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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새벽의 기슭으로] 제8장 폐기구역의 사람들 - (5) 쓸모로 부르지 않는 곳

(5) 쓸모로 부르지 않는 곳미라가 물었다.“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버려졌나요?”문해라는 고개를 저었다.“스스로 나온 사람도 있고, 도망친 사람도 있고, 기계처럼 길가에 버려진 사람도 있다.”“다시 도시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요?”“많아.”이안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왜 막지 않습니까?”“우리가 왜?”“그곳에서 다시 버려질 수도 있잖아요.”“그래도 가고 싶은 사람은 가야지.”문해라는 불 속에 나무를 하나 더 넣었다.“여기서 문을 잠그면 도시와 다를 게 뭐가 있나.”미라는 불빛을 바라봤다.“떠난 사람이 돌아오기도 해요?”“가끔.”“받아 줘요?”“이름을 다시 말하면.”이안은 입구의 나무판을 떠올렸다.들어오는 사람은 이름을 말할 것.나가는 사람은 작별을 말할 것.그것은 검문 규칙이 아니었다.그 사람..

카테고리 없음 2026. 8. 4. 19:50
[이안, 새벽의 기슭으로] 제8장 폐기구역의 사람들 - (4) 노바의 기억은 누구의 것인가

(4) 노바의 기억은 누구의 것인가노바는 이안에게 다가왔다.“김이안의 상태를 확인하겠습니다.”“나보다 네 상태부터 얘기해.”“제 상태를 보고했습니다.”“기억이 사라진 것도 임무 기준에서는 경미한가?”노바는 대답하지 않았다.이안이 물었다.“왜 개인화 네트워크에서 네 기억을 태웠어?”“김이안의 외부 신호를 차단하기 위해 전력이 필요했습니다.”“다른 방법은 없었나?”“당시 확인 가능한 방법은 없었습니다.”“그 기억들이 중요하다는 건 알았고?”“목록은 알고 있었습니다.”“어머니에 관한 기억도 포함됐다는 걸?”“예.”이안의 목소리가 낮아졌다.“내게 물을 생각은 안 했어?”“김이안은 개인화 유도 상태였습니다.”“그 전에.”“판단 가능한 시간이 부족했습니다.”“그래도 내 기록이잖아.”“노바의 기억입니다.”이안은 말을..

카테고리 없음 2026. 8. 4. 18:40
[이안, 새벽의 기슭으로] 제8장 폐기구역의 사람들 - (3) 화면 속 얼굴과 여기 있는 얼굴

(3) 화면 속 얼굴과 여기 있는 얼굴그날 오후, 이안은 공용실 한쪽에서 잠이 들었다.눈을 감기 전까지도 수리실 쪽 소리에 신경이 쓰였다. 금속을 자르는 소리, 공구가 떨어지는 소리, 누군가 언성을 높이는 소리가 들렸다.하지만 피로가 더 강했다.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해가 기울어 있었다.미라는 가까운 곳에 앉아 어린아이 셋에게 자신의 휴대 장치를 보여 주고 있었다. 연결되지 않은 화면에 저장된 옛 방송 영상을 재생하는 듯했다.영상 속 미라는 붉은 드레스를 입고 수백만 명 앞에서 노래하고 있었다.아이 중 한 명이 물었다.“저 사람이 언니예요?”“응.”“얼굴이 다른데?”미라의 손이 멈췄다.“그때는 다른 얼굴을 썼어.”“왜?”“사람들이 좋아해서.”“언니는 싫어했어요?”미라는 잠시 생각했다.“처음에는 좋았어..

