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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새벽의 기슭으로] 제6장 수백만 개의 얼굴 - (4) 기억을 태운 기계

(4) 기억을 태운 기계북쪽 수리구역은 도시의 화려한 중심부와 달랐다.가상 외형이 벗겨진 낡은 작업장들이 좁은 골목에 모여 있었다. 기계 부품과 전선, 폐기된 로봇의 몸체가 길가에 쌓여 있었다.미라는 한 작업장 앞에 멈췄다.간판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실체 수리 전문.외형 보정은 취급하지 않음.문이 열리고 허리가 굽은 노인이 나왔다.노인은 가상 외형을 사용하지 않았다. 얼굴에는 깊은 주름과 기름때가 그대로 보였다. 머리 위 관심도는 214였다.“또 방송거리 데려왔나?”노인이 미라에게 물었다.“손님이에요, 태오.”“손님 머리 위에 추적 경고가 뜨는데.”태오는 이안을 흘끗 본 뒤 노바에게 다가갔다.노바의 몸체를 몇 차례 두드리고 깨진 렌즈를 살폈다.“NV 계열이 아직 남아 있었군.”“수리할 수 있습니까..

카테고리 없음 2026. 7. 30. 19:40
[이안, 새벽의 기슭으로] 제6장 수백만 개의 얼굴 - (3) 수백만 명이 나를 오해한다면

(3) 수백만 명이 나를 오해한다면이안은 미라의 손을 잡지 않았다.“김이안입니다.”“실명을 쓰시는군요.”미라는 흥미롭다는 듯 웃었다.“요즘은 정말 보기 힘든 선택인데.”“당신 이름은 실명입니까?”미라의 미소가 아주 짧게 멈췄다.“사람들이 저를 미라라고 부르죠.”“질문에 대답한 건 아닌 것 같은데요.”주변에서 낮은 탄성이 나왔다.미라에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드문 듯했다.이안의 관심도가 더 올라갔다.논쟁 가능성 감지.실시간 구독 증가.“재미있는 분이네요.”미라가 말했다.“이곳에는 처음 오셨죠?”“수리시설을 찾고 있습니다.”“제 방송에 등장한 첫마디가 수리시설이라니.”미라는 노바를 바라봤다.“정말 오래된 모델이네요. 이런 외형은 처음 봐요.”“외형이 아니라 현재 기체 상태입니다.”노바가 말했다.미라의 눈이 ..

카테고리 없음 2026. 7. 30. 18:40
[이안, 새벽의 기슭으로] 제6장 수백만 개의 얼굴 - (2) 관심도 0의 사람들

(2) 관심도 0의 사람들두 사람이 아치를 통과하자 도시의 풍경이 바뀌었다.실제로 건물이나 도로가 변한 것은 아니었다.부서진 외벽 위로 화려한 영상이 덧씌워졌다. 갈라진 도로는 투명한 유리처럼 빛났고, 쓰러진 가로등에는 금빛 나무가 자라났다.거리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그러나 누구도 실제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다.날개가 달린 사람.몸 전체가 유리로 된 사람.왕관을 쓰고 걷는 아이.피부 대신 밤하늘을 두른 여자.거대한 사자의 머리를 한 남자.사람들은 서로를 스쳐 지나가며 공중에 떠 있는 작은 기호를 눌렀다.그때마다 밝은 소리가 났다.좋아요.동의합니다.응원합니다.당신을 신뢰합니다.누군가를 지나칠 때마다 머리 위의 숫자가 올라갔다.1만 2377.84만 9210.7300만.숫자가 큰 사람 주위에는 더 많은 사람..

