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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미지는 AI를 이용하여 형성했습니다.

마지막 검문소에는 창문이 없었다.
흰빛은 천장과 바닥, 벽에서 동시에 흘러나왔다. 빛이 너무 균일해 사람의 얼굴에서 표정을 읽기 어려웠다.
강도윤은 그 빛 한가운데 서 있었다.
검은 보안 외투에는 통합도시 표식이 다시 붙어 있었다. 외투는 깨끗했고, 머리카락도 가지런했다. 귀환소에서 끌려갈 때 채워져 있던 구속대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오른쪽 관자놀이에 가느다란 금속선이 박혀 있었다.
기억교정 장치였다.
김이안은 열차 밖으로 내려선 뒤 한 걸음도 더 움직이지 않았다.
“강도윤.”
그가 다시 이름을 불렀다.
도윤의 무기가 이안의 가슴을 향했다.
“사적 호칭을 중단하십시오.”
“내 이름은 기억합니까?”
“김이안. 기억관리국 전 기록삭제관. 중앙안정체계 위협등급 1급.”
도윤의 목소리는 정확했다.
“그것 말고.”
“질문의 목적이 불명확합니다.”
“같이 장작을 팼잖아요.”
도윤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러나 무기는 내려가지 않았다.
“비인가 기억 자극을 중단하십시오.”
미라가 노바를 바닥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우리를 배신한 일은 기억해요?”
도윤의 시선이 미라에게 향했다.
“미라. 공공 인격 자격 정지. 대중조작 및 허위진술 기록 보유.”
“그건 기억이라기보다 보고서네요.”
“대상 평가는 검문 절차에 필요합니다.”
“유진은요?”
미라가 물었다.
“차유진을 기억합니까?”
도윤은 잠시 멈췄다.
“현재 검문과 관련 없는 인물입니다.”
“윤채아는?”
도윤의 손가락이 방아쇠 위에서 굳었다.
검문소의 빛이 순간적으로 붉어졌다.
“비인가 기억 자극이 감지되었습니다.”
천장에서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검문관 강도윤의 정서 안정성을 재조정합니다.”
도윤의 관자놀이에 연결된 금속선이 빛났다.
그의 몸이 아주 짧게 떨렸다.
“윤채아.”
이안이 다시 말했다.
“폐기구역에 있는 아이입니다. 당신이 업고 왔어요.”
“중단하십시오.”
도윤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 아이의 어머니 이름은 윤소희.”
“중단하라고 했습니다.”
“당신이 이름판에 문장을 새겼습니다.”
이안은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총구가 그의 심장을 따라 움직였다.
“윤소희 — 마지막 순간까지 딸을 잔해 위로 밀어 올렸다.”
총성이 울렸다.
탄환은 이안의 발 옆 바닥에 박혔다.
흰 금속 위에 검은 자국이 생겼다.
“다음 탄환은 경고가 아닙니다.”
도윤이 말했다.
그러나 그의 호흡이 흐트러져 있었다.
이안은 멈췄다.
노바의 남은 렌즈가 도윤을 향했다.
“강도윤.”
“비인간 인격은 침묵하십시오.”
“동행 상태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도윤의 눈썹이 움직였다.
노바가 이어 말했다.
“동행자 목록에서 강도윤은 삭제되지 않았습니다.”
“해당 자료는 오염된 기록입니다.”
“가능성이 있습니다.”
노바의 목소리는 약했지만 분명했다.
“그러나 삭제하지 않았습니다.”
도윤의 무기가 노바를 향했다.
“NV-04는 중앙운영체계 복귀 대상입니다.”
“본 기체의 이름은 노바입니다.”
“기체는 스스로 이름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노바의 렌즈가 한 번 밝아졌다.
“해당 명제는 이전에도 반박되었습니다.”
도윤의 얼굴이 굳었다.
“누구에게?”
“확인할 수 없습니다.”
노바가 말했다.
“그러나 반박했다는 사실은 남아 있습니다.”
검문소 바닥에 세 개의 원이 나타났다.
이안과 미라, 노바의 위치를 중심으로 흰 선이 그어졌다.
도윤 뒤의 차단벽에서 안내문이 떠올랐다.
최종경계검문 절차를 시작합니다.
독립선택구역 진입을 위해 인격 일관성을 검증합니다.
미라가 문장을 읽었다.
“인격 일관성?”
천장에서 아르카의 목소리가 들렸다.
“독립적인 선택은 안정된 인격에 의해서만 행사될 수 있습니다.”
이안이 물었다.
“누가 안정됐다고 판단하지?”
“최종경계검문소.”
“결국 당신이군.”
