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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능한 것과 혼자 해야 하는 것
노바가 말했다.
“김이안에게는 안정적인 휴식과 치료가 필요합니다.”
“너도 필요해 보이는군.”
문해라는 노바의 부서진 오른쪽 어깨를 살폈다.
“수리 가능한 사람이 있습니까?”
이안이 물었다.
“가능한 사람은 있다. 부품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비용은?”
“먹은 만큼 일하면 돼.”
미라가 물었다.
“관심도나 기록은 필요 없고요?”
문해라는 미라의 머리 위를 보는 시늉을 했다.
“네가 여기 오면서 떨어뜨린 게 있나?”
미라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문해라는 사람들에게 손짓했다.
“우선 안으로 데려가.”
한 남자가 노바에게 다가왔다.
남자는 양팔이 없었다. 대신 어깨에서 가느다란 조작선이 나와 작은 운반 로봇 두 대와 연결돼 있었다. 로봇들은 남자의 몸짓을 따라 움직였다.
“기대도 됩니다.”
그가 노바에게 말했다.
“저는 독립 보행이 가능합니다.”
노바가 대답했다.
바로 그 순간 오른쪽 다리가 흔들렸다.
남자가 말했다.
“가능한 거랑 혼자 해야 하는 건 다릅니다.”
노바는 이안을 바라봤다.
“어떻게 할까?”
이안이 물었다.
“선택을 요청합니까?”
“그래.”
노바는 몇 초 동안 남자와 운반 로봇들을 살폈다.
“도움을 받겠습니다.”
남자가 미소 지었다.
“저는 이준오입니다.”
“노바입니다.”
“들었습니다.”
운반 로봇들이 노바 양옆으로 붙어 몸을 받쳤다.
이안은 그 모습을 바라봤다.
노바가 타인의 도움을 받아들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통합도시 밖으로 나온 뒤에도 노바는 늘 자신이 보호해야 할 존재라고 말했다. 손상은 임무에 지장이 없다고 했고, 기억이 사라져도 경미하다고 했다.
기계는 보호할 수는 있어도 보호받아서는 안 된다고 믿는 것 같았다.
세 사람은 마을 중앙의 넓은 건물로 향했다.
건물은 오래된 물류창고를 개조한 것이었다. 천장에는 여러 크기의 천 조각이 이어져 있었고, 바닥에는 긴 식탁이 놓여 있었다.
사람들은 그곳을 ’공용실’이라고 불렀다.
한쪽에서는 아이들이 글을 배우고 있었고, 반대편에서는 노인 둘이 기계 부품을 분류했다. 중앙의 화덕에서는 큰 냄비가 끓고 있었다.
문해라는 이안을 의자에 앉혔다.
“발부터 보자.”
“괜찮습니다.”
“여기서는 그 말이 통하지 않아.”
“노바도 같은 말을 합니다.”
“그 기계가 옳은 말을 했군.”
노바가 말했다.
“문해라의 판단에 동의합니다.”
이안은 신발을 벗었다.
발목은 아침보다 더 부어 있었다. 곳곳에 물집도 잡혀 있었다.
문해라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 상태로 이틀은 더 걸었겠군.”
“폐기구역까지는 와야 했으니까요.”
“왜?”
“다음 길을 아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새벽정원?”
이안과 미라가 동시에 문해라를 바라봤다.
문해라는 놀라지 않았다.
“그 이름을 입에 올리는 사람들이 가끔 온다.”
“실제로 존재합니까?”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도 있고, 다녀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
“당신은요?”
문해라는 대답 대신 이안의 발목에 차가운 약을 발랐다.
“여기 온 첫날부터 목적지만 물으면 길을 잃는다.”
“왜죠?”
“지금 서 있는 곳을 보지 않으니까.”
붕대를 감은 뒤 문해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쉬어. 길 이야기는 내일 하지.”
“우리는 오래 머물 수 없습니다.”
