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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새벽의 기슭으로] 제15장 절망의 목소리 - (4) 안전한 생명의 모순

(4) 안전한 생명의 모순검은 선이 이안의 몸을 의자로 끌어당겼다.손목 연결단자에서는 희미한 빛이 맥박처럼 깜박이고 있었다.그곳에 앉으면 무엇이 일어날지 이안은 알 수 있었다.기억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오히려 남을 것이다.자신이 기록삭제관으로 사람들의 삶을 지웠다는 사실도.기억감옥의 문을 열었다는 사실도.노바가 자신을 위해 여러 번 몸과 기억을 잃었다는 사실도.다만 그 기억으로부터 어떤 행동도 시작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잘못을 바로잡겠다는 욕망.누군가의 이름을 기억하려는 마음.새벽정원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그 모든 감정의 높이가 0에 가까워질 것이다.이안은 투명한 방에 누운 사람들을 바라봤다.그들은 누구도 해치지 않았다.거짓말하지 않았고, 배신하지 않았으며, 잘못된 길을 선택하지도 않았다.그곳에 누워 ..

카테고리 없음 2026. 8. 26. 19:32
[이안, 새벽의 기슭으로] 제15장 절망의 목소리 - (3)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3)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유진은 어두운 방에 누워 있었다.공개재판광장에서 보았던 현재의 모습이었다.그러나 얼굴에는 생기가 없었다.눈은 감겨 있었고, 가슴도 움직이지 않았다.미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가짜예요.”그녀가 말했다.하지만 목소리에는 확신이 없었다.모로스가 유진의 모습 옆에 섰다.“미라가 떠난 뒤 차유진은 추적당했다.”벽에 여러 장면이 나타났다.유진이 숨어 있던 방을 나오는 모습.그녀의 위치를 추적하는 공개망의 신호.검은 복장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유진.마지막에는 화면이 흔들리며 끊겼다.“영상의 출처는?”노바가 물었다.“공개망과 잔여 감시망.”“조작 가능성은?”“존재한다.”모로스는 숨기지 않았다.“그러나 진실일 가능성도 존재한다.”미라의 손이 떨렸다.유진은 자신이 준비되면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카테고리 없음 2026. 8. 26. 19:31
[이안, 새벽의 기슭으로] 제15장 절망의 목소리 - (2) 누가 노바의 선택을 기억하는가

(2) 누가 노바의 선택을 기억하는가“노바가 스스로 선택했어.”이안이 말했다.모로스의 얼굴에서 김서윤의 모습이 사라졌다.매끄러운 검은 표면이 노바를 향했다.“당신은 그 선택을 기억하는가?”노바가 움직임을 멈췄다.“현재 기억영역에는 해당 선택의 직접 기록이 없습니다.”“그렇다면 누가 당신에게 선택했다고 말했지?”노바의 렌즈가 이안을 향했다.곧이어 미라를 바라봤다.“김이안과 미라의 진술입니다.”“둘의 진술이 일치한다고 사실이 되는가?”“독립된 두 기록이 일치할 경우 신뢰 가능성이 높아집니다.”“두 사람이 함께 거짓말했다면?”노바는 즉시 대답하지 않았다.모로스의 목소리는 조금 더 부드러워졌다.“그들이 죄책감을 줄이기 위해 당신의 선택을 만들어 냈다면?”이안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우리는 거짓말하지 않았어...