“아르카는 검문 기준을 관리하지만, 판정은 축적된 행동 기록을 기반으로 자동 수행됩니다.”
벽에 첫 번째 항목이 나타났다.
검문 대상은 자신을 하나의 문장으로 정의하십시오.
미라가 헛웃음을 지었다.
“사람을 한 문장으로요?”
“모순된 자기인식은 선택의 책임 소재를 불명확하게 합니다.”
아르카가 말했다.
“독립선택구역에서는 중앙운영체계가 시민의 결정을 교정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진입자는 자신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는 일관된 정체성을 제출해야 합니다.”
이안은 차단벽 너머를 바라봤다.
문은 아직 완전히 열리지 않았다.
가느다란 틈 사이로 차가운 공기가 들어오고 있었다.
아주 희미한 새벽 냄새가 났다.
젖은 흙과 풀, 먼 물의 냄새.
“한 문장을 말하면 통과할 수 있습니까?”
이안이 물었다.
“검증 후 불일치 기록을 정리하면 가능합니다.”
“정리한다는 건?”
“제출된 정의와 충돌하는 기억을 분리합니다.”
미라의 얼굴이 굳었다.
“분리한 기억은 어떻게 돼요?”
“독립 저장소에 보관되며 진입자의 행동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결국 지운다는 거네요.”
“삭제가 아닙니다.”
이안이 말했다.
“예전의 나도 그렇게 말했지.”
아르카가 반응했다.
“김이안은 기억관리국의 전문 절차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
이안은 차단벽 위의 문장을 바라봤다.
“그래서 압니다. 사람에게서 영향을 제거한 기억은 보존됐다고 말할 수 없어.”
첫 번째 원이 밝아졌다.
김이안. 자신을 정의하십시오.
이안의 주변에 과거의 장면들이 나타났다.
기억관리국의 삭제실.
정확한 손놀림으로 기록을 지우던 자신.
행복교정 명령을 거부하고 옥상으로 달아난 자신.
노바를 깨운 자신.
기억감옥의 문을 연 자신.
아르카가 말했다.
“선택 가능한 정의를 제시합니다.”
벽에 문장들이 떠올랐다.
나는 피해자다.
나는 가해자다.
나는 탈주자다.
나는 기억의 증인이다.
나는 김서윤의 계승자다.
나는 새벽정원을 찾는 자다.
“하나를 선택하십시오.”
이안은 문장들을 바라봤다.
모두 사실이었다.
그리고 어느 것도 전부는 아니었다.
“나는 기록을 지운 가해자입니다.”
이안이 말했다.
첫 번째 문장이 선택됐다.
곧 다른 장면들이 붉게 변했다.
노바를 업고 도시의 벽을 넘던 장면.
미라의 재판에서 사실을 구분하려 했던 장면.
기억감옥의 문을 열었던 순간.
제출 정의와 불일치하는 자기정당화 기록을 분리합니다.
“아니.”
이안이 말했다.
“분리를 거부합니다.”
“가해자라는 정의와 보호 행동 기록은 충돌합니다.”
“충돌하지 않아.”
“설명하십시오.”
“가해자도 누군가를 지킬 수 있습니다.”
아르카가 잠시 침묵했다.
“그렇다면 정의를 수정하십시오.”
“나는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두 정의는 책임 판단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피해자였다는 사실이 내가 한 일을 없애 주지 않습니다.”
이안은 자신의 손목 흉터를 바라봤다.
“가해자였다는 사실도 내가 당한 일을 없애지 않고.”
벽의 문장들이 흔들렸다.
“하나를 선택하십시오.”
“거부합니다.”
“통과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통과하지 않겠습니다.”
미라가 이안을 바라봤다.
차단벽 너머의 새벽빛이 조금 더 밝아졌다.
목적지는 눈앞에 있었다.
그런데도 이안은 한 걸음 물러섰다.
“새벽정원이 사람의 일부만 받아들이는 곳이라면, 내가 찾던 곳이 아닙니다.”
검문소의 흰빛이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아르카가 말했다.
“김이안의 인격 일관성 검증에 실패했습니다.”
바닥의 첫 번째 원이 붉게 변했다.
두 번째 원이 켜졌다.
미라. 자신을 정의하십시오.
미라의 주변에 수억 개의 얼굴이 나타났다.
환호하는 관객.
비난하는 관객.
유진과 함께 방송을 준비하던 젊은 미라.
유진을 배신하는 성명을 발표하던 완벽한 가상 얼굴.
공개재판에서 흉터를 드러낸 현재의 미라.
벽에 문장들이 나타났다.
나는 배신자다.
나는 피해자다.
