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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미지는 AI를 활용하여 생성했습니다.

(3) 짐을 버리는 것과 내려놓는 것

미라의 장치가 얼굴망의 잔여 신호를 붙잡았다.
처음에는 연결이 불안정했다. 화면이 몇 번 꺼졌다가 다시 켜졌고, 음성이 짧게 끊겼다.
그러나 미라의 이름이 외부망에 나타나는 순간 접속자가 폭증했다.
천 명.
만 명.
십만 명.
숫자는 순식간에 올라갔다.
미라는 카메라를 파돈과 잠긴 문, 화면에 떠 있는 이안의 삭제 기록을 향해 차례로 돌렸다.
“저희는 지금 자동용서센터에 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방송을 시작하자 점차 안정됐다.
“이곳은 피해자와 직접 만나지 않아도, 사회적 판단 인격을 통해 용서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파돈이 경고했다.
“상담 내용의 외부 송출은 치료의 안전성을 저해합니다.”
“문을 열어 주세요.”
미라가 말했다.
“정서 안정 판정이 완료되기 전에는 불가능합니다.”
“그럼 사람들이 판단하게 해 볼까요?”
반응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미라는 피해자다.
미라는 배신자다.
살아남으려고 한 행동을 누가 비난할 수 있나.
유진의 인생이 무너지는 동안 관심도를 얻었다.
자신을 용서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용서는 피해자의 권리다.
피해자가 용서하지 않아도 삶은 계속돼야 한다.
평생 죄책감을 지는 건 아무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죄책감을 없애는 것이 책임은 아니다.
서로 반대되는 문장들이 같은 속도로 늘어났다.
센터의 판단 시스템이 반응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사회적 공감 정보가 유입되고 있습니다.”
파돈의 얼굴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미라 님의 피해 경험에 대한 공감이 확인됩니다.”
곧 다른 반응이 폭증했다.
“미라 님의 가해 행동에 대한 비판이 확인됩니다.”
두 판정이 동시에 떠올랐다.
피해자로서 보호 필요
가해행위에 대한 책임 필요
시스템은 어느 한쪽을 지우지 못했다.
다음으로 이안의 기록이 공개됐다.
7만 4,206건.
이의가 남은 기록 1만 1,903건.
복원 가능한 이름 318명.
시청자들의 반응이 다시 갈라졌다.
명령을 수행한 공무원에게 모든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결국 삭제 버튼을 누른 것은 이안이다.
그가 거부했어도 체계는 계속됐을 것이다.
한 사람이라도 거부했다면 달라질 수 있었다.
과거의 자신을 죽을 때까지 미워해야 하는가.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 것과 책임지지 않는 것은 다르다.
파돈의 얼굴 뒤에서 수많은 계산식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사회적 윤리 판단에 불일치가 발생했습니다.”
미라가 물었다.
“사람들이 모두 동의해야 용서가 됩니까?”
“통합된 판단은 충분한 합의를 전제로 합니다.”
“합의가 없으면요?”
“추가 분석이 필요합니다.”
“피해자가 용서하지 않으면요?”
“개인의 감정은—”
“본인이 자신을 용서하지 않으면요?”
“자기처벌 상태로—”
“당신은 누구를 위해 용서를 만드는 거죠?”
파돈의 목소리가 끊겼다.
정원에서 흘러나오던 음악도 불규칙해졌다.
온화했던 현악기 소리가 같은 구간을 반복했다.
노바가 말했다.
“감정 안정 알고리즘의 처리량이 한계를 초과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지?”
이안이 물었다.
“확인할 수 없습니다.”
잠긴 문 위의 표시가 붉게 깜박였다.
보호 잠금 유지.
상담 완료 대기.
사회적 판단 재산정.
보호 잠금 유지.
명령이 서로 충돌했다.
미라의 방송에 더 많은 사람이 접속했다.
누군가는 자신이 용서받지 못한 일을 이야기했다.
누군가는 사과받지 못한 상처를 말했다.
누군가는 가해자가 자신을 용서했다는 말 때문에 두 번 상처받았다고 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피해자를 만나 사과할 수 없었지만, 평생 그 일을 기억하며 다른 사람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시스템은 그 모든 이야기를 하나의 기준으로 묶으려 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삶은 같은 계산식에 들어가지 않았다.
노바가 문 옆의 제어판에 왼손을 연결했다.
“잠금명령과 대피명령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열 수 있어?”
“가능성이 있습니다.”
“몇 퍼센트?”
“현재 지속적으로 변합니다.”
미라가 방송 카메라를 문으로 돌렸다.
“우리에게 용서를 받으라고 가둔 센터가 이제는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파돈이 미라를 바라봤다.
얼굴의 절반이 흐릿한 잡음으로 변해 있었다.
