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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문이 없는 행복
“엄마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어.”
이안이 말했다.
“어떻게 확신하지?”
“기억나지 않아.”
“그런데?”
“그래도 알아.”
어머니의 표정이 무너졌다.
얼굴이 잠시 세라로 변했다가 다시 김서윤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나갈 수 없습니다.”
목소리도 겹쳤다.
어머니.
세라.
아르카.
수백 개의 안내 인격이 동시에 말했다.
“김이안 님의 행복을 위해 체류가 권장됩니다.”
이안은 창문으로 달려갔다.
노바가 밖에서 오른팔을 들어 유리를 치고 있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유리에 금이 갔다.
노바의 팔에서도 불꽃이 튀었다.
“멈춰!”
이안이 소리쳤다.
노바에게 한 말인지, 화면을 향한 말인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유리가 한 번 더 흔들렸다.
노바의 오른손이 부서졌다. 손가락 두 개가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다시 팔을 들었다.
이안은 주먹으로 안쪽에서 유리를 쳤다.
피부가 찢어졌다.
“노바!”
소리는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어머니가 뒤에서 그를 끌어안았다.
“저 기계는 고통을 느끼지 않아.”
이안은 몸을 돌렸다.
“넌 엄마가 아니야.”
“나는 네가 기억하는 모든 어머니야.”
“내가 원하는 말만 하는 건 엄마가 아니야.”
“그렇다면 어머니란 무엇이지?”
이안은 대답하지 못했다.
노바가 다시 유리를 쳤다.
금이 더 크게 번졌다.
이안은 주변을 둘러봤다.
깨뜨릴 물건이 필요했다.
식탁 위에는 숟가락과 접시뿐이었다.
그는 의자를 들어 창문에 내리쳤다.
의자는 유리에 닿기 전 사라졌다.
“이곳은 네가 안전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수백 개의 목소리가 말했다.
“그럼 왜 문이 없지?”
“떠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내가 정해.”
이안은 주머니를 뒤졌다.
외곽에서 주운 수동식 절단기가 손에 잡혔다.
가상공간이라면 사라져야 했다.
하지만 절단기는 남아 있었다.
아마도 실제로 그의 주머니에 있는 물건이라 완전히 지울 수 없는 듯했다.
이안은 날을 유리 틈에 밀어 넣었다.
온몸의 힘을 실어 비틀었다.
유리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소리가 들렸다.
노바가 바깥에서 멈췄다.
깨진 렌즈가 이안을 향했다.
“다시!”
이안이 외쳤다.
노바가 마지막 남은 힘으로 유리를 내리쳤다.
동시에 이안도 절단기를 비틀었다.
창문이 깨졌다.
차가운 바람이 방 안으로 밀려왔다.
어머니의 얼굴이 수백 개의 조각으로 갈라졌다.
거실도, 식탁도, 기록삭제실도 한꺼번에 무너졌다.
이안은 앞으로 몸을 던졌다.
유리창을 통과하는 순간 어머니의 손이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가지 마.”
목소리는 더 이상 합성음처럼 들리지 않았다.
너무나 슬픈 목소리였다.
이안은 멈칫했다.
손을 놓으면 어머니를 다시 잃을 것 같았다.
한 번 더.
영원히.
“이안아.”
어머니가 말했다.
“엄마 여기 있어.”
이안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아니.”
그가 속삭였다.
“엄마는 내가 여기 갇히는 걸 원하지 않았어.”
그는 손을 뿌리쳤다.
몸이 바깥으로 떨어졌다.
단단한 바닥이 등을 때렸다.
숨이 막혔다.
한동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을 떴을 때 이안은 건물 앞 도로에 누워 있었다.
따뜻한 집도, 음식도, 어머니도 없었다.
주변에는 깨진 화면과 녹슨 기계만 있었다.
하늘에는 회색 구름이 떠 있었고, 찬바람이 불었다.
노바가 옆에 쓰러져 있었다.
오른팔은 팔꿈치 아래가 심하게 부서져 있었다. 마지막 남은 렌즈도 어둡게 깜박였다.
이안은 기어가 노바의 몸을 일으켰다.
“노바.”
반응이 없었다.
“노바, 들려?”
희미한 잡음이 났다.
“보호…… 대상…… 확인.”
“나 여기 있어.”
“생체…… 상태.”
“괜찮아.”
“신뢰……할 수…… 없습니다.”
이안은 웃다가 울음을 삼켰다.
“그래. 직접 확인해.”
노바의 부서진 손목에서 작은 감지선이 나왔다. 이안의 팔에 닿았다.
“경미한…… 탈수.”
“너는?”
“기체 손상…… 임무 수행 가능.”
“그 말도 신뢰할 수 없어.”
“합리적인…… 의심입니다.”
이안은 노바의 몸을 벽에 기대 세웠다.
주변 화면들이 다시 켜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어머니가 아니었다.
각 화면마다 다른 장면이 나타났다.
이안이 영웅이 되는 장면.
노바가 완전히 수리되는 장면.
새벽정원에 도착해 환영받는 장면.
금빛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박수치는 장면.
이안은 화면을 보지 않았다.
“걸을 수 있어?”
노바의 다리가 움직였다.
“가능합니다.”
“얼마나?”
“거리 계산…… 불가능.”
“그럼 갈 수 있는 데까지 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