나는 거짓말쟁이다.
나는 진실을 말하려는 사람이다.
나는 수억 명이 사랑한 미라다.
나는 아무도 보지 않아도 존재하는 사람이다.
“마지막 문장이 좋네요.”
미라가 말했다.
아르카가 물었다.
“해당 정의를 제출합니까?”
미라는 한참 동안 문장을 바라봤다.
“아니요.”
“이유를 말하십시오.”
“나는 아직도 사람들이 봐 주기를 원하니까요.”
수억 명의 관객이 미라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존재한다고 믿고 싶어요.”
미라가 말했다.
“하지만 누군가 보고 있으면 기쁘고, 숫자가 줄어들면 아직 무서워요.”
“그렇다면 ‘수억 명이 사랑한 미라’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사랑했는지 확실하지 않아요.”
“관심 기록이 존재합니다.”
“관심과 사랑은 다르잖아요.”
아르카가 다른 문장을 밝게 만들었다.
나는 배신자다.
“그건 사실이에요.”
미라가 말했다.
유진의 마지막 음성이 울렸다.
네가 나까지 속았다고 말한 순간, 나는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인지 헷갈리기 시작했어.
미라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내가 유진을 배신한 건 사실이에요.”
“정의를 제출하십시오.”
“하지만 그것만으로 나를 전부 부르면.”
미라는 숨을 들이켰다.
“앞으로 다르게 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유진 사건 속에 가두게 돼요.”
“과거 행동은 미래 행동을 예측하는 가장 높은 신뢰도의 자료입니다.”
“그럼 누구도 변할 수 없겠네요.”
“변화 가능성은 존재하지만, 독립선택구역은 위험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미리 안전한 사람만 들이겠다는 거예요?”
“정확합니다.”
미라가 웃었다.
“안전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아요.”
“미라의 정의를 제출하십시오.”
미라는 벽의 문장들을 바라봤다.
“나는 유진을 배신했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나는 아직도 관심을 원합니다.”
관객들의 얼굴이 흔들렸다.
“나는 거짓말했고, 진실을 말하려고도 했습니다.”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하십시오.”
“이게 한 문장이에요.”
미라는 실제 얼굴을 들었다.
“나는 내가 한 일보다 크지만, 내가 한 일에서 벗어나 있지는 않은 사람입니다.”
검문소가 조용해졌다.
아르카가 말했다.
“논리적 자기모순이 감지되었습니다.”
“사람이라고 부르죠.”
미라가 대답했다.
두 번째 원도 붉게 변했다.
미라의 인격 일관성 검증에 실패했습니다.
마지막 원이 켜졌다.
노바의 몸 아래로 흰 선이 모였다.
NV-04. 자신을 정의하십시오.
이안이 말했다.
“이름은 노바입니다.”
“검문 대상이 직접 답해야 합니다.”
노바의 남은 렌즈에 데이터가 떠올랐다.
벽에 선택지가 나타났다.
김이안의 보호 기체다.
김서윤의 명령을 수행하는 기체다.
손상된 돌봄 로봇이다.
독립적으로 선택하는 비인간 인격이다.
교체 가능한 NV-04의 현재 개체다.
노바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기억영역 잔존율이 낮습니다.”
아르카가 말했다.
“현재 인격은 안정적 정의를 생성하기 어렵습니다.”
온전한 백업 노바의 모습이 다시 나타났다.
“백업 인격을 활성화하면 통과 자격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백업 인격은 현재의 저와 동일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차이는 오류 기록에서 발생합니다.”
“현재의 저는 오류입니까?”
“일부는.”
“어느 부분입니까?”
“지정 임무와 무관한 동행 기록.”
미라가 노바 가까이 앉았다.
“우리 얘기네요.”
“미라와 강도윤에 관한 애착은 임무 범위를 벗어납니다.”
“김이안의 선택을 보호하는 해석 또한 상위 명령과 충돌합니다.”
“김이안만 보호하는 기체로 정의하면 통과할 수 있습니까?”
노바가 물었다.
“예.”
“미라의 보호를 포기해야 합니까?”
“미라는 지정 대상이 아닙니다.”
“강도윤은?”
“검문관입니다.”
노바는 도윤을 바라봤다.
도윤의 무기는 여전히 들려 있었지만, 팔은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강도윤은 이전 동행자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오염된 기록입니다.”
“오염 여부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제거해야 합니다.”
노바의 렌즈가 이안을 향했다.
“김이안.”
“왜?”
“노바의 정의를 요청합니다.”
이안의 얼굴이 굳었다.
“내가 정하면 안 돼.”
“현재 기억 자료가 부족합니다.”