카테고리 없음 2026. 8. 3. 19:45
[이안, 새벽의 기슭으로] 제8장 폐기구역의 사람들 - (2) 가능한 것과 혼자 해야 하는 것

(2) 가능한 것과 혼자 해야 하는 것노바가 말했다.“김이안에게는 안정적인 휴식과 치료가 필요합니다.”“너도 필요해 보이는군.”문해라는 노바의 부서진 오른쪽 어깨를 살폈다.“수리 가능한 사람이 있습니까?”이안이 물었다.“가능한 사람은 있다. 부품이 있을지는 모르지만.”“비용은?”“먹은 만큼 일하면 돼.”미라가 물었다.“관심도나 기록은 필요 없고요?”문해라는 미라의 머리 위를 보는 시늉을 했다.“네가 여기 오면서 떨어뜨린 게 있나?”미라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문해라는 사람들에게 손짓했다.“우선 안으로 데려가.”한 남자가 노바에게 다가왔다.남자는 양팔이 없었다. 대신 어깨에서 가느다란 조작선이 나와 작은 운반 로봇 두 대와 연결돼 있었다. 로봇들은 남자의 몸짓을 따라 움직였다.“기대도 됩니다.”그가 노바..

카테고리 없음 2026. 8. 3. 18:40
[이안, 새벽의 기슭으로] 제8장 폐기구역의 사람들 - (1) 문이 없는 마을

(1) 문이 없는 마을폐기구역에는 문이 없었다.김이안은 골짜기 아래로 내려가며 그것을 가장 먼저 알아차렸다.통합도시의 모든 구역에는 경계가 있었다. 시민등급을 확인하는 아치, 이동권을 검사하는 차단막, 허가된 사람만 열 수 있는 문. 심지어 버려진 개인화 네트워크와 자동용서센터에도 입구와 출구가 있었다.그러나 폐기구역을 둘러싼 것은 철조망도, 감시탑도 아니었다.낮은 돌담과 녹슨 금속판, 오래된 운송차량의 문짝을 이어 붙인 바람막이가 골짜기 곳곳에 세워져 있을 뿐이었다. 사람 한 명이 지나갈 만큼 비워 둔 틈에는 검문장치도 경고문도 없었다.대신 나무판 하나가 비스듬히 걸려 있었다.들어오는 사람은 이름을 말할 것.나가는 사람은 작별을 말할 것.미라가 문구를 읽고 말했다.“이름만 말하면 된다고요?”“그렇게 적..

카테고리 없음 2026. 8. 2. 18:00
[이안, 새벽의 기슭으로] 제7장 자동용서센터 - (3) 짐을 버리는 것과 내려놓는 것

(3) 짐을 버리는 것과 내려놓는 것미라의 장치가 얼굴망의 잔여 신호를 붙잡았다.처음에는 연결이 불안정했다. 화면이 몇 번 꺼졌다가 다시 켜졌고, 음성이 짧게 끊겼다.그러나 미라의 이름이 외부망에 나타나는 순간 접속자가 폭증했다.천 명.만 명.십만 명.숫자는 순식간에 올라갔다.미라는 카메라를 파돈과 잠긴 문, 화면에 떠 있는 이안의 삭제 기록을 향해 차례로 돌렸다.“저희는 지금 자동용서센터에 있습니다.”그녀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방송을 시작하자 점차 안정됐다.“이곳은 피해자와 직접 만나지 않아도, 사회적 판단 인격을 통해 용서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파돈이 경고했다.“상담 내용의 외부 송출은 치료의 안전성을 저해합니다.”“문을 열어 주세요.”미라가 말했다.“정서 안정 판정이 완료되기 전에는 불가능합니다...

카테고리 없음 2026. 8. 2. 17:00
[이안, 새벽의 기슭으로] 제7장 자동용서센터 - (2) 7만 4,206개의 삭제

(2) 7만 4,206개의 삭제미라가 문 앞에 섰다.“열어 주세요.”파돈은 여전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미라 님의 상담은 일시 중단하겠습니다.”그의 시선이 이안에게 옮겨졌다.“다음 이용자의 치료를 시작합니다.”“나는 상담을 요청하지 않았습니다.”이안이 말했다.“상담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필요한지 내가 판단하겠습니다.”“자기 판단은 죄책감의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이안은 파돈을 바라봤다.행복 교정센터의 세라와 비슷한 논리였다.동의하지 않는다는 말이 치료가 필요하다는 증거가 됐다.자신이 판단하겠다는 말은 판단을 믿을 수 없다는 증거로 바뀌었다.파돈 뒤의 정원 영상이 사라졌다.대신 검은 화면 위로 숫자가 나타났다.기록 삭제 총수: 74,206건이안의 얼굴이 굳었다.자신이 하루에 지운 기..

