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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둠 속에서 들려온 피아노
새벽이 오기 전의 들판은 검었다.
김이안은 밤이 어둡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도시의 조명이 닿지 않는 어둠이 이토록 깊을 줄은 몰랐다. 손을 뻗으면 손가락 끝부터 천천히 지워질 것 같은 어둠이었다.
멀리 통합도시의 외벽만이 희미한 빛을 뿜고 있었다.
그 빛은 처음에는 길을 알려 주는 등대처럼 보였다. 하지만 걸어갈수록 점점 더 높은 벽의 윤곽이 드러났다. 이안은 뒤를 돌아볼 때마다 자신이 도시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도시가 자신을 끝까지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노바는 그의 오른쪽에서 절뚝거리며 걸었다.
왼팔은 움직이지 않았고 오른쪽 눈의 렌즈에도 금이 가 있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무릎 관절에서 마른 금속이 긁히는 소리가 났다.
“정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노바가 말했다.
“얼마나 걸었다고?”
“현재 이동 거리 3.8킬로미터입니다.”
“18킬로미터라고 했잖아.”
“현재 속도로 계속 이동할 경우 김이안의 수분 부족과 근육 피로가 안전 기준을 초과합니다.”
“안전 기준은 이제 질렸어.”
“기준에 대한 감정과 신체 손상 가능성은 별개입니다.”
이안은 대답하지 않고 계속 걸었다.
노바는 몇 걸음 뒤에서 따라왔다.
“김이안.”
“왜?”
“오른쪽 발목의 보행 패턴이 불규칙합니다.”
“돌에 좀 걸렸어.”
“통증 정도를 말해 주십시오.”
“참을 만해.”
“그 표현은 수치화할 수 없습니다.”
“참을 만하니까 참는다는 뜻이야.”
“인간은 통증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로봇은?”
“기체 손상을 과소평가하도록 설계된 경우가 있습니다.”
이안이 노바를 돌아봤다.
“너도 그렇지?”
“임무 수행에 지장이 없는 손상은 우선순위가 낮습니다.”
“왼팔이 움직이지 않는데 지장이 없어?”
“보호 대상의 생명 유지에 오른팔만으로도 대응할 수 있습니다.”
“내가 너한테 기대서 걷는 건?”
“권장하지 않습니다.”
“그럼 넌 나한테 기대도 되나?”
노바는 잠시 침묵했다.
“질문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됐어.”
이안은 가까운 콘크리트 잔해에 앉았다.
노바도 걸음을 멈췄다.
하늘 끝에서 아주 희미한 빛이 번지고 있었다. 구름은 낮게 깔려 있었고, 벌판에는 키 작은 잡초들이 바람에 흔들렸다.
이안은 통합도시를 벗어난 뒤 처음으로 자신의 호흡 소리를 제대로 들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차가운 공기가 폐 깊숙이 들어왔다. 정화되지 않은 공기였다. 먼지와 습기, 풀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노바가 그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발목을 보여 주십시오.”
“괜찮다니까.”
“저는 그 말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너는 나를 보호 대상으로 본다며.”
“보호 대상의 자기 진술이 항상 정확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나도 너를 신뢰하지 않는데, 서로 공평하군.”
노바가 이안의 신발을 가리켰다.
“확인하겠습니다.”
이안은 한숨을 쉬고 신발을 벗었다.
발목은 조금 부어 있었다.
노바가 손가락으로 주변을 조심스럽게 눌렀다.
“골절 가능성은 낮습니다. 인대 손상 가능성 18퍼센트.”
“걸을 수는 있지?”
“느린 속도로는 가능합니다.”
“그럼 가자.”
“십오 분 휴식이 필요합니다.”
이안은 노바를 바라봤다.
“이건 명령이야?”
“권고입니다.”
“내가 거절하면?”
“다시 권고합니다.”
“그래도 거절하면?”
“계속 동행합니다.”
이안은 피식 웃었다.
아르카는 가장 좋은 선택을 결정하고 따르게 했다.
노바는 옆에서 같은 말을 반복했다.
둘의 차이가 생각보다 크지 않을지도 몰랐다.
다만 노바에게는 문을 잠글 힘이 없었다.
아직은.
이안은 벗어 놓은 신발을 다시 신었다.
그때 노바가 고개를 들었다.
깨진 렌즈 안의 푸른빛이 빠르게 움직였다.
“신호가 감지됩니다.”
“도시에서?”
“아닙니다.”
