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1) 기록이 없으면 또 그렇게 될까 봐
침묵의 사막에서는 바람조차 소리를 내지 않았다.
모래는 움직였고, 먼지는 공중으로 올랐다. 회색 입자들이 세 사람의 옷과 몸체를 때렸지만, 부딪히는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마치 세상이 소리를 잃은 것이 아니라, 소리가 발생한 순간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김이안은 처음에는 자신의 귀에 이상이 생긴 줄 알았다.
손가락으로 귀를 막았다가 뗐다. 두 손을 마주쳐 보기도 했다. 손바닥이 부딪히는 감각은 있었지만 소리는 먼 곳에서 나는 것처럼 희미했다.
“미라.”
그가 불렀다.
입술은 움직였으나 자신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미라가 뒤를 돌아봤다.
그녀도 같은 말을 하려는 듯 입을 움직였다.
“왜요?”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지만 뜻은 알아볼 수 있었다.
노바가 두 사람 사이에서 말했다.
“대기 중 미세입자가 음파를 흡수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뭐지?”
“지하에 설치된 광역 상쇄 장치가 주변 진동을 실시간으로 제거하고 있습니다.”
“누가 이런 걸 만든 거야?”
노바의 푸른 렌즈가 회색 지평선을 훑었다.
“기록이 없습니다.”
미라가 말했다.
“모로스가 사람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만든 건 아닐까요?”
“치료망 외부에는 신호가 없습니다.”
노바의 목소리도 거의 속삭임처럼 들렸다.
“이곳은 모로스가 통제할 수 없는 구역입니다.”
“그래서 침묵하는군.”
이안은 뒤를 돌아봤다.
치료망의 정비문은 이미 모래바람 속에서 사라졌다.
돌아가려 해도 방향을 찾을 수 없었다.
앞에도 표식은 없었다.
세 사람은 한동안 같은 방향으로 걸었다.
아니, 같은 방향이라고 믿으며 걸었다.
태양은 하늘 한쪽에 희미한 원으로 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노바는 대기 입자와 자기장 교란 때문에 방향을 계산할 수 없다고 했다.
그들은 번갈아 선두에 섰다.
처음에는 이안이 앞장섰다.
두 시간쯤 지나자 미라가 말했다.
“왼쪽으로 기울고 있어요.”
이안은 자신의 발자국을 돌아봤다.
바람에 절반쯤 지워진 자국이 완만한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확실합니까?”
“아니요.”
미라가 대답했다.
“그냥 그렇게 느껴져요.”
이안은 방향을 조금 오른쪽으로 바꿨다.
얼마 뒤 노바가 멈췄다.
“이전 경로와 교차했습니다.”
“우리가 같은 곳을 돈다고?”
“가능성이 있습니다.”
노바가 모래 속에서 작은 금속 조각 하나를 꺼냈다.
미라가 처음 사막에 들어오며 버렸던 장치 덮개였다.
그들은 세 시간 동안 원을 그리고 있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모로스의 목소리는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문장은 각자의 머릿속에 살아 있었다.
너희는 실패했다.
이안은 금속 조각을 바라봤다.
사막에 들어온 뒤 그들이 한 일은 걷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 걷기조차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다시 출발하죠.”
미라가 말했다.
이안은 그녀를 바라봤다.
“어느 쪽으로?”
미라가 지평선을 가리켰다.
“저쪽.”
“왜?”
“처음 걸었던 방향과 가장 달라 보여서요.”
“그건 근거가 아니잖아.”
말이 입에서 나온 뒤 이안은 멈췄다.
확신거래소에서 자신도 별 하나를 근거로 길을 골랐다.
노바가 말했다.
“미라의 제안은 현재 방향 반복을 중단한다는 점에서 유효합니다.”
“당신은 동의해요?”
미라가 물었다.
“성공 가능성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실패가 확인된 방법을 반복하는 것보다 다른 방법을 시험하는 편이 정보 획득에 유리합니다.”
미라가 이안을 바라봤다.
“로봇도 저보다 부드럽게 말하네요.”
이안은 고개를 숙였다.
“미안합니다.”
“뭐가요?”