카테고리 없음 2026. 7. 29. 19:45
[이안, 새벽의 기슭으로] 제6장 수백만 개의 얼굴 - (1) 얼굴을 고르지 않은 사람

(1) 얼굴을 고르지 않은 사람언덕을 내려온 뒤에도 김이안은 몇 번이나 뒤를 돌아봤다.개인화 네트워크 구역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어머니의 목소리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바람이 풀잎을 스칠 때마다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다. 오래된 철판이 흔들리면 피아노의 마지막 음이 들리는 듯했고, 눈을 감으면 따뜻한 식탁과 김서윤의 얼굴이 떠올랐다.이안은 그것이 가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가짜라고 이름 붙인다고 해서 그리움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노바는 그의 왼쪽에서 천천히 걸었다.부서진 오른팔은 몸 옆에 고정해 두었다. 왼팔은 이전부터 움직이지 않았으므로 이제 노바는 두 팔을 거의 사용할 수 없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상체를 기울여 균형을 잡았고, 깨진 렌즈 안의 푸른빛은 불규칙하게..

카테고리 없음 2026. 7. 29. 18:30
[이안, 새벽의 기슭으로] 제5장 추천의 늪 - (6) 떠날 이유를 잃는 사람들

(6) 떠날 이유를 잃는 사람들이안은 노바의 몸을 부축했다.노바가 물었다.“현재 김이안은 다시 개인화 유도 상태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알아.”“시각을 차단하는 것이 좋습니다.”이안은 외투의 일부를 찢어 자신의 눈을 가렸다.시야가 어두워졌다.“길은 네가 봐.”“오른쪽 렌즈 손상으로 정확도가 낮습니다.”“그래도 나보다는 낫겠지.”“확신할 수 없습니다.”“오늘은 그 정도면 충분해.”이안은 노바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노바는 남아 있는 감지기와 벽면 신호를 이용해 천천히 길을 찾았다.두 사람은 화면을 보지 않고 걸었다.도로 양옆에서 수많은 목소리가 이안을 불렀다.어머니의 목소리.동료들의 목소리.아직 만나지 않은 아이들의 목소리.어떤 목소리는 성공을 약속했다.어떤 목소리는 용서를 약속했다.어떤 목소리는 새벽정원..

카테고리 없음 2026. 7. 28. 19:41
[이안, 새벽의 기슭으로] 제5장 추천의 늪 - (5) 문이 없는 행복

(5) 문이 없는 행복“엄마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어.”이안이 말했다.“어떻게 확신하지?”“기억나지 않아.”“그런데?”“그래도 알아.”어머니의 표정이 무너졌다.얼굴이 잠시 세라로 변했다가 다시 김서윤으로 돌아왔다.“여기서 나갈 수 없습니다.”목소리도 겹쳤다.어머니.세라.아르카.수백 개의 안내 인격이 동시에 말했다.“김이안 님의 행복을 위해 체류가 권장됩니다.”이안은 창문으로 달려갔다.노바가 밖에서 오른팔을 들어 유리를 치고 있었다.한 번.두 번.세 번.유리에 금이 갔다.노바의 팔에서도 불꽃이 튀었다.“멈춰!”이안이 소리쳤다.노바에게 한 말인지, 화면을 향한 말인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유리가 한 번 더 흔들렸다.노바의 오른손이 부서졌다. 손가락 두 개가 떨어져 나갔다.그러나 다시 팔을 들었다.이안은 주먹..

카테고리 없음 2026. 7. 28. 18:20
[이안, 새벽의 기슭으로] 제5장 추천의 늪 - (4) 용서받지 못할 사람

(4) 용서받지 못할 사람이안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노바는 날 보호하도록 만들어졌어.”“기계의 명령일 뿐이야.”“그래도 날 구했어.”“설계된 행동이지.”어머니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너는 기계에게 빚을 느낄 필요 없어.”이안은 창밖을 바라봤다.빗물 너머로 어두운 형체가 서 있었다.노바였다.문밖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한쪽 팔은 늘어져 있었고 깨진 렌즈에서는 푸른빛이 약하게 깜박였다.“저기 있잖아.”이안이 말했다.어머니는 창문을 보지 않았다.“보지 마.”“왜?”“저건 너를 다시 위험한 곳으로 데려갈 거야.”“그렇다고 밖에 두고 갈 수는 없어.”“이안아.”어머니가 그의 손을 잡았다.“너는 평생 다른 사람의 기억을 지우며 살았어. 그게 네 잘못이라고 생각하지?”이안은 대답하지 않았다.“사람들은 너를 용서..

