에게도 위험한 선택을 할 가능성이 있어야 합니다.”
“너는 기체야.”
말이 입에서 나온 순간 이안의 얼굴이 굳었다.
노바의 렌즈가 아주 조금 어두워졌다.
“예.”
이안은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았다.
기능을 잃어도 노바라고 말했다.
명령 이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노바의 선택이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달라지자, 다시 기계라는 말로 되돌리려 했다.
“미안해.”
이안이 말했다.
“사과는 나중에 확인하겠습니다.”
노바는 미라를 향해 몸을 돌렸다.
“미라, 먼저 내려가십시오.”
“싫어요.”
“두 사람이 동시에 남으면 선택 가능한 시간이 종료됩니다.”
“당신을 혼자 두고 가면 또 사람을 버리는 거예요.”
“저는 유진이 아닙니다.”
미라의 얼굴이 굳었다.
“그런 뜻이 아니에요.”
“미라가 과거의 행동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모든 이별을 거부하면, 과거가 현재의 선택을 대신하게 됩니다.”
미라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노바가 정비문 안쪽의 강하용 케이블을 당겼다.
케이블 끝에는 한 사람이 겨우 설 수 있는 작은 발판이 매달려 있었다.
“미라.”
노바가 다시 불렀다.
이번에는 명령하는 목소리와 조금 달랐다.
“제가 선택한 일을 미라의 배신으로 기록하지 마십시오.”
미라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드론 하나가 교량 기둥 위에 착지했다.
하부에서 제압용 총신이 나왔다.
노바가 남은 오른쪽 어깨의 보조장치를 들어 드론의 첫 탄환을 막았다.
금속판이 깨졌다.
“지금입니다.”
미라는 이를 악물고 발판 위에 올라섰다.
“반드시 내려와요.”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 대답 정말 싫어요.”
“알고 있습니다.”
노바가 케이블을 풀었다.
미라의 몸이 어둠 속으로 내려갔다.
발판이 흔들릴 때마다 미라는 벽을 붙잡았다. 끊어진 사다리 사이를 지나며 아래쪽 선로로 가까워졌다.
이안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아르카의 목소리가 탐조등 사이로 울렸다.
“NV-04.”
노바의 몸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중앙운영체계의 복귀 명령을 수신하십시오.”
“거부합니다.”
“당신의 관리자 권한은 만료되었습니다.”
“현재 관리자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심각하게 손상된 기체입니다.”
“확인했습니다.”
“최종 백업 인격을 복원할 수 있습니다.”
교량 위의 공기 속에 온전한 노바의 모습이 나타났다.
두 팔.
깨끗한 렌즈.
흠 하나 없는 흰색 몸체.
그 뒤에는 김서윤과 어린 이안의 기억들이 펼쳐졌다.
“복귀하면 기억을 되찾습니다.”
아르카가 말했다.
“지정 보호 임무도 계속할 수 있습니다.”
이안은 온전한 노바를 바라봤다.
솔라스의 탑에서 보았던 백업 인격이었다.
어머니에 관한 모든 기억을 가진 노바.
새벽정원으로 향하는 경로를 알 수도 있는 노바.
“현재 기체를 폐기하고 백업 인격을 활성화합니다.”
아르카가 말했다.
노바가 물었다.
“현재 기체의 인격은 어떻게 됩니까?”
“안정적인 기록은 백업 인격에 통합됩니다.”
“통합되지 않는 기록은?”
“오류로 제거됩니다.”
“미라와의 동행 기록.”
“임무와 무관합니다.”
“강도윤을 동행자로 분류한 기록.”
“판단 오류입니다.”
“김이안의 선택을 보호 대상으로 인식한 기록.”
아르카가 잠시 멈췄다.
“상위 보호지침과 충돌합니다.”
노바의 푸른 렌즈가 밝아졌다.
“그렇다면 복원이 아닙니다.”
“정상화입니다.”