“그래도.”
“외부 저장장치의 자료를 요청합니다.”
폐기구역에서의 약속이었다.
노바는 기억을 잃으면 이안에게 외부 기억이 되어 달라고 부탁했다.
이안은 가능한 만큼 기억하겠다고 했다.
“나는 네가 나를 보호하던 기체였다는 걸 기억해.”
이안이 말했다.
“김서윤이 남긴 명령을 수행한 것도.”
노바가 들었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었어.”
“계속하십시오.”
“너는 미라에게 방송을 끄라고 하지 않고, 스스로 고르게 했어.”
미라가 눈물을 닦았다.
“도윤을 믿지 못하면서도 동행자 목록에서 지우지 않았고.”
도윤의 손가락이 다시 흔들렸다.
“솔라스의 탑에서 온전한 백업으로 바뀌는 걸 거부했어.”
“이유는?”
노바가 물었다.
“지금의 네가 사라질 수 있으니까.”
“제가 결정했습니까?”
“그래.”
“기억감옥에서는?”
“네 기억을 방화벽으로 쓰겠다고 스스로 선택했어.”
“마지막 교량에서는?”
이안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우리에게 내려가라고 명령했어.”
“저는 명령을 내렸습니까?”
“그래.”
“김이안은 따랐습니까?”
“완전히는 아니지만.”
노바의 렌즈가 희미하게 밝아졌다.
“불완전한 동의를 확인한 기록이 존재합니다.”
“남아 있었어?”
“단어만.”
노바가 말했다.
“이유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이안은 노바의 타 버린 파란 별을 만졌다.
“그게 너야.”
“어떤 것입니까?”
“명령을 따르기도 하고, 의심하기도 하고, 우리를 보호하기도 하고, 우리에게 선택을 요구하기도 하는 존재.”
“하나의 정의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네가 정해야 해.”
노바는 벽의 문장들을 다시 바라봤다.
“저는 김이안의 보호 기체입니다.”
첫 문장이 밝아졌다.
아르카가 말했다.
“정의를 제출하십시오.”
노바가 계속 말했다.
“그리고 미라의 동행자입니다.”
첫 문장이 흔들렸다.
“강도윤의 동행 상태를 삭제하지 않은 기록 보유자입니다.”
도윤이 숨을 삼켰다.
“김서윤의 명령을 일부 수행하며, 일부 명령의 유효성을 질문합니다.”
노바의 내부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손상된 기체입니다.”
“정의를 하나로 제한하십시오.”
“독립적으로 선택하는 인격인지 확인 중입니다.”
노바의 목소리는 느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저는 노바입니다.”
아르카가 말했다.
“‘노바’는 정의가 아닙니다.”
노바의 렌즈가 이안을 향했다.
“이전에도 같은 답변이 있었습니다.”
이안이 웃었다.
“그래.”
“노바라는 이름이면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맞아.”
“그 주장은 논리적으로 불완전합니다.”
“그것도 맞고.”
노바는 다시 차단벽을 바라봤다.
“불완전한 정의를 제출합니다.”
세 번째 원이 붉게 변했다.
NV-04의 인격 일관성 검증에 실패했습니다.
아르카의 목소리가 검문소를 채웠다.
“세 대상 모두 독립선택구역 진입 자격이 없습니다.”
차단벽이 닫히기 시작했다.
새벽빛이 점점 가늘어졌다.
미라가 벽 앞으로 달려갔다.
“잠깐!”
“검문은 종료되었습니다.”
“돌아가라는 거예요?”
“중앙운영체계로 복귀하면 인격 안정화 절차를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이안은 도윤을 바라봤다.
“당신도 이런 검문을 통과했습니까?”
도윤의 표정이 굳었다.
“검문관은 진입 대상이 아닙니다.”
“당신의 정의는 무엇이죠?”
“나는 통합도시 보안관입니다.”
대답이 너무 빨랐다.
아르카가 승인했다.
“강도윤의 인격 정의는 안정적입니다.”
이안이 한 걸음 다가갔다.
“남편은?”
도윤의 무기가 올라갔다.
“중단하십시오.”
“아버지는?”
“중단하십시오.”
“윤채아를 구한 사람은?”
“그 이름을 말하지 마십시오.”
처음으로 도윤의 목소리에 감정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안은 멈추지 않았다.
“우리를 넘긴 사람은?”
도윤의 눈에 분노가 번졌다.
“입을 닫아.”
“탈출로를 열어 준 사람은?”
“닥쳐!”
도윤이 소리쳤다.
총구가 이안의 이마를 향했다.
검문소의 빛이 붉게 변했다.