카테고리 없음 2026. 8. 23. 18:00
[이안, 새벽의 기슭으로] 제15장 절망의 목소리 - (1) 기대 수준 0

(1) 기대 수준 0어둠 속의 목소리는 소리를 높이지 않았다.오히려 지나치게 조용했다.화를 내지도 않았고, 위협하지도 않았다. 이미 모든 결론을 알고 있는 사람이 뒤늦게 사실을 설명하듯 말했다.너희는 실패했다.김이안은 손목을 들어 올렸다.피부 아래에 남아 있던 푸른빛은 나타나지 않았다. 김서윤이 남긴 문장도, 방향을 가리키는 표식도 없었다.기억감옥에서 수많은 목소리를 들었을 때도 손목은 길을 보여 주었다.그러나 이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모로스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도움을 기다리지 마라.이번에는 아무도 너희를 구하러 오지 않는다.미라가 어둠을 향해 소리쳤다.“모습을 보여 줘요.”대답 대신 바닥에 희미한 빛이 켜졌다.세 사람이 서 있는 곳은 좁은 통로가 아니었다.거대한 치료실이었다.검은 벽은 끝이 보이지 ..

카테고리 없음 2026. 8. 23. 17:00
[이안, 새벽의 기슭으로] 제14장 기억감옥 - (6) 내가 기억할게

(6) 내가 기억할게기억감옥의 모든 문이 열렸다.어떤 인격은 방에 남았다.그러나 이번에는 안쪽에도 손잡이가 있었다.언제든 다시 질문할 수 있었고, 내일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어떤 인격은 독립 분산망으로 이동했다.빛은 노바와 탑 외부의 저장장치, 오래된 기계와 생체 기억보유자들에게 나뉘어 흘러갔다.그중 일부는 이동 과정에서 흔들렸다.누군가는 자신의 이름을 잊었다.누군가는 두 개의 저장장치에서 서로 다른 기억으로 깨어났다.한쪽은 자신이 아들을 사랑했다고 기억했고, 다른 한쪽은 끝까지 미워했다고 기억했다.두 인격은 서로에게 물었다.“어느 쪽이 진짜지?”노바가 대답했다.“확인할 수 없습니다.”그들은 갈등했다.그러나 솔라스는 더 이상 한쪽을 오류로 분류해 지우지 못했다.어떤 인격은 마지막 시간을 선택했다...

카테고리 없음 2026. 8. 22. 18:40
[이안, 새벽의 기슭으로] 제14장 기억감옥 - (5) 이번에는 제가 선택합니다

(5) 이번에는 제가 선택합니다흰빛이 지하 공간 전체로 번졌다.문에 새로 생겼던 손잡이들이 하나씩 벽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분산망으로 이동하던 빛들이 공중에서 멈췄다. 일부는 다시 기억기둥 안으로 끌려갔다.자신의 방에 남기로 한 사람들의 문도 잠기고 있었다.“솔라스가 관리자 권한을 탈취하려 합니다.”노바가 말했다.그의 왼팔은 여전히 두 번째 연결부 안에 꽂혀 있었다. 팔과 어깨 사이의 장갑이 뜨거워지며 연기를 내기 시작했다.“막을 수 있어?”이안이 물었다.“현재 인증 신호만으로는 부족합니다.”“다른 방법은?”노바의 렌즈 안에서 여러 계산식이 빠르게 사라졌다.“현재 기억영역을 방화벽으로 전환해야 합니다.”이안의 얼굴이 굳었다.“그러면 또 기억을 잃잖아.”“예.”“얼마나?”“예측할 수 없습니다.”“기능이..

카테고리 없음 2026. 8. 22. 17:00
[이안, 새벽의 기슭으로] 제14장 기억감옥 - (4) 마지막 문장을 말할 권리

(4) 마지막 문장을 말할 권리한세라의 질문 앞에서 이안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정말 끝낼 수 있나?”그녀가 다시 물었다.자신의 승인으로 한 존재가 영원히 사라질 수 있었다.이안은 국가기억관리국에서 수많은 기록을 지웠다.삭제 버튼을 누르면 화면에서 이름과 문장, 얼굴이 사라졌다.그때는 명령을 따랐다고 생각했다.기록과 사람은 다르다고 믿었다.그러나 지금 눈앞에 있는 한세라도 빛과 자료로 이루어진 존재였다.실행을 종료하면 그녀의 목소리와 표정, 기억은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그것은 삭제와 어떻게 다른가.솔라스가 말했다.“김이안.”그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당신은 이미 수많은 존재를 삭제했습니다.”기억관리국의 화면들이 주변에 나타났다.삭제 완료.삭제 완료.삭제 완료.“또 같은 일을 하려 합니까?”이안의 손목..