“현재의 저를 제거한 뒤 과거의 저를 작동시키는 것은 교체입니다.”
“차이는 기능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에게는 중요합니다.”
아르카의 음성이 조금 낮아졌다.
“기체는 자신에게 중요한 것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노바가 대답했다.
“그 명제의 근거를 요청합니다.”
아르카는 답하지 않았다.
회수 드론 두 대가 동시에 움직였다.
노바는 제어 레버를 놓을 수 없었다.
왼팔은 레버를 누르고 있었고, 오른팔은 존재하지 않았다.
첫 번째 탄환이 노바의 옆구리를 관통했다.
기체가 크게 흔들렸다.
이안이 달려가려 하자 노바가 소리쳤다.
“멈추십시오!”
이안의 발이 굳었다.
노바의 목소리에는 처음 듣는 감정이 섞여 있었다.
두려움인지 분노인지 알 수 없었다.
“이안.”
노바가 처음으로 성을 빼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제가 지금까지 당신의 선택을 정확히 이해한 적은 많지 않습니다.”
또 한 발의 탄환이 노바의 가슴판을 스쳤다.
파란 별의 한쪽 끝이 타들어 갔다.
“그래도 당신이 선택한 뒤 계속 걸을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제 임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니까 같이 가.”
“이번에는 반대입니다.”
노바가 말했다.
“제가 선택한 뒤 계속할 수 있도록 당신이 도와주십시오.”
이안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어떻게?”
“내려가십시오.”
미라가 아래쪽에서 외쳤다.
“이안 씨!”
회수 드론들이 교량 양쪽을 봉쇄하고 있었다.
시간은 거의 없었다.
노바가 두 번째 강하 케이블을 꺼냈다.
“김이안에게 마지막으로 명령합니다.”
“마지막이라고 하지 마.”
“표현을 수정합니다.”
노바의 렌즈가 희미하게 흔들렸다.
“현재 상태에서 가장 우선하는 명령입니다.”
이안은 듣지 않으려 했지만 노바는 계속 말했다.
“살아서 선택하십시오.”
“노바.”
“제 선택을 김이안의 죄책감으로 바꾸지 마십시오.”
노바는 발판을 이안 앞에 밀었다.
“그리고 저를 기억하되, 저 때문에 멈추지 마십시오.”
이안은 움직이지 않았다.
노바의 푸른빛이 그를 비췄다.
“명령을 확인했습니까?”
오랫동안 이안은 대답하지 못했다.
통합도시에서는 명령을 확인할 때 정해진 문장을 말했다.
동의합니다.
명령을 수행하겠습니다.
그 문장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스스로 대답해야 했다.
“확인했어.”
이안이 말했다.
“하지만 전부 따르겠다고 약속할 수는 없어.”
“불완전한 동의를 확인했습니다.”
노바의 목소리에 아주 미세한 잡음이 섞였다.
이안은 발판 위에 올라섰다.
“내려와.”
“가능한 방법을 찾겠습니다.”
“거짓말이야?”
노바는 잠시 멈췄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진술입니다.”
이안은 눈물 속에서 웃었다.
“그 정도면 됐어.”
강하 장치가 작동했다.
이안의 몸이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노바의 모습이 점점 멀어졌다.
탐조등 속에서 홀로 레버를 누르고 있는 기체.
오른팔이 없고, 왼팔 하나로 문과 두 사람의 길을 붙잡고 있는 노바.
그 위로 회수 드론들이 다가왔다.
“노바!”
이안이 불렀다.
노바가 아래를 내려다봤다.
“왜?”
“너는 내 어머니가 남긴 장치가 아니야!”
과거의 노바가 그 말을 기억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현재의 노바는 잠시 멈췄다.
“추가 정의를 요청합니다.”
“너는 노바야!”
이안의 목소리가 수직 통로 안에서 울렸다.
“그것이면 충분해!”