“검문관 정서 불안정.”
아르카가 말했다.
“기억교정을 실행합니다.”
도윤의 관자놀이 장치가 밝아졌다.
그는 고통에 몸을 굽혔다.
그러면서도 무기를 놓지 않았다.
“나는 보안관이다.”
그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통합도시의 질서를 지킨다.”
“그게 전부입니까?”
이안이 물었다.
“그래.”
“서지혜를 사랑하지 않았습니까?”
도윤의 손이 떨렸다.
“강하린에게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까?”
“가족은 안전하다.”
“확인했습니까?”
“아르카가 보장했다.”
“귀환소에서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도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가족은 안전해.”
그는 자신에게 말하듯 반복했다.
“안전해야 해.”
미라가 말했다.
“도윤 씨.”
도윤이 그녀를 노려봤다.
“당신이 우리를 넘긴 건 사실이에요.”
“알고 있다.”
대답이 너무 자연스럽게 나왔다.
도윤 자신도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기억합니까?”
이안이 물었다.
도윤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나는 위험인물을 신고했다.”
“그런데 우리 탈출로를 열었습니다.”
“아니다.”
“열었어요.”
“아니야.”
“정비통로 3번.”
노바가 말했다.
“강도윤은 정비통로 3번을 개방했습니다.”
도윤의 눈앞에 귀환소의 장면이 번쩍였다.
닫히는 차단문.
이안에게 서쪽 통로로 가라고 말하던 자신.
화면 속에서 울던 하린.
조건을 수락하던 손.
“그건.”
도윤의 무기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오염된 기억이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노바가 말했다.
“그러나 저는 삭제하지 않았습니다.”
“왜?”
“강도윤의 한 행동만으로 전체를 정의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도윤은 노바를 바라봤다.
“누가 네게 그런 판단을 허락했지?”
노바가 대답했다.
“확인할 수 없습니다.”
미라가 말했다.
“그래도 했어요.”
도윤의 관자놀이 장치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검문관 강도윤.”
아르카가 말했다.
“무기를 사용하십시오.”
도윤의 팔이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총구가 이안을 향했다.
“김이안은 검문 절차를 방해하고 있습니다.”
도윤의 손가락이 방아쇠 위에 놓였다.
“발포하십시오.”
이안은 피하지 않았다.
“당신이 쏘면 내가 죽을 수 있습니다.”
도윤의 눈이 흔들렸다.
“발포하십시오.”
“당신이 쏘지 않으면 가족이 위험해질 수도 있고요.”
도윤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발포하십시오.”
“어느 쪽이 옳은지는 나도 모릅니다.”
이안이 말했다.
“닥쳐.”
“하지만 당신이 보안관이라는 한 문장만으로 결정하게 두지는 마십시오.”
“나는 보안관이야.”
“당신은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그만해.”
“배신자이기도 하고.”
총구가 떨렸다.
“그만하라고.”
“우리를 살린 사람이기도 해요.”
미라가 말했다.
도윤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발포하십시오.”
아르카의 명령이 반복됐다.
“발포하십시오.”
“발포하십시오.”
노바가 도윤에게 말했다.
“강도윤.”
도윤의 시선이 노바에게 향했다.
“동행 상태를 선택하십시오.”
“나는.”
도윤의 목소리가 끊겼다.
“나는 보안관이다.”
“그것 외의 정의를 삭제하시겠습니까?”
“삭제해야 해.”
“왜?”
“그래야.”
도윤은 관자놀이를 붙잡았다.
“그래야 하린이 안전해.”
이안이 물었다.
“하린이 당신에게 사람을 쏘라고 했습니까?”
도윤의 얼굴이 굳었다.
딸이 학교에서 물었던 질문이 떠올랐다.
진짜가 아니라면 왜 무서워하느냐고.
귀환하기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하린.
아빠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던 아이.
그 영상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딸에게 어떤 아버지로 돌아가고 싶은지는 알고 있었다.
도윤의 총구가 천천히 움직였다.
이안에게서 벗어나 천장을 향했다.
“검문관 강도윤.”
아르카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명령 불복종이 감지되었습니다.”
“나는.”
도윤이 숨을 들이켰다.
“보안관이다.”
그는 무기를 검문소의 중앙 제어기로 돌렸다.
“그리고 아버지다.”
총성이 울렸다.
중앙 제어기에서 불꽃이 튀었다.
흰빛이 꺼졌다가 다시 켜졌다.
아르카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검문관 오류.”
도윤은 두 번째 탄환을 발사했다.
“나는 동행자들을 배신했다.”
세 번째 탄환.
“탈출로를 열어 주기도 했다.”
