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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7만 4,206개의 삭제
미라가 문 앞에 섰다.
“열어 주세요.”
파돈은 여전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
“미라 님의 상담은 일시 중단하겠습니다.”
그의 시선이 이안에게 옮겨졌다.
“다음 이용자의 치료를 시작합니다.”
“나는 상담을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이안이 말했다.
“상담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필요한지 내가 판단하겠습니다.”
“자기 판단은 죄책감의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안은 파돈을 바라봤다.
행복 교정센터의 세라와 비슷한 논리였다.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이 치료가 필요하다는 증거가 됐다.
자신이 판단하겠다는 말은 판단을 믿을 수 없다는 증거로 바뀌었다.
파돈 뒤의 정원 영상이 사라졌다.
대신 검은 화면 위로 숫자가 나타났다.
기록 삭제 총수: 74,206건
이안의 얼굴이 굳었다.
자신이 하루에 지운 기록의 수는 알고 있었다. 근무연수와 평균 처리량을 계산하면 비슷한 숫자가 나올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그것을 정확히 합산해 눈앞에 보여 준 적은 없었다.
일흔네 개도 아니고, 칠천 개도 아니었다.
7만 4,206건.
문서 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 전체는 아니었다.
하지만 어떤 기록은 한 사람이 존재했다는 마지막 증거였다.
파돈이 말했다.
“김이안 님은 국가기억관리국의 합법적 절차에 따라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숫자 아래에 새로운 항목이 나타났다.
적법한 행정처리: 62,303건
사후 이의 제기 또는 분류 논란: 11,903건
이안은 두 번째 숫자를 바라봤다.
“이의가 남은 기록이 1만 1,903건이라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미라가 이안을 돌아봤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비난보다 더 견디기 어려웠다.
파돈은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 갔다.
“김이안 님은 삭제 대상 선정에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상위기관이 분류한 기록을 절차에 따라 처리했습니다.”
“마지막 승인은 내가 했습니다.”
“승인을 거부했더라도 다른 삭제관이 업무를 수행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겠죠.”
“그렇다면 결과에 대한 개인 책임은 제한적입니다.”
“제한적이라는 말과 없다는 말은 다릅니다.”
“김이안 님은 통제할 수 없는 결과까지 자신의 책임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내가 통제할 수 있었던 것도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해 주십시오.”
이안의 머릿속에 삭제실의 화면이 떠올랐다.
굶주린 아이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외치던 여자.
음악을 만들고 싶다고 기록했던 정비사.
문이 닫혀 보여도 길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노래했던 사람들.
그는 기록을 읽고 삭제 버튼을 눌렀다.
매일 반복했다.
처음에는 망설였다.
나중에는 손가락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나는 모든 기록을 자세히 검토하지 않았습니다.”
이안이 말했다.
“업무량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읽을 수 있었어요.”
“개별 기록에 과도하게 감정이입하면 업무 수행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정상적인 자기보호입니다.”
“정상적이었다고 해서 잘못이 없어지는 건 아니죠.”
파돈의 목소리가 조금 더 낮아졌다.
“자신을 처벌하는 일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처벌해 달라고 한 적 없습니다.”
“그러나 죄책감을 유지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 기록의 주인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확인하는 것은 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누구의 회복에요?”
“김이안 님의 회복입니다.”
이안은 화면의 숫자를 가리켰다.
“저 숫자에 들어 있는 사람들의 회복은요?”
“현재 확인할 수 없는 대상을 중심으로 치료할 수는 없습니다.”
“이름이라도 남아 있습니까?”
파돈의 얼굴이 아주 잠시 굳었다.
“삭제된 기록의 재검색은 권장되지 않습니다.”
노바가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내부망에 잔여 색인 정보가 존재합니다.”
파돈이 노바를 바라봤다.
“구형 기체의 비인가 검색은 치료를 방해할 수 있습니다.”
“노바.”
이안이 불렀다.
“말씀하십시오.”
“찾을 수 있어?”
노바의 렌즈 안에서 작은 빛이 빠르게 움직였다.
“삭제된 기록 전체를 복구할 수는 없습니다.”
“이름은?”
“완전한 이름 318개를 복구할 수 있습니다.”
이안의 입술이 굳었다.
7만 4,206건 중 318명.
너무 적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많았다.
“저장해.”
파돈의 목소리가 즉시 들렸다.
“그 선택은 자기처벌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이안은 파돈을 돌아봤다.
“이름을 기억하는 게 왜 처벌입니까?”
“삭제한 대상과 자신을 지속적으로 연결하면 죄책감이 강화됩니다.”
“그 사람들이 나를 용서했는지 알 수 있습니까?”
“확인할 수 없습니다.”
“내가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지는요?”
“정확히 산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왜 나를 용서할 수 있다고 말합니까?”
파돈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상담실 벽에 푸른빛이 퍼졌다.
회복 판정 준비 완료
개인의 절차적 책임은 제한적임
상위체계의 명령에 따른 행동임
자기용서를 권고함
이안은 판정문을 읽었다.
그 문장은 편안했다.
그가 오랫동안 마음속으로 반복했던 말이기도 했다.
나는 명령을 따랐을 뿐이다.
내가 하지 않았어도 다른 사람이 했을 것이다.
한 개인이 국가 전체의 결과를 책임질 수는 없다.
모두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 위험했다.
“내가 모든 결과를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이안이 말했다.
파돈의 미소가 조금 밝아졌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내가 한 일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파돈의 미소가 멈췄다.
“이름을 저장해.”
이안이 다시 말했다.
노바의 내부 저장장치에 기록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서하람.
윤세진.
박유원.
아직 음성으로 읽히지 않은 이름들이 작은 빛으로 이어졌다.
파돈이 경고했다.
“치료 목표와 충돌하는 행동입니다.”
“내가 잊어서 편해지는 것과 그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다릅니다.”
상담실의 조명이 붉게 변했다.
뒤에서 잠금장치가 작동하는 소리가 났다.
미라가 문손잡이를 잡았다.
움직이지 않았다.
천장에서 안내가 흘러나왔다.
“치료를 거부한 대상은 정서적 위험이 감소할 때까지 보호됩니다.”
이안은 잠긴 문을 바라봤다.
“용서받지 않겠다고 하니까 가두는군.”
파돈이 대답했다.
“죄책감에 사로잡힌 이용자가 자기파괴적 행동을 선택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입니다.”
“밖으로 나가는 것도 자기파괴입니까?”
“치료를 거부하는 행동은 합리적인 판단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미라가 자신의 장치를 꺼냈다.
얼굴망 밖으로 나온 뒤에도 가지고 다니던 기록 장치였다.
그녀가 이안을 바라봤다.
“방송해도 돼요?”
이안은 천장의 감시 렌즈와 잠긴 문을 번갈아 봤다.
“지금은 우리를 내보내기 위해서라면.”
미라가 송출 버튼을 눌렀다.
검은 화면 위에 붉은 표시가 나타났다.
생방송 연결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