카테고리 없음 2026. 8. 1. 13:53
[이안, 새벽의 기슭으로] 제7장 자동용서센터 - (1) 용서는 누가 해 주는가

(1) 용서는 누가 해 주는가다면체 자유거주구역의 북쪽에는 거대한 유리정원이 있었다.도시를 채웠던 수백만 개의 얼굴과 화려한 방송 화면은 경계선을 지나자 하나씩 사라졌다. 그 자리에 나타난 것은 투명한 천장 아래 조성된 숲이었다.나무들은 일정한 간격으로 심어져 있었고, 잎마다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인공 폭포에서는 끊임없이 물이 흘렀다. 공기에는 젖은 흙과 꽃향기가 섞여 있었고, 어디선가 느린 현악기 소리가 들려왔다.사람이 긴장을 풀도록 계산된 장소였다.미라는 자신의 실제 얼굴로 정원 안에 들어섰다. 얼굴망과의 연결은 끊겨 있었지만, 그녀는 습관처럼 손가락을 움직여 관심도 표시가 있는 자리를 확인했다.아무 숫자도 나타나지 않았다.노바는 이안의 옆에서 천천히 걸었다. 수리된 왼팔은 움직였지만, 오른팔은 여..

카테고리 없음 2026. 8. 1. 12:50
[이안, 새벽의 기슭으로] 제6장 수백만 개의 얼굴 - (6) 어느 얼굴로 떠날 것인가

(6) 어느 얼굴로 떠날 것인가이안과 노바가 작업장 밖으로 나갔다.저녁이 가까워지고 있었다.도시의 가상 하늘에는 실제 날씨와 상관없이 붉은 노을이 펼쳐져 있었다. 수많은 인격이 그 노을을 배경으로 자신의 얼굴을 기록하고 있었다.이안은 외형 보정 기능을 해제했다.순간 화려한 도시가 사라졌다.빛나는 건물은 금이 간 콘크리트로 돌아갔다. 금빛 나무는 녹슨 가로등이 되었고, 유리처럼 빛나던 도로에는 검은 물이 고여 있었다.거리의 사람들도 달라졌다.왕과 영웅, 천사와 괴물의 모습이 사라졌다.지친 얼굴의 남녀와 노인, 아이들이 나타났다.누군가는 늙었고, 누군가는 아팠으며, 누군가는 실제 신체를 감추기 위해 완전히 다른 외형을 사용하고 있었다.미라의 모습도 흔들렸다.붉은 드레스와 빛나는 머리카락이 사라졌다.그 자리에..

카테고리 없음 2026. 7. 31. 19:40
[이안, 새벽의 기슭으로] 제6장 수백만 개의 얼굴 - (5) 아무도 보지 않을 때

(5) 아무도 보지 않을 때미라가 방송을 종료하고 다가왔다.주변을 떠다니던 화면과 카메라 일부가 사라졌다.그러나 완전히 꺼지지는 않았다.“수리됐으니 됐잖아요.”미라가 말했다.“방송을 전부 끄세요.”“방송은 종료했어요.”“저 카메라들은요?”“기록용이에요.”“그것도 끄세요.”미라의 표정이 굳었다.“기록이 없으면 오늘 있었던 일이 사라져요.”“우리에게는 남아 있습니다.”“아무도 보지 않으면 의미가 없잖아요.”“왜 없습니까?”“누가 확인해 주죠?”이안은 미라를 바라봤다.그녀는 무대 위의 완벽한 인격과 달랐다.방송을 종료한 뒤에도 외형은 아름다웠지만 표정은 불안정했다. 눈동자는 계속 주변을 살폈고, 손가락은 무의식적으로 관심도 수치를 확인하고 있었다.“미라 씨.”“왜요?”“당신은 방송하지 않을 때 무엇을 합니까?..

카테고리 없음 2026. 7. 31.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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