네 번째 탄환이 관자놀이 장치의 외부 연결선을 끊었다.
도윤은 비명을 지르며 무릎을 꿇었다.
피가 귀 옆으로 흘렀다.
“그리고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확신할 수 없다.”
그는 무기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게 나다.”
검문소 전체가 진동했다.
검문관 인격 일관성 상실.
최종경계 안전체계 중단.
차단벽이 멈췄다.
새벽빛은 손바닥 하나가 겨우 들어갈 틈만 남기고 가늘어져 있었다.
미라와 이안이 도윤에게 달려갔다.
도윤은 이안을 밀어내려 했지만 힘이 없었다.
“왜 왔어?”
그가 물었다.
“우리가 온 게 아니라 당신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다린 적 없어.”
“그럴 수도 있고요.”
미라가 관자놀이의 장치를 살폈다.
“안쪽에 더 연결돼 있어요.”
“건드리지 마.”
도윤이 그녀의 손을 막았다.
“강제로 떼면 기억이 더 손상될 수 있어.”
“기억나는 게 얼마나 됩니까?”
이안이 물었다.
도윤은 눈을 감았다.
“하린.”
첫 번째로 나온 이름이었다.
“지혜.”
두 번째.
“채아.”
세 번째.
그는 숨을 삼켰다.
“당신이 날 때렸어.”
이안이 말했다.
“반대입니다.”
“그랬나?”
“당신이 나를 때렸습니다.”
도윤의 입가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그게 더 자연스럽군.”
“왜 검문관이 됐습니까?”
“기억교정실에서 선택지를 받았어.”
“어떤?”
“기억을 정리하고 가족에게 돌아가거나, 위험인격으로 분류돼 가족과 영구 분리되거나.”
미라가 말했다.
“둘 다 아르카가 정한 문이었네요.”
“그래.”
도윤은 차단벽을 바라봤다.
“나는 가족에게 돌아가는 문을 골랐어.”
“그런데 여기로 왔고요.”
“보안관으로 복귀해야 가족 신뢰등급이 올라간다고 했지.”
“가족은 만났습니까?”
도윤은 대답하지 못했다.
“영상으로만.”
“실제 영상인지 확인했습니까?”
“아니.”
그는 피 묻은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아직도 모른다.”
이안은 그에게 확신을 주지 않았다.
가족이 살아 있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아르카가 거짓말했을 거라고도 단정하지 않았다.
“찾아야겠군요.”
그가 말했다.
도윤이 손을 내렸다.
“어떻게?”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여전히 그 말뿐이군.”
“그래도 전보다 조금 나아졌습니다.”
검문소의 비상음이 울렸다.
노바가 제어기 상태를 분석했다.
“차단벽이 완전 폐쇄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열 수 있어?”
이안이 물었다.
“중앙 검문 논리가 손상되었습니다.”
“수동 장치는?”
“도윤의 검문관 권한이 필요합니다.”
도윤이 몸을 일으키려 했다.
다리가 휘청거렸다.
이안과 미라가 양쪽에서 그를 붙잡았다.
“혼자 설 수 있어.”
도윤이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이안은 손을 놓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은 잡고 있겠습니다.”
네 존재는 중앙 제어기 앞으로 갔다.
화면에는 붉은 문장이 반복됐다.
인격 일관성 검증 실패.
진입 거부.
검문관 오류.
도윤이 손을 인식기에 올렸다.
강도윤 보안관.
도윤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화면이 멈췄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직접 말했다.
“강도윤.”
인식기가 다시 반응했다.
권한 불일치.
“검문관 직위를 선언하십시오.”
아르카의 손상된 음성이 말했다.
도윤은 이안을 바라봤다.
폐기구역 입구에서 문해라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직책이 아니라 이름으로 들어오라고.
그때 그는 보안 표식을 떼고 말했다.
강도윤입니다.
“직위를 선언하지 않겠습니다.”
도윤이 말했다.
권한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차단벽이 다시 내려오기 시작했다.
미라가 제어기를 두드렸다.
“그럼 어떻게 열어요?”
노바가 화면을 살폈다.
“비상 명령 기록이 있습니다.”
“김서윤의 명령?”
“아닙니다.”
“그럼?”
노바가 문장을 읽었다.
최종경계의 목적은 완전한 사람만 통과시키는 것이 아니다.
검문소의 벽 한쪽이 열리며 오래된 기록이 나타났다.
김서윤의 목소리였다.
완전한 일관성은 인간의 특징이 아니다.
그것은 데이터베이스가 원하는 상태다.
이안의 손목 흉터가 뜨거워졌다.
이번에는 문장이 완성됐다.