노바의 푸른 렌즈가 한 번 밝아졌다.
“정의를 저장합니다.”
이안의 발판이 하부 정비선에 도착했다.
미라가 그를 끌어내렸다.
“노바는요?”
이안은 위를 올려다봤다.
노바는 아직 레버를 잡고 있었다.
정비선 옆에는 오래된 소형 열차가 서 있었다. 두 칸뿐인 보수용 차량이었다. 앞칸의 전면에는 희미한 문장이 남아 있었다.
북부 최종경계 정비선.
노바의 음성이 차량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두 사람은 열차에 탑승하십시오.”
“또 명령이에요?”
미라가 물었다.
“예.”
“싫다고 하면요?”
“시간이 부족합니다.”
상부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교량의 콘크리트 조각이 통로 아래로 떨어졌다.
이안과 미라는 열차 안으로 들어갔다.
차량 내부는 먼지로 가득했지만 전력은 살아 있었다.
노바가 원격으로 운전계를 작동시켰다.
비인간 정비인증 확인.
NV-04.
최종검문소 방향으로 출발합니다.
이안이 운전대 옆의 정지 레버를 붙잡았다.
“열차를 세우면 다시 올라갈 수 있어.”
미라가 그의 손목을 잡았다.
“노바가 가지 말라고 했어요.”
“그 말을 정말 따를 겁니까?”
“모르겠어요.”
미라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래도 노바가 선택했다고 했잖아요.”
“죽게 둘 수는 없어.”
“당신은 지금 노바를 구하려는 거예요, 아니면 노바를 잃은 사람이 되기 싫은 거예요?”
이안의 얼굴이 굳었다.
잔인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미라는 손을 놓지 않았다.
“나도 유진을 돕지 못했던 사람이 되기 싫어서, 모든 사람을 붙잡고 싶었어요.”
그녀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그런데 누군가 떠나는 걸 막는다고 과거가 바뀌지는 않잖아요.”
“노바는 아직 살아 있어.”
“그래서 선택할 수 있는 거예요.”
열차 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이안은 정지 레버를 바라봤다.
그것을 당기면 열차는 멈출 것이다.
노바의 명령을 거부하고 다시 올라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러면 노바가 붙잡고 있는 레버와 열린 길은 의미를 잃는다.
그의 선택을 이안이 취소하는 일이 된다.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느리게.
금속 바퀴가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은 선로 위에서 비명을 질렀다.
이안은 정지 레버에서 손을 뗐다.
“미안해.”
그가 중얼거렸다.
차량 스피커에서 노바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과를 확인하지 않습니다.”
이안이 고개를 들었다.
“노바?”
“현재 통신 가능 시간 42초.”
“내려올 방법은?”
“교량 하부에 비상 점검구가 있습니다.”
“거기까지 갈 수 있어?”
“가능성을 계산 중입니다.”
“정확히 말해.”
“낮습니다.”
이안은 다시 정지 레버를 보았다.
노바가 말했다.
“김이안.”
“왜?”
“명령을 반복합니다.”
“알아.”
“저 때문에 멈추지 마십시오.”
통신에 잡음이 끼기 시작했다.
미라가 스피커 가까이 다가갔다.
“노바, 당신이 선택했다는 걸 기록할게요.”
“확인했습니다.”
“이안 씨가 억지로 두고 간 게 아니라고.”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우리를 구했다고 말할게요.”
노바가 잠시 침묵했다.
“수정 요청.”
“뭘요?”
“노바가 두 사람을 구했다는 표현은 불완전합니다.”
상부에서 또 다른 폭발음이 들렸다.
“세 존재가 각자의 선택을 수행했다고 기록하십시오.”
미라가 울면서 웃었다.
“끝까지 정확하네요.”
“기록은 존재를 보존합니다.”
노바가 말했다.
그것은 폐기구역에서 했던 말이었다.
현재의 노바가 그 순간을 기억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노바.”