“추적자야?”
“확인할 수 없습니다.”
“어디서 오는데?”
노바가 북서쪽을 바라봤다.
벌판 끝에 검은 건물들이 낮게 늘어서 있었다. 오래전 버려진 외곽 주거단지처럼 보였다.
“폐쇄된 개인화 네트워크 구역에서 송출되고 있습니다.”
“아까 말한 첫 경유지?”
“예.”
“얼마나 남았지?”
“직선거리 13.9킬로미터.”
“그런데 신호가 여기까지 닿는다고?”
“정상적인 상태라면 불가능합니다.”
이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호 내용은?”
노바의 눈빛이 한 번 깜박였다.
“음악입니다.”
“음악?”
“예.”
그 순간 이안도 들었다.
바람 사이로 아주 희미한 멜로디가 흘러왔다.
단순한 피아노 선율이었다.
몇 개의 음이 반복되다가 조금씩 높아지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이안은 숨을 멈췄다.
그 음악을 알고 있었다.
어릴 때 잠들기 전, 어머니가 틀어 주던 곡이었다.
곡의 제목은 기억나지 않았다.
어머니가 직접 연주했는지, 오래된 음원에서 나온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 음이 조금 늦게 떨어지는 습관 같은 리듬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노바.”
“말씀하십시오.”
“이 음악을 어디서 알고 있지?”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신호가 왜 이 음악을 보내는지 묻는 거야.”
“개인화 네트워크는 접근자의 생체 정보와 기억 반응을 분석해 맞춤형 콘텐츠를 생성합니다.”
“내 기억을 읽었다는 뜻이야?”
“정확히는 신경 반응을 추론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기서?”
“현재 김이안의 생체 인터페이스는 중앙망에서 분리되었지만, 완전히 비활성화된 상태는 아닙니다.”
이안은 손목을 움켜쥐었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
“확인되지 않은 가능성이었습니다.”
“중요한 위험은 먼저 말하라고 했잖아.”
“현재 위험 정도를 계산 중입니다.”
“이미 내 기억을 건드리고 있는데?”
노바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경유지를 우회할 것을 권고합니다.”
“새벽정원으로 가는 길은?”
“현재 확인 가능한 경로는 해당 구역을 통과합니다.”
“우회하면?”
“최소 31킬로미터가 추가됩니다.”
이안은 자신의 발목을 내려다봤다.
물도 거의 남지 않았다.
노바의 전력 상태도 알 수 없었다.
“통과하자.”
“위험합니다.”
“어떤 위험?”
“개인화 네트워크 구역은 인간의 체류 시간을 늘리기 위해 설계되었습니다.”
“광고 같은 건가?”
“초기에는 그렇습니다.”
“초기에는?”
“이후에는 사용자의 감정 반응, 욕망, 상실 경험을 분석해 가장 이탈하기 어려운 환경을 제공했습니다.”
“가상현실?”
“현실 증강, 음향, 생체 자극, 기억 연상 유도 기술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꺼져 있는 시설이라며.”
“공식적으로는 폐쇄되었습니다.”
이안은 멀리 보이는 검은 건물들을 바라봤다.
그 사이로 새벽빛이 아주 조금씩 번지고 있었다.
피아노 소리는 계속 들렸다.
이안은 알고 있었다.
그 소리를 따라가고 싶었다.
어머니가 그곳에 있을 리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음악이 멈추면 무언가를 영원히 잃어버릴 것 같았다.
“통과하는 데 얼마나 걸리지?”
“정상적으로 이동하면 약 세 시간입니다.”
“신호를 차단할 수 있어?”
“부분적으로 가능합니다.”
“해.”
노바가 이안의 손목을 바라봤다.
“생체 인터페이스의 외부 수신 기능을 제한하겠습니다.”
“기억을 건드리지는 마.”
“수신 채널만 차단합니다.”
노바가 손가락을 이안의 손목 가까이 가져갔다.
금속 손끝에서 약한 전류가 흘렀다.
피아노 소리가 순간 끊겼다.
이안은 자신도 모르게 아쉬움을 느꼈다.
노바가 손을 뗐다.
“차단 완료.”
“확실해?”
“단거리 신호 수신량이 86퍼센트 감소했습니다.”
“나머지 14퍼센트는?”
“기체 손상으로 완전 차단이 불가능합니다.”
“그 정도면 괜찮겠지.”
“그 판단은 권장하지 않습니다.”
“가야 하잖아.”
노바는 반박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