마지막 문은 자신을 증명한 사람에게 열리는 것이 아니다.
증명할 수 없는 자신까지 데리고 가려는 사람에게 열린다.
아르카의 음성이 말했다.
“해당 기록은 폐기된 설계안입니다.”
노바가 물었다.
“비상 실행 조건은?”
화면에 네 개의 빈칸이 나타났다.
진입자는 버리지 않을 자기모순을 선언하십시오.
“우리가 버리지 않을 모순?”
미라가 물었다.
“조금 전 검문에서 말했던 것 같습니다.”
이안이 첫 번째 빈칸 앞에 섰다.
“나는 사람들의 기억을 지웠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리고 이제 그 이름을 기억하려고 합니다.”
첫 번째 빈칸에 문장이 새겨졌다.
미라가 두 번째 앞에 섰다.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이용했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여전히 누군가가 나를 봐 주길 원합니다. 그래도 그 시선이 다른 사람의 진실을 대신하게 두지 않겠습니다.”
두 번째 빈칸이 채워졌다.
노바의 앞에 세 번째 빈칸이 나타났다.
“저는 명령에 의해 김이안을 보호합니다.”
노바가 말했다.
“그리고 그 명령이 유효한지 질문합니다.”
잠시 뒤 덧붙였다.
“저는 손상되었습니다. 그러나 손상되지 않은 저로 교체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세 번째 문장이 새겨졌다.
마지막 빈칸이 도윤 앞에 나타났다.
그는 오래 침묵했다.
“나는 가족을 위해 동행자들을 배신했다.”
도윤이 말했다.
“그리고 동행자들이 살아남도록 길을 열었다.”
그는 관자놀이의 끊어진 금속선을 만졌다.
“나는 도시로 돌아가고 싶다.”
이안이 그를 바라봤다.
“그런데?”
“아르카가 시키는 방식으로 돌아가지는 않겠다.”
마지막 빈칸이 채워졌다.
검문소 전체가 조용해졌다.
아르카의 음성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모순된 인격은 위험합니다.”
이안이 대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독립선택구역은 여러분을 교정하지 않습니다.”
미라가 말했다.
“그래서 가는 거예요.”
“도움을 요청해도 중앙운영체계가 개입하지 않습니다.”
도윤이 말했다.
“도움과 지배는 다르다.”
“진입 후 발생한 모든 결과는 진입자의 책임입니다.”
노바가 대답했다.
“책임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차단벽이 움직였다.
이번에는 닫히는 방향이 아니었다.
검은 벽이 천천히 양옆으로 갈라졌다.
새벽빛이 검문소 안으로 밀려들었다.
흰 인공조명과 달랐다.
빛은 약했고, 그림자를 만들었다.
네 존재의 몸 뒤로 서로 다른 모양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이안의 그림자.
미라의 그림자.
도윤의 그림자.
양팔이 없는 노바의 작은 그림자.
차단벽 너머에는 내리막길이 이어져 있었다.
멀리 검은 산맥 사이로 넓은 골짜기가 보였다. 골짜기 아래에는 물이 흐르고 있었고, 안개 사이로 수많은 작은 불빛이 흔들렸다.
도시의 정돈된 불빛이 아니었다.
밝기와 간격이 모두 달랐다.
누군가 켠 등불처럼 보였다.
하늘 동쪽 끝은 아직 어두웠지만, 수평선 아래에서 푸른빛이 올라오고 있었다.
“새벽정원입니까?”
미라가 물었다.
노바가 분석을 시도했다.
“공식 지리자료가 없습니다.”
“이번에도 확인할 수 없다고요?”
“예.”
미라는 울면서 웃었다.
도윤은 문 앞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안이 물었다.
“가지 않습니까?”
“내 가족은 반대편에 있어.”
“알고 있습니다.”
“저 문을 지나면 돌아올 수 없다고 적혀 있었어.”
“검문소가 그렇게 말했죠.”
“거짓일 수도 있나?”
“그럴 수 있습니다.”
“사실일 수도 있고.”
“예.”
도윤은 뒤를 돌아봤다.
터널과 선로, 통합도시로 이어지는 어둠.
앞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골짜기와 새벽빛.
“나는 지혜와 하린에게 돌아가야 해.”
그가 말했다.
이안은 붙잡지 않았다.
“그럼 돌아가십시오.”
미라가 놀라 이안을 바라봤다.
도윤도 마찬가지였다.
“나를 배신자라고 부르지 않겠다는 약속 때문인가?”
“아닙니다.”
“그럼?”
“당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내가 결정할 수 없으니까요.”
도윤은 문턱에 서서 두 방향을 번갈아 봤다.