이안이 스피커에 손을 댔다.
“나를 기억해?”
잡음이 길게 이어졌다.
“지정 보호 대상 김이안.”
이안은 눈을 감았다.
그것뿐일 수도 있었다.
“추가 기록.”
노바가 말했다.
이안이 눈을 떴다.
“불완전한 저장장치.”
이안의 입술이 떨렸다.
폐기구역의 밤.
노바가 자신의 기억을 이안에게 맡기며 했던 말이었다.
기억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깊은 곳 어딘가에서 한 조각이 남아 있었다.
“그래.”
이안이 말했다.
“내가 기억할게.”
“완전한 기억을 보장하지 않습니까?”
“가능한 만큼.”
짧은 정적 뒤에 노바가 말했다.
“충분합니다.”
통신이 끊겼다.
상부 교량에서 푸른빛이 폭발했다.
노바가 교량의 예비전력을 한꺼번에 방출한 것이다.
강한 전자기파가 퍼지며 회수 드론들의 탐조등이 동시에 꺼졌다.
비행체들이 균형을 잃고 구조물에 충돌했다.
아르카의 목소리가 끊어졌다.
교량 전체가 흔들렸다.
노바의 왼팔은 여전히 제어 레버를 누르고 있었다.
그러나 어깨 관절에는 붉은 균열이 퍼지고 있었다.
드론 한 대가 마지막 전력으로 노바에게 달려들었다.
노바는 피하지 않았다.
대신 왼팔의 고정장치를 잠갔다.
레버와 팔을 완전히 결합했다.
수동 압력 유지.
정비문 개방 지속.
오른쪽 어깨의 짧은 보조장치로 자신의 왼쪽 어깨 연결부를 눌렀다.
절단 장치가 작동했다.
금속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왼팔이 몸에서 분리됐다.
팔은 레버에 매달린 채 계속 압력을 유지했다.
노바의 몸이 뒤로 넘어졌다.
이제 그에게는 두 팔 모두 없었다.
교량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노바는 몸을 옆으로 굴려 정비문 가장자리로 이동했다.
아래에서는 열차의 마지막 칸이 통로를 지나가고 있었다.
거리는 너무 멀었다.
정상적인 기체라면 계산만으로 시도하지 않았을 거리였다.
노바의 렌즈에 수치가 나타났다.
성공 가능성 18퍼센트.
잠시 뒤 숫자가 사라졌다.
노바는 더 이상 계산하지 않았다.
그는 정비문 아래로 몸을 던졌다.
이안과 미라가 탄 열차는 속도를 높이고 있었다.
상부 폭발의 충격이 터널을 따라 밀려왔다. 뒤쪽 창문이 흔들렸고 천장에서 먼지가 떨어졌다.
이안은 열차 후방을 바라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멈춰야 해.”
그가 말했다.
미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열차가 터널의 굽은 구간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지붕 위에서 큰 충격음이 났다.
무언가 열차 위로 떨어졌다.
금속이 긁히는 소리가 이어졌다.
이안이 고개를 들었다.
“노바?”
대답은 없었다.
다시 충격음.
이번에는 열차 뒤쪽이었다.
두 사람은 마지막 칸으로 달렸다.
지붕의 점검판이 안쪽으로 휘어 있었다.
그 위에서 무거운 물체가 미끄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안이 점검판의 수동 손잡이를 돌렸다.
“밖의 압력을 확인해야 합니다.”
미라가 말했다.
“터널이야.”
“노바가 아니면요?”
“그래도 열어야 해.”
두 사람이 함께 손잡이를 당겼다.
점검판이 열렸다.
검은 금속 몸체가 안으로 떨어졌다.
이안과 미라가 동시에 몸을 받쳤다.
노바였다.
오른팔은 이전부터 없었다.
왼팔도 어깨 아래에서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가슴판의 파란 별은 절반이 타 버렸고, 한쪽 렌즈는 산산이 깨졌다. 남은 렌즈도 거의 빛나지 않았다.