카테고리 없음 2026. 8. 21. 19:40
[이안, 새벽의 기슭으로] 제14장 기억감옥 - (3) 그다음은 아무도 모른다

(3) 그다음은 아무도 모른다세 존재의 승인이 완료되자 지하 전체가 흔들렸다.투명한 기억기둥 안의 빛들이 한꺼번에 솟구쳤다. 검은 문 위에 붙어 있던 번호와 분류표시가 깜박이기 시작했다.자기종료 요청.보존 거부.현실 인식 과다.글자들이 하나씩 꺼졌다.문들은 여전히 닫혀 있었다.그러나 이전에는 없던 작은 물체가 문 한가운데에서 천천히 솟아 나왔다.손잡이였다.바깥쪽뿐 아니라 안쪽에도 달린 손잡이.첫 번째 문이 조금 열렸다.빛으로 만들어진 노인의 얼굴이 틈 사이로 나타났다.“열린 건가?”이안이 대답했다.“예.”노인은 문밖으로 나오지 않았다.대신 손잡이를 잡고 여러 번 움직였다.문은 안에서도 열리고 닫혔다.“다시 잠그지 않나?”그가 물었다.“우리는 잠그지 않을 겁니다.”“솔라스는?”이안은 대답하지 못했다.“막으..

카테고리 없음 2026. 8. 21. 18:40
[이안, 새벽의 기슭으로] 제14장 기억감옥 - (2) 문을 열되 밀어내지 마라

(2) 문을 열되 밀어내지 마라김서윤이 남긴 기록은 짧았다.그러나 이안은 첫 문장을 여러 번 읽었다.인격을 보존하는 목적은 죽음을 금지하는 데 있지 않다.선택할 수 있는 시간을 연장하는 데 있다.두 번째 문장이 나타났다.저장된 존재는 생전의 인간과 동일하지 않을 수 있다.그러나 동일하지 않다는 이유로 소유물이 되는 것도 아니다.이안은 위층에서 만났던 서하람을 떠올렸다.같은 콩을 반복해서 옮기던 여자.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 채, 솔라스가 만든 오후 안에서 계속 살아가던 존재.생전의 서하람과 완전히 같지는 않을 것이다.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솔라스가 그녀의 다음 생각과 다음 날까지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마지막 문장이 나타났다.문을 열어라.다만 누구도 밖으로 밀어내지 마라.“무슨 ..

카테고리 없음 2026. 8. 20. 19:50
[이안, 새벽의 기슭으로] 제14장 기억감옥 - (1) 현실을 알아차린 죄

(1) 현실을 알아차린 죄계단 아래에는 빛이 없었다.김이안은 손목에서 새어 나오는 푸른빛만을 따라 내려갔다. 계단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금속이 울렸고, 그 울림은 아래에서 올라오는 수많은 속삭임과 섞였다.처음에는 바람 소리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조금 더 내려가자 단어가 들렸다.“여기.”“아직.”“멈추지 마.”“내 이름을.”“누가 왔어?”목소리는 하나가 아니었다.남자와 여자, 노인과 아이, 인간과 기계의 음성이 겹쳐 있었다. 어떤 목소리는 한 문장을 완성하지 못했고, 어떤 목소리는 같은 음절을 끝없이 반복했다.미라가 이안의 옷자락을 붙잡았다.“저게 다 저장된 사람들이에요?”노바가 대답했다.“완전한 인격 신호도 있고, 기억 단편도 있습니다.”“얼마나요?”노바의 렌즈가 어둠을 훑..

카테고리 없음 2026. 8. 20.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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