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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이 없는 마을
폐기구역에는 문이 없었다.
김이안은 골짜기 아래로 내려가며 그것을 가장 먼저 알아차렸다.
통합도시의 모든 구역에는 경계가 있었다. 시민등급을 확인하는 아치, 이동권을 검사하는 차단막, 허가된 사람만 열 수 있는 문. 심지어 버려진 개인화 네트워크와 자동용서센터에도 입구와 출구가 있었다.
그러나 폐기구역을 둘러싼 것은 철조망도, 감시탑도 아니었다.
낮은 돌담과 녹슨 금속판, 오래된 운송차량의 문짝을 이어 붙인 바람막이가 골짜기 곳곳에 세워져 있을 뿐이었다. 사람 한 명이 지나갈 만큼 비워 둔 틈에는 검문장치도 경고문도 없었다.
대신 나무판 하나가 비스듬히 걸려 있었다.
들어오는 사람은 이름을 말할 것.
나가는 사람은 작별을 말할 것.
미라가 문구를 읽고 말했다.
“이름만 말하면 된다고요?”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노바가 대답했다.
“거짓 이름을 말해도 확인할 방법이 없겠네요.”
이안이 말했다.
노바가 나무판을 분석했다.
“생체 인식 장치는 감지되지 않습니다.”
“그걸 말한 게 아니야.”
“의도를 이해했습니다.”
골짜기 안에서는 작은 연기 기둥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금속판과 천막으로 지은 집들이 불규칙하게 모여 있었다. 어떤 집은 무너진 운송차량을 옆으로 눕혀 만들었고, 어떤 집은 오래된 온실의 유리 조각을 이어 붙인 형태였다.
집 사이로 사람들과 기계들이 함께 움직였다.
한쪽 다리에 보조장치를 단 노인이 물통을 끌고 있었고, 얼굴 절반이 합성피부인 여자가 작은 밭에서 흙을 고르고 있었다. 팔이 네 개 달린 산업용 로봇은 그중 두 팔만 사용해 나무를 쌓았다.
아이들도 있었다.
한 아이는 낡은 청소 로봇의 등에 올라타 골목을 돌았고, 다른 아이는 몸통만 남은 안내기계에 눈과 입을 그려 넣고 있었다.
아무도 효율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작은 물건 하나를 옮기는 데 여러 사람이 달라붙었다. 기계가 할 수 있는 일을 인간이 돕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고장 난 기계가 거들었다.
통합도시였다면 즉시 재배치되었을 장면이었다.
“생체 신호가 예상보다 많습니다.”
노바가 말했다.
“총 317명. 비인간 기체 94기. 부분 인격 저장체 11개.”
미라는 주변을 둘러봤다.
“여기가 정말 폐기구역이에요?”
“공식 지도상 명칭은 북부 제3폐기집적지입니다.”
“사람 사는 마을처럼 보이는데요.”
“사람이 살고 있으니까요.”
이안이 말했다.
세 사람이 골짜기의 첫 번째 집을 지나자 작은 종이 울렸다.
골목에 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들었다.
누구도 달아나거나 무기를 들지는 않았다. 다만 하던 일을 멈추고 낯선 세 사람을 조용히 바라봤다.
이안은 그 시선이 불편했다.
다면체 도시에서 사람들은 관심도 숫자를 먼저 봤다. 통합도시에서는 시민등급과 정서 상태를 확인했다.
이곳 사람들의 머리 위에는 아무 숫자도 없었다.
그들은 이안의 얼굴만 보고 있었다.
찢어진 옷과 다친 발목, 피로한 눈.
그리고 그가 어떤 말을 할지 기다렸다.
나무 지팡이를 짚은 여자가 사람들 사이에서 나왔다.
나이는 예순을 넘은 듯했지만 허리는 곧았다. 오른쪽 귀에는 오래된 청각보조기가 달려 있었고, 왼쪽 눈은 불투명한 인공안구였다.
여자는 이안보다 노바를 먼저 바라봤다.
노바의 서로 다른 부품으로 이어진 팔과 깨진 몸체를 천천히 살폈다.
“NV 계열인가?”
“NV-04입니다.”
노바가 대답했다.
“아직 움직이는 게 남아 있었군.”
여자는 이번에는 미라를 바라봤다.
미라는 본능적으로 뺨의 흉터를 가리려다 손을 내렸다.
마지막으로 이안을 봤다.
“판에 적힌 글은 읽었겠지.”
“예.”
“그럼 이름부터.”
이안은 잠시 망설였다.
도시 밖에서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일은 곧 위치를 드러내는 일이었다. 다면체 도시에서는 그의 얼굴과 신분이 이미 퍼졌다. 이 여자가 통합도시와 연결돼 있지 않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러나 나무판에는 이름을 말하라고 적혀 있었다.
등급도, 출신도, 목적도 아니었다.
“김이안입니다.”
여자의 인공안구가 희미하게 움직였다.
그 이름을 알아본 것 같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라가 말했다.
“미라예요.”
여자가 물었다.
“그건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인가, 네가 고른 이름인가?”
미라는 입을 다물었다.
“둘 다요.”
“아직 못 정했군.”
여자는 노바를 바라봤다.
“너는?”
“노바입니다.”
“모델명이냐?”
“초기 표기는 NV-04입니다. 노바는 관리자 김서윤이 부여한 호출명으로 추정됩니다.”
“네가 선택한 이름은 아니고?”
노바의 푸른 렌즈가 깜박였다.
“저에게 이름 선택 기능은 없습니다.”
“기능이 없으면 선택도 못 하나?”
“질문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여자는 희미하게 웃었다.
“여기 있으면 곧 이해하게 될 거다.”
이안이 물었다.
“당신 이름은 뭡니까?”
“문해라.”
“이곳 책임자입니까?”
“책임지는 일은 하지만 책임자는 아니다.”
“누구의 허락을 받아야 머물 수 있죠?”
문해라는 세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
“누구 허락도 필요 없다.”
“그럼 아무나 들어올 수 있습니까?”
“들어오는 건 쉽지.”
문해라가 골짜기 바깥의 언덕을 바라봤다.
“여기까지 오는 길이 있으니까.”
“나가는 것도 쉽습니까?”
“다리가 움직이면.”
“우리가 위험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이안이 말했다.
“알고 있다.”
“그런데 확인하지 않습니까?”
“뭘 확인하지?”
“범죄 기록이나 체제 추적 여부, 무기 소지, 정서 상태 같은 것 말입니다.”
문해라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도시에서 왔구나.”
이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문해라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온 사람 중 기록이 깨끗한 사람은 드물어. 기록이 없거나, 너무 더럽거나, 기록에서 지워졌거나.”
그녀는 이안의 손목을 봤다.
“그리고 쫓기는 사람도 많지.”
미라가 물었다.
“신고하지 않아요?”
“누구에게?”
“통합도시요.”
“우리는 그쪽 시민이 아니다.”
“그래도 보상을 받을 수 있잖아요.”
“보상으로 뭘 주는데?”
“식량, 약, 부품, 거주권.”
문해라는 주변 마을을 둘러봤다.
“그걸 받으려면 누군가를 넘기고, 받은 뒤에는 또 그들이 정한 방식으로 살아야 하지.”
그녀가 미라를 다시 바라봤다.
“그런 거래는 오래전에 끝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