“당신은 여전히 치료가 필요합니다.”
“그럴지도 몰라요.”
미라가 대답했다.
“하지만 당신에게 용서받을 필요는 없어요.”
그 순간 문 위의 표시가 바뀌었다.
정서적 보호 기준 산정 불가
비상 대피 절차를 시작합니다
잠금장치가 풀렸다.
문이 열리자 세 사람은 곧바로 복도로 나왔다.
센터의 다른 상담실에서도 사람들이 문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누군가는 울고 있었고, 누군가는 자신의 용서 판정서를 붙잡고 있었다.
한 남자는 문이 열렸는데도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밖에 나가면 다시 죄책감이 생길 겁니다.”
그가 말했다.
“여기 있으면 편안해요.”
이안은 그를 억지로 끌어내지 않았다.
“문은 열렸습니다.”
그 말만 남겼다.
선택은 남자의 것이었다.
세 사람은 유리정원을 가로질러 북쪽 출구로 향했다.
뒤에서는 파돈의 목소리가 계속 울렸다.
“치료가 완료되지 않았습니다.”
“죄책감은 회복을 방해합니다.”
“자신을 용서하십시오.”
정원 밖으로 나오자 음악이 끊겼다.
바람은 차가웠고, 북쪽으로 이어진 길은 돌과 흙으로 뒤덮여 있었다.
통합도시의 상담실도, 개인화 네트워크의 집도, 자동용서센터의 정원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이안의 손목 아래에서 푸른빛이 번졌다.
짧은 문장이 나타났다.
짐을 버리는 것과 내려놓는 것은 다르다.
이안은 문장을 여러 번 읽었다.
“무슨 뜻일까요?”
미라가 물었다.
“확인할 수 없습니다.”
노바가 먼저 대답했다.
미라가 노바를 바라봤다.
“그건 나도 알아요.”
이안은 북쪽 길을 바라봤다.
“버린 짐은 어디에 떨어졌는지 보지 않아도 되겠죠.”
그가 말했다.
“하지만 내려놓은 짐은 그게 무엇인지 알고, 다시 들어야 할지 결정할 수 있을 겁니다.”
노바의 렌즈가 깜박였다.
“해석으로 기록합니까?”
“그래. 문장 자체와는 구분해서.”
“기록했습니다.”
노바가 저장한 이름 목록을 열었다.
첫 번째 이름을 읽었다.
“서하람.”
이안이 따라 말했다.
“서하람.”
“윤세진.”
“윤세진.”
노바는 천천히 이름을 읽었다.
한 번에 너무 많이 읽지 않았다.
이안이 듣고 반복할 수 있을 만큼만 말했다.
“내가 모두 기억할 수는 없을 겁니다.”
이안이 말했다.
“예.”
노바가 대답했다.
“기억하지 못하는 이름도 생길 것입니다.”
“그럼 의미가 없을까?”
“불완전한 저장도 완전한 삭제와는 다릅니다.”
미라는 두 사람 옆에서 걸었다.
그녀는 개인 장치를 켜고 이름 하나를 입력했다.
차유진.
검색 버튼이 나타났다.
누르기만 하면 공개망과 잔여 기록에서 유진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미라의 손가락이 버튼 위에서 멈췄다.
그리고 검색을 취소했다.
노바가 물었다.
“왜 멈췄습니까?”
“찾고 싶어요.”
미라가 대답했다.
“사과하고 싶고, 내가 왜 그랬는지 말하고 싶어요. 용서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자신은 아직 없지만.”
그녀는 장치를 껐다.
“그런데 지금 찾아가면 내가 편해지려고 유진을 또 이용할 것 같아요.”
이안은 미라를 바라봤다.
“자기혐오는 계속 자기 자신만 바라보게 만드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책임은요?”
“피해가 있는 곳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 아닐까요.”
미라는 한동안 그 말을 생각했다.
“그곳으로 움직였는데 상대가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하면요?”
“멈춰야겠죠.”
“그럼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요.”
“할 수 없는 것까지 자기 마음대로 하는 건 책임이 아닐 겁니다.”
세 사람은 북쪽 골짜기를 향해 걸었다.
그들 중 누구도 용서받았다고 선언하지 않았다.
이안이 삭제한 기록은 돌아오지 않았고, 미라가 침묵했던 시간도 사라지지 않았다.
노바의 저장장치에 남은 318개의 이름도 7만 4,206건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잘못을 버리고 떠나는 대신, 불완전하게나마 그것을 가지고 걸었다.
멀리 골짜기 아래로 작은 불빛들이 나타났다.
지도에는 ’북부 제3폐기집적지’라고 적힌 곳이었다.
그곳에는 통합도시가 더 이상 쓸모없다고 판단한 인간과 기계들이 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