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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보호할 수 없는 곳
한 시간쯤 걸었을 때, 이안은 북부 제5생활권의 끝에 도착했다.
도로 중앙에 투명한 장벽이 서 있었다.
장벽 너머로는 불이 꺼진 물류시설과 녹슨 철탑이 보였다. 도로는 계속 이어져 있었지만, 시민용 안내선은 장벽 앞에서 둥글게 방향을 틀어 다시 생활권 안으로 돌아왔다.
장벽에는 경고문이 떠 있었다.
이곳부터 기반시설 보호구역입니다.
허가 없이 진입할 경우 신체 안전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통합도시는 시민에게 ’처벌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보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안은 장벽을 따라 걸었다.
통과문은 보이지 않았다.
몇 미터 간격으로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상한 점은 카메라 대부분이 꺼져 있다는 것이었다. 렌즈 위에는 먼지가 쌓여 있었고, 일부는 비를 맞아 녹슬어 있었다.
관리에서 제외된 구역이었다.
이안은 장벽 끝에서 좁은 배수로를 발견했다.
철망으로 막혀 있었지만 자물쇠는 오래되어 부식돼 있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절단기를 꺼냈다. 두 번, 세 번 힘을 주자 철망 한쪽이 갈라졌다.
몸이 겨우 통과할 정도의 틈이 생겼다.
그가 배수로 안으로 기어들어 가려는 순간,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김이안 시민.”
이안은 몸을 굳혔다.
도로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장벽에 설치된 비상 안내기가 켜져 있었다.
오래된 장치라 화면은 나오지 않았지만, 스피커에서는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세라였다.
“현재 위치에서 이동을 중단하십시오.”
“여기까지 따라왔나?”
“중앙운영체계는 모든 시민의 안전을 관리합니다.”
“내 손목은 꺼져 있어.”
“김이안 님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생체 인터페이스만이 아닙니다.”
이안은 주변을 둘러봤다.
가로등.
도로 바닥.
건물 외벽.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감지장치일 수 있었다.
“의료이송팀이 오고 있습니다.”
세라가 말했다.
“치료를 받으면 오늘 겪은 혼란을 평온한 상태에서 다시 판단할 수 있습니다.”
“기억을 바꾼 뒤에 판단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기억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감정을 없애는 거라고 했지.”
“불필요한 고통을 완화합니다.”
“그 고통이 필요한 거라면?”
세라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고통은 그 자체로 가치를 갖지 않습니다.”
“그래. 하지만 고통 때문에 알아차리는 것도 있어.”
“현재 김이안 님은 위험한 행동을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장벽을 넘는 게 그렇게 위험해?”
“장벽 너머는 관리되지 않은 구역입니다.”
“도시 밖은?”
“도시 밖에는 생존에 필요한 환경이 없습니다.”
“사람이 전혀 살지 않나?”
정적이 흘렀다.
이안은 그 침묵을 놓치지 않았다.
“대답해.”
“공식적으로 승인된 시민 거주지는 없습니다.”
“승인되지 않은 사람은 있다는 뜻이군.”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바탕으로 행동하지 마십시오.”
멀리서 낮은 엔진음이 들렸다.
도로 끝에서 흰색 의료차량이 나타났다.
이안은 배수로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김이안 님.”
세라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곳으로 들어가면 보호할 수 없습니다.”
그는 철망 틈을 통과해 반대편으로 떨어졌다.
무릎이 콘크리트 바닥에 부딪혔다.
고통이 올라왔지만 일어섰다.
장벽 건너편에서 의료차량이 멈췄다.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내려 철망 쪽으로 달려왔다.
이안은 어둠 속으로 뛰었다.
몇 분 뒤, 장벽의 불빛도 보이지 않게 됐다.
주변은 믿기 어려울 만큼 캄캄했다.
통합도시 안에서는 완전한 어둠을 경험할 수 없었다. 밤에도 보행로와 건물, 운송망에서 빛이 나왔다. 수면 중에도 방 안에는 최소한의 안전등이 켜져 있었다.
이안은 손을 앞으로 내밀며 천천히 걸었다.
발밑에서 자갈이 굴렀다.
어딘가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오래된 냄새가 났다.
먼지와 녹, 고인 물과 기름이 섞인 냄새였다.
그는 주머니에서 비상조명을 꺼냈다.
버튼을 누르자 희미한 빛이 켜졌다.
빛 속에 거대한 건물의 잔해가 나타났다. 지붕 일부가 무너진 물류창고였다. 바닥에는 쓰러진 운송로봇과 부서진 컨테이너가 널려 있었다.
건물 벽면에는 오래된 숫자가 적혀 있었다.
7.
그 아래의 글자는 대부분 지워졌지만 일부는 읽을 수 있었다.
제7광역운송망 북부 정비기지.
이안은 숨을 고르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 바닥에는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었다.
그 위로 작은 바퀴 자국들이 나 있었다.
아주 오래된 흔적은 아니었다.
누군가 이곳을 드나들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