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1) 지도에 없는 북쪽
통합도시의 북쪽에는 길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지도에 표시되는 길이 없었다.
시민용 운송망은 북부 제5생활권에서 끝났다. 그 너머에는 오래된 물류창고와 폐쇄된 발전시설, 도시 건설 초기에 사용되었던 지하 운송터널이 남아 있었다. 공식 안내지도에서는 그 일대가 흐린 회색으로 표시되었다.
도시 기반시설 보호구역.
민간인 출입 금지.
시민들은 그곳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통합도시에서 필요한 모든 시설은 생활권 안에 있었다. 직장과 주거지, 의료센터, 공원, 오락시설은 개인별 이동권 안에서 배정됐다. 허가된 경로를 벗어날 이유가 없었고, 이유가 없는 이동은 곧 위험을 뜻했다.
김이안은 태어나서 한 번도 북부 제5생활권 너머로 가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그의 발은 북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가 경로를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도시가 선택해 주는 길을 따르지 않기로 했을 뿐이었다.
거리의 대형 화면마다 이안의 얼굴이 나타나 있었다.
어떤 화면에서는 국가기억관리국 제복을 입고 있었고, 어떤 화면에서는 조금 전 아파트 옥상에서 촬영된 모습이 재생됐다. 숨을 몰아쉬며 외벽 승강기에 올라타는 장면이었다.
화면 아래에는 붉은 글씨가 반복해서 흘렀다.
정서적 보호 대상.
접근 금지.
발견 시 즉시 신고하십시오.
처음에는 사람들이 이안을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북쪽으로 갈수록 길에 사람이 줄었고, 지나가는 시민 하나하나가 그를 오래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안은 골목 끝에 놓인 무인 의류수거함을 발견했다. 잠금장치가 있었지만 손목을 가까이 대자 이상할 만큼 쉽게 열렸다.
안에는 세탁을 기다리는 작업복 몇 벌이 들어 있었다.
그는 회색 관리복과 낡은 방수 외투를 꺼냈다. 기억관리국 제복을 벗어 수거함 깊숙이 밀어 넣은 뒤 관리복으로 갈아입었다.
문제는 얼굴이었다.
통합도시의 모든 공공 카메라는 시민의 얼굴뿐 아니라 걸음걸이, 체형, 체온, 심장박동까지 식별했다. 옷을 바꾸는 것으로는 오래 숨을 수 없었다.
이안은 손목 인터페이스를 내려다봤다.
화면은 꺼져 있었지만 장치 자체는 피부 아래에 이식되어 있었다. 필요하다면 중앙체계가 강제로 다시 연결할 수도 있었다.
그는 근처 공공세면대에서 차가운 물을 얼굴에 끼얹었다.
거울 속에는 자신이 알던 김이안이 있었다.
매일 같은 시각에 출근하고, 정해진 업무량을 처리하며, 특별한 문제 없이 살아온 남자.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저 얼굴이 도시 전체에 수배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합리적인 판단이 어려운 상태.”
이안은 화면에서 보았던 문장을 중얼거렸다.
자신을 체포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보호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보호와 체포의 차이가 무엇인지 이제 알 수 없었다.
이안은 세면대 아래의 비상보관함을 열었다. 소독제, 붕대, 체온 유지포가 들어 있었다. 그는 필요한 물건을 주머니에 넣었다.
손을 빼려는 순간, 보관함 안쪽에서 작은 금속 조각이 떨어졌다.
낡은 수동식 절단기였다.
통합도시의 물건답지 않았다. 날이 직접 드러나 있었고, 안전잠금장치도 없었다. 도시 건설 초기에 사용된 장비인 듯했다.
이안은 절단기를 들어 손목 가까이 가져갔다.
인터페이스를 제거할 수 있을까.
피부를 절개하고 장치를 뜯어내면 추적을 피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생체 인터페이스는 신경과 혈관에 연결되어 있었다. 전문 장비 없이 제거하면 손을 잃거나 죽을 수도 있었다.
절단기의 차가운 날이 흉터 위에 닿았다.
그 순간 피부 아래에서 푸른빛이 번졌다.
이안은 놀라 손을 뗐다.
빛은 짧은 선을 만들었다.
북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북쪽 끝, 폐쇄된 7번 운송망으로 가라.
문을 찾으면, 노바를 깨워라.
머릿속에 나타났던 문장이 다시 떠올랐다.
노바.
사람의 이름인지, 장비의 이름인지 알 수 없었다.
어머니 김서윤이 남긴 흔적이라면 믿어야 할까.
아니면 이 모든 것이 중앙체계가 만든 유인책일까.
아르카는 그가 어떤 기록을 보았는지 알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와 손목의 장치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북쪽으로 가라는 명령조차 그를 한적한 곳으로 유도하기 위한 함정일 수 있었다.
이안은 절단기를 주머니에 넣었다.
선택지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길이 옳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제 돌아갈 곳도 없었다.
도로 위로 순찰 드론 세 대가 지나갔다.
이안은 몸을 숙여 건물 사이로 들어갔다.
도시 중심부의 건물은 밝고 매끄러웠지만, 북쪽으로 갈수록 외벽의 색이 어두워졌다. 광고 화면과 안내표시도 줄었다. 오래된 건물에는 교체되지 않은 금속 배관과 수동식 문이 남아 있었다.
도시는 바깥쪽부터 늙고 있었다.
그 사실은 통합도시의 홍보 영상에서 본 적이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