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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새벽의 기슭으로] 제10장 확신거래소 - (4) 자유의지를 살 수 있는가

(4) 자유의지를 살 수 있는가“자유의지가 있다는 확신.”노바가 정언의 말을 반복했다.“검증 방식을 설명하십시오.”“당신의 핵심 명령과 행동 기록을 비교합니다.”“분석 정확도는?”“확신 상품에는 정확도보다 일관성이 중요합니다.”노바의 렌즈 안에서 작은 빛이 빠르게 움직였다.“사실 확인이 아닙니까?”“기계의 자유의지는 현재 검증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닙니다.”“그렇다면 사실과 다른 결론이 제공될 수 있습니다.”“당신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 믿으면 이후의 행동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그 변화가 자유의지의 증거가 됩니까?”“믿음이 원인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노바는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다.자신이 이안을 따라온 이유.개인화 네트워크의 창문을 부순 이유.기억을 연료로 태우면서도 이안을 데리고 나온 이유.폐기..

카테고리 없음 2026. 8. 9. 18:00
[이안, 새벽의 기슭으로] 제10장 확신거래소 - (3) 가족과 용서의 가격

(3) 가족과 용서의 가격가장 먼저 강도윤 앞의 벽이 밝아졌다.통합도시의 익숙한 거실이 나타났다.도윤의 아내 서지혜가 식탁에 앉아 있었다. 맞은편에는 딸 강하린이 두 손으로 컵을 감싼 채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도윤의 숨이 멎었다.화면 속 하린은 그가 도시를 떠날 때보다 조금 마른 모습이었다.“아빠는 언제 와?”하린이 물었다.지혜가 대답했다.“길을 찾으면 돌아온다고 했어.”“아빠가 길을 못 찾으면?”지혜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도윤이 화면 쪽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현재 영상입니까?”정언이 물었다.“현재 상태를 확인하고 싶습니까, 아니면 가족이 기다린다는 확신을 원합니까?”“그게 무슨 차이입니까?”“현재 상태를 확인하면 고객이 원하지 않는 사실을 보게 될 수 있습니다.”“어떤 사실?”“서지혜가 당신을 보안..

카테고리 없음 2026. 8. 9. 17:00
[이안, 새벽의 기슭으로] 제10장 확신거래소 - (2) 서로 반대되는 진실들

(2) 서로 반대되는 진실들“어쩌면 저게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강도윤이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노인을 바라보며 말했다.김이안이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딸의 이름을 잊었는데도요?”“평생 미움받았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보다는 나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딸이 실제로 미워했는지는 확인하지 않았습니다.”“확인할 방법이 없다면요?”도윤의 목소리가 조금 날카로워졌다.“확인할 수 없는 사실 때문에 남은 삶 전체가 망가지는 것보다는, 적어도 살아갈 수 있는 결론을 갖는 것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그가 자신의 가족을 떠올리고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분명했다.미라가 말했다.“저 노인은 이제 편안해졌잖아요.”이안은 도윤과 미라를 번갈아 봤다.“편안해진 것이 반드시 나아진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이안 씨는 편안함을 너무..

카테고리 없음 2026. 8. 8. 18:00
[이안, 새벽의 기슭으로] 제10장 확신거래소 - (1) 사실보다 확신이 필요한 사람들

(1) 사실보다 확신이 필요한 사람들폐기구역을 떠난 지 이틀째 되는 날, 길이 셋으로 갈라졌다.왼쪽 길은 북쪽 산맥으로 이어졌다. 경사는 가팔랐고, 회색 바위 사이에는 오래된 군용 장화 자국이 남아 있었다.오른쪽 길은 말라붙은 수로를 따라 동쪽으로 뻗어 있었다. 수로 벽에는 이끼가 자랐고, 길가에는 누군가 일정한 간격으로 놓아둔 작은 돌들이 보였다.가운데 길은 무너진 고가도로 아래로 이어졌다. 도로를 받치던 콘크리트 기둥은 군데군데 부서져 있었고, 길은 짙은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어느 길에도 목적지를 알려 주는 표지판은 없었다.노바는 교차로 한가운데 서서 세 방향을 번갈아 바라봤다. 새로 수리된 왼손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오른팔이 사라진 어깨에서는 균형을 조절할 때마다 낮은 진동음이 났다.“기존..

카테고리 없음 2026. 8. 8. 17:00
[이안, 새벽의 기슭으로] 제9장 두 번째 동행자 - (4) 지킬 수 없는 약속

(4) 지킬 수 없는 약속강도윤이 폐기구역으로 돌아온 것은 사흘째 새벽이었다.입구의 경계조가 먼저 그를 발견했다.골짜기 아래에서 사람들이 올라왔고, 채아도 이준오의 운반 로봇에 기대 절뚝거리며 입구까지 나왔다.다리에는 새 부목이 감겨 있었고 얼굴에는 아직 열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그러나 아이는 도윤을 보자 자신의 몸 상태도 잊은 듯 앞으로 나가려 했다.“천천히.”이준오가 로봇을 움직여 채아의 몸을 받쳤다.도윤은 아이 앞에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며칠 사이 그의 얼굴은 더 늙어 보였다. 입술은 갈라져 있었고 외투에는 흙과 검은 기름이 묻어 있었다.등에는 천으로 감싼 상자가 있었다.채아가 물었다.“엄마는요?”도윤은 거짓말하지 않았다.“찾았어.”채아의 얼굴에 희망이 번졌다.“어디 있어요?”도윤은 등에 있던 상자..

카테고리 없음 2026. 8. 7. 19:45
[이안, 새벽의 기슭으로] 제9장 두 번째 동행자 - (3) 엄마는 어디 있어요?