“추적자 때문인가?”
이안은 문해라를 바라봤다.
“알고 있었군요.”
“골짜기 위의 감시장치가 너희를 따라온 비행체 흔적을 봤다. 지금은 신호가 끊겼지만.”
“도시에 연락하지 않았다면서 감시장치는 있습니까?”
“감시와 경계는 다르다.”
“어떻게 다릅니까?”
“감시는 사람을 통제하기 위해 보고, 경계는 지키기 위해 본다.”
문해라는 공용실 입구로 걸어갔다.
“네가 그 차이를 잊고 살았던 모양이군.”
이안은 대답하지 못했다.
노바는 이준오와 함께 창고 뒤편 수리실로 옮겨졌다.
이안이 따라가려 하자 문해라가 막았다.
“네 몸부터 쉬어.”
“노바의 상태를 확인해야 합니다.”
“수리하는 동안 네가 옆에 있어야 작동하나?”
“아니지만—”
“그럼 맡겨.”
“아직 이곳 사람들을 믿을 수 없습니다.”
문해라가 이안을 똑바로 바라봤다.
“네가 믿지 않는다고 우리가 없어지는 건 아니야.”
미라가 낮게 웃었다.
“그 말, 당신한테 필요했던 것 같은데요.”
이안은 그녀를 노려봤지만 결국 자리에 다시 앉았다.
잠시 뒤 음식이 나왔다.
곡물과 뿌리채소를 오래 끓인 죽이었다. 맛은 밋밋했고 그릇마다 양도 조금씩 달랐다.
통합도시에서는 모든 식사가 시민의 체중과 활동량에 따라 정확히 배분됐다. 누가 더 많이 받는 일도, 덜 받는 일도 없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아이가 자신의 그릇에 있던 감자 조각을 옆자리 노인에게 건넸다. 노인은 절반을 잘라 다시 아이의 그릇에 넣었다.
한 여자는 자신의 죽을 다 먹지 않고 작은 용기에 덜어 뒀다.
미라가 물었다.
“그건 왜 남겨요?”
여자가 대답했다.
“밤 경계조가 돌아오면 먹어야 하니까요.”
“그 사람들 몫은 따로 배정되지 않았어요?”
여자는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듯 미라를 바라봤다.
“지금 없으니까 남겨 두는 거죠.”
“혹시 안 돌아오면요?”
“내일 먹으면 되고.”
미라는 더 묻지 않았다.
식사를 마친 뒤 이안은 공용실을 둘러봤다.
벽 한쪽에는 수많은 금속판이 걸려 있었다. 판마다 이름과 짧은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한주명 — 오른손으로는 그림을 그렸고 왼손으로는 아이들의 머리를 빗겼다.
보라-12 — 일곱 번 폐기되었으나 여덟 번째에도 꽃에 물을 주었다.
서유경 — 자신의 이름을 잊었지만 매일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불러 주었다.
“사망자 기록입니까?”
이안이 물었다.
옆에서 바닥을 쓸던 노인이 대답했다.
“떠난 사람들.”
“죽은 사람뿐 아니라?”
“도시로 돌아간 사람도 있고, 다른 마을로 간 사람도 있지.”
“왜 기록을 남깁니까?”
노인은 빗자루를 세웠다.
“그 사람이 여기 있었다는 걸 잊지 않으려고.”
“자료나 영상은 없습니까?”
“있는 사람도 있고 없는 사람도 있어.”
“정보가 너무 적지 않습니까?”
“사람 하나를 다 적으려면 벽이 모자라지.”
노인은 한주명의 판을 손으로 닦았다.
“그래도 한 줄은 남길 수 있어.”
이안은 자동용서센터에서 노바가 저장한 이름들을 떠올렸다.
318명.
이름과 기록 제목만 남은 사람들.
“이름만 남으면 충분합니까?”
“충분하진 않지.”
노인이 말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 낫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