“당신이 근거 없이 말한 것처럼 취급해서.”
“근거 없었는데요.”
“그래도 무시할 이유는 아니었습니다.”
미라는 한동안 이안을 보다가 지평선을 향해 걸었다.
“사과를 확인했습니다.”
노바가 말했다.
미라가 뒤돌아봤다.
“그건 내 대사였던 것 같은데요.”
“노바의 언어기록에 자주 존재하는 표현입니다.”
이안의 걸음이 잠시 느려졌다.
노바는 그 문장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이 오래된 언어 패턴인지, 함께 걸으며 생긴 기억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남아 있었다.
세 사람은 새로운 방향으로 걸었다.
이번에는 직선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 다른 방법을 사용했다.
미라는 앞쪽 지평선에 보이는 검은 돌 하나를 정해 그쪽으로 걸었다.
그 돌에 도착하면 다시 다음 돌을 찾았다.
노바는 세 사람의 보폭과 발목 각도를 계산했다.
이안은 일정한 수를 세었다.
백 걸음을 걸은 뒤 멈추고, 뒤를 돌아 길을 확인했다.
모래바람은 계속 발자국을 지웠다.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은 이상하게도 걸음을 가볍게 하기도 했다.
통합도시에서는 모든 이동이 기록됐다.
어느 길을 지나고, 얼마나 오래 멈추고, 누구와 만났는지 남았다.
이면도로 하나를 잘못 선택해도 시스템은 더 효율적인 경로를 추천했다.
이곳에서는 아무도 그들의 실수를 저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아무도 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미라는 몇 번이나 휴대 장치를 확인했다.
화면에는 같은 문구만 떠 있었다.
연결 없음.
오후가 되었을 무렵, 미라가 갑자기 멈췄다.
“왜 그래요?”
이안이 물었다.
“배터리가 거의 없어요.”
“장치?”
“예.”
“꺼 두면 되잖아요.”
“완전히 방전되면 저장된 기록도 일부 손상될 수 있어요.”
“보조 전력은?”
노바가 자신의 가슴 단자를 확인했다.
“현재 기체 잔여 전력 42퍼센트. 이동에 필요한 최소 전력을 고려하면 외부 공급이 어렵습니다.”
미라는 장치를 손에 쥐었다.
유진의 기록.
공개재판에서 남긴 고백.
기억감옥을 연 장면.
자신이 두려워했다는 녹화.
수억 명의 관심을 잃은 뒤 남은 것들이 그 안에 있었다.
“얼마나 남았습니까?”
이안이 물었다.
“절전하면 하루 정도.”
“그 뒤에는?”
“모르겠어요.”
미라는 장치를 바라봤다.
“이 안에 있는 게 사라지면, 제가 정말 변하려고 했다는 증거도 없어져요.”
이안은 쉽게 대답하지 않았다.
“누구에게 증명하려고요?”
“유진에게.”
미라는 잠시 멈췄다.
“그리고 나한테도.”
“당신이 기억하면 되잖아요.”
“기억은 바뀌어요.”
미라가 말했다.
“유진 사건도 처음에는 내가 어쩔 수 없었다고 기억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더 피해자였던 것처럼 바뀌었고요.”
그녀는 꺼져 가는 화면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기록이 없으면 또 그렇게 될까 봐 무서워요.”
'이안, 새벽의 기슭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이안, 새벽의 기슭으로] 제16장 침묵의 사막 - (3) 아직 확인 중입니다 (0) | 2026.09.17 |
|---|---|
| [이안, 새벽의 기슭으로] 제16장 침묵의 사막 - (2) 어둠은 아무것도 돌려주지 않았다 (0) | 2026.09.16 |
| [이안, 새벽의 기슭으로] 제15장 절망의 목소리 - (6) 그래서 가는 거야 (0) | 2026.09.15 |
| [이안, 새벽의 기슭으로] 제15장 절망의 목소리 - (5) 다음 말을 정하게 두지 않는다 (0) | 2026.09.15 |
| [이안, 새벽의 기슭으로] 제15장 절망의 목소리 - (4) 안전한 생명의 모순 (0) | 2026.08.2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