(3) 엄마는 어디 있어요?아이의 열은 그날 밤부터 조금씩 내려가기 시작했다.39.1도였던 체온은 새벽 무렵 38.6도까지 떨어졌다. 작은 변화였지만 폐기구역 사람들은 교대로 진료실을 지켰다.문해라는 아이의 이마에 젖은 천을 올렸고, 이준오는 운반 로봇을 이용해 손상된 냉각장치를 수리했다. 미라는 물을 데우고 천을 삶았다.노바는 항생제 투여 이후의 수치를 계속 기록했다.강도윤은 침상 옆에서 한 번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김이안은 진료실 밖에 앉아 있었다.도윤과 나눈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보안국은 체포하고, 기억관리국은 지우고, 의료국은 감정을 교정하고, 재배치국은 사람을 옮겼다.누구도 사람 전체를 상대하지 않았다.한 부서는 위험도를 봤고, 한 부서는 기록을 봤으며, 한 부서는 생산성을 봤다...

카테고리 없음 2026. 8. 7. 18:40
[이안, 새벽의 기슭으로] 제9장 두 번째 동행자 - (2) 우리는 사람을 작은 조각으로 나눴다

(2) 우리는 사람을 작은 조각으로 나눴다이안의 주먹이 도윤의 턱을 스쳤다.도윤은 한 걸음 물러났다가 곧바로 이안의 몸을 밀쳤다. 두 사람은 장작더미 위로 함께 넘어졌다.마른 나뭇가지들이 부러지는 소리가 골짜기에 울렸다.“당신은 명령을 따르며 사람을 죽였잖아요!”이안이 소리쳤다.“직접 본 적도 없으면서 말하지 마십시오!”도윤이 이안의 멱살을 잡았다.“당신들이 기록을 지운 뒤 우리는 남은 보고서만 보고 판단했습니다. 누구를 체포해야 하는지, 누가 위험한지, 어느 구역을 폐쇄해야 하는지!”“그 판단이 잘못됐다는 걸 몰랐습니까?”“당신은 알았습니까?”도윤의 질문에 이안의 몸이 멈췄다.도윤이 다시 주먹을 들었지만, 누군가 던진 도끼가 두 사람 사이의 장작에 꽂혔다.날카로운 쇳소리가 났다.문해라가 진료실 앞에 서..

카테고리 없음 2026. 8. 6. 19:45
[이안, 새벽의 기슭으로] 제9장 두 번째 동행자 - (1) 모든 아이가 같은 아이는 아니다

(1) 모든 아이가 같은 아이는 아니다강도윤이 업고 온 아이는 이틀 동안 눈을 뜨지 않았다.폐기구역의 오래된 진료실에는 정식 의료장비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통합도시의 병원이라면 벽 하나를 가득 채웠을 진단 장치 대신, 서로 다른 시대에 만들어진 기계들이 임시로 연결돼 있었다.생체 감지기는 아이의 맥박을 자주 놓쳤다.혈액 분석기는 한 번 검사할 때마다 다른 오류를 출력했고, 산소공급기의 표시창은 숫자 몇 개가 깨진 채 간신히 작동했다. 전력이 부족해 조명까지 낮춰 놓은 진료실은 병원보다는 오래된 기계의 내부처럼 보였다.노바는 장비 사이를 오가며 측정값을 비교했다.수리한 왼팔로 감지선을 조절하고, 오른팔 대신 달린 짧은 보조기구를 장치의 접속부에 연결했다.“체온 39.1도.”노바가 말했다.“오른쪽 정강..

카테고리 없음 2026. 8. 6. 18:40
[이안, 새벽의 기슭으로] 제8장 폐기구역의 사람들 - (7) 직책 없이 들어온 사람

(7) 직책 없이 들어온 사람검은 외투의 남자 뒤로 지친 사람 여섯 명이 따라왔다.누군가는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었고, 누군가는 다른 사람의 어깨에 몸을 의지하고 있었다.남자의 등에 업힌 여자아이는 의식이 없었다.오른쪽 다리에 거친 부목이 묶여 있었고, 얼굴은 열로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문해라가 입구로 나갔다.“이름을 말해.”검은 외투의 남자가 아이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그는 한동안 주변 사람들을 살핀 뒤 말했다.“강도윤.”이안은 그 이름을 들으며 남자를 바라봤다.도윤의 외투 가슴에는 떼어 내다 만 통합도시 보안국 표식이 남아 있었다.문해라가 아이를 가리켰다.“저 아이는?”도윤의 얼굴이 굳었다.“제 딸은 아닙니다.”“그걸 물은 게 아니다.”도윤은 자신이 업고 온 아이를 내려다봤다.아이는 열 살쯤 되어 ..

카테고리 없음 2026. 8. 5. 19:45
[이안, 새벽의 기슭으로] 제8장 폐기구역의 사람들 - (6) 불완전한 저장장치

(6) 불완전한 저장장치“저에게는 후회 기능이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노바가 말했다.“그래도 검색이 반복되나?”“무엇이 말입니까?”“다른 선택을 했을 가능성.”노바는 대답하지 않았다.한참 뒤 말했다.“개인화 네트워크에서 기억영역을 소모하지 않았다면 현재 더 많은 정보가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그게 후회일지도 몰라.”“그러나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동일한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그것도 후회일 수 있어.”“정의가 모순됩니다.”“인간의 후회는 원래 그래.”노바는 그 말을 기록하는 듯 잠시 멈췄다.“김이안.”“왜?”“보호 기능을 상실하더라도 제가 노바라고 판단합니까?”이안은 노바를 바라봤다.“그래.”“기억이 전부 사라져도?”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기억이 모두 사라진 노바가 지금과 같은 존재일까.말..

카테고리 없음 2026. 8. 5.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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