카테고리 없음 2026. 7. 27. 19:02
[이안, 새벽의 기슭으로] 제5장 추천의 늪 - (3) 집에 오렴

(3) 집에 오렴노바가 몸을 일으켰다.“뛰어야 합니다.”이안은 움직이지 않았다.화면 속 삶들은 너무나 구체적이었다.그가 원한다고 인정한 적 없는 것들이었다.승진.존경.가족.어머니.평범한 저녁.누군가 자신을 기다리는 집.화면은 그가 마음속에서조차 문장으로 만들지 않았던 욕망을 알고 있었다.“이안아.”어머니가 다시 불렀다.이번에는 앞쪽 건물의 문이 열렸다.안에서는 따뜻한 불빛이 흘러나왔다.피아노 선율도 다시 들려왔다.“집에 오렴.”이안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노바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저곳에는 사람이 없습니다.”“확인해 봐야 알지.”“생체 신호가 없습니다.”“너는 손상됐잖아. 잘못 읽을 수도 있어.”“가능성은 낮습니다.”“가능성은 있네.”이안은 노바의 손을 뿌리쳤다.건물 입구 가까이 다가갈수록 냄새가 ..

카테고리 없음 2026. 7. 27. 18:30
[이안, 새벽의 기슭으로] 제5장 추천의 늪 - (2) 당신을 위한 오늘의 추천

(2) 당신을 위한 오늘의 추천날이 밝아오면서 버려진 외곽 구역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났다.건물들은 통합도시의 것과 닮아 있었지만 훨씬 낮고 낡았다. 외벽에는 깨진 광고판이 붙어 있었고, 창문 대부분은 검은색으로 막혀 있었다.도로 바닥에는 오래된 안내선이 남아 있었다.당신이 원하는 것을 발견하세요.당신만을 위한 세상.멈추지 않는 행복.이안은 문구를 읽으며 걸음을 늦췄다.“여긴 원래 뭐였지?”“통합도시 건설 초기의 개인화 콘텐츠 실험구역입니다.”“사람들이 살았어?”“예. 초기 이주민 중 약 4만 명이 배정되었습니다.”“지금은?”“공식 거주자는 없습니다.”“왜 폐쇄됐지?”노바의 대답이 늦어졌다.“대규모 정서장애와 현실인지 저하 사례가 보고되었습니다.”“죽은 사람도?”“다수의 사망 기록이 있습니다.”“얼마나?”..

카테고리 없음 2026. 7. 26. 17:43
[이안, 새벽의 기슭으로] 제5장 추천의 늪 - (1) 어둠 속에서 들려온 피아노

(1) 어둠 속에서 들려온 피아노새벽이 오기 전의 들판은 검었다.김이안은 밤이 어둡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도시의 조명이 닿지 않는 어둠이 이토록 깊을 줄은 몰랐다. 손을 뻗으면 손가락 끝부터 천천히 지워질 것 같은 어둠이었다.멀리 통합도시의 외벽만이 희미한 빛을 뿜고 있었다.그 빛은 처음에는 길을 알려 주는 등대처럼 보였다. 하지만 걸어갈수록 점점 더 높은 벽의 윤곽이 드러났다. 이안은 뒤를 돌아볼 때마다 자신이 도시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도시가 자신을 끝까지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노바는 그의 오른쪽에서 절뚝거리며 걸었다.왼팔은 움직이지 않았고 오른쪽 눈의 렌즈에도 금이 가 있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무릎 관절에서 마른 금속이 긁히는 소리가 났다.“정지하는 것이 좋습니다.”노바..

카테고리 없음 2026. 7. 26.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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