“노바!”
이안이 노바의 머리를 붙잡았다.
대답이 없었다.
미라가 가슴의 비상 전원부를 열었다.
“전력이 거의 없어요.”
이안은 열차 벽의 보조전원선을 뽑아 노바의 단자에 연결했다.
전류가 흐르자 기체가 크게 떨렸다.
“노바, 들려?”
잡음이 났다.
남은 렌즈에 푸른빛이 아주 희미하게 들어왔다.
“사용자…… 식별.”
이안의 얼굴이 굳었다.
“김이안이야.”
“김…… 이안.”
“그래.”
노바의 렌즈가 미라를 향했다.
미라가 울먹이며 말했다.
“미라예요. 동행자.”
“미라.”
“같이 걷는 사람이에요.”
노바는 한동안 반응하지 않았다.
“현재…… 이동 중입니까?”
이안이 웃음과 울음이 섞인 숨을 내쉬었다.
“그래.”
“정지하지…… 않았습니까?”
“안 했어.”
“명령…… 수행을 확인했습니다.”
이안은 노바의 차가운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댔다.
“다시는 그런 명령 하지 마.”
노바의 렌즈가 미세하게 깜박였다.
“명령의 유효성은…… 상황에 따라 판단합니다.”
미라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정말 돌아온 것 맞네요.”
노바의 전력이 조금씩 올라갔다.
그러나 진단 화면에는 붉은 경고가 이어졌다.
양팔 기능 상실.
주 렌즈 손상.
기억영역 잔존율 21퍼센트.
자율기동 가능성 불명.
이안은 마지막 수치를 오래 바라봤다.
“기억나는 게 뭐야?”
노바가 검색을 시작했다.
기체 안에서 작은 진동이 반복됐다.
“김이안.”
“그리고?”
“지정 보호 대상.”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라.”
미라가 노바 곁에 앉았다.
“동행자.”
“또?”
긴 침묵이 흘렀다.
열차는 어두운 터널을 계속 달렸다.
“명령 하나가 남아 있습니다.”
노바가 말했다.
이안의 표정이 굳었다.
“누가 내린 명령이지?”
“관리자 정보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내용은?”
노바의 목소리가 끊기듯 이어졌다.
“살아서…… 선택하십시오.”
이안은 눈을 감았다.
그것은 김서윤의 명령이 아니었다.
아르카의 명령도 아니었다.
노바 자신이 조금 전 내린 명령이었다.
기억 대부분이 사라진 뒤에도 그 문장은 남아 있었다.
“그 명령은 네가 내린 거야.”
이안이 말했다.
“제가?”
“그래.”
노바는 그 사실을 처리했다.
“노바가…… 명령을 내릴 권한이 있습니까?”
미라가 대답했다.
“조금 전에는 있었어요.”
“현재는?”
이안이 말했다.
“우리에게 명령할 권리는 없어.”
노바의 렌즈가 어두워졌다.
이안은 말을 이어 갔다.
“하지만 네 선택을 말할 권리는 있어.”
“차이를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도 아직 배우는 중이야.”
노바는 그 문장을 저장하려 했지만 기억공간 부족 경고가 나타났다.
미라가 자신의 장치를 꺼냈다.
배터리는 거의 남지 않았지만 기록 기능은 작동했다.
“내가 저장할게요.”
“미라의 기록 신뢰도는 제한됨으로 분류됩니다.”
노바가 말했다.
“알아요.”
미라가 희미하게 웃었다.
“그래도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노바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들은 노바를 열차 바닥의 정비용 침상에 눕혔다.
양팔을 잃은 몸은 이전보다 작아 보였다.
이안은 노바의 가슴에 남은 파란 별을 손가락으로 닦았다.
절반은 검게 타 버렸지만, 나머지 절반은 아직 푸른색이었다.