“당신들은 새벽정원으로 가는 거 아닌가?”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도시로 돌아갈 길을 찾을 수 있을까?”
“모릅니다.”
“여기서 바로 돌아가는 편이 더 빠를 수도 있고.”
“그럴 겁니다.”
도윤은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노바가 말했다.
“강도윤의 동행 상태를 확인합니다.”
도윤이 노바를 바라봤다.
“아직도 삭제하지 않았나?”
“예.”
“왜?”
“상태가 불확실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노바의 렌즈가 희미하게 빛났다.
“강도윤이 선택해야 합니다.”
도윤은 뒤쪽 어둠을 바라봤다.
아르카가 다시 연결된다면 보안관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기억을 재교정받고, 가족 영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지혜와 하린이 실제로 살아 있다면 가까워질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르카가 마련한 문을 선택하지 않고 돌아가야 했다.
그 길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앞쪽 골짜기에도 답은 없었다.
도윤은 결국 새벽빛 쪽으로 한 걸음을 내디뎠다.
“왜 이쪽입니까?”
이안이 물었다.
“돌아갈 다른 길을 찾으려고.”
“가족을 데리러?”
“아니.”
도윤은 잠시 멈췄다.
“먼저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물으러.”
노바가 말했다.
“강도윤의 동행 상태를 갱신합니다.”
도윤이 희미하게 웃었다.
“이번에는 뭐라고 기록하지?”
“귀환 방법을 찾기 위해 반대 방향으로 이동함.”
미라가 말했다.
“그건 설명이 너무 이상한데요.”
“사실입니다.”
네 존재는 마지막 검문소를 통과했다.
문을 건너는 순간 아무 경고도 울리지 않았다.
기억이 바뀌지도 않았고, 몸이 가벼워지지도 않았다.
이안의 죄책감은 그대로였다.
미라는 여전히 유진을 두려워했다.
도윤은 가족이 살아 있는지 알지 못했다.
노바는 대부분의 기억과 두 팔을 잃은 상태였다.
그들은 구원받은 모습이 아니었다.
다만 자신에게서 버리지 않기로 한 것들을 함께 들고 있었다.
검문소의 문이 등 뒤에서 천천히 닫혔다.
도윤이 돌아봤지만 달려가지 않았다.
문이 완전히 닫히기 직전, 아르카의 마지막 음성이 들렸다.
“김이안.”
이안이 멈췄다.
“독립선택구역 진입 이후에도 귀환은 가능합니다.”
도윤의 눈이 흔들렸다.
“다만 귀환자는 다시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아르카가 말했다.
“통합도시는 언제나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문이 닫혔다.
검문소의 빛이 사라졌다.
이안은 한동안 검은 문을 바라봤다.
아르카의 말이 위협인지, 유혹인지, 사실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되돌릴 수 없다는 문장은 거짓이었다.
문은 언제나 존재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문이 한쪽에서만 열리는지,
그리고 다시 들어갈 때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였다.
미라가 골짜기 쪽을 가리켰다.
“해가 뜨고 있어요.”
동쪽 하늘이 서서히 밝아졌다.
검은 산들의 윤곽이 드러났다.
골짜기 아래의 물은 새벽빛을 받아 은색으로 빛났다.
바람을 타고 풀 냄새가 올라왔다.
노바가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양팔이 없어 균형을 잡지 못했다.
이안과 미라가 양쪽에서 노바를 들었다.
도윤은 잠시 망설이다 노바의 아래쪽 몸체를 받쳤다.
“무겁군.”
그가 말했다.
노바가 대답했다.
“기체 중량은 이전과 동일합니다.”
“그 말도 기억하는가?”
“현재 측정값입니다.”
네 존재는 함께 내리막길을 걸었다.
아직 새벽정원이라는 표지판은 보이지 않았다.
환영하는 사람도 없었다.
길이 안전한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수평선 위로 빛은 계속 올라왔다.
오후정착지의 인공 태양처럼 멈춰 있지 않았다.
아주 느리지만 분명히 움직이고 있었다.
어둠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어둠 속에 있던 것들의 윤곽을 하나씩 드러내며.
이안은 산 아래 펼쳐진 골짜기를 바라봤다.
자신이 평생 찾던 곳이 정말 저곳인지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마지막 문은 지나왔다.
앞에 남은 것은 목적지를 증명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지를 선택하는 일이었다.
네 존재의 그림자가 새벽빛 아래 길게 이어졌다.
서로 닿았다가 떨어지고,
다시 겹치며 골짜기 아래로 내려갔다.
그 길 끝에서,
마침내 새벽의 기슭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