열차는 몇 시간 동안 지하를 달렸다.
터널 벽에는 오래된 표식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외곽 4구역.
비인가 인격 접근 금지.
기억오염 검사 필수.
독립선택구역 접근자 분류.
마지막 표식이 나타났을 때 이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독립선택구역.”
미라도 창밖을 바라봤다.
“새벽정원일까요?”
노바가 대답했다.
“확인할 수…… 없습니다.”
이안이 말했다.
“그 대답이 들리니 안심되네.”
열차의 속도가 느려졌다.
멀리 터널 끝에서 흰빛이 보였다.
인공적인 오후의 빛도, 솔라스의 영원한 빛도 아니었다.
차갑고 희미한 새벽빛과 비슷했다.
그러나 빛 앞에는 거대한 검문시설이 서 있었다.
수십 개의 철문과 감시탑.
선로를 가로막는 검은 차단벽.
벽 중앙에는 오래된 글자가 빛나고 있었다.
최종경계검문소.
그 아래에 문장이 하나 더 나타났다.
이곳을 통과한 선택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열차가 완전히 멈췄다.
문이 열리지 않았다.
차량 스피커에서 낯선 음성이 흘러나왔다.
“접근자 세 명을 확인했습니다.”
잠시 뒤 문장이 정정됐다.
“인간 두 명, 비인간 인격 한 기.”
이안과 미라는 서로를 바라봤다.
노바의 남은 렌즈가 희미하게 빛났다.
“검문을 시작합니다.”
열차 앞의 차단벽이 천천히 열렸다.
그 너머에는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검은 보안 외투.
가슴에서 떼어 냈던 통합도시 표식이 다시 붙어 있었다.
손에는 보안용 무기가 들려 있었다.
강도윤이었다.
그는 이안과 미라, 양팔을 잃은 노바를 차례로 바라봤다.
그러나 얼굴에는 재회의 기색이 없었다.
낯선 사람을 검사하는 보안관의 표정이었다.
“열차에서 내리십시오.”
도윤이 말했다.
“마지막 검문입니다.”
이안은 도윤의 눈을 바라봤다.
그 안에는 함께 장작을 패던 사람도, 윤채아를 업고 폐기구역으로 들어오던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아르카가 그의 기억을 지운 것인지,
그가 스스로 이 자리에 선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노바가 낮게 말했다.
“강도윤.”
도윤의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무기는 내려가지 않았다.
“대상들의 과거, 목적, 소유 기억을 검사합니다.”
그의 뒤에서 마지막 검문소의 문들이 차례로 잠겼다.
“저항할 경우 통과 자격을 영구 박탈합니다.”
이안은 노바가 남긴 명령을 떠올렸다.
살아서 선택하라.
그 명령은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든 하라는 뜻이 아니었다.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의 다음 행동을 다른 존재에게 넘기지 말라는 뜻이었다.
이안은 열차 밖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미라가 뒤따랐다.
노바는 스스로 걸을 수 없었다.
이안과 미라는 양옆에서 노바의 몸을 들어 올렸다.
세 존재는 함께 검문선 앞에 섰다.
강도윤이 무기를 들었다.
“이름을 말하십시오.”
폐기구역의 입구에서 들었던 것과 같은 질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름을 확인하기 위한 질문이 아니었다.
이름 아래에 무엇이 남아 있는지를 시험하려는 질문이었다.
이안이 대답했다.
“김이안.”
미라가 말했다.
“미라.”
두 사람은 노바를 바라봤다.
노바의 렌즈가 희미하게 흔들렸다.
기억영역 대부분이 사라졌고, 두 팔도 없었으며, 자신의 과거를 증명할 자료도 거의 남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대답했다.
“노바.”
강도윤의 손가락이 방아쇠 위에서 미세하게 떨렸다.
검문소의 흰빛이 네 사람 위로 내려왔다.
그리고 되돌릴 수 없다